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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그 끝은 빛나는 사랑 (30/110)


30. 그 끝은 빛나는 사랑
202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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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의 눈이 혜수의 손을 대놓고 훑는다.

마치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미지의 상자를 보는 것처럼 샅샅이 탐색한다. 손금 하나 지문 하나도 다 외울 기세다.

신기하다. 손을 보고 있을 뿐인데 온몸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영이 검지로 소파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조용한 연구실에 톡톡,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고 곧 울림은 전신을 흔들었다. 소리에 맞추어 심장 박동은 더욱 거세져 갔다.

더는 이렇게 못 앉아 있겠다. 혜수는 손을 오므리며 뒤로 슬쩍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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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왜 그러세요. 제 손에 뭐라도…….”

그러자 도영이 혜수의 손을 향해 제 손을 휙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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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수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도영의 손이 제 손에 닿기 직전. 도영이 손을 뒤로 물리며 주먹을 꽉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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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논문은 거기 놓고 가 봐. 밑줄 친 것들은 내가 보고 답변 달아놓지. 나머지는 가서 보도록 해. 논문의 원본들은 이메일로 보내놨으니 확인하도록. 답변은 내일 가지러 오고.”

혜수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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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럼 전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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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를 모으는 일을 나눠 하면 돼. 환자에게 연구 설명하고, 동의서 받아. 랜덤하게 환자들을 분류해 줘. 저체온 군과 극 저체온 군으로. 그리고 수술이 끝난 뒤에는 측정하기로 한 결과들을 한데 모으면 된다. CRF(증례기록지)를 작성해. 기간은 2개월 주지. 7월 말까지.”

말을 마친 도영이 나가라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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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알겠습니다!”

혜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지금 혜수가 가장 바라는 것도 이 방을 나가는 것이니까. 교수님의 송곳 같은 시선도, 지금의 행동도 의문투성이다. 게다가 모두 저를 지나치게 긴장시킨다.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속이 시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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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일 뵐게요, 교수님.”

도영도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해 주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왔다. 방문이 철컥 닫히니 진짜로 살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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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혜수가 나간 뒤, 도영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비록 눈앞의 혜수는 없어졌지만 머릿속엔 끊임없이 혜수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는 덕이다.

혜수의 표정은 다양했다. 당황한 혜수, 시무룩한 혜수, 웃는 혜수, 눈을 흘기는 혜수, 슬퍼하는 혜수, 궁금한 것이 있어 눈을 동그랗게 뜬 혜수.

대체 자신이 무얼 떠올리는지 자각하지도 못한 채 앉아 있는데 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흠칫 놀란 도영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도영의 팔을 봐주고 있는 교수에게서 온 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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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교수님. 주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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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주 교수.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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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쩐 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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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요새는 증상이 좀 어떤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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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전화드렸을 때와 비슷합니다.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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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 약 다 떨어져가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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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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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으려는 교수를 도영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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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교수님.”

불러놓고는 잠깐 망설였다. 앞으로 말할 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과학적이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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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나?

도영은 숨을 한번 삼키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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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사람과 닿을 경우 경련이 바로 멈춘다거나, 증상이 완화된다거나……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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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라고? 다시, 다시 한번 말해 주겠나?

교수도 잘못 들었다 생각했는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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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가 통증을 느낄 때 누군가와 접촉할 경우. 경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가능할지 여쭤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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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 경우가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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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정말 그것 때문인지 우연히 시기가 겹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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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글쎄…….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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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냥 우연이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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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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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생각 좀 해보지.

교수는 한참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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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자네 그 사람과의 접촉으로 안정감을 느꼈나? 편안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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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습니다. 통증을 느끼던 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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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이래.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자네의 과활성된 신경을 잠재울 정도로 이완감을 느낀 거지. 딸꾹질도 심호흡하면 멈추잖아. 부교감 신경이 올라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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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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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갖다 붙인다면 지금으로써는 그 정도로 설명해 줄 수밖에 없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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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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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실망하지는 말게. 의학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많잖아. 자네의 지금 증상도 전형적이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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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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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이를 지켜봐. 정말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케이스 리포트(case report: 특이한 의학적 사례를 발표하는 것) 해보는 것도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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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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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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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도영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혜수가 저를 간호해 줬던 날, 재성의 손을 잡았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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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이라. 내가 신혜수에게? 정말 그것이 이유인가? 아니면 우연?’

 

***

병동을 지나던 도영은 스테이션이 평소보다 들떠있는 기색을 느꼈다. 간호사들과 인턴, 그리고 외과 레지던트들이 테이블 주위로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신혜수다. 그들은 무언가를 보며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도영은 마침 바깥으로 나오던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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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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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도영의 갑작스레 말을 걸자 간호사가 깜짝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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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 지금 뭐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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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말씀이신지.”

환자 외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도영이 물으니 아리송했다. 우리가 뭔가를 잘못했나, 선생님들이 잘못을 저질렀나, 란 생각부터 든다.

새파래지는 간호사의 얼굴을 보고 도영이 질문을 바꿔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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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기 다들 모여 있는 거. 뭐 때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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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생님들이요? 테이블 주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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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간호사의 얼굴이 그제야 원래의 안색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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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니에요, 교수님. 오늘 저녁에 한승원 교수님이 야식을 쏜다고 하셔서요. 당직 선생님들이 메뉴 고르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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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교수? 정형외과 한 교수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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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한 교수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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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외과 병동인데 한 교수가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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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층 전체에 다 쏘신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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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승원의 수가 빤히 보인다. 혜수가 당직인 날 혜수가 있는 병동에 음식을 돌리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이상해 보이니 차라리 6층 전부에게 음식을 사주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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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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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요? 분식 시킨대요. 떡볶이랑 만두 같은 거. 교수님도 드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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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도영은 다시 걸어갔다.

하, 나 참.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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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 하는군. 신혜수가 어린애도 아니고 음식은 무슨.’

 

그날 밤, 예고대로 6층 각 병동의 준비실 안에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테이블마다 떡볶이, 순대, 어묵, 튀김 등 분식이 종류별로 놓였다. 콜라며 사이다도 다양한 브랜드로 같이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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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 교수님. 센스. 0 칼로리 콜라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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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요. 난 이 콜라만 마시는 줄 어떻게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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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님은 안 오신대? 같이 드시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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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이라서 수술 중. 아까 들어갔으니 곧 끝날 거예요. 그럼 올라오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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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스케줄은 언제 또 까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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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사 팬이면 그건 기본이죠.”

저마다 젓가락을 들고 막 한 입 먹으려는데 준비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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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인턴 샘?”

외과 의국에 다녀온다던 인턴이 커다란 카트를 끌고 왔다. 카트 칸칸마다 알록달록한 상자들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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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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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랑 수제 초콜릿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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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웬 케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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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갖다 주래요.”

어느 환자가 준 거냐, 누구에게 준 거냐, 디저트까지 웬 풍년이냐, 오늘 계 탔다는 말들이 잠시 오갔다.

인턴이 68 병동의 몫으로 배정된 케이크와 초콜릿 상자를 내려놓더니 다시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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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어디 가세요? 같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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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먼저 돌리러요. 병동마다 다 줘야 해요. 꼭 66부터 가라고 하셔서 먼저 온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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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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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영 교수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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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준비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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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주 교수님이 사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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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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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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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유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충 대답한 인턴은 부리나케 사라졌다. 도영의 명을 받잡아 배달을 빨리 마쳐야 해 잡담할 시간이 없었다.

상 위에 올라간 디저트 상자들을 보며 간호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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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뜻이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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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가 있을 텐데.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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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들어와서 주 교수님이 사는 음식 처음 먹어 봐. 곱게 먹기는 좀…… 그렇지?”

한대 병원에서 근무한 지 10년 차라는 간호사가 떨떠름해하며 상자를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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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거 거기 거네. 청담동에서 줄 서서 먹는 곳. 이름이 뭐더라. 라몽 뭐랬는데. 엄청 비싸대.”

그러더니 초콜릿 하나를 덥석 꺼내 입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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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먹을 순 없다면서요. 드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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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건 먹어줘야 해. 제 돈 주고는 못 먹거든.”

동그란 초콜릿을 입안에서 굴리더니 감탄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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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네. 진짜 맛있다. 먹어 봐.”

옆의 간호사에게도 한 개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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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맞추셨나? 어떻게 이렇게 한 번에 많이 사 오셨을까. 인당 구매 제한도 있다던데.”

간호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상자들을 보며 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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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먹어요, 우리. 설마 먹은 걸 토해내라 그러겠어요?”

잠시 뒤 응급실에서 돌아온 혜수가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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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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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서 와요. 진짜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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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녁은 진작에 먹었지만 소화된 지 오래다. 응급실이 있는 1층까지 몇 번 오르내리다 보면 배는 금방 꺼진다.

간호사들은 혜수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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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다 먹었어요. 일하러 갈게요.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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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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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산 것도 아닌데요, 뭘.”

달콤한 초콜릿과 케이크까지 보니 눈이 절로 뜨인다. 분식만 있을 줄 알았는데 디저트까지 있다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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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코스네. 역시 승원 오빠.’

한 손에는 숟가락을, 다른 손에는 젓가락을 야무지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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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흥. 맛있어.’

테이블 위로 부지런히 손이 왔다 갔다 했다. 순대며 떡볶이로 실컷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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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디저트도 먹어 볼까.’

초콜릿도 하나 집어 들었다. 포장을 벗기고 막 입에 집어넣는데 준비실의 문이 벌컥 열린다.

도영이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들어왔다. 혜수는 입에 반쯤 들어간 초콜릿을 다시 뱉어 손에 쥐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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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교수님,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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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일어나. 먹던 거 마저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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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자리에는 앉았는데 가시방석이다. 도영이 먹지는 않고 제 손과 입만 보고 있으니.

혜수는 초콜릿 하나를 겨우 다 녹여 먹었다. 그때 준비실의 문이 다시 열린다. 이번엔 승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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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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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선생.”

혜수를 본 승원이 미소 지었다. 저를 반겨주는 저 얼굴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려고 수술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혜수의 맞은편에 불청객이 앉아 있다. 승원의 미소가 단박에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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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영?’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잔뜩 널려 있는 케이크와 초콜릿. 자신이 산 분식들보다 훨씬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었다.

승원은 부글거리는 속을 애써 가라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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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교수. 웬일이야? 이 밤에 병동에 무슨 일로.”

얼마 전 말다툼은 잊은 것처럼 이전과 다름없는 태도다. 도영이 코웃음을 팡 쳤다. 그러더니 앞에 놓였던 젓가락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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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먹으려고.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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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걸 먹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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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대답을 하기가 무섭게 도영은 떡볶이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아주 맛있어, 라고 평가도 했는데 얼굴은 지극히 무표정해 전혀 맛있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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