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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물고기도 잠을 자나요? (10/110)

10. 물고기도 잠을 자나요?20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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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자의 거센 손짓에 어느새 문 앞까지 밀려 나왔다. 침울한 표정으로 서 있던 혜수는 다시 한번 환자를 향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16550790371945.jpg“너무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1655079037195.jpg‘……쯧.’

우두커니 서서 쩔쩔매는 혜수를 보고 있는데 유민이 다가와 도영의 팔을 살짝 당긴다.

16550790371955.jpg“교수님, 저기.”

유민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저 멀리 하얀 옷을 입은 이송반 직원이 걸어오고 있다.

16550790371955.jpg“시간이 촉박합니다. 환자 곧 CT 내려가야 해서요. 저기 이송반 직원도 왔네요.”

1655079037195.jpg“……가지.”

도영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혜수를 보며 생긴 복잡한 마음은 10호실의 환자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어 버렸다. 10호실에 들어가기 전, 저도 모르게 지나온 복도를 흘긋 쳐다봤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혜수가 힘없이 걸어가는 게 보였다. 환자를 보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이미 모든 상태를 완벽히 한 뒤 올려보낸 터라 환자의 컨디션만 살펴보았다. 병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데, 주변이 왁자지껄하다. 소리는 병동과 병동 사이에 있는 휴게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무슨 재미난 이야기라도 하고 있는 건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1655079037195.jpg‘TV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도 하는가 보군.’

걸음을 옮기려는데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16550790371973.jpg“금연하신 지 그럼 2일, 무려 2일째나 된 거예요? 우와! 대단하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휴게실로 돌아갔다. 휴게실의 의자들은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중년의 여성과 남성들, 간혹 보이는 어린 환자들까지. 빈 의자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이하게도 그들의 눈가와 입꼬리에는 웃음기가 매달려 있었다. 병원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활기와 즐거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1655079037195.jpg‘……신혜수.’

혜수 역시 미소를 가득 지은 채 한 노인 환자 앞에 서 있었다.

1655079037195.jpg‘괜찮은 건가?’

혜수는 아까 병실에서 호된 일을 겪었다. 저를 내치는 환자와 보호자의 반응에 상처를 받았을 거라 짐작했다. 어디서 훌쩍이고 있어도, 한동안 침울한 모습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불을 뒤집어쓴 할머니를 보며 붉은 얼굴로 연신 사과하던 모습은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16550790385656.jpg“그럼. 내가 결심하면 하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16550790371945.jpg“할아버지, 그런데요. 모레가 수술이잖아요.”

16550790385656.jpg“어. 다리 혈관이 늘어났다며.”

16550790371945.jpg“네, 맞아요. 늘어진 혈관을 잘라내고 다시 꿰맬 거예요.”

16550790385656.jpg“어우, 무서워.”

16550790371945.jpg“걱정 마세요. 저희가 잘해드릴게요. 저희 교수님 수술 진짜 잘하시거든요. 제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하세요.”

16550790385656.jpg“진짜?”

16550790371945.jpg“그럼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할아버지는 딱 한 가지만 지켜주시면 돼요.”

16550790385656.jpg“뭘?”

16550790371945.jpg“금연이오. 수술 전까지는 계속 금연하셔야 해요? 수술 전에 금식하실 때 담배도 중단하시면 더 좋다구요. 담배가 혈관 건강에도 나쁘구요.”

16550790385656.jpg“그, 그럼. 알아. 안다고.”

16550790371945.jpg“정말요?”

16550790385656.jpg“그럼! 그 정도도 내가 모를까. 나 이번에는 정말로 금연한다니까?”

말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데 노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혜수가 허리에 한 손을 얹더니 눈을 가늘게 뜬다.

16550790371945.jpg“흐응. 할아버지! 제가 예언 하나 해드리죠.”

16550790385656.jpg“무슨?”

16550790371945.jpg“담배를 피우시면 두 가지를 잃게 되실 거예요.”

16550790385656.jpg“잃는다고? 뭘?”

16550790371945.jpg“하나는 할아버지의 건강이구요.”

손을 들어 검지를 척 편다. 그리고 중지까지 펴며 남은 말을 했을 때, 휴게실에는 다시 웃음이 번졌다.

16550790371945.jpg“나머지 하나는 제 직장이에요.”

16550790385656.jpg“푸하하하.”

16550790371945.jpg“몰래 피시다가 폐렴이라도 걸리시면 이번에는 저 정말 잘릴지도 몰라요. 환자 관리 못 했다고 분명히 혼날 거예요.”

16550790385656.jpg“에잉, 설마 그럴까.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누가 잘라.”

16550790371945.jpg“아니에요. 모르는 것투성이라 교수님께 맨날 혼나는걸요.”

도영은 찔끔했다. 혜수를 매일 혼내는 그 교수가 바로 자신이니까.

16550790385656.jpg“몰라 몰라, 난 나한테 잘해주고 말동무해주는 선생님이 최고여.”

16550790371945.jpg“헤헤, 최고라고 해 주셔서 감사해요. 할아버지.”

16550790385656.jpg“금연도 할 테니까 걱정 말어. 나 정말 한다면 한다고. 엣헴.”

가슴을 쭉 펴는 할아버지를 보고 쿡쿡 웃던 혜수가 돌아서려는데, 옆에 있던 꼬마 환자가 팔을 잡아끈다.

16550790385656.jpg“선생님, 선생님. 이것 좀 봐요.”

16550790371945.jpg“응, 우리 지훈이. 선생님한테 할 말 있어요?”

지훈이라는 이름의 6살짜리 환자가 혜수에게 보고 있던 책을 쑥 내밀었다. 작은 손가락으로 책의 한곳을 가리키더니 혀 짧은 목소리로 말한다.

16550790385656.jpg“선생님, 전 참치가 좋은데요. 고등어도 말고 갈치도 말고요.”

16550790371945.jpg“물고기 중에 참치가 제일 좋아요?”

16550790385656.jpg“네.”

16550790371945.jpg“왜 좋을까? 멋져서? 반짝반짝 빛나서? 아니면 덩치가 커어어서?”

혜수가 팔을 펴 커다란 원을 그렸다. 지훈이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16550790385656.jpg“아니요. 통조림을 먹어봤어요. 엄마가 그걸로 참치 김밥을 만들어 줬거든요. 맛있던데요.”

16550790428704.jpg“크하하.”

지훈과 혜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어른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린다. 혜수의 눈도 가느다랗게 접혔다.

16550790371945.jpg“아하! 그래서 좋아요? 그럼 선생님도 참치가 제일 좋아요. 선생님도 참치 김밥 좋아하거든요.”

16550790385656.jpg“응. 그런데 선생님, 물고기는 어떻게 자요? 물속에서 눈 감고 자요?”

16550790371945.jpg“응?”

아이의 동심 가득한 질문에 혜수는 순간 당황한 듯 보였다. 이 질문에는 도영도 아리송해졌다.

1655079037195.jpg‘물고기가 잠을 자던가? 눈을 감을 수가 있나?'

저도 모르게 오래전 아쿠아리움에서 봤던 물고기를 떠올렸다. 그저께 점심 반찬으로 나왔던 꽁치구이를 떠올렸다.

1655079037195.jpg‘아니, 눈꺼풀이 있기는 한가?’

잠시 뒤 혜수가 적당한 대답을 찾은 듯 입을 연다.

16550790371945.jpg“그럼, 물고기도 잠을 자지요. 잠을 푹 자야 쑥쑥 커서 오랫동안 바다 여행을 할 수 있거든요. 용궁에도 가고 산호 숲도 헤엄치고.”

16550790385656.jpg“아하!”

16550790371945.jpg“잠은 정말 중요한 거거든요. 물고기한테도, 지훈이한테도. 지훈이는 어제 잘 잤어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빨리 퇴원하는데.”

16550790385656.jpg“어…….”

지훈이가 우물쭈물하자 옆에 앉아 있던 지훈이의 엄마가 불쑥 말한다.

16550790385656.jpg“지훈이 어젯밤 12시까지 메가 레인저 만화 봤대요. 그 전날에도 그랬대요.”

혜수가 짐짓 엄한 목소리를 낸다.

16550790371945.jpg“이런, 우리 지훈이 언제 퇴원하려나. 물고기처럼 잠을 잘 자야 할 텐데.”

16550790385656.jpg“아니에요, 오늘은 일찍 잘 거예요.”

16550790371945.jpg“진짜?”

16550790385656.jpg“네. 그래서 빨리 나을 거예요.”

16550790371945.jpg“좋았어. 선생님도 빨리 퇴원할 수 있게 열심히 도와줄게요. 그럼 약속.”

혜수는 새끼손가락을 펴 지훈이의 손가락에 걸었다.

16550790385656.jpg“야악속.”

지훈은 혜수의 손을 잡고 방긋 웃었다. 지훈의 엄마가 고맙다는 눈짓을 한다. 혜수도 눈짓으로 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리는데, 이번엔 건너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여자 환자가 혜수를 부른다.

16550790385656.jpg“선생님, 선생님. 이리 좀 와 봐.”

16550790371945.jpg“네, 어머니.”

혜수가 다가가자 환자가 비닐봉지를 쓱 내밀었다.

16550790385656.jpg“이거 우리 딸이 나 먹으라고 사 온 건데. 선생님도 좀 먹어. 족발이야. 우리 동네에 있는 맛집인데 두 시간씩 기다려서 들어가잖아. 설마 족발 못 먹지는 않지?”

16550790371945.jpg“아니요, 없어서 못 먹죠! 진짜 저 주시는 거예요?”

16550790385656.jpg“응. 너무 고마워서. 덕분에 수술도 잘 받았어.”

16550790371945.jpg“우와, 감사해요.”

환자가 몸을 움츠리더니 혜수에게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16550790385656.jpg“그런데 지금 주치의 선생님한테는 비밀이야. 선생님만 챙겨준 것 알고 삐지면 어떡해.”

16550790371945.jpg“네, 그럴게요. 잘 먹을게요.”

16550790385656.jpg“혹시 남으면 고춧가루랑 간장 좀 더 넣고 족발 볶음 해 먹으면 맛있어. 마지막에 참기름 좀 두르고.”

16550790371945.jpg“에이이, 어머니! 저를 뭘로 보시고!”

16550790385656.jpg“응? 왜?”

16550790371945.jpg“족발이 남을 리가 있나요. 오늘 내로 끝낼 거 같은데요?”

환자는 호호호 웃으며 혜수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16550790385656.jpg“그래그래. 잘 챙겨 먹어야지. 이렇게 환자가 많은데 얼마나 힘들겠어.”

이후로도 혜수와 환자들의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우뚝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68병동의 수간호사가 그의 옆에 바짝 다가와 있다.

16550790385656.jpg“다들 표정 좋죠?”

1655079037195.jpg“…….”

16550790385656.jpg“신 선생님 오시고 병동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교수님도 보이시죠?”

1655079037195.jpg“…….”

16550790385656.jpg“수술 전 환자 모두를 맡으시니까 다들 한 번은 신 선생님이랑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데 다들 신 선생님이랑 대화하고 나면 꼭 저렇게 기분 좋아해요.”

1655079037195.jpg“…….”

16550790385656.jpg“신 선생님은 아무리 힘들어도 환자 앞에서는 늘 웃으세요. 가뜩이나 아파서 힘든 사람에게 자신이 힘든 걸 티 내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1655079037195.jpg“…….”

16550790385656.jpg“대단하죠? 수술 끝나면 주치의 바뀐다니까 그러지 않으면 안 되냐고 묻는 환자분들도 종종 계세요.”

1655079037195.jpg“…….”

16550790385656.jpg“신 선생님 칭찬도 좀 해주세요. 일도 얼마나 빠릿하게 잘하시는데.”

1655079037195.jpg“……잘한단 말입니까?”

16550790385656.jpg“네, 그래서 병동 간호사들도 다 좋아해요. 실수도 없으시구요.”

1655079037195.jpg“…….”

16550790385656.jpg“말씀도 재치 있게 잘하시니 병동에 웃음이 끊이질 않아요.”

호응을 바라는 듯한 수간호사를 물끄러미 보던 도영은 입을 열었다.

1655079037195.jpg“그럴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하십시오.”

그 말과 함께 몸을 휙 돌려 엘리베이터로 발을 옮겼다. 그날 오후, 도영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있는데 앞에 선 간호사 두 명이 게시판에 붙은 오늘의 메뉴를 보며 이야기하는 게 귀에 들어온다.

16550790385656.jpg“오늘 야식 떡볶이네. 특식인가 봐.”

16550790385656.jpg“진짜? 떡볶이 좋지! 우리 우유 사러 가자. 미리 사놓고 캐비닛에 넣어두자.”

16550790385656.jpg“우유는 왜?”

16550790385656.jpg“떡볶이가 순한 맛이랑 매운맛이 있는데. 매운맛은 업떡 저리 가라잖아. 매운데 진짜 맛있어.”

16550790385656.jpg“그럼 나도 사놓을래. 오늘 매운맛 도전이다.”

떡볶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누군가 떠오른다.

1655079037195.jpg‘……신혜수.’

가은에게, 실제로는 혜수에게 애프터를 신청하고 두 번째로 만났던 날은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갑자기 몰아친 한파에 잠시만 바깥에 서 있어도 코끝이 얼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L호텔 앞에서 저를 기다리던 혜수를 만났을 때, 혜수의 얼굴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귀까지 빨개진 채로 코를 훌쩍였다. 추울 것 같아 빨리 호텔 안으로 데려가려 했다.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 가 따뜻한 수프라도 먹이려 했다. 그런데, 혜수에게 예상 밖의 단어들로 대차게 까였다. 이 추운 날 왜 밖에서 기다렸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혜수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그 뒤, 레스토랑의 예약을 취소하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병원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이 노점상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펑퍼짐한 까만 패딩에 둘둘 대충 만 목도리, 때 묻은 운동화.

1655079037195.jpg‘저 여자는…… 가짜 김가은?’

혜수가 고개를 조금 돌려 이쪽을 바라보았다. 확실하다. 가짜 김가은. 호텔에서 그렇게 뛰어가더니 지하철을 타고 여기까지 온 모양이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다. 배가 부르다, 배가 아프다 온갖 핑계를 대며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지금은 떡볶이를 우물거리고 있다. 그것도 한 번에 몇 개를 입안에 집어넣는지 모르겠다.

1655079037195.jpg‘하. 떡볶이에 꿀이라도 발랐나 보군.’

그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심술이 났다. 저를 볼 때마다 짓던 딱딱한 표정과는 전혀 달라서. 호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보다 추운 길거리에서 파는 떡볶이를 더 맛있게 먹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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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수는 쉼 없이 떡볶이를 씹고 어묵 국물을 홀짝였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한 채로. 그 모습을 계속 보고 있는데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신호는 초록 불이고 옆 차선의 차들은 저만치 앞으로 가 있다. 도영도 다시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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