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수술 전에 껌을 씹어도 될까요?2022.03.02.
포셉의 끝에는 흰 덩어리가 매달려 있었다.
“나왔다!”
“튜브 주십시오. 빨리.”
튜브를 받아 쥔 도영은 지체 없이 기도 삽관을 했다. 환자의 기도 속으로 튜브가 빨려 들어갔다.
“우와!”
단번에 성공이었다.
“산소 연결.”
기도와 이어진 튜브의 끝에 산소 줄이 매달렸다. 고무 백이 수축했다 늘어났다 하며 고농도의 산소를 불어주었다. 숨은 막힘없이 들어찬 뒤 다시 나왔고 모니터에는 이산화탄소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환자의 산소포화도가 다시 올라갔다.
“80프로, 90프로, 95프로…… 100프로입니다!”
“하아…… 감사합니다, 주 교수님.”
한시름 놓은 마취과 교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그런데 이게 뭐예요?”
“껌입니다.”
환자의 기도를 틀어막은 것의 정체는 뭉쳐진 껌이었다. 도영은 포셉 끝에 달라붙은 껌을 비닐 백에 집어넣었다.
“네? 껌이요?”
“환자가 아침에 껌을 씹었나 보군요.”
“허…….”
“마취과에서는 인덕션(induction:마취 유도) 전에 환자 확인 안 했습니까?”
“했어요. 금식을 확인하는 과정이 체크리스트에 있어요. 대기실에서 한 번 체크하고 여기선 입속을 직접 확인하죠.”
“…….”
“그런데 주 교수님, NPO(수술 전 금식) 중에는 껌도 못 씹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잠깐 운을 뗀 도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말투는 한층 더 싸늘해져 있어 마취과 교수는 저도 모르게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 NPO를 오더하고 오더를 지키도록 관리하는 것은 우리 외과에서 처리할 문제죠.”
“그, 그렇죠.”
도영은 고개를 돌려 재성을 노려보았다.
“조 선생에게 당장 전화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라 그래.”
“네, 네. 교수님.”
사색이 된 재성이 주머니를 뒤지며 수술방 밖을 나갔고 나머지 의료진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오늘 송장 하나 생기겠는데.’
‘조심하자. 느낌이 좋지 않아.’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수술이었지만 수술 자체는 원활하게, 오히려 예정된 시간보다 빨리 끝났다. 손가락 한 번 미끄러지지 않은 도영도 도영인데,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나머지 의료진들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의 합작품이었다. 환자는 기도발관을 하지 않은 채 중환자실로 이송되었다. 혹시 모를 흡인성 폐렴의 위험성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한 도영의 선택이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데려다준 뒤, 청소 중인 수술방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는 도영에게 3년 차 재성이 다가왔다.
“교수님.”
“알아봤어?”
“네. 아침에 환자분 딸이 주치의한테 껌은 씹어도 되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껌을 왜?”
“환자가 너무 입이 마르다고 힘들다고 했답니다. 오후까지 못 버티겠다고요.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그러셨나 봐요.”
“그래서?”
“주치의가 대답하길, 물은 안 돼도 껌은 된다고 그랬다고…….”
“…….”
“그, 그래서 딸이 껌을 씹으라고 줬고 아침부터 씹었답니다. 마취과에서 체크할 때는 우연히 입천장에 붙이고 있었거나 혀 밑에 넣고 있었을 거라고 하던데요.”
“주치의 누구야.”
“그, 그게.”
재성은 머뭇거렸다. 주치의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오늘이 그 아이의 제삿날이 될 테니 쉽게 말할 수가 없었다.
“말해.”
“그, 그…….”
머뭇거림도 잠시, 도영의 눈빛 앞에서는 더 버틸 수가 없었다. 재성의 입에서 희미한 세 글자의 이름이 나왔다.
“시, 신혜수…… 라고 합니다.”
“…….”
“제, 제가 따끔하게 혼내겠습니다.”
혼낸다고 말은 했지만 지금 재성은 혜수를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도영에게 혼나는 것보다는 제게 한마디 듣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은 지나가는 병원 사람들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올 대답이었다.
“제가 신혜수에게 벌당도 주고 NPO(수술 전 금식)에 대한 리포트도 써오라고 하겠…….”
“아니. 내가 하지.”
재성의 말을 자르며 도영이 싸늘하게 말했다.
“……네. 교수님.”
수술방을 나오면서 재성은 작게 기도했다. 혜수의 안녕을 위해. 아니, 혜수의 명복을 빌었다. 도영은 의자에 깊게 기대앉았다.
‘신혜수. 쓸만할 줄 알았더니.’
혜수와 첫 만남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혜수가 제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처음 만나자마자 눈치챘다. 선을 보는 상대인 김가은이라는 여자의 사진을 보지는 못했다. 어차피 사진을 본다고 그 만남을 지속할 것도 아니었기에 휴대폰으로 전송된 사진은 보지도 않고 지웠다. 그런데, 막상 나온 여자는 기본 정보라며 받은 내용과는 너무 달랐다. 갈색의 생머리를 아무렇게나 하나로 질끈 묶고 몇 번 입어보지 않은 것 같은, 그렇지만 꽤 잘 어울리는 투피스의 정장 속에 파묻힌 여자. 익숙하지도 않은 높은 하이힐 위에 올라서서는 어색하게 걷는 여자. 확실했다. 눈앞의 여자는 김가은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물어볼수록 점점 명확해져 갔다. 이 여자는 가짜라는 것이.
‘감히 날 속여.’
확신을 한 뒤에는 일부러 말도 되지 않는 질문들을 했다. 당황스러운 질문들 앞에서 곤란해져 보라는 의미에서. 그런데, 그 질문들이 함정인지도 모르고 제 딴에는 받아치는데 그게 꽤 볼만했다. 덕분에 선 자리가 지루하지 않았고, 그건 그 이후의 만남도 마찬가지였다. 어제저녁, 혜수가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임을 알았을 때, 특히 제 바로 밑의 주치의가 되었음을 알았을 땐 소리 내어 웃을 만큼 흥미를 느꼈다. 게다가 병동에서 난동을 피우는 보호자를 훌륭하게 제압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 치프인 3년 차들조차 보여주지 못할 배짱 있는 모습이었다. 경애가 시비를 걸 때도 교묘하게 둘러대는 배포를 보았다.
‘그때까지는 재밌었지.’
그래서 기대했다. 혜수가 주치의로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오늘 회진에서 혜수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1년 차임을 감안하더라도 말하는 내용들마다 형편없었다. 같은 1년 차인 이경애가 한 발표에는 지적할 것이 없었으니 더욱 비교되었다. 물론 경애의 발표가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신혜수처럼 중요한 것을 빼먹지는 않았다. 게다가 수술실에서는 혜수의 실수 때문에 치명적인 의료사고가 생길 뻔했다. 조금만 대처가 늦었더라면 환자에겐 되돌릴 수 없는 후유증이 발생했으리라. 또,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던 환자의 윗니가 후두경에 눌려 빠져버렸다. 기도 확보가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치아까지 보호할 틈이 없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도영은 오른팔의 근육 하나하나를 당기고 늘리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비는 시간마다 팔의 관절과 근육들이 식지 않게 데우는 것, 이 또한 변함없는 그의 일과다. 번뜩이는 눈빛으로 섬찟한 소리를 내며 팔을 꺾는 도영을 보며 옆에서 수술실 뒷정리를 하던 간호사들이 거리를 슬금 벌렸지만 도영의 머릿속엔 딴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해 줄까, 신혜수.’
그날 밤, 이식혈관 외과의 메인 병동인 68병동에 있던 간호사들은 갑자기 등장한 도영 때문에 당황했다. 도영이 평소의 그 냉담한 표정으로 걸어오더니 혜수를 찾은 것이다. 병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던 혜수는 도영이 저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긴장하며 밖으로 나왔다. 주 교수님이 1년 차를 따로 부를 일은……. 혼낼 때뿐일 텐데.
‘무슨 일이지? 내가 또 뭘 잘못했나?’
그리고 병동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아침에 회진을 돈 뒤 혜수가 도영과 가졌던 ‘가벼운’ 질의응답 시간은 혼난 축에 끼지도 못했다. 도영이 혜수를 쥐 잡듯 잡았는데, 어찌나 분위기가 살벌했는지 오랜 시간 도영을 봐왔던 수간호사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참 뒤, 혜수의 처분을 내린 도영이 스테이션을 나갔다. 멀어지는 도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는 혜수의 얼굴은 시뻘겠다.
“괜찮아요, 선생님?”
“주 교수님 원래 화낼 땐 많이 무서우세요. 너무 상처받지 말아요. 이런 건 그러려니 해야 해요.”
혜수가 안 되어 보였는지 간호사들이 다가와 위로를 해주었다.
“저 괜찮아요. 진짜로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빙긋 웃어 보인 혜수는 스테이션을 나왔다. 복도를 달리다시피 해 화장실로 갔다. 다리에 힘을 주어 걸으니 텅 빈 화장실에 발자국 소리가 탁탁, 울린다. 빈칸으로 찾아 들어가 기어이 눈물방울이 맺혀버린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울지 마. 뭘 잘했다고 울어. 너 때문에 환자가 죽을 뻔했다고. 정신 안 차릴래?’
바로 다음 날부터 환자들의 주치의가 바뀌었다. 원래대로라면 입원 순서에 따라 혜수와 경애가 번갈아 가며 환자들을 맡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수술을 하기 전인 환자들은 모두 혜수가 맡게 되었고, 수술을 한 뒤나 퇴원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경애와 유민이 나누어서 보게 되었다. 수술 전 환자의 관리 방법을 제대로 배우라는 도영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혜수의 일은 배 이상 늘어났다. 외과라는 과 특성상 수술을 위한 입원이 대부분이니까. 또 수술 이후 상태가 정말 좋지 않은 환자들은 내과나 문제가 있는 해당 과로 전과 되었기 때문에 경애와 유민의 환자는 크게 어렵지 않은 환자들뿐이었다. 덕분에 일이 크게 줄어든 경애는 혜수가 보란 듯 콧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 수술이 생각보다 일찍 정리 되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도영은 병동으로 올라갔다. 신장 이식을 하고 지금까지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올라간 환자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도영을 발견한 2년 차 조유민이 스테이션에서 걸어 나오며 인사한다.
“교수님, 오셨어요. 환자는 10호실에 있어요.”
유민과 도영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6인실과 2인실을 차례로 지나 1인실 앞을 지나는데 병실 안이 소란스럽다. 시끄러운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발을 멈췄다. 병실 안을 쳐다보니 격앙된 표정으로 삿대질을 하고 있는 젊은 여자가 보인다.
“나가요. 우린 할 말 없으니 나가요.”
그리고 그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은.
‘신혜수.’
그들 앞에는 한 할머니가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저기서 뭘 하는 거지?’
혜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된 말을 하여 큰일이 날 뻔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 때문에 멀쩡한 윗니를 임플란트하게 생겼다고.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죄송합니다. 치아 치료는 저희 병원에서 확실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고! 당신 같은 의사가 사람 잡는 거예요. 알아요?”
“…….”
“수술 전에 껌을 씹으라고 하는 의사가 어딨어! 당신 때문에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실 뻔했다고요! 당신, 의사가 맞기는 한 거예요?”
‘아, 그때 그 껌.’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얼마 전 마취를 하다가 껌 때문에 기도가 막힐 뻔했던 환자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혜수는 연거푸 허리를 굽혔다. 귀까지 빨갛게 익은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정말 미안해요, 할머니.’
혜수는 오늘 처음 환자를 찾아왔다. 환자에게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환자는 수술을 한 지 일주일이 되어 이제는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오늘 아침부터는 유동식이 제공되었고 어느 정도 대화도 가능했기에 맞춰서 찾아왔다.
“할머니, 죄송해요.”
혜수의 반복된 사과에 여태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환자가 입을 열었다. 아직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난 선생님 얼굴 보고 싶지 않소. 나가요.”
말을 마친 환자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들었죠? 저희 어머님도 보고 싶지 않으시대요. 당장 나가요!”
보호자인 며느리가 혜수를 문으로 밀어냈다.
“돌팔이 주제에 어딜 나타나. 썩 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