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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여기서 자면 되잖아? (35/110)


35. 여기서 자면 되잖아?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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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연구실에서 혜수가 치료를 받던 그때.

승원은 혜수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병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병동에도, 응급실에도 혜수는 없었다.

승원은 자꾸 몰려오는 불안감을 애써 억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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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지. 별일 없을 텐데.’

혜수는 당직이 아닌 날에는 배터리가 나간 줄도 모르고 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불과 열흘 전에도 그랬다. 당시 승원은 평소 얼마나 잠이 모자랐으면 그랬냐고 안쓰러워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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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그런 걸 거야. 숙소에서 자고 있겠지.’

한 번 더 전화나 해보자 하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부재중 전화가 와 있다. 정신없이 혜수를 찾아다니느라 전화가 온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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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인가?’

하지만 부재중 전화의 주인공은 어머니. 무려 다섯 통이나 와 있다.

이렇게 잦은 연락을 해대는 거면 분명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일 테니 또 연락이 올 것이다.

승원은 메시지 함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시지도 여러 통 와 있다.

-너 왜 전화 안 받니?

-지금 계좌로 200만 좀 보내 줘. 급하게 쓸 데가 있어.

-아, 이번 달 생활비까지 한 번에 400 보내주면 되겠네. 너도 그게 편하지?

-왜 답이 없니?

-내가 지금 병원으로 가?

승원은 재깍 은행 앱을 켜 지선에게 이체를 했다.

그런 뒤에는 조금 더 혜수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목적을 달성한 지선에게서는 두 번 다시 전화나 메시지는 오지 않을 테니 휴대폰은 집어넣은 채.

하지만 여전히 혜수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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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자는 거겠지.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잖아.’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연구동으로 발을 옮겼다.

구름다리로 갔는데 문이 폐쇄되어 있다. 승원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병원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바깥은 온통 어둠이었다. 연구동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오를수록 빗방울은 점점 거세져 앞이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한 칸씩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데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자꾸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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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자꾸 이러지. 안 좋은 느낌이 들어. ……그래, 이건 어머니 때문이야.’

지금 이 기분은 조금 전 지선에게서 받은 연락 때문일 거라 애써 납득했다.

연구동에 도착한 승원은 2층으로 올라갔다. 자신의 연구실인 215호로 걸어가는데, 복도에 우산이 하나 보인다.

그런데, 우산이 낯이 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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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혜수가 얼마 전 샀다며 얘기하던 우산과 똑같은 우산이었다. 연분홍 색에 커다란 꽃무늬가 알록달록한 우산.

혜수의 것이기도 하고 당시 나이가 몇인데 이런 무늬의 우산을 사냐며 놀리기도 해서 정확히 기억한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저 우산은 우산 살이 반쯤은 부러져 있다는 것?

우연이네, 신기하다, 내일 혜수에게 말해줘야지, 라 생각하며 지나치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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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우산이 기대져 있는 207호는 도영의 방이라는 게 번뜩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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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승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빈틈없이 일그러졌다.

승원은 앞뒤 잴 것 없이 바로 207호로 달려갔다. 곧이어 쾅쾅, 문을 부수듯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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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영, 주도영! 당장 이 문 열어!”

쾅쾅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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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문 열라고!”

쾅쾅쾅. 소란스러운 소리가 복도에 끊임없이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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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영! 주도영! 문 열어!”

잠깐이었지만 승원에게는 잔인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도영이 나타났다.

승원을 발견한 도영이 미간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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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에 무슨 일이지.”

그런데, 도영이 아직 슈트 바지에 셔츠 차림이다. 아까 식당에서 일이 있다며 먼저 나가더니 왜 아직 이 모습이지.

게다가 방금 씻은 것처럼 머리카락은 물기에 젖어 있는데 여전히 슈트 차림이라. 조화롭지 못한 모습에 승원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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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 비켜.”

승원은 반쯤 열린 문을 벌컥 열고 서 있는 도영을 밀고 들어갔다.

형형한 눈빛으로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별다를 것이 없다.

가장 먼저 책상과 소파, 그 뒤의 책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비어 있는 이층 침대가 놓여 있다. 욕실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여기까지는 제 연구실과 똑같은 모습이다.

특이한 것은 책상 위 한구석에 드레싱 세트가 놓여 있다는 것. 하지만 이 또한 이상할 건 없다. 여긴 병원이니까. 어딘가 까지기라도 하면 충분히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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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행이다. 이곳에 없구나.’

잔뜩 굳었던 승원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혜수가 이곳에 없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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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디에 있는 거지?’

우뚝 선 채 생각에 잠긴 승원를 보며 도영이 사납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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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방에 억지로 들어오더니 뭐 하는 짓이지. 무례하기 짝이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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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라기에는 도영이 너무 손쉽게 밀려났었는데.

묘한 위화감을 느낀 승원은 복도에 기대어진 우산을 집어와 도영에게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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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우산 어디서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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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그따위 걸 물어보려고 이 난리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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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나 해.”

도영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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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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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방에 혼자 있었어?”

도영은 다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마치 방 안을 마음대로 보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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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에는 여기 지금 누가 있어 보이나?”

손을 양 어깨께로 올리며 으쓱거리는데 그 모습이 희한하게도 불안감을 더 부추긴다.

승원은 어금니를 부서질 것처럼 꽉 깨물고 도영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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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혼자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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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지 말고. 방 봐. 뭘 찾으러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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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에서도 혜수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방 구석구석을 살피던 승원의 눈이 다시 도영에게 향했다. 형형한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도영이 헛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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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처먹었으면 곱게 가서 자지 그래.”

승원이 손가락을 쭉 뻗어 우산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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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고 한 거. 사실이 아니라면 가만두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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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든지. 볼일 끝났으면 가지?”

도영이 조금씩 앞으로 다가왔다.

주춤주춤 복도로 밀려 나온 승원은 다시 한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도영 외에는 아무도 없는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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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만.”

도영은 문을 밀었다. 승원을 쏘아보던 검은 눈빛이 점점 작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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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영, 잠깐……!”

문이 닫히기 직전, 승원이 도영을 불렀지만 털컥 소리와 함께 문은 닫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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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영! 주도영!”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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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원은 입술을 짓씹으며 차가운 벽에 기대섰다.

도영의 방 안을 직접 확인까지 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불안은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이유는 한 가지. 조금 전 문이 닫히기 직전, 문틈으로 보이던 도영 때문이었다.

도영의 표정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것처럼 보였고,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잠시 뒤 혜수가 욕실 문을 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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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무슨 일 있어요? 시끄럽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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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무 일도. 앉아, 여기.”

혜수는 도영이 가리키는 대로 다시 앉았다. 도영도 의자를 하나 끌고 와 혜수의 앞에 앉았다.

물로 헹궈낸 무릎은 깨끗해져 있었지만 아직 상처에서는 피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었다.

도영은 거즈를 꺼내 무릎을 압박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생각보다 상처의 길이가 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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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처(suture:봉합)까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흉터가 남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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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는 혜수를 보며 도영은 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다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기존의 복강경 수술에 사용하는 서너 개의 절개도 보기 흉하다고 배꼽에 구멍 하나만 뚫는 원 포트 복강경 수술을 찾는 시대다.

게다가 이렇게 하얗고 티 하나 없는 피부에 커다란 흉터가 생기는 건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

진짜 괜찮은 건지, 교수 앞이라고 괜찮은 척하는 건지.

한숨을 삼킨 도영은 소독솜을 꺼내 혜수의 피부에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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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야.”

절로 신음이 나왔다. 소독약이 닿으니 상처가 쓰라리다. 도영은 손을 잠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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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하지.”

소독솜을 둥글리는 손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아프지 않게 소독을 하다 보니 꽤 시간이 걸렸다. 고요한 방 안엔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와 둘의 숨소리만 들렸다.

도영이 드디어 마지막 솜을 집어 무릎에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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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읏.”

순간 종아리에서 참을 수 없는 묘한 간지러움이 또 느껴졌다. 혜수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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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픈가?”

아프냐고 묻는 도영의 얼굴은 혜수의 마음도 모르고 심각해 보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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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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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가만히 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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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그럴게요.”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은 하는데 너무 간지럽잖아. 절로 다리가 배배 꼬이는데 어쩌냐고.

혜수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세게 눌렀다. 다른 곳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니 간지러움도 참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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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끝나라, 빨리.’

도영의 손이 연신 혜수의 무릎으로 오가고, 그것을 보고 있자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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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수님에게서 뜻밖의 모습을 많이 보네.’

주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의국에서도 병동에서도 도영은 늘 혼자였다. 사람들과 농담 한마디 섞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도영.

그래서 차갑고 싸늘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길가에서 비를 피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 그 환자한테 그렇게 선뜻 우산을 내줄 줄은 몰랐다.

그러고 난 뒤, 혜수와 우산을 나눠 쓴 것은 더욱 의외였다. 빗속에서 내버려 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이곳에 와서는. 도영은 지금 귀찮을 법도 한데 전혀 내색하지 않고 이렇게 혜수를 직접 치료해 주고 있다.

심지어 다리를 다친 당사자인 혜수보다 더욱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먼 병원까지 다녀오지 않았나.

혜수는 제 다리에 집중하고 있는 도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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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어떤 사람이에요? 궁금해요.’

차가운 얼음을 담아뒀던 유리에 작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모든 과정이 끝났다.

도영은 벌어진 상처에 테이프를 붙여주었다. 실로 엮는 봉합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찢어진 피부를 붙여주는 데 도움이 되는 특수 테이프였다.

그 위로 방수시트까지 붙여 준 도영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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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매일 소독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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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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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전에 엑스레이 찍고 OS(정형외과) 진료는 봐. 괜찮을 것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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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럴게요.”

하아, 이제 끝인가.

드디어 이 방을 탈출할 수 있게 됐나 했는데. 도영이 프린트해 둔 자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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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논문 볼까.”

아.

도영에게만 신경을 쓰다 보니 논문을 새까맣게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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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어제 미리 보내준 것들을 정리한 파일이야.”

도영이 자료들을 펼치며 나머지 손으로는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짙은 머리카락이 부서지며 도영의 향이 진하게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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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혜수는 콩콩대는 심장을 억누르며 책상으로 몸을 옮겼다.
 

한 시간쯤 뒤, 자료를 다 살핀 혜수는 목발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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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럼 가볼게요.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영이 고개를 비뚜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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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빗속에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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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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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을 짚고 거길 내려가겠다고? 그 가파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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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숙소로 돌아가야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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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는 병원과 이어지는 문을 수리해 놓는다고 하니 내일 거기로 가. 지금은 너무 위험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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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잘 곳이 없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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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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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연구동에 레지던트가 잘 만한 데가 있나?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

도영이 무심하게 팔을 쭉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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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자면 되잖아.”

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보니, 도영의 2층 침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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