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살벌한 첫 회진2022.02.23.
“교수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도영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했다.
“병동에는 별일 없었고?”
“저, 그게요, 교수님. 어떤 보호…….”
혜수가 경애의 말을 자르며 명료하게 대답한다.
“네, 없었어요. 교수님.”
“……그래? 그럼 회진 가지.”
“넵.”
힘차게 대답하는 혜수의 도톰한 입술은 유난히 붉고 윤이 났다. 첫 회진이 끝났다. 맨 처음을 잘해야 앞으로가 편할 거라는 인계처럼 혜수는 열심히 준비했고 틀린 곳 없이 잘 해냈다. 하지만 스테이션에 기대서서 태블릿을 손으로 휙휙 넘기고 있는 도영의 낌새가 심상찮다. 회진을 시작할 때에는 그냥저냥 눈을 마주칠 수는 있는 정도였던 도영의 표정은 회진이 진행될수록 점점 사나워져 갔고 회진이 끝났을 때는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서늘해져 있었다. 확연히 달라진 도영의 분위기에 혜수는 바짝 얼었다.
‘혹시 내 발표에 문제가 있었나?’
회진 동안 도영에게 말을 건 사람은 혜수와 경애밖에 없었고 환자들과도 별문제가 없었으니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의심이기는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도영을 따라다니던 간호사들이 모두 제 할 일을 찾아갔다.
‘나도 가자.’
이 틈에 혜수도 도영에게서 벗어나려던, 아니 도망가려던 참이었다. 도영의 서늘한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는다.
“신혜수 선생.”
“네, 넷. 교수님.”
“그걸 지금 브리핑이라고 한 건가? 인계 못 받았나?”
“…….”
혜수의 예상이 맞았다. 지금 도영의 험악한 표정은 제 브리핑 때문인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혜수의 발표가 그의 기분을 나빠지게 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난 인계 받은 대로만 했는데.’
회진이 미뤄진 만큼 더욱 열심히 준비했었는데. 마찬가지로 어제 유민에게 인계를 받았던 경애를 쳐다보니 시선을 피하며 입을 앙 말아 문다.
“교수님, 저는 어제 조유…….”
사실대로 유민에게 인계를 받았다 말하려 했다. 그런데 경애가 혜수의 말을 자르며 끼어든다.
“교수님, 제가 조유민 선생님께 다시 말씀드릴게요. 어제 조 선생님이 혜수 한참 봐주셨었는데…… 아무래도 혜수가 이해를 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러더니 혜수의 어깨를 잡아 제게 끌어당겼는데 손아귀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 언니 왜 이래?’
경애의 손을 치우려는데 도영이 입을 연다.
“아니, 내가 하지. 이 선생은 가서 할 일 해.”
“네?”
“못 들었나? 내가 한다고.”
도영의 이 무심한 말에 경애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교, 교수님이요? 직접?”
“무슨 문제라도?”
“저, 그. 이제 환자가 수술실에 내려올 텐데요.”
지금 수술방에는 갑자기 생긴 응급수술로 미뤄진 정규수술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가뜩이나 수술도 많았는데 지연까지 되어버려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치프한테 연락해서 준비하라고 해. 수술 시작 시간에는 늦지 않게 내려갈 테니.”
“하지만…….”
망설이는 경애를 보던 도영의 눈매가 더욱 차게 식었다.
“네, 네. 교수님.”
움찔한 경애는 스테이션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런데, 도영의 말대로 사라져주기는 했는데 혼란스럽다.
‘주 교수님이 신혜수를 가르치겠다고?’
한대 출신인 경애는 도영을 잘 안다.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닌 이상, 1년 차와는 흔한 농담 한마디조차 섞지 않는 도영이다.
‘왜 직접 알려주겠다는 거지?’
도영과 혜수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가 무척 궁금했다.
“신 선생. 따라와.”
“네, 넵.”
하지만 도영이 혜수를 부르며 스테이션 깊숙이 더 들어가 버려 더 이상 대화는 듣지 못했다. 혜수 역시 도영이 직접 레지던트의 발표 방법을 알려 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다. 도영이 시키는 대로 뒤를 따라가고는 있지만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환자도 많고 수술도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도영은 레지던트들의 교육에 중요도를 나누어 펠로우들이나 그의 아래의 교수들과 나누어 교육한다 했다. 특히 브리핑에 관련된 것은 유민 같은 2년 차나 치프 수준에서도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일이다. 지금처럼 도영이 나설 이유가 없다.
‘그럼, 왜?’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짐작이 가능했다.
‘어떡해. 나 제대로 찍혔나 봐. 거짓말했던 거랑 막말했던 것 때문에…….’
단단히 혼날 각오를 하고 도영을 따라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분위기가 최악인데 여기서 더 나빠져 봐야 얼마나 더 나빠지겠냐, 란 생각도 조금 있었다.
“신혜수 선생.”
혜수와 마주 선 도영은 회진 때 교수에게 무얼 말해야 하는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곱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하나하나 번호를 붙여가며 놓친 것들을 짚고 알려주는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에는 가시들이 잔뜩, 아니 가시는 너무 귀여운 표현이다. 서슬 퍼런 칼날들이 붙어 있었다.
“2호실 심정자 님 오늘 체온은 왜 빼먹었지.”
“아, 넵, 교수님. 밤사이 열 떨어져서 새벽 6시 바이탈에서는 36.7로 정상 체크 되었습니다.”
“1호실 김아진 님은 3일 전 크레아티닌이 1.64 이어서 팔로업(follow-up:추적검사)을 하라고 했을 텐데.”
“그…….”
혜수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켜 오늘 아침의 수치를 찾아 읊어주었다.
“검사를 하기는 했습니다. 오늘 1.07입니다.”
“신 선생은 크레아티닌의 정상 범위를 모르나 보군.”
“……알고 있습니다. 먼저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쩔쩔매는 혜수를 보며 간호사들은 소곤거렸다.
“주 교수님 오늘 왜 저러시지? 안 그래도 수술 밀려서 바쁠 텐데.”
“그러니까. 원래 레지던트랑은 대화도 잘 안 하는 사람이.”
“첫날부터 불쌍하다. 이러다 신 선생님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주 교수님 표정 좀 봐. 진짜 살벌하다.”
“야, 들리겠어, 조용히 말해.”
그런데, 정신이 쏙 빠지도록 탈탈 털리는 와중에도 혜수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반이 넘는 회진 시간 동안 그들은 경애의 환자를 포함해 60명이 넘는 환자들을 보았다. 그 사이 혜수가 도영에게 전달한 내용만 해도 A4 용지 20장은 넘을 것이다. 물론 환자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모든 것까지 말한 것은 아니다. 특별히 짚어야 할 체온과 활력 징후의 변화, 각종 피검사 수치와 빼거나 더한 약제와 중요한 검사들과 수술 스케줄을 말했다. 그런데 도영은 그 모든 것을, 그 많은 내용을 정확하게 철자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심지어 혜수가 말을 하지 않은 내용들까지 되레 읊어준다.
“2호실 이진영 님은 오늘 CT 팔로업을 하기로 했을 텐데.”
“앗, 네. 예약되어 있습니다. 오늘 1시 30분입니다. 멘탈이 떨어져 있어 제가 검사실에 같이 내려갈 예정입니다.”
도영의 뇌는 이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 천재 의사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이런 점들 때문인가 싶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내용을 주치의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혜수의 환자 중 단 한 명도 빼먹지 않고 모두에게 문제점들이 나왔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가 생긴 이유는 한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혜수는 환자에 대한 오더들을 정확하게 냈고 케어도 빠짐없이 했다. 단지 도영에게 전달을 하지 않은 것들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상황이다. 혜수는 분명 어제 유민에게 인계를 받은 대로 회진을 준비했고 실제로도 유민이 알려준 대로, 철자 하나 틀리지 않게 외워서 발표했다.
‘왜 문제가 생겼지?’
희한하게도 유민이 똑같이 알려준 경애는 괜찮고, 저에게만 문제가 생겼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똑같이 가르쳤는데 혼자 실수를 해대는 혜수를 마뜩잖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 도영이 혜수를 저런 표정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경애의 행동이다. 경애는 모든 잘못은 혜수에게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마치 유민을 감싸주고 싶다는 듯이.
‘대체 왜?’
모든 것이 다 합쳐지자 한 가지 가정이 떠오른다.
‘설마 조유민 선생님이 일부러? ……에이, 설마.’
물론 유민만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도영이 지적하는 내용들 중에 과한 것은 없다. 유민이 잘못 알려준 것을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아는 게 없었던 건 자신이고, 유민만 믿고 회진을 준비한 것도 자신이다. 도영이 모든 걸 기억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교수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길 뻔했다. 이곳은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병원이다. 새내기 1년 차의 실수니 봐달라고 하기에는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 느껴진다.
‘정신 차려, 신혜수. 내일 회진부터는 진짜 제대로 준비해야 해.’
“……생.”
‘그런데 진짜 조 선생님이 일부러 그랬을까? 그럴 이유가 없는데.’
“……선생.”
‘조 선생님은 어제 처음 만났는데. 날 싫어할 겨를도 없었다고. 그럼 우연인가?’
골똘히 고민하던 혜수는 저를 부르는 날카로운 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신 선생!”
“네, 넷!”
정신을 차려보니 도영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고 있다.
“신혜수 선생. 지금 뭐 하는 거지?”
“죄, 죄송합니다.”
“잘못을 고치라 일러주고 있는데 듣지를 않겠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죄송합니다. 집중하겠습니다.”
이후의 상황이 혜수에게 더욱 나빠졌음은 당연했다. 처음 도영과 마주 섰을 때 더 이상 분위기가 나빠질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혜수의 착각이었다.
“7호실 안기석 님, 어제보다 체온이 0.8도 더 올랐는데. 안티(antibiotics:항생제)는 어떻게 했지?”
“원래 쓰던 세파를 그대로 썼습니다.”
“왜?”
“그, 그것이…….”
분명 어제 처방을 낼 때는 약을 교체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항생제 감수성 때문이었던가? 처방 날짜 때문이었던가?’
그렇지 않아도 긴장했던 차에 큰소리까지 듣고 났더니 머리가 점점 하얗게 비어갔다.
“가, 감수성 테스트에서…….”
우물쭈물하는 혜수의 말을 도영이 가로챘다.
“2일 전 했던 감수성 검사에서 페니실린 S(sensitive:민감함), 세폭탁심 S, 반코마이신 S, 클린다마이신 R(resistance:저항), 시프로플록사신 S였을 텐데.”
도영은 마치 눈앞의 결과지를 그대로 읽는 것처럼 막힘없이 읊었다.
“…….”
“대답 안 해?”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아. 어젠 잘만 나불거리더니. 오늘은 왜 이럴까.”
도영의 말에는 짜증이 잔뜩 배어 있었다.
“죄송합…….”
또 죄송하다고 대답을 하려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 교수.”
돌아보니 승원이 서 있다.
“첫날인데 애들 좀 그만 잡아. 살살해, 살살.”
“…….”
“얘 표정 봐. 울 것 같은데?”
“웬일로 한 교수가 다 참견을.”
“참견이 아니고 지나가던 길.”
정형외과 병동은 이식혈관 외과와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길이라기에는 조금 더 안으로 걸어 들어와야 한다.
“혹시 둘이 아는 사이인가.”
“아닌데. 정말로 지나가다가 우연히. 얘 표정이 너무 불쌍해 보여서.”
승원이 싱긋 웃으며 도영의 옆으로 다가갔다. 우연인지 의도한 건지, 혜수를 쏘아보던 시선 사이로 승원이 끼어들었다. 체격이 커다란 두 사람이 나란히 마주 보고 서 있으니 그리 좁지 않은 스테이션이 꽉 차 보인다.
“지나가던 길이면 그냥 지나가지.”
“수술실 안 가? 오늘 너 수술 날인데 왜 여기 있어.”
승원이 벽에 달린 시계를 흘긋 쳐다보았다. 시계는 벌써 한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도영이 혜수를 붙잡고 있은 지 30분이 넘어간 것이다.
“한창 수술할 시간인데. 점심은 먹고 이러는 거야? 요즘 마취과가 눈에 불 켜고 있는 거 알지? 서전들 늦게 들어오면 칼같이 방 닫아버릴 거라던데.”
“신경 꺼.”
그래도 도영이 혜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자 승원이 바짝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
“너 손도 풀어야 할 거 아냐. 시간 부족할까 봐 걱정돼서 알려주는 거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태껏 승원 너머의 혜수를 보던 날 선 눈동자가 이번에는 승원에게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