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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략 약혼(2) (23/110)


23. 정략 약혼(2)
202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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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도움 따위 필요할 정도로 나약한 분 아니잖습니까. 의원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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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확실하게 하고 싶어 하셔. 단 한 번의 도전 만에 서울 시장으로 당선되는 것. 그게 네 아버지의 목표야. 그건 너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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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숙이 다시 도영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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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아, 이제 이런 부탁은 안 할게. 마지막으로 도와주지 않을래? 난 네 아버지 꿈을 꼭 이뤄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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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가 두 분 사이의 사정까지 봐줘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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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 나 때문에 젊을 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잖아. 멋모를 어린 시절에 데릴사위로 들어와서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몰라. 나 하나 바라보고 그 모진 걸 다 견뎌낸 사람이야. 이젠 내가 그걸 갚아줘야 한…….”

도영은 은숙의 손을 떨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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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시지요. 어머니가 무슨 마음이신지는 충분히 알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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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그건 내가 너무 자주 이야기했지. 지겨울 법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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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 아닙니다.”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답답해진 도영은 일어섰다. 은숙의 주위를 어지러이 서성이는데 문득 은숙의 발이 눈에 들어온다.

제때 수술을 하지 못해 뒤틀려버린 발목.

지팡이가 없으면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짧은 다리.

한때는 은막을 누비던 배우의 아름다운 다리였다. 탄탄하고 굳건했던 다리는 오랜 기간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해 점점 가늘어졌다.

어머니의 앙상해진 정강이를 보면 절로 오른팔에 힘이 들어간다.

시대를 풍미했던 탑 배우가 은퇴를 하고,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원흉이 된 악몽 같은 그날이 눈앞에 펼쳐진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연상은 피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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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제기랄!’

도영은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몰아내기 위해 애를 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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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아.”

은숙은 도영이 흔들리고 있음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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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버지의 꿈은, 곧 내 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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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어머니의 꿈.

도영으로서는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말이다.

어머니의 다리가 저렇게 되어 모든 걸 포기하게 된 것은 제 탓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은숙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일부러 더 그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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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나오신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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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야, 정말로. 한 번만 도와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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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한참이나 쓴웃음이 주위로 퍼져나가고, 도영은 몸을 돌려 은숙을 등지고 섰다. 꽉 쥔 주먹에서 나오는 싸늘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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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대신 시장 선거가 끝날 때까지만입니다. 그 후 바로 파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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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그렇게만이라도 해주면 우리는 정말 고맙지. 그럼 앞으로 일정은 내가 네 아버지랑 상의해서…….”

도영은 은숙의 말을 마저 듣지 않고 그대로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슈트 속에 가려진 그의 팔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내려간 도영은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뛰어야 했다.

저릿해진 오른손을 쥐었다 펴길 반복했다. 오른팔에서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탓이다.

이대로 두게 되면 근육이 가닥가닥 뒤틀리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온다.

급히 차로 달려가 콘솔 박스를 안에 있던 약병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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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약을.’

약병의 뚜껑을 열려고 하는데 오늘따라 왼손이 자꾸 헛나간다.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나서야 단단하게 닫힌 뚜껑을 열 수 있었다. 그 사이 겨드랑이에서 시작된 통증은 팔꿈치까지 내려왔다.

도영은 이를 악물고 약 세 알을 꺼내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는 물 없이도 이런 약 세 알쯤은 쉽게 먹을 수 있다.

약을 삼킨 도영은 차에 몸을 구겨 넣고 문을 닫았다. 차가운 시트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 벌벌 떨리는 오른팔을 움켜쥐었다. 그사이 통증은 손가락까지 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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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으으윽.”

인기척이 사라진 주차장은 다시 어두워졌다.

고요한 바깥과는 다르게 고통을 참는 신음 소리가 차 안에 가득 찼다.
 

***

오늘은 불금, 불태워 버리고 싶은 금요일이다.

혜수는 하필 응급실 당직이었다. 병동에 올라오기가 무섭게 다시 응급실에서 호출이 온다. 혜수는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응급실로 내려갔다.

오늘 저녁에만 해도 응급실에 다섯 번은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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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술 좀 그만 먹으면 안 돼요? 아니, 먹더라도 곱게 먹고 집에 갈 것이지. 왜 꼭 어디 하나 터져서 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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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날씨가 좋아서 더 그래요, 선생님. 모임이 많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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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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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요.”

응급실 간호사가 씩 웃으며 혜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런데, 맞은편 침대에 커튼이 둘러져 있고 안이 소란스럽다. 누군가의 비명과 들썩거리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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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뭐 하는 거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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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유민 선생님이 중심정맥관 넣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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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환자한테요?”

우리 과 환자 중에는 중심정맥관을 넣을 만한 환자가 없었는데.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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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정형외과 환자요. 정형외과에서 좀 도와달라 그래서 내려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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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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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유민 선생님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얼굴도 이쁘고 이렇게 마음씨도 예쁘고. 주말에 쉬고 싶을 텐데 말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집안에 돈도 많아, 크. 다 가졌어요.”

유민의 아버지 조병억은 한대에서 내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작년에 병원장이 되었다.

물론 아버지가 병원장이 되기 전에도 유민은 유명했다. 대대로 의사였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큰 병원의 주요 교수들과는 전부 연이 있다는 소문은 유민이 의대생일 때부터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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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조 교수님 딸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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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 마나 빽으로 들어왔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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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좋겠다, 얼굴 이쁘겠다, 부럽다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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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가졌네.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냐. 짜증 나.”

 
사람들의 생각을 깨부순 것은 유민의 행동이었다.

시기와 질투가 뒤섞인 말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지만 유민은 별다른 내색 없이 매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일을 도맡아 했다. 실수 한 번 저지르지도 않고.

또 친절하고 살가운 태도는 점차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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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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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해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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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같지 않아.”

 
여론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유민이 상대적으로 편하고 돈도 잘 벌 수 있는 과에 가지 않고 기피 과인 외과를 선택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감동했다.

유민이 환자들과 부대끼며 병동과 수술실을 오가는 것을 보며 더욱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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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지다. 쉬운 길 놔두고 외과를 선택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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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좋은 애한테 우리가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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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이쁜데 마음도 이쁘네. 진국이다.”

 
하지만 혜수는 유민을 만날 때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의도한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혜수는 유민 때문에 첫 회진 때 도영에게 많이 혼났다.

이후에도 유민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경애와 머리까지 쥐어뜯으며 다퉜다. 그 덕분에 한동안 도영과 얼굴을 맞대며 타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경애는 그 뒤로도 혜수를 무척 싫어하고 있다. 자연스레 유민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졌다.

유민은 혜수에게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한 적은 없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과 같이 상냥하게 대해주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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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죠.”

혜수는 대충 대답해 준 뒤 제 환자를 보러 갔다.

이번 환자는 복부를 둔기로 맞아 췌장에 손상이 온 환자였다. 다행히 응급 수술을 할 정도로 중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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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 아직은 수술을 하진 않을 거예요. 다만 나중에라도 수술 가능성이 있으니 일단 외과로 입원하실 겁니다.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아무것도 드시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으세요, 알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환자를 두고 혜수는 컴퓨터 앞으로 갔다. 오늘 외과 당직 교수에게 환자에 대한 정보와 혜수의 판단을 알려야 했다.

오늘 당직은……. 주도영 교수님.

휴대폰을 들고 도영의 번호를 누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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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더 확인하고 하자.’

도영에게 어느 하나라도 빠트린 채 말을 한다면 사달이 나기 때문에 완벽히 준비를 한 뒤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

수첩에 환자의 정보를 하나씩 적어가며 정리하고 있는데, 우당탕 무언가를 거하게 뒤엎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의 커튼이 거칠게 걷히며 나가라는 고함이 크게 들린다.

동시에 유민과 정형외과 4년 차 서동준이 떠밀리듯 밖으로 밀려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간호사들이 한마디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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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선생님도 실패하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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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저 사람 너무 몸부림쳐서 쉽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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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빨리 수혈해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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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선생님이나 실패한 정도면 안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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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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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중. 조금 더 걸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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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냥 내일 수술방 안에 들어가서 마취 걸어놓고 하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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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나간 헤모글로빈이 7.3이야. 협심증이 있어서 빨리 수혈해야 해. 지금도 다리에서 계속 출혈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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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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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라인 잡을 거 지금 잡고 수혈하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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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또 그러네요.”

급하기는 한데 마땅한 수가 없다. 모두 모여 한숨만 쉬고 있을 때.

그들 사이로 끼어들며 혜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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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럼 제가 한번 해볼까요?”

동준이 눈을 휘둥그레 뜬다. 옆에 있던 유민의 눈도 동그랗게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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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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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가 한번 해볼게요.”

유민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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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선생. 저 사람 쉬운 케이스 아니야. 저 사람 오른쪽 쇄골하정맥으로만 넣어야 돼. 왼쪽 폐에는 기흉이 있고 양쪽 내경정맥은 이미 손상됐어.”

방금 멀쩡했던 좌측 내경정맥을 유민이 시도하면서 터트려버렸다. 이제 환자에게 남은 단 하나의 혈관은 우측 쇄골하정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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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한 번뿐이다 이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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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바늘을 잘못 움직이면 우측 폐에 손상이 갈 수도 있다. 이미 왼쪽 폐에 기흉이 있는 상태라 그렇게 되면 다리 수술은커녕 폐 치료부터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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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데 가능하겠어? 괜히 마지막 남은 정맥까지 손상시키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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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혜수가 고민을 하자 이번엔 동준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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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고민해? 안 돼. 하지 마.”

혜수를 위아래로 쳐다보는 시선에는 네가 저걸 어떻게 넣어? 가 담겨 있었다. 저와 2년 차 유민도 실패했는데 고작 1년 차 따위가 어떻게 저런 환자의 중심정맥관을 넣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 와중에도 환자의 나 죽네, 나 죽겠네 하는 비명이 커튼을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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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다가는…….’

협심증이 있는 사람이 통증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 이대로 그냥 두다가는 심근경색이 생겨 수술을 하기도 전에 환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걸 아니까 동준도 여러 번 시도했던 거겠지.

잠깐 생각하던 혜수는 다시 단단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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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해볼게요. 한시가 급하잖아요.”

유민이 또 고개를 가로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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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선생. 이거 소꿉장난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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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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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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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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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겠다는 혜수와 그런 혜수를 말리는 유민.

둘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환자의 처절한 비명 또한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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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동준이 혜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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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나 원 참. 내가 널 믿어야 하다니.”

마침내 결심을 내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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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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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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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정맥도 날리면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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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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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

그렇게 혜수가 동준과 커튼 안으로 들어가고, 간호사들도 둘을 어시스트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라지고, 혼자 남겨진 유민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터치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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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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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2년 차 조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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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지?

딱딱한 도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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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노티 드릴 환자가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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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오늘 응급실 당직은 신혜수 선생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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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혜수가 너무 바빠서 제가 대신 연락을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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