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구름엑터스 대표 서도현과 김시율의 결혼식.
다른 날보다 조금 더 특별한 날이었기에 샵에 들러 간단하게 준비를 하기로 했다. 김도윤과 같이.
“서준아.”
“어?”
“조금 있다가 식장에서 우리 할머니가 평소와 달라도 이해를 좀 부탁할게.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 우리 할머니시거든.”
처음 손주인 김도윤이 아역 배우로 데뷔했을 때에도, 그리고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조연상을 수상했을 때에도 정말 기뻐하셨지만. 이 정도로 행복해하진 않으셨다고 했다.
김도윤에게 듣기론 김시율이 처음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할머니께서 현관까지 한걸음에 나오셔서 반겨주셨다고.
심지어 속도위반이라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고백했을 때. 김시율의 손을 꼬옥 잡으며 지금부터 어디 아프지 않게 몸조심하라며 따뜻하게 안아주시기까지 했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서도현이 집안에서 늦은 나이까지 연애에 관심조차 안 두는 아들이라며 구박을 받았다고 했으니.
“아이고. 우리 서준이 덕분에 내가 저놈아 장가가는 모습을 다 보네.”
“아니에요 할머니. 삼촌 짝이 이제야 나타난걸요. 두 분 엄청 잘 어울리셔서 행복하게 잘 사실 것 같아요.”
마음은 아프지만 슬슬 포기하고 계셨다고. 그래도 어딜 가도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아들이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계셨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삼촌과 시율 누나를 이어준 것이다.
아마 지금 할머님의 입장에선 시율 누나 다음으로 예뻐 보이는 사람이 내가 아닐까.
“할머니. 조금 있으면 식 시작하잖아요. 우시면 안 돼요.”
“맞네, 맞아. 혹시나 사람들 오해할지도 모르니까. 얼른 눈 닦고 와야겠어. 당신이 잠깐 손님들 좀 맞이하고 있어요.”
그렇게 할머니를 다독여 드리고 난 다음. 나는 서도현을 축하해 주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배우 업계 최고라고 평가받는 구름엑터스 대표답게. 서도현의 결혼식을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하객을 동원해 버렸다.
평소 서도현이 알고 지낸 인맥들만 하더라도 그 숫자가 엄청났는데. 거기에 안면을 쌓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까지 더해지니 북적북적을 넘어선 수준이 되어버렸다.
늦은 총각의 결혼식에 축하해 주러 오겠다는데. 막을 수도 없다 보니 말 그대로 풍성함을 넘어선 세기의 결혼식 같은 느낌이 되어버린 셈.
“삼촌. 오늘 멋진데요?”
“왔구나. 샵까지 들렀다 왔어?”
“당연하죠. 삼촌 결혼식에서 축가 부르려면 이 정도 준비는 해야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신랑 서도현이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격하게 안아주었다.
“엄마, 아빠, 하준이, 하윤이는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예요. 저는 샵에 들렀다 오느라 도윤이랑 먼저 왔어요.”
“그냥 편하게 와도 된다니까.”
“에이, 다른 사람도 아닌 삼촌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를 건데 어떻게 그래요. 오늘 그 어떤 무대보다 진심을 담아 최고의 축가를 불러볼게요.”
내 말에 서도현이 웃음을 터트린다.
6살에 내 재능을 알아본 뒤. 거절하는 나를 설득해 오늘의 배우 차서준을 만든 사람이 서도현이었다.
어린 배우이기에 욕심을 채워 이용해 먹을 수도 있었지만. 서도현은 일절 그런 것 없이 배우 차서준을 위해 묵묵히 서포트를 해주었다.
심지어 어린 배우의 의견을 존중하여, 광고부터 차기작 결정까지 했다고 하면 말 다 한 거겠지.
그러니 나도 보답해야지.
“삼촌. 참고로 조카 선물은 제가 다 준비하기로 했어요. 시율 누나에게도 말해놨으니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만 리스트만 생각해 두세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괜찮다니까.”
“그러면 제가 알아서 보낼게요. 어차피 하준이, 하윤이를 키우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신혼집이야 서도현이 혼자 살고 있던 고급주택으로 결정이 되었다.
워낙 일, 회사, 일, 회사만 반복하던 사람이 서도현인지라. 가구, 가전들이 마치 새것처럼 그대로라고 시율 누나가 말하더라.
김시율 역시 딱히 사치를 하는 타입이 아닌지라. 기존 서도현이 쓰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조카 육아용품들은 내가 모조리 선물해 버려야지. 이미 연사모 형들의 조카들을 통해 육아용품 선물 달인이 되어버린 나였다.
“서준아.”
“어?”
“나 삼촌 저렇게 진심 행복하게 웃는 거 몇 년 만에 보는 거 같아.”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데?”
내가 묻자, 김도윤이 일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너가 예전에 처음으로 상 받으면서 자기 언급했을 때.”
이런. 선물을 더 풍성하게 준비해야겠다.
[구름엑터스에서 서 대표가 어떻게 결혼까지 이어졌는지에 대해 공개했네요. ㅋㅋㅋㅋㅋ]
차 배우 때문이 맞았네요.
정확히 시작은 작년 연말에 있었던 김한결, 박민우, 차서준 콘서트에. 부모님을 모시고 온 신부님이 서도현의 차와 우연찮은 사고 덕분에 인연이 시작되었대요.
접촉 사고는 아니고. 혼자 넘어져 핸드폰 액정 정도가 깨지는 가벼운 사고였지만. 계속해서 괜찮다고 하는 신부님 때문에 차 배우가 나섰다고 하네요.
이제는 다들 아시다시피 신부님이 차 배우의 오랜 찐팬이라서 (참고로 극성 팬이 아니라. 팬미팅만 항상 참석하는 젠틀한 팬이라는 증거들이 팬클럽에도 속속 올라옴) 서 대표까지 셋이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대요.
거기서!
역시 사랑의 큐피드인 차 배우가 뭔가뭔가를 알아차리곤 두 사람의 오작교 역할을 한 거죠.
서도현 대표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신부님은 차 배우의 팬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성덕이 되신 듯하네요. ㅋㅋㅋㅋ
└ 역시 이번 서 대표의 결혼에도 차 배우가 중간에 껴 있었군요. ㅋㅋㅋㅋㅋㅋㅋ 연사모 형들도 다 그랬었죠. 알고 보면 차 배우가 중간 역할을 몰래 다 함. ㅋㅋㅋㅋ
└ 신부님 관련된 썰 보니까. 대기업에서도 능력으로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시던데. ㄷㄷ 차 배우는 힘든 직장 생활의 힐링이어서 좋아했다고. 회사 직원들의 증언이 있었음.
└ 차 배우 정도면 인정이지. 어린 나이에 데뷔해 말도 안 되는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면서 단 한 번도 인성 문제가 없었잖아. 거기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유명한 혜자 팬미팅은 덤이고. ㅋㅋㅋㅋ
└ 서 대표는 싱글로 남을 줄 알았는데. 기어코 차 큐피드가 성공시키고 말았네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축하할 만한 소식이 하나 더 있다던데. ㅎㅎ
└ 아, 나도 그 소문 듣긴 했음. 결혼식 내내 서 대표가 웃음을 감추지 못한 이유가 속도··· 흠흠. 그나저나 차 큐피드는 또 머임?
└ 차 배우의 손에 걸렸다 하면 커플을 넘어 부부로 이어주어서 붙여진 별명이래요. ㅋㅋㅋㅋ 나도 차 배우 오랜 팬인데 나도 좀 ㅠㅠ
*
‘탑스타 어게인’의 개봉일.
평소처럼 차 배우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영화관을 찾은 팬은 당황스러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그러게. 아무리 차 배우, 차 배우 한다지만.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까지 꽉 찰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어머님들이 많은데. 혹시 김한결, 박민우 때문인가?”
영화관에 가득 찬 관람객들의 모습을 본 사람의 입에서라면 저런 말이 나올 만했다.
평소 ‘탑스타 어게인’ 같은 류의 영화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야 어머님 팬들이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을 찾곤 했으니까.
아무리 차 배우의 영화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에서도 상영관이 별로 안 차기로 유명한 이곳이라면 더욱더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봉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많은 어머님들이 ‘탑스타 어게인’을 관람하기 위해 찾은 것이다.
“맞네. 김한결 때문일 가능성이 높겠네.”
“나도 그 소식을 듣긴 했는데. 김한결 티켓 파워가 영화관에서도 증명할 줄이야.”
“카메오라지만 김한결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연기를 한 거라잖아. 거기에 김한결, 박민우, 차서준 셋은 연말 콘서트도 꾸준히 했고.”
지방 영화관에서도 사람 없기로 유명한 이곳인데. 개봉 첫날에 영화관을 찾은 관객이 이 정도라니.
종종 영화관을 찾는 두 사람에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두 친구는 팝콘과 콜라를 산 뒤 예매한 좌석으로 움직였다. 평소보다 팝콘을 사기까지도 한참을 줄서야만 했다.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여 악마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재능으로 빠른 속도로 탑스타의 자리까지 오른 윤선우.
그 뛰어난 재능이 독이 되었음일까.
사람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모든 일에 대한 기준을 자신으로 두고서 엄격하게 대했던 윤선우. 덕분에 그를 향한 주변의 평판은 엉망이었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데. 얽힌 실타래처럼 자신을 향한 오해는 풀리지 않고.
-거봐. 내가 걔 언젠가 꼬꾸라질 거라고 했잖아. 꼴좋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려다보더니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을걸? 솔직히 윤선우 그거 억울한 건 맞잖아.
-나라도 속이 시원해서 뒤에서 비웃고 말걸? 그래서 이 바닥 속은 몰라도 겉은 겸손해야 돼. 지만 천재야?
설상가상 누군가의 모함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윤선우. 후회 가득한 심정 속에서 터진 사고.
-돌아가면. 다시 한번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렇게 눈을 다시 뜨니.
-선우야, 괜찮아?
촬영 도중 조명 낙하로 인한 가벼운 부상으로 입원한 시점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을 구하려고 뛰어드느라 다친 매니저가 그제야 눈에 들어오고.
-형. 내가 회사에 말해둘 테니까. 나을 때까지 쉬고 있어요. 나도 형이랑 같이 좀 쉬게.
-어, 응? 뭐라고? 너 왜 갑자기 존댓말을? 아니, 그보다 나는 선우 네가 당장 촬영장으로 가자고 할 줄 알고 준비 다 했는데.
갑자기 친절해진 윤선우의 모습에 당황하는 매니저. 분명 눈을 뜨자마자 촬영장으로 가야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정작 같이 쉬자고 하니.
그때부터 시작된 윤선우의 기행들.
-감독님. 제가 많이 고민을 좀 해봤는데요. 여기서 살짝 이렇게는 어떨까요?
-시선을 조금만 더 아래로. 네, 그렇게 하면 순간 감정이 훨씬 더 잘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꿈 포기하지 마요. 제가 미래를 봤는데. 나중에 정말 좋은 배우로 성공하더라고요.
윤선우가 미쳤다.
갑작스럽게 달라진 기행에 놀라는 주변인들의 반응. 그 과정에서 보이는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감동적인 장면들.
영화의 마지막까지 감독이 보여주려는 건 단순했다. 성공만을 보고 달렸던 스타의 인간적인 성장기.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과의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감동적인 에피소드들.
영화가 끝난 뒤.
관람을 마친 두 친구가 멍하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이거 대박 나겠다.”
“그치? 왜 차 배우를 위한 영화라고 했는지. 다 보고 나니까 알겠네. 그냥 재밌다.”
“거기에 가족들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네. 이거 왜 해외 영화제 출품 안 하고 바로 공개했는지 보니까 알겠어.”
“그보다 왜 주우정 감독이 차 배우를 위한 영화라고 했는지. 딱 보는 순간 느껴지던데? 어? 이거 진짜 차 배우 이야기 아니야? 이 생각이 들더라니까.”
영화가 정말 재밌었다고 평가하는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뒷자리에서도 마찬가지.
“어머. 영이 엄마, 이거 너무 재밌다. 우리 딸내미랑 또 와서 봐야겠어.”
“그렇죠? 나도 우리 남편 데리고 심야 타임에 보러 와야지 생각했다니까요.”
“아들이랑 주말에 또 보기로 했는데. 다시 봐도 재밌겠네.”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
“축하한다!”
요즘 어딜 가든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저것이 아닐까 싶다.
‘탑스타 어게인’이 개봉 3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해 버렸다.
이 정도 기세라면 토, 일 주말이 지나가면 300만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이 더 이상 농담처럼 안 들릴 수준.
지금까지 이 정도의 폭발적인 관객수 증가를 보여준 영화가 없다고 들었는데.
“서준아.”
“네?”
“공약은 잊지 않았지?”
“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형들이랑 미리 이야기를 좀 나눴어요. 오히려 형들은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 영화로 복귀한 배우 차서준을 놓칠 리 없는 기자들이었다.
차 배우라는 이름값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백, 이백 만이 아닌 천만 관객 공약부터 물어보더라.
잠시의 고민 끝에 천만 관객 공약으로 이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번 영화로 천만 관객을 넘어선다면. 재작년에 이어 작년에도 성황리에 끝난 연말 콘서트를 올해도 준비하고 있는데. 내년 초에 바로 앙코르 콘서트를 준비해 보겠습니다.”
이거 말고는 공약으로 걸 만한 것이 딱히 떠오르지가 않아서.
문제는.
영화가 대박이 나도 너무나도 대박이 나버렸다.
이번 주말에 정말 300만을 넘어선다면. 공약을 건 천만 관객도 20일이 채 지나가기 전에 달성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이러다가 진짜 기록 세우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