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네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
(29/110)
29. 네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
(29/110)
29. 네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
2022.05.11.
도영은 질문을 이었다.
“네가 날 이렇게 추궁하는 이유는 뭘까?”
“추궁이라고?”
“뭐가 그렇게 불안하지? 친히 내 오른손을 끌고 여기까지 올 만큼.”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대신 승원은 더욱 도영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한참 뒤, 승원이 입을 열었다.
“주도영, 넌 궁금하지 않아? 네가 자꾸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유.”
“대답하랬더니 질문을 하는군.”
“네가 신혜수를 대하는 태도.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아?”
“아니. 전혀.”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과 흔들림 없는 눈빛이다.
“그따위 헛소리를 하려고 날 이렇게 끌고 왔다?”
이를 빠득 가는 도영을 보며 승원은 결정을 내렸다.
이 상태로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지금 주도영은 아무것도 모른다. 제 마음도, 제가 혜수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도.
앞으로도 그렇게 나와 혜수의 관계를 방해하겠지.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여전히 모른 채.
‘그렇다면…….’
차라리 제 마음을 깨닫게 하고 물러나게 하자. 어차피 도영은 유민과 이어질 테니.
“그게 이상하지 않다고? 평소 아래 연차 레지던트 교육은 거들떠도 안 보던 네가 지금은 신혜수를 직접 가르치고 있지. 회진 첫날부터.”
“…….”
“네 방에 혜수를 들이기까지 했다지.”
도영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네 연구팀에 넣고. 평소 네 말에 의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1년 차 중 한 명인데.”
‘내가 그랬다고?’
머릿속으로 혜수와 있었던 일들을 되짚어 봤다. 브리핑 교육부터 타이 교육, 논문 교육까지.
“이래도 이상하지 않아?”
“…….”
승원의 말이 맞다. 신혜수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생전 하지도 않던 행동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신혜수, 오직 하나다.
‘내가 왜?’
혼란스럽다.
‘왜 굳이 그런 쓸데없는 짓을……?’
어지러운 머릿속을 헤집으며 이유를 찾고 있던 중.
승원이 숨을 크게 들이쉰다.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너. 혹시 신혜수를 이성으로 생각해?”
‘!’
머리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 같았다.
할 말을 잃은 도영의 눈동자를 승원이 비집고 들어온다. 갈색 눈동자가 도영을 곧게 쳐다보자 숨통이 조이는 느낌이다.
도영은 몸을 휙 돌리며 일부러 거세게 코웃음을 쳤다.
“……정신 나갔군.”
승원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조금 낫다. 저를 옥죄던 끈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이곳에 한시라도 더 있을 수가 없다.
승원과 말을 섞을수록 정리가 되기는커녕 머릿속은 더욱 엉킨다. 신혜수를 떠올릴수록 심장이 제멋대로 날뛴다.
“저리 꺼져.”
승원을 밀어내고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승원이 도영의 오른팔을 또 잡았다.
“너 이……!”
“네 마음 알았으면 노선 확실히 정해. 그러라고 알려준 거니까.”
“뭐?”
“신혜수는 네 아버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애야. 평범하기 그지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
“괜한 애 들쑤시지 말고 마음 접어. 너랑 절대 이어질 수 없으니.”
이 말을 하는 승원의 어깨는, 목소리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제 마음과는 별개로, 도영은 이제야 승원의 의도를 알아챘다.
“하.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더니.”
도영은 픽, 그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었다. 승원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웃었다.
“이제 알겠군.”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주제넘고 건방지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승원의 의도를 알고 나니 확실히 보인다.
지금 이들 사이에는 확신이 없구나. 한승원이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는 이거구나.
“한승원.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거든.”
“무슨 소리야?”
도영이 왼손을 들어 승원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점점 강해지는 힘에 손등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너, 내게 끝까지 숨겼어야지.”
“뭐, 뭘! 윽.”
강한 악력에 승원이 잇새로 신음을 뱉었다.
“네가 비 맞은 개새끼마냥 벌벌 떨고 있다는 것.”
“!”
“고마워. 깨닫게 해줘서. 앞으로가 기대되는데.”
도영이 승원의 어깨를 잡고 있던 왼손을 휙 털어냈다.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계단실에는 쾅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승원은 이번에는 도영을 잡지 않았다. 그대로 우뚝 서서 도영의 빈자리를 노려볼 뿐.
***
의국원들 모두가 모인 아침 브리핑 시간이었다.
혜수도 자리에 앉아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혜수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3년 차 재성이 등을 쿡 찔러온다.
“야, 신혜수.”
“네?”
“너 뭐 죄지었냐?”
“왜요?”
재성이 목소리를 바짝 낮추었다.
“사탄이 너 노려보는데.”
“예?”
그럴 리가 없다 생각하며 재성이 눈짓하는 대로 고개를 돌렸다.
교수들이 앉아 있는 곳을 봤는데. 정말로 도영이 턱을 괸 채 이곳을 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지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는다.
반대쪽 손가락으로는 펜을 휘휘 돌리고 있다. 손으로 하는 것은 다 잘하는 건지 펜을 돌리는 실력도 예술이다.
‘헉, 왜 저러셔?’
잽싸게 고개를 바로 하고 책상으로 머리를 박았다. 머릿속으로 주 교수님이 시킨 일을 내가 하지 못한 게 있나 주르륵 훑었다.
‘아닌데? 없는데? 설마 논문 때문에? ……아닌데?’
아직 논문에 대한 설명은 듣지도 못했다.
‘뭐지, 뭘까?’
고개는 바로 한 채 최대한 눈을 옆으로 돌려 도영이 앉은 자리를 힐끔거렸다. 눈을 둘러싼 근육이 최대한으로 수축해 뻐근하다.
그런데,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왜……?’
혹시 제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봤다. 옆은 벽으로 막혀 있고 앞에는 아무도 없다. 뒷자리에는 재성뿐이다.
‘…….’
다시 한번 실수하거나 놓친 게 있나 떠올려봤다.
‘아니야.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도영의 시선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암만 생각해도 왜 자꾸 저를 저렇게 쳐다보는지 모르겠다.
‘……신경 끄자. 내 할 일이 산더민데 뭘 생각해.’
혜수는 고개를 최대한 도영에게서 반대쪽으로 틀고 책상 위에 놓인 태블릿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계속 신경 쓰인다. 얼굴에 박히는 시선이 자꾸 따끔따끔하다.
‘으, 집중이 안 돼.’
저도 모르게 도영을 흘깃 보았다.
그런데, 도영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 있다. 아까는 의아함이 서려 있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궁금함이랄까.
그러더니 이번에는 조금 더 눈매를 굳힌다. 반듯했던 미간에 금이 갔다. 마치 심각한 고민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크.’
혜수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대체 무슨 일이야?’
도영의 레이저 속에서 고민은 깊어갔고 어느새 브리핑이 모두 끝났다.
“자, 모두 수고했어요. 오늘 전달할 사항은 없습니다. 다들 일하러 갑시다.”
과장 상훈이 으허 소리와 함께 팔을 휘적휘적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혜수도 잽싸게 일어나 짐을 챙기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뒤통수에 닿는 시선이 아직도 따끔따끔해 발을 최대한 빨리 놀렸다.
그때,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는지 도영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
“교, 교수님. 저 부르셨어요?”
“오전에 내 방으로 와.”
“어떤 일 때문에…….”
“논문 설명해 줄 테니.”
“아, 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도영은 휙 지나갔다. 멀어지는 도영을 보며 혜수는 눈을 흘겼다.
‘고작 저 말 하려고 날 그렇게 쳐다봤단 말이야?’
도영의 방 앞에 선 혜수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소리가 나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들어와.”
무뚝뚝하게 말한 도영은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고 혜수도 맞은편에 앉았다. 도영의 앞에는 프린트해 둔 논문들과 참고 자료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논문들이다. 다 읽어보도록.”
“넵.”
도영은 제일 위에 놓인 파일의 첫 장을 펼쳐 혜수 앞에 내주었다.
연구에 대해 설명된 내용을 프린트해 둔 파일이었다. 도영이 기다란 검지를 뻗어 제목을 짚었다.
“이번 연구는 생체 공여자를 이용한 KT(신장 이식) 에서 저 체온을 유도할 때와 극 저 체온을 유도하며 수술할 때, HMGB1의 혈장 농도 차이를 보기 위함이다. HMGB1이 뭔지는 아나?”
“어…….”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학회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땐 자신과는 상관없는 단어라 생각하고 가벼이 넘겼다.
지금 혜수에게는 환자에게 쓰는 약 이름 하나 더 외우고, 환자의 검사 한 가지를 더 예약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음. 염증 반응에 관여한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 여기까지 밖에 모르겠습니다…….”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또 혼나겠다.’
아니나 다를까. 도영이 작게 코웃음을 친다. 또 언성이 높아지리란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조용하다.
‘왜 조용해?’
눈을 살짝 떴는데 의외로 도영은 별다른 말 없이 앉아 있다. 대신 혜수가 답답하기는 한지 하아, 길게 한숨을 뱉는다.
‘교수님이 좀……. 평소랑 다른데?’
돌아오는 반응이 예상 밖이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도영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도영은 아무렇지 않나 보다. 다시 숨을 길게 내뱉고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빈 종이에 도영의 반듯한 글씨와 선들이 채워졌다.
“잘 들어. 리퍼퓨전 인저리(reperfusion injury: 재관류 손상)를 입을 때 HMGB1의 역할은…….”
이후로도 도영은 논문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연구의 배경 이론들과 연구 방법, 어떤 통계적 방법을 쓸 것인가, 어떤 내용의 고찰을 쓸 것인가까지 세세히 알려주었다.
이 모든 설명 역시 평소 도영이 하던 것에 비하면 꽤 친절했다.
심지어 혜수가 중요한 것을 메모하기 위해 펜을 들 때면 잠깐 말을 멈추고 글씨를 쓸 수 있는 시간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고는 필기가 끝나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말을 멈추고 지금까지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없냐 묻기도 했다.
지난달까지 도영과 마주하며 봐 왔던 모습과는 정말로 딴판이다.
승원처럼 다정하고 살가운 말투는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은 저 사람 왜 저렇게 무섭게 말을 하냐고 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혜수에게는 충분히 변한 모습이었다. 매운맛에서 후추가 반쯤 덜어진 느낌이랄까.
‘교수님이 오늘 좀 이상한데?’
참고 문헌까지 하나씩 훑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도영은 쌓여 있는 논문들에서 네 부를 골라내 혜수의 앞에 던져주었다.
“이거부터 읽어보고 이해 가지 않는 것 있으면 물어봐.”
“네, 교수님.”
논문을 챙겨 일어서려는데 도영이 눈을 키운다.
“어디 가?”
“아,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논문 봐야지.”
그래서 논문은 이미 챙겼는데.
혜수는 논문을 보란 듯이 살짝 들었다.
“네, 여기.”
그런데.
“여기서 해.”
그 말과 함께 도영이 소파에 턱 기대며 다리를 꼰다.
“여기서요?”
“어.”
지금 바로 읽고 모르는 것은 물어보란 뜻인가 보다.
“……네.”
다시 자리에 앉은 혜수는 눈앞에 놓인 논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논문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도영이 설명하면서 한 번씩 짚어준 내용들이라 술술 읽혔다.
첫 번째 논문을 다 읽고 두 번째 논문을 집어 들었을 때, 우연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도영이 저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여전히 다리는 꼬고, 한쪽 팔은 등받이에 걸친 채. 마치 아침 브리핑에서처럼.
‘이크.’
도영의 단단한 눈빛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이고는 두 번째 논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번 논문은 첫 번째 논문보다는 복잡해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모르는 것들도 꽤 나온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은 밑줄을 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논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긴 혜수는 우연히 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도영이 여전히 저를 쳐다보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엔 목적지가 손이다. 볼펜을 잡고 있는 손 말이다.
그러더니 묻는다.
“그 손.”
“네?”
“손 말이야.”
“제 손이요?”
혜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오른손을 쫙 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