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딱 세 번 만났어요2022.03.09.
많은 직원들이 특식으로 나올 떡볶이를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떡볶이라는 단어는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나같이 여기 떡볶이가 그렇게 맛있다는 내용이었다. 식판을 비운 도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식당을 나왔다. 신혜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도영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반응들이다. 곧장 의국으로 올라갔다. 오늘까지 검토해야 할 논문들이 쌓여있었다. 그런데 제 방문 앞에 누군가 서있는 게 보인다. 도영의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리 반갑지 않은 사람의 얼굴이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조 선생.”
허리를 단정하게 숙여 보인 유민은 도영에게 다가왔다. 하루 일과가 다 끝났는데도 여전히 말끔한 모습으로 미소 짓고 있다. 잘 세팅된 머리와 빈틈없는 연한 화장. 흰 가운 안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와 실크로 된 블라우스를 입은 채였다. 유민이 걸을 때마다 산뜻한 발소리가 톡톡, 복도에 울렸다.
“교수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무슨 일이지?”
“여기서는 좀 그런데. 교수님 방 안에 들어가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레지던트에 관한 문제입니다.”
“아니. 여기서 해. 되도록 빨리.”
도영이 몸으로 제 방문 앞을 막아섰다. 지금껏 도영의 방 안에는 그 누구도 들어간 적이 없었다. 과장 상훈도, 의국장도, 다른 교수들도. 도영에게 관심을 가지는 의대생들이 물어볼 게 있다며 의국까지 찾아오기도 했지만 예외는 없었다. 도영은 제 방에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도영의 매정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유민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말씀드릴 건 1년 차 신혜수 선생에 관한 것인데요.”
의외의 주제에 도영의 눈썹이 조금 위로 올라갔고 이어지는 유민의 목소리도 더욱 상냥해졌다.
“지금 혜수가 60명이 넘는 환자의 주치의를 맡고 있어요. 저와 경애가 나머지 30명 정도를 나눠서 보고 있구요.”
“그런데?”
“혜수가 처리한 일들을 1차로 제가 검사하는데,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실수도 거의 없고 수술을 펑크 낸 적도 한 번 없습니다.”
“그래서?”
무뚝뚝하고 서늘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유민의 반짝이는 입술이 매끄럽게 휘어졌다.
“혜수가 너무 힘들어해서요.”
“…….”
“환자들에게 동의서를 받을 때도, 입원 면담을 할 때도 표정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레지던트들끼리 있으면 늘 힘들다고만 말합니다. 이러다 환자들한테 컴플레인이 들어올까 봐 걱정됩니다.”
“…….”
“또 혜수 몸도 걱정이 되어서요. 끼니를 자주 거릅니다. 오늘도 식당에 한 번도 못 갔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던데.”
“…….”
“이만하면 수술 전 준비에 관해서는 충분히 익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만 원래대로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유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영이 코웃음을 쳤다.
“의외군. 조 선생 입에서 신혜수의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제가 선배니까요. 혜수를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회진 첫날에는 왜 그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그건 혜수가 제가 알려준 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그래?”
“네, 교수님.”
“지금은 알려주는 대로 잘 하나 보군?”
“네, 맞습니다. 물론 혜수가 아는 것도 많아져서 실수 자체도 줄어들었구요.”
유민의 대답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도영은 다시 코웃음을 쳤다.
“레지던트의 교육 문제다. 선생이 끼어들 일이 아니지. 신혜수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돌아가.”
“하지만, 교수님!”
돌아서는 도영을 유민이 붙잡았다. 도영은 즉시 팔을 휘둘러 유민의 손을 떨쳐냈다. 팔에 닿았던 불쾌한 감각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제넘어. 이 문제로 나를 다시 찾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알겠습니다. 교수님.”
방 안으로 한 걸음쯤 들어가던 도영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신혜수는 어디 있지? 당직실?”
“네? 아, 아니요. 조금 전까지 병동에 있는 거 봤습니다.”
“그래.”
쾅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밤이 깊어갔다. 방에 들어온 뒤로 도영은 여태껏 꼼짝없이 책상 앞에 앉아 논문을 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영 페이지가 넘어가지를 않는다. 유민이 아까 저를 찾아와 한 이야기가 계속 떠오른 탓이다.
‘혜수가 너무 힘들어해서요. 오늘도 식당에 한 번도 못 갔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던데.’
‘혜수가 너무 힘들어…….’
그냥 모니터를 꺼버리고 시계를 보았다. 10시가 갓 넘은 시간. 마침 10시부터 식당에서 야식을 주기 시작한다.
‘여기 떡볶이 진짜 맛있어.’
‘오늘 야식은 특식이네. 좋다.’
턱을 괜 채 물끄러미 시계를 보고 있는데 분침은 잘도 움직인다. 결국 도영은 자리에서 일어서 가운을 걸치고 의국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6층을 눌렀다. 그 시각 68병동.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스테이션에는 혜수 혼자 앉아 있었다. 환자들은 전부 자는 시간이라 병실의 불은 꺼진 채였다. 낮과는 전혀 다른 적막한 분위기의 병동도 이젠 익숙하다. 의자에 앉아 내일 수술할 환자들의 처방을 다시 점검하고 있는데 슬슬 눈이 감긴다.
‘안 되는데…… 자면 안 돼.’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눈꺼풀이 슬슬 내려가더니 조금 더 지나서는 고개마저 까딱까딱 넘어간다. 헛나가는 손짓에 마우스 휠이 위아래로 휙휙 움직였다.
‘이거 빨리하고 책 봐야 하는데…….’
원래도 일이 많다 생각했는데 맡은 환자까지 많아지고 나니 업무가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너무 피곤해…….’
간혹 일하는 사이에 틈이 나더라도 쉴 수는 없었다. 여전히 회진이 끝나면 도영은 혜수에게 질문들을 해댔다. 질문 공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고 책과 논문들을 들여다봐야 했다.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 혜수는 어디서든 머리만 갖다 대면 잘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안 돼…… 정신 차려야 해…….’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었지만 결국 혜수는 책상 위로 넘어가고 말았다. 68병동의 스테이션으로 들어서던 도영은 우뚝 멈춰 섰다. 혜수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키보드는 저 멀리 머리맡에 밀어두고 색색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자고 있다. 한눈에 봐도 불편한 자세인데 잘도 잔다. 가느다란 숨소리를 토해내는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많이 피곤한 건가.’
지친 게 분명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걸 보니 힘들어하고 있다는 유민의 말은 사실인가 보다. 도영은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끼익 요란하게 나는데도 혜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잔다.
‘이렇게 불편한 곳에서 잘도 자는군.’
신기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영은 잠자리에 무척 예민했다. 아무 데서나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 침대에 다른 사람을 재우는 것도 질색이었다. 한동안 혜수를 바라보던 도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냥 놔둘까.’
처음엔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면 조금 덜어주고 야식이라도 먹고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잘 자는 것을 보니 그냥 재우는 게 낫겠다. 다시 스테이션을 빠져나오려는데 혜수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나온다.
“으음.”
몸도 살짝 떤다.
‘추운가?’
주위를 둘러보니 복도의 창문 하나가 열려 있다. 봄이지만 밤에는 꽤 쌀쌀하다. 덮어줄 게 없나 병동을 뒤졌지만 마땅한 게 없다. 잠깐 고민하던 도영은 창문을 닫고 병동을 나왔다.
꿈속에서 누군가 혜수의 이름을 연거푸 불렀다.
‘……수.’
‘신혜수.’
‘혜수야.’
“으엇!”
혜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새 입가에 흐른 침을 닦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여전히 스테이션엔 저 혼자…… 가 아니라 승원이 씨익 웃으며 서있다.
“아이, 승원 오빠. 깜짝 놀랐잖아. 학회는 잘 다녀왔어? 일본 이랬나?”
“응. 오늘 도착해서 바로 오는 길.”
혜수의 이종사촌인 승원은 한대에서 정형외과 수련을 받고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혜수가 이곳에 오기를 결심 한 데에는 승원이 큰 역할을 했다. 본과 3학년 때부터 어느 과를 가야 할지 고민하는 혜수에게 외과라는 곳을 알려준 것도 승원이었다. 거기다가 외과는 한대라고 얼마나 얘기를 했는지. 덕분에 혜수도 외과 의사가 되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뒤로는 당연히 한대로 가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로 전국에서 모인 어마어마한 경쟁자들을 뚫고 한대 외과로 오게 됐다.
“그런데 왜 여기서 자.”
“할 게 좀 남아서. 오더 봐야 해. 흐아암.”
거하게 기지개를 켜는데 갑자기 배에서 천둥소리가 꼬르륵 울린다. 한동안 제대로 못 먹고 다녔더니 소리가 꽤 요란하다.
“헉.”
혜수는 울상을 지으며 배를 꾹 눌렀다.
“혜수 배고파?”
“응. 저녁을 아직 못 먹었거든.”
“밥 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야? 그러고 보니 살이 꽤 빠졌네.”
승원이 혜수의 턱을 잡고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학회를 다녀오느라 혜수를 보지 못한 이 주일 사이에 반쪽이 되어 있다. 힘들다 힘들다 하는 인턴 생활에도 유지했던 볼살이 쏙 빠진 채다.
“꽃돼지에서 돼지가 빠져 버렸네. 어떡하냐.”
“오빠악!”
혜수가 주먹을 쥐어 승원의 등에 가져가다가 멈칫했다.
“어라? 그럼 난 지금 꽃이라는 거네? 어떤 꽃? 장미꽃? 백합?”
혜수가 양손을 모아 받침을 만들어 얼굴 아래에 갖다 대자 승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글쎄. 그건 좀. 굳이 찾으면……. 네펜데스?”
“그게 뭔데?”
“식충식물인데. 파리 잡아먹는 거. 몰라?”
“우이씨!”
혜수의 요란한 반응에 쿡쿡 웃던 승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혜수의 팔을 끌어당겼다.
“일어나, 식당 가자. 야식 먹고 해.”
“야식?”
야식이라는 말에 눈을 굴리던 혜수는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 나 이거마저 해야 해.”
“진짜? 정말 안가?”
“어. 유혹하지 마.”
“흠, 오늘 메뉴 특식인데.”
“특식 뭐?”
“떡볶이. 여기 떡볶이 전문점 못지않아.”
“헉? 정말?”
혜수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다. 떡볶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가자, 오빠. 오더는 먹고 와서 볼래.”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승원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병동 입구에 있는 커다란 기둥을 막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서 맞닥뜨린 인영 때문에 혜수는 놀라서 멈춰 섰다. 우뚝 서 있는 몸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려보니 도영이었다. 어디에 쓸 건지, 한 손에는 병실에서 쓰는 담요를 들고 있다. 이 늦은 밤에 교수가 병동에 직접 올라올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의아했지만 어쨌든 도영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교수님.”
“신 선생.”
갑작스레 마주친 것 때문인지 도영도 살짝 놀란 듯했다. 그런데, 도영이 혜수 뒤의 승원까지 발견한 순간. 그의 눈썹이 위로 휙 치켜 올라간다.
‘아차.’
혜수는 슬그머니 발을 뻗어 바짝 붙어 있던 승원에게서 한걸음 떨어졌다. 도영의 시선이 잠깐 혜수와 승원의 좁은 틈 사이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혜수의 얼굴로 돌아갔다. 날렵한 턱이 조금 더 삐뚜름해졌다.
“그새 한 교수랑 친해졌나 봐.”
“예? 아니, 아니에요.”
혜수가 격하게 휘젓는 손이 공중에 바람을 일으켰다.
“오늘로서 딱 세 번째로 만난 거예요.”
왜 변명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했다. 도영의 눈이 말하라고 하는 것 같아서.
“전에 교수님이랑 같이 한 번 뵙고, 며칠 전에 컨설트 의뢰했을 때 또 뵌 적 있습니다. 오늘은 병동에 있다가 우연히.”
혜수와 승원의 시선이 허공에서 짧게 맞부딪혔다. 깜빡, 깜빡. 무언의 대화가 몇 마디 오고 갔고 안타깝게도 도영은 그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
“넵.”
“오늘로써 딱 세 번째라고?”
도영의 말투가 살벌해져간다. 그걸 느낀 혜수는 더욱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넵. 맞습니다.”
“그래. 그렇다 치고.”
“…….”
“그런데 지금 어딜 가는 거지.”
“야, 야식 먹으러 가던 길입니다.”
“한 교수랑.”
“네.”
“같이.”
“……네.”
“내일 정규 오더는 다 살펴봤고?”
“그게……. 조, 조금 남긴 했는데 야식 먹고 와서 하려구요.”
혜수의 대답을 들은 도영이 입을 더욱 비튼다.
“할 일이 남았는데 휴식이라. 일이 먼저인 걸 바라는 건 내 욕심인가 보군.”
“죄, 죄송합…….”
고개를 숙이는 혜수의 앞을 승원이 막아섰다.
“그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