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 짧고 굵게 (24/110)


24. 짧고 굵게
202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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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준과 함께 커튼을 열고 들어가자 난장판이 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어찌나 난동을 부려놨는지 담요며 베개, 안내문들이 바닥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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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환자분.”

혜수를 발견한 환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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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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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진정하세요.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심장에 안 좋아요. 저는 이 병원 의사입니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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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내가 하기 싫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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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환자분. 이걸 하셔야 해요. 지금 빈혈 수치가 많이 낮아요. 이러다 심근경색이 생기면 큰일 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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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안 해. 절대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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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분도 이미 동의하신 내용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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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싫다고! 다 나가! 지금까지 내 목을 얼마나 쑤셔 놨냐고. 그런데 다 실패했잖아, X발!”

다리에서 느껴지는 심한 통증 때문에 환자의 눈은 이미 반쯤 돌아간 상태였다. 그런 데다 혜수까지 왔으니 더욱 흥분 상태에 빠졌다.

험한 욕설을 연달아 내뱉으며 몸을 들썩대기 시작한다. 침대가 부서져라 펄떡대는 모습을 보고 동준이 혜수를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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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 팔꿈치에 맞아서 우리 3년 차 멍들었잖아. 너도 조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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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장난 아니네요.”

혜수는 땅에 흩어진 담요와 베개를 주워 침대 밑 바구니에 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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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 사람 어떻게 진정시킬래? 이렇게 움직이는데 어떻게 시술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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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제일 문제네요. 가만히 있어야 찔러보기라도 할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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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 잡는 것만으로는 안 돼. 정교한 시술을 할 수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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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혜수는 잠깐 고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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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냥 약 써서 세데이션(sedation: 진정)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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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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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폴(propofol:수면마취제의 일종) 어때요?”

지금 이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혈관밖에 없다. 그것도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환자를 잠에 들게 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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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전혀 안 통하니까 재우는 게 낫겠는데요.”

동준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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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프로포폴이 얼마나 빨리 깨는지 알아? 바늘로 찔러대면 금방 깨. 고작 몇 분밖에 못 번다고. 그 안에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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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요. 그래도 다른 약보다는 깔끔하잖아요. 짧고 굵게.”

혜수의 짧고 굵게라는 단어 선택에 동준의 입이 헤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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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패기 보소. 그러니까 네가 그 짧은 시간 안에 성공한다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라면 너무 무모해. 찌르다가 끝나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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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나토미(anatomy:해부학적 구조) 좀 만져볼게요. 그런 뒤에 결정해요.”

혜수는 환자에게 다가가 이리저리 몸을 짚어보았다. 몸을 더듬는 혜수의 손에 환자의 날 선 시선이 따라왔다. 혜수는 개의치 않고 촉진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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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말랐고. 뼈도 뚜렷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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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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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술하기에 적당한 몸이네요. 혈관 뚫고 가이드 카테터까지만 넣으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들썩거려도 괜찮아요. 그 정도까지라면 그 시간 안에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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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얼.”

혜수의 단단한 말을 듣고 동준은 혀를 내둘렀다.
 

잠시 뒤, 환자의 옆에는 온갖 모니터링 기계가 설치되었다. 심전도부터 혈압, 산소포화도 측정기에 산소마스크까지.

심장이 좋지 않은 환자의 의식을 떨어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간호사들은 이게 정말 가능한가? 라고 서로 속닥거렸다. 의심의 눈초리를 연신 혜수에게 보냈다. 중환자실도 아니고 응급실에서 모니터링까지 해가며 재워야 하냐라는 투덜댐도 있었다.

저를 쳐다보는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혜수는 꿋꿋이 멸균 가운과 장갑을 갖춰 입었다.

그런 뒤에는 간호사 한 명 한 명에게 해야 할 일을 각각 지정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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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잠들고 나면 가위로 옷 잘라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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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최대한 밑으로 당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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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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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덮어주세요.”

모든 준비가 끝나고 혜수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굵은 바늘이 달린 주사기를 집어 들고 단단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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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게요. 약 주세요.”

혜수의 오더에 간호사가 흰 약물을 주사했다.

환자의 의식이 사라짐과 동시에 혜수가 지시했던 대로 일은 착착 진행됐다.

모두가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것을 아는지 최선을 다해 빠르게 손을 놀렸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그 뒤 혜수가 환자의 피부에 바늘을 꽂기까지 딱 20초가 걸렸다.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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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완벽해.’

혜수는 왼손으로 환자의 빗장뼈를 만져 위치를 잡았다. 오른손으로는 주사기를 전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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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방향을 틀어 복장뼈를 향해.’

주사기를 꺾어 조금씩 전진하면서 피스톤을 당겼다. 제 손만 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진다. 초조함에 입이 바싹 말랐지만 그럴수록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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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지금까진 여유 있어. 충분해.’

주사기를 계속 앞으로 밀어 넣었다. 약간의 저항이 느껴졌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 시술을 하다 보면 가끔 느낄 수 있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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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순간, 무언가 팍 터지는 느낌이 전해졌다.

검붉은 액체가 바늘을 타고 빨려 올라온다. 주사기에는 곧 피가 부드럽게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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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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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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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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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대박인데?”

간호사들과 동준이 환호성을 질렀다. 혜수는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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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다 했어. 계속 침착하게 해, 신혜수.’

주사기는 빼고 이번엔 진짜 정맥 안에 들어갈 중심정맥관을 집어 들었다. 카테터를 따라 관을 3분의 1 정도 넣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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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어딨습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커튼 밖에서 전해져 왔다. 고저 없는 딱딱한 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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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혜수의 손이 순간 멈췄다. 주위에 몰려 있던 간호사 몇 명이 밖으로 튀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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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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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주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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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12번 베드에 있어요,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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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12번이면 내 환자잖아!’

진짜 도영이다. 도영이 혜수의 노티를 받기도 전에 먼저 응급실로 내려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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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왜 벌써 오셨지?’

원래라면 이미 혜수가 도영에게 전화를 해 12번 환자에 대해 알리고도 남아야 했지만 하지 못했다.

그걸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번개같이 튀어 나가 환자에 대한 정보를 읊어줘야 한다. 도영은 제 할 일을 지체하는 사람을 누구보다 싫어하니까.

지금껏 이곳에서 일하면서 도영이 제때 일하지 않은 수련의들을 그냥 용서해 주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혜수는 지금 멸균 옷을 입고 있고 환자의 커다란 정맥을 뚫고 있는 관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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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해, 어쩌지?’

때마침 환자에게서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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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고개마저 좌우로 살짝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준은 혜수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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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깨나보다. 서둘러. 봉합할 때 힘 안 들이려면 빨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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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혜수는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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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어. 그냥 마저 넣자.’

단 한 번 주어진 기회였고 성공이 코앞이다. 이제 와서 이를 놓칠 수는 없다.

혜수는 더욱 빨라진 손길로 관을 넣었고 관 옆에 달린 홈에 실을 꿰어 환자의 피부에까지 고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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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바늘이 살을 뚫을 때마다 환자의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의식이 대부분 돌아온 것이다.

마침내 봉합까지 끝나고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혈액 팩이 중심정맥관과 연결되고 붉은 피가 환자에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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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수, 진짜 고맙다. 이 은혜는 내 잊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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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요.”

때마침 완전히 깬 환자가 눈을 번쩍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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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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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했어요, 환자분. 가만히 누워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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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손대지 말랬잖아!”

씩씩대는 환자를 두고 동준과 혜수는 커튼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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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맙다. 내가 앞으로 컨설트는 네 것을 최우선으로……. 어?”

동준도 건너편에서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 도영을 발견했다. 혜수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목소리를 낮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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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사탄 왔는데? 언제 왔대. 너 이러고 있어도 돼?”

걱정스러운 목소리다. 이식혈관외과 주도영의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이 병원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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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지요. 난 이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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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내가 시간 뺏었네. 미안하다.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 얼른 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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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인사를 한 혜수는 도영에게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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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저 왔습니다.”

도영은 혜수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환자를 진찰했다. 잠시 뒤, 제 할 일을 다 끝내고서야 혜수를 쳐다본다.

그 눈빛이 너무 매서워 혜수는 찔끔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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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제가 좀 늦었습니다.”

혜수는 수첩에 적었던 것을 떠올리며 떠듬떠듬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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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브리핑하겠습니다. 43세 남자 환자로 내원 2시간 전에 복부를 둔기로 강하게 맞은 뒤 생긴 페인(pain:통증)을 주소로 내원했습니다. 언더라잉(underlying disease:기저질환)은 없는 분이고, 시행한 검사에서 AST와 ALT (간기능 검사의 일종) 각각 45, 39로 상승되어 있고 라이페이즈(lipase:췌장의 기능을 평가하는 검사 중 하나)는 아직 정상입니다. CT에서 후 복막에 소량의 피가 고여있고 췌장의 꼬리…….”

여태 비틀려 있던 도영의 입술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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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이미 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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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그럼 다른 거 궁금하신 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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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 선생.”

심상치 않은 도영의 기세에 도영의 옆에 서 있던 간호사들은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졌다. 옆에 괜히 붙어 있다가 불똥이 튀면 큰일이니까.

덕분에 드넓은 응급실 복도에는 어느새 혜수와 도영 단둘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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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를 우리는 왜 지금 하고 있는 걸까. 이 환자의 CT가 업로드된 지가 언젠데.”

도영이 손목에 찬 시계를 흘긋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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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47분 지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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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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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얼 하다 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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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환자에게 C 라인(중심정맥관)을 넣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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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라인? 어느 환자?”

도영의 고개가 삐딱해졌다. 도영이 알기로도 제 과에는 중심정맥관을 삽입할 환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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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외과 환자가 아니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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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슨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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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7번 베드에 누워 있는 환자인데, 정형외과 환자입니다.”

정형외과라는 말을 듣자마자 도영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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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환자를 선생이 왜…….”

그때, 응급실의 문이 열리며 승원이 나타났다. 수술실에서 바로 내려온 건지 수술 모자를 쓴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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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어딨어? 양쪽 다 나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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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교수님. 이쪽이에요.”

동준이 승원을 데리고 침대로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 혜수가 중심정맥관을 넣기 위해 애를 썼던 그 환자가 누워 있는 7번 침대로.

승원이 환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 도영의 표정은 순식간에 구겨졌다. 그리고 다시 열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더욱 싸늘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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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묻지. 정형외과 환자를, 선생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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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안 좋아 보여 도와주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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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맡은 환자는 내팽개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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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저 환자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어요. 환자가 너무 힘들어해서요. 도저히 그냥은 관을 넣을 수가 없어서 포폴을 써서 재워야 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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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환자가 힘들어해서 도와주고 싶었다?”

잠깐 생각하던 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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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음,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도영이 코웃음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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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는 선생이 나선 진짜 이유를 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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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진짜 이유? 내가 모르는 이유가 또 있나?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데 도영이 허리를 숙였다. 혜수의 귓가에 도영의 입술이 훅 다가왔다. 뜨거운 열기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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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외과 한승원 교수의 환자.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잠잘 틈도 없이 바쁜 외과 레지던트가 자처했다라. 알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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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에?”

도영은 대꾸 없이 허리를 폈다. 더욱 서늘해진 시선에 혜수의 어깨가 또 구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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