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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익숙한 그가 만드는 묘하고 낯선 분위기 (20/110)


20. 익숙한 그가 만드는 묘하고 낯선 분위기
20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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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완연히 가셨다.

화창한 토요일 아침, 혜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늘 병원에서 질끈 하나로 머리를 묶고 슬리퍼에 수술복을 입고 다니던 것과는 다르게 예쁘게 옷을 차려입었다.

창밖에 보이는 산에는 하얗게 흩날리던 벚꽃들이 지고 푸릇한 초록 잎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병원이 산속에 있어 좋은 점은 계절의 변화를 바로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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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흐흥.”

오랜만에 외출을 하지, 날씨도 좋지. 흥얼흥얼 노래가 절로 나온다.

혜수는 병원을 나와 승원의 집으로 갔다. 승원의 집도 혜수의 원룸과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다.

벨을 누르니 승원이 나타나 문을 열어주었다. 머리를 감다 나왔는지 어깨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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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어? 일찍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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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흣. 시내 나간다니까 새벽같이 눈이 떠지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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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와. 준비 거의 다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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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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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머리만 말리고 올게. 여기 잠시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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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천천히 해.”

오늘 승원과 혜수는 오랜만에 외출을 한다. 혜수가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L 호텔의 한정판 애프터눈 티 세트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선착순 예약인 곳이라 승원과 혜수는 예약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클릭을 하느라 꽤 진땀을 뺐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오늘로 예약을 해냈고 둘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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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 드디어 가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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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이거 그때랑 비슷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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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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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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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웬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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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 나? 너 고등학생 때.”

혜수가 고등학생 때였다.

용돈이 부족한 혜수를 대신해 승원이 혜수의 최애 아이돌 LIFT의 콘서트 티케팅을 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도 시간이 땡 하자마자 자리를 구매하느라 서버 시간도 알아놓는 등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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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거? 오빠 덕분에 내 처음이자 마지막인 콘서트에 잘 다녀왔지.”

그 이후로 혜수는 의대에 들어가게 되면서 콘서트의 ‘콘’ 자도 꺼내지 않았다. 아니, 공부에 치이느라 꺼낼 수가 없었다.
 

승원은 다시 욕실로 가고 홀로 승원의 방을 구경하던 혜수는 책장에 꽂힌 앨범을 발견했다. 플라스틱 커버에 쌓인 앨범은 작고 얇았다.

혜수는 목청을 높여 승원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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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앨범은 이게 전부야? 봐도 돼?”

저 멀리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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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편한 대로 해.”

혜수는 바닥에 앉아 앨범을 펼쳤다.

첫 장을 열자마자 돌 때 찍은 사진인 듯 푸른 한복을 입은 아기 승원이 나온다. 살짝 웨이브 진 지금의 머리카락보다 더욱 곱슬한 머리카락에 볼살은 오동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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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귀여워! 지금이랑 별다를 것 없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뒷장으로 넘기던 혜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뒤로 바로 이어지는 사진은 승원의 초등학교 입학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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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왜 이것밖에 없지?’

때마침 승원이 근사한 차림으로 방에 들어왔다. 윤기가 흐르는 베이지색 롱코트는 승원의 갈색 눈동자와 아주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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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애기 때 사진은 없어? 달랑 이거 하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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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야.”

게다가 승원이 지금껏 살아오며 찍은 사진을 꽂아둔 앨범이라더니, 오직 한 권이다. 그조차 다 채우지 못하고 빈칸들이 곳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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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럴 리가. 나머지는 이모 집에 있는 거 아냐? 난 어릴 적 앨범이 세 권이나 되던걸. 오빠도 있을 거야. 이모한테 물어봐.”

승원이 빙긋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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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 뒤로도 어릴 적 승원의 모습이 지나갔다. 초등학교 입학식, 소풍에 가서 찍은 단체 사진,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생, 고등학생 사진들.

학교생활 중 찍은 사진이 아닌 사진에는 대부분 혜수가 등장했다.

혜수는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사진에는 큰 특징이 있었는데, 혜수와 같이 나온 승원은 활짝 웃고 있다는 것이었고, 혜수가 없는 사진은 무표정했다는 것이었다.

혜수가 양 갈래머리를 하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속 자신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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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빠지지 않고 등장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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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엄청 활발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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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조용했던 거지. 내가 아니었으면 오빠는 이 사진들도 못 남겼을걸?”

혜수의 엄마 지영과 승원의 엄마 지선은 자매 사이가 유독 좋았다. 그래서 때가 되면 같이 캠핑도 다녔고 서로의 집에도 자주 오갔다.

하지만 지선의 외아들 승원은 말 없고 과묵하기만 한 오빠였다. 항상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혜수에게 승원에 대한 최초의 또렷한 기억은 5살, 가족 모임 때였다. 지영의 생일을 맞아 다 같이 고깃집에 간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의 모임도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승원은 가족과 동떨어져 혼자 시무룩하게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런 승원에게 혜수가 먼저 다가가 혀 짧은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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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아, 해 봐. 혜수가 맛있는 거 줄게.”

 
혜수가 내민 손에는 잘 익은 갈비가 들려 있었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갈비에서는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가 폴폴 풍겼다.

하지만 중학생 승원에게는 혜수가 고기를 잡고 있는 손가락이 더러워 보이기만 했다.

웩, 손톱에 그 때는 뭐야. 게다가 너 아까 그 손가락으로 코딱지 파는 것 내가 다 봤거든?

승원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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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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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 먹어 봐. 혜수가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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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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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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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니까.”

 
몇 번의 권유와 거절이 오가고 혜수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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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먹는 거야? 이거 맛있단 말이야!”

 
승원이 툭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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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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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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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럽. 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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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수의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곧 닭똥 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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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아아아앙.”

 
혜수가 고깃집이 떠나가라 크게 울자 승원은 크게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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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울어? 야!”

 
당장 혜수의 울음을 그치게 해야 했다.

혹시나 부모님, 특히 엄마 지선이 이 장면을 본다면 오늘 집에 가서 크게 혼날 것이 분명하니까.

하지만 고작 중학생인 남학생에게 5살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은 너무 힘든 미션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다그침이 섞인 말을 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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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울지 마. 어?”

 
그리고, 정말로 혜수의 울음소리를 들은 지선이 밖으로 나왔다.

승원의 바로 옆에 철푸덕 앉아 울고 있는 혜수를 발견한 지선의 사나운 눈매가 지체 없이 승원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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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너. 혜수 울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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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어머니. 그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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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혜수 잘 보고 있으랬더니 애를 울리면 어떡하니! 표정은 또 왜 그래! 내가 늘 웃고 다니랬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원은 입꼬리를 힘껏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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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게…….”

 
변명을 하랴, 웃는 표정을 지으랴 너무나도 정신이 없다.

순간 혜수가 울음을 그쳤다.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눈물을 훔치더니 지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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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이모. 오빠가 울린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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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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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한 거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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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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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가 넘어졌어. 조오기에 발이 걸려서 넘어졌어. 아파서 울었어.”

 
혜수가 문 턱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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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정말? 안 다쳤어? 어디 박았어? 이모가 보자, 응?”

 
놀란 지선이 허리를 숙여 혜수를 앞뒤로 휘휘 살폈다.

혜수는 지선을 밀어내고는 승원에게 가 승원을 꼬옥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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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이모. 오빠가 호오, 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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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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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서 이제 안 아파.”

 
그제야 지선이 안심한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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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오빠랑 잘 놀고 있어. 이모 밥 좀 더 먹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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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지선이 사라지고 혜수는 멍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승원에게 씩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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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혜수 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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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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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칭찬해 줘. 빨리!”

 
입을 삐죽 내밀고 발을 콩콩 구르는 혜수를 보며 승원은 띄엄띄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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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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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힛.”

 
그 이후로도 혜수는 승원을 볼 때마다 늘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승원에게 같이 찍자고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그러면 승원은 못 이기는 척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혜수는 앨범을 계속 넘겼다. 학창 시절 마지막 사진은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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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나 있네.”

졸업장을 들고 있는 승원의 옆에서 초등학생 혜수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며 개구지게 웃고 있다. 승원은 그런 혜수를 보며 크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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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 네가 그날 학교도 결석하고 내 졸업식에 온다 그래서 너랑 이모랑 싸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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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랬다고? 거짓말. 나 같은 모범생이 그랬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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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이모한테 물어봐. 그날 너 때문에 이모가 얼마나 뒷목을 잡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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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뒈에. 난 기억이 안 나는뒈에.”

능청스러운 혜수의 말에 승원이 풉, 웃었다.

다음 사진은 승원의 대학생 때 사진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승원 옆에서 무뚝뚝하게 카메라를 보고 있는 사람은 도영이다.

그다음 사진에도, 그다음 사진에도 승원의 옆에는 도영이 있다. 심지어 술에 완전 취해 발갛게 달아올라서는 둘이 껴안고 찍은 사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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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가 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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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과 때니까. 10년도 넘었지.”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은 의대 졸업사진에도 이어졌다. 학사모를 쓴 둘이 나란히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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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교수님이랑 정말 친했나 봐, 오빠.”

승원은 아무런 표정 없이 음,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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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그 반응은? 지금은 아니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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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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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교수님이랑 사이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그 말과 함께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승원이 다시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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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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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지나가듯 말했는데 승원이 왜냐고 물을 줄은 몰라 조금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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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가 좋아하는 사촌 오빠와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이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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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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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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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일 뿐인 거지? 그 마음?”

조금 더 날 선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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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다른 게 더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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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수의 눈초리가 갸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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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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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야.”

승원이 고개를 그냥 돌려버렸고 오빠 왜 저러지, 고민하던 혜수는 손을 딱 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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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알겠다! 오빠가 왜 그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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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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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내가 주 교수님 좋아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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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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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친 관리한다, 이거 아니야. 주 교수님 절친이라고!”

혜수가 콧방귀를 빵빵 뀌며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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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거 아니야?”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지 코 평수가 점점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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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주 교수님이랑 비교하면 좀……. 딸리긴 해. 그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오빠는 내 편 들어줘야지!”

혜수가 승원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반쯤은 장난으로, 반은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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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해, 혜수야. 그런 거 아니야.”

혜수의 솜주먹 세례에 한 대 맞은 승원은 몸을 뒤로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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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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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 나 진짜 열 받았어.”

혜수는 자꾸 다가가고, 승원은 뒤로 물러나고. 이 상황이 반복되면서 결국 승원은 손을 잘못 디뎌 뒤로 넘어가 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동시에 혜수도 중심을 잃고 승원의 위로 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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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바닥에 머리를 꽤 세게 박은 승원이 인상을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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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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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오빠. 괜찮아?”

혜수는 손을 올려 승원의 머리를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여전히 승원의 몸 위에 엎드린 채.

덕분에 혜수의 부드러운 살결이 승원의 가슴을 간질인다.

승원이 흘리던 작은 신음이 멈추었다.

순간 혜수는 자신의 몸이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아찔한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천장과 바닥이 뒤집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승원이 제 몸 위로 올라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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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승원이 바닥을 짚은 양 팔 안에 혜수는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제 골반에 승원의 무게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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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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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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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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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분위기다.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사촌 오빠 승원이 아닌, 남자 승원이 만드는 묘하고 낯선 분위기.

승원의 부드러운 연한 색 눈동자에 정염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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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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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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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게 한동안 혜수를 바라보던 승원이 얼굴을 조금씩 혜수에게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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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양치를 해 민트 향이 섞인 승원의 더운 숨결이 귓가에 스친다.

혜수의 눈이 커다래졌지만 승원은 아랑곳없이 더욱 혜수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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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간지러움이 느껴져 혜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혜수의 귓가에 승원의 입술이 닿기 직전, 승원이 이를 꽉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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