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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좀 만져봐야겠어 (34/110)


34. 좀 만져봐야겠어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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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교수님! 잠시만요.”

황급히 발목을 털어냈지만 도영은 더욱 굳게 잡을 뿐이었다.

발목을 받치고 있는 도영의 손은 부목을 댄 것처럼 단단했고 혜수의 발목과 뒤꿈치를 가지런히 정렬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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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좀 있어줘, 발을 봐야 하니. 응?”

또 애원하는 듯한 말이다. 그제야 혜수는 움직임을 멈췄다.

양말을 벗겨내니 발목부터 발등까지 전부 부어올라 있고 피부도 조금 붉어져 있다.

넘어지면서 옆에 있던 테이블 모서리에 찍혔는지 오른쪽 무릎에는 열상이 있었다. 벌어진 피부 주위로 핏방울이 맺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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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만져봐야겠어.”

허락을 구하는 듯한 말과 표정은 여전히 심각해 보인다. 혜수는 부끄러워하던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영이 발목의 주위를 손으로 부드럽게 눌러 보았다. 아릿한 통증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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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혜수의 신음에 도영이 흠칫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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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많이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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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에요. 참을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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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아.”

달래듯 말한 도영은 계속 혜수의 발을 살펴보았다. 거리낌 없는 손길로 여기저기를 만져댔다.

오늘 병원을 하루 종일 누비고 씻지 못한 발인 데다가 비에 젖기까지 해 꼬질했음에도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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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진짜 괜찮은데요, 교수님…….”

괜찮지 않아 보이는 것은 여전히 도영이었다.

발을 살피는 그의 얼굴에는 당황과 걱정, 불안이 넘치도록 느껴진다. 오히려 혜수가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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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무슨 일 있으세요? 괜찮……으신 거예요?”

도영이 초조한 목소리로 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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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 움직여 봐. 발가락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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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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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 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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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합니다, 해요.”

근육에 힘을 주어 발을 꼬물거렸다. 다행히 모두 원활하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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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괜찮네요!”

크게 부러진 것은 없어 보이니 반깁스 정도로 며칠만 하면 되겠다.

무릎은 워낙 튼튼했던 몸이니 그냥 놔둬도 아물 것이다. 흉은 좀 지겠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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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움직이네요! 아하하.”

혜수는 일부러 크게 웃으며 다리를 툭툭 소리가 나도록 쳤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고 발목을 더욱 힘차게 돌렸다.

도영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됨을 온몸으로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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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괜찮습니다! 정말로요!”

그런데. 혜수의 발을 살피던 도영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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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그대로 앉아 있어. 스프린트(splint:깁스) 대야 하니 내가 가져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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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디서요?”

이 맹한 물음에 도영이 캐비닛에 걸려있던 가운을 집어 몸에 걸치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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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겠어? 병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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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교수님이 나를 위해 병동까지 갔다 오신다고? 이 비가 오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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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나중에 병동에 가서 할게요!”

그러자 여태 불안함이 가득했던 까만 눈동자에 한심하다는 빛이 잠깐 섞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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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리로 병동까지 걸어가겠다고?”

뒷말은 없었지만 너 의사 맞아? 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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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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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좀 잠깐 빌리지. 여기에는 우산이 없어서.”

가운을 걸친 도영은 문 손잡이를 잡았다. 정말로 혜수를 위해 병동에 갈 생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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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전 정말 괜찮……!”

하지만 혜수의 꽃무늬 우산을 든 도영은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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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졸지에 도영의 방에 혼자 남아버린 혜수는 안절부절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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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왜 저러시지?’

도저히 도영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삐끗하기는 했지만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깁스로 얼마간 고정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테고 아픈 거야 진통제 몇 알 먹으면 되니까. 무릎이 찢어진 것도 언젠가는 살이 차오르겠지.

그런데도 도영은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더러운 발을 거리낌 없이 주무르던 것도 경악할 일인데, 이제는 이 비를 뚫고 병원까지 왕복한 뒤 스프린트를 직접 대주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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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체 왜?’

혜수는 이상하기 그지없는 도영의 모습에 온갖 가정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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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남이 아픈 것을 보면 반드시 치료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거지. 진정한 의사의 모습이랄까. ……아니야. 그건 아니야.’

1년 차가 된지 얼마 안 됐던 때였다. 회진이 끝나고 혜수와 경애는 스테이션에 모여 서서 도영의 지시사항을 적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경애가 지나가던 배식 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모서리에 긁혀 손이 찢어졌었다.

딱 봐도 지금 혜수의 무릎에 난 상처보다 훨씬 깊었고 피가 꽤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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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선생님, 다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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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잠시만 계세요!”

 
간호사들이 거즈와 드레싱 세트를 찾으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영은 경애의 손을 흘깃 보고 다시 제 할 말만 이었다. 모든 볼일이 끝난 뒤엔 그냥 휙 사라졌다.

주변 사람들도 도영의 반응을 보며 그럼 그렇지, 라는 기색을 내비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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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니 그건 절대 아니고. 아니면 내가 다친 게 불쌍해 보여서? 내가 전에 교수님을 도와줬으니 교수님도 날 도와주고 싶은가? 그렇지만…….’

도영에게 비쳤던 초조함은 연민 같은 게 아니었다. 당시 전해진 감정은 불안함. 그리고 커다란 두려움이었다.

잘게 흔들리는 목소리로 걱정의 말을 건네던 도영. 그에게서는 평생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모습이다.

아마 내일 동기나 선배들에게 주 교수님이 그랬었다니까! 라고 말해줘도 아무도 믿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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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단순히 스프린트 대는 것이 재밌어서?’

……그럴 리가 있나.

생각나는 게 없어 그냥 끼워 맞춘 보기이다. 게다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도영의 표정과 행동이 너무 심각해 보이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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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대체 뭐냐고! 다리 약간 다친 걸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 거냐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도영이 왜 저러는지 혜수로써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그 시각, 승원은 회식이 끝나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정이 넘어야 끝날 거라 예상했던 회식은 비 덕분에 일찍 끝났다.

과장들이 비가 오니 허리가 쑤신다, 난 무릎이 쑤신다, 한번 열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해줄 테니 날이나 잡아라 등 헛소리를 늘어놓은 탓이었다.

일찍 끝난 회식에 취기까지 적당히 오르니 기분이 좋다.

문득 혜수가 생각이 났다. 기분이 좋으니 더욱 혜수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얼굴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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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나 해볼까. 오늘 병원에서 잔댔는데.’

승원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혜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화가 꺼져있으니 다음에 다시…….

몇 번을 다시 걸어도 전화는 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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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나?’

괜스레 불안해졌다. 오늘은 계속 병원 안에 있을 거다 그랬으니 딱히 일이 생길 만한 것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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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무슨 일이야 있겠어. 전화 꺼놓고 자는 거겠지.’

승원은 고개를 한 번 흔들고 다시 병원으로 올라갔다.
 

다시 도영의 방.

혼돈의 시간이 지나가고 도영이 돌아왔다. 두 손이 가득 찬 채다. 무릎에 할 드레싱과 발목을 감쌀 스프린트의 재료들, 목발까지 들고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많이 오는지 도영의 머리와 가운은 또 푹 젖어 버렸다.

수건을 꺼내 물기를 대충 닦은 도영은 젖은 가운은 벗어내고 혜수의 옆에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혜수의 앞에 다시 한쪽 무릎을 꿇는다. 그러더니 자신의 허벅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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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발 올려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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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혜수도 모르게 절로 입이 딱 벌어지고 새된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도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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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린트 대야 할 거 아냐. 땅에 발을 붙이고 어떻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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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니에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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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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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할게요, 스프린트.”

어떻게 교수님의 몸에 이 더러운 발을 올린단 말인가! 절대 안 될 일이다. 암,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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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계속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자 결국 도영에게서 성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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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도 좋아. 혼자서 어떻게 대겠다는 거지. 아니면 내가 직접 OS(정형외과) 레지던트를 이곳에 끌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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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영이라면 충분히 그럴 것이다. 자고 있는 레지던트를 때려 깨워서라도 데리고 올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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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아니요! 지금 올립니다!”

혜수는 저항을 포기하고 도영의 허벅지에 발을 올렸다. 점점 더 붓고 있는 건지 아까보다 훨씬 퉁퉁 해져 버린 발목이 드러난다.

붉은 발을 보며 하, 깊게 숨을 한 번 내쉰 도영은 혜수의 발과 종아리에 재단해 둔 스프린트를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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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때? 괜찮아? 불편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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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혀요. 훨씬 낫네요.”

단단한 스프린트가 다리 뒤에 대어지자 안정감이 느껴졌다. 편안하다. 아까 도영이 제 손으로 발목을 받쳐줬을 때처럼.

스프린트를 발에 맞춘 도영은 옆에 놓인 붕대를 집어 들어 혜수의 발을 감싸기 시작했다. 여전히 혜수의 발은 제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채로.

덕분에 도영의 손이 자꾸만 혜수의 피부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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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방 안에는 혜수와 도영, 둘의 숨소리만 들린다. 간간이 혜수의 피부에 도영의 손이 닿는 소리와 함께.

도영의 손가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우아하게 뻗어있지만 다부져 보였고 그 위로는 그 위로는 더 단단한 전완근이 있었다.

도영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잘게 갈라지는 전완근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생각들이 자꾸 든다. 제 피부를 건드리는 손길이 야릇하게 간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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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신혜수. 뭘 생각하는 거야.’

이성과는 달리 도영이 잡고 있는 피부가 점점 달아올랐다.

자신의 다리만을 보고 집중하고 있는 도영은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도영의 호흡이, 묵직하고 단정한 체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냥 치료를 받고 있는 것뿐인데 왜 이리 의식이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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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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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도영이 깜짝 놀라며 혜수의 안색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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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요.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이젠 도영의 손이 닿아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상처를 건드려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혜수는 자신의 다리를 잡은 도영의 손이 더 신경이 쓰이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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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교수님. 이제 제가 할게요.”

안 되겠다 싶은 혜수는 버둥거리며 다리를 빼내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도영은 더욱 혜수의 다리를 쥔 손에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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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해가. 가만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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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게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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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

도영이 또 고개를 들어 혜수를 쳐다보았고, 둘의 눈이 곧게 마주쳤다.

화들짝 놀란 혜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순식간에 귀까지 빨개졌다.

역시 이 상황이 이상한 건 나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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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아무것도.”

잠시 뒤, 붕대를 다 감은 도영은 드레싱 세트를 꺼내며 혜수의 오른쪽 다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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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드레싱 해야지.”

피부가 파인 무릎 주위로는 피가 여전히 스멀스멀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그새 검붉은 피딱지가 길게 말라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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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게이션(irrigation:세척) 좀 해야겠는데.”

도영이 가져온 생리식염수를 꺼냈다. 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그 먼 곳에서 1리터짜리 식염수를 두통이나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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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이건 제가 욕실에서 하고 올게요. 바닥에 물이 많이 떨어질 거예요.”

지금도 충분히 폐를 끼치고 있는데 연구실 안까지 난장판을 만들 수는 없었다.

혜수는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 혜수의 말이 맞다고 생각되는지 도영도 아무 말 없이 따라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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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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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럼요.”

목발을 짚고 욕실로 조금씩 걸어가는데 도영이 졸졸 따라온다.

욕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도 뭐가 그리 걱정인지 혜수의 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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