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영화 ‘탑스타 어게인’ 촬영 현장.
프로답게 눈과 손은 연신 촬영 준비에 한창이었지만. 입만큼은 떠들고 있는 수다를 멈출 줄 몰랐다.
그만큼 오늘 촬영장에 등장하기로 한 인물들이 정말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촬영장인지. 연말 시상식인지 모르겠네. 너도 그 소식 들었지?”
“와, 오늘은 진짜 그 데이븐이랑 가르시아 알렌이 와요? 한국에 차 배우를 보러 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진짜로 카메오로 나온다고 할 줄이야.”
데이븐과 가르시아 알렌이 누구던가. 이제는 정말 할리우드 내에서도 탑급 배우가 된 두 사람이었다.
데이븐이 마지막으로 찍었던 영화의 출연료가 200억이 넘었다는 건. 한국에서도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기에 너무나도 유명한 사실.
그런 할리우드 스타들이 한국에, 그것도 영화 촬영장에 방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배우 차서준을 위해서.
몇 년 전 각각 차서준과 함께 영화들로 인연이 시작된 뒤. 이제는 미국 지부 연사모라고 불리는 데이븐과 가르시아 알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우정출연을 하겠다며 먼저 흔쾌히 나선 것이다.
“그러게. 저번에 데이븐 영화 출연료가 얼마라고 그랬지? 200억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아요. 가르시아 알렌도 200억이 조금 안 되는 100억 대라고 했고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진짜 영화 한 편에 말도 안 되는 돈을 받는 탑배우들이었네요.”
“미쳤네, 미쳤어. 그런 할리우드 스타가 우정출연으로 나오겠다고 한국에 온 거네? 그것도 출연료 한 푼 안 받고 무료로?”
현재 우정출연을 넘어서 특별출연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 배우들. 연사모의 박우형, 김정범, 김우승 정도까지는 다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할리우드도 아닌 한국에서 찍는 영화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정출연을 해주지 않을까 하고선.
문제는.
이제 영화 촬영 중반부를 향해 가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촬영장에 등장하는 스타들이 너무나도 대단했다는 점에 있었다.
“지난주 촬영 때 김한결, 박민우 왔던 거 기억나세요?”
“나 김한결 차에서 내리는 거 보고서 깜짝 놀랐잖아.”
“그죠? 작년 연말 콘서트 때 3만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던데. 거기에 김한결, 박민우가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래요.”
“미쳤네. 그러면 두 사람 어머니 팬들이 무조건 보겠다고 영화관 오겠네?”
어머님 팬들에게 있어 트로트 황제라고 불리는 김한결. 그리고 트로트 가수들 중에서도 S급이라고 불리는 박민우까지.
영화 촬영 전에 제주도에 셋이서 놀러 다녀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카메오로 출연하겠다고 나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차 가수 촬영장에 김한결, 박민우 형들이 떴다는 거 아세요?]
└ 형들이 차 가수 영화 촬영 응원하러 간 걸까요? 밥차도 보냈던 걸로 아는데.
└ 아니에요. 우리 차 가수가 먼저 말하기도 전에. 김한결이 먼저 우정출연으로 카메오로 나오겠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 지금 그래서 김한결 팬들, 박민우 팬들이 난리잖아요. 두 사람이 연기하는 건 거의 처음일 텐데. 무조건 개봉하자마자 영화관 달려가겠다고 하더라고요.
└ 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김한결은 섭외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트로트 황제나 마찬가지인데. 그 김한결이 먼저 말하는 걸 보면 우리 차 가수와의 우정이 찐인가 보네요. ㄷㄷㄷ
└ 저번에 제주도도 셋이서 다녀왔잖아요. 그때 본 사람들이 말했었는데 진짜 친해 보인다고 했어요. 아예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처럼 보였다던데.
└ 그래서 배우에는 연사모 형들이 있다면. 트로트에는 김한결, 박민우가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올해도 연말 콘서트 꼭 해줬음 좋겠네요.
김한결, 박민우 팬들이 아직 촬영 중인 영화를 벌써부터 개봉만 기다리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지만.
저 두 사람만 하더라도 ‘대박! 미친 카메오 라인업!’ 이런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인데.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오늘은 할리우드 스타인 데이븐과 가르시아 알렌이 카메오로 출연한단다.
“어어? 저기 박우형이랑 같이 왔네요. 데이븐이랑 가르시아 알렌.”
“진짜 왔네. 그보다 신기한 건 연사모 배우들이랑 진짜 친해 보이는데?”
“처음에 사람들이 연사모 미국 지부라고 했을 때. 그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나 봐요.”
“그러니 오늘 여기까지 온 거지. 저 두 사람 출연료를 생각해 봐. 만약 차 배우와의 친분이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지. 일부터 마무리하자.”
스태프들은 촬영장에 등장한 연사모 배우들과, 할리우드 스타 데이븐, 가르시아 알렌을 바라보며 수군거릴 뿐이었다.
*
영화 촬영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나는 먼저 도착한 김정범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서준이가 있어서 그런가? 촬영장 분위기부터가 다르네, 달라.”
“그래요? 저는 저번 드라마 찍을 때랑 비슷한 거 같은데요.”
“그게 다르다는 거야. 학교 생존 촬영할 때에는 넷티비 공개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거 보니까 서준이 너 때문이 맞아.”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을 촬영할 때도 그랬고. 이번 주우정 감독의 영화 ‘탑스타 어게인’을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란다.
각 파트별 감독님들을 비롯한 스태프들의 눈빛부터가 달라졌다고.
“예전에 왕자의 난 시즌1로 각종 시상식 휩쓸었던 거 기억나지?”
“네. 그때 상 진짜 많이 받았잖아요.”
“바로 그거야. 저기 감독님들 눈빛이 열정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 안 보여? 당장 올해도 학교 생존으로 각종 시상식을 수놓을 텐데. 자극받은 거지.”
배우 차서준과 함께 작업을 하면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 이력에 그 한 줄이 가지는 의미를 알기에 다들 눈빛부터가 달라지는 셈이다.
이미 작년에 공개된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으로 예약이 되었단 말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몇 달 뒤 있을 국내 백상예술대상부터 해외 에미상에 골든 글로브까지.
그 영향으로 이번 영화 촬영장의 분위기 역시 열기가 넘치게 된 것이다.
그때였다.
박우형과 함께 데이븐과 가르시아 알렌이 도착한 것은.
“오늘 도와주러 와줘서 고마워요.”
“무슨 소릴! 당연히 우리의 우정을 생각하면 특별출연까지 해줄 수 있다고. 지금 정범과 우형도 그러고 있다면서.”
“정말요?”
훅 치고 들어가는 내 말에 데이븐이 움찔하며 당황한다.
나도 농담이란 걸 알고 던진 말이었다. 데이븐의 매니저가 차기작 관련 미팅이 있다고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라는 통화를 들었으니까.
“주, 준이 원한다면 해줄 수 있지!”
“아니에요. 오늘 이렇게 카메오로 나와 주는 것만 하더라도 정말 큰 도움인데요. 끝나고 진짜 맛있는 거 살게요.”
“정말? 나 기대한다?”
오늘 촬영할 장면은 간단했다. 과거 탑스타 시절 후회로 가득 찰만한 일들을 벌이는 주인공과.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주인공의 대비되는 모습.
그 비교되는 대척점에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었다.
가르시아 알렌은 주인공을 확인하러 온 할리우드 캐스팅 디렉터 역을. 데이븐은 영어 과외 선생 역 카메오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데이븐의 배역이었다. 미국에서 그저 한국이 좋아 넘어온 야매 속성 과외 선생이라는 것.
“이거 꽤나 재밌겠는데? 나 이런 역을 해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당연하지. 세상에 어떤 미친 감독이 데이븐을 그런 역으로 써먹겠냐고. 오해하지 마. 이 배역이 데이븐을 생각하며 쓴 것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알고 있으니까.”
잠시 후.
‘탑스타 어게인’ 촬영장엔 제법 재밌는 촬영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명 할리우드 탑급 배우인 데이븐이 열연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걸 바라보는 스태프들의 표정이 묘하다.
당연히 할리우드에서도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가 데이븐이었다. 그렇다면 왜 저런 표정들이 나오는 걸까. 그건 데이븐의 대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었다.
“헤이. 저번애도 수업 째짜나. 이런 쉭이면 나 수업 모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와 친해지고, 또 연사모 형들과도 제법 오랜 친분을 이어오며 한국을 자주 오간 덕분일까.
데이븐의 한국어 실력이 엄청나게 많이 늘은 것. 처음 주우정 감독이 데이븐의 카메오 역을 결정하면서 이런 걱정도 했었다.
“서준아. 차라리 이 대사들을 다 영어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주인공이 못 알아듣는 쪽으로 살짝 수정을 하고.”
“감독님. 그러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잖아요. 야매 강사 역은 어설프게 한국어 패치가 된 미국인이 더 잘 어울려요.”
내 말에 주우정 감독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무래도 할리우드 스타에게 저런 한국말 대사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데이븐이 이 대사들을 소화할 수 있을까?”
그 걱정에 대한 대답이 지금 주우정 감독 모니터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잘하네. 저 외모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야매로 영어 가르치는 외국인 강사를 데려다 놓았다고 착각할 만큼.
처음 자신의 배역을 들었을 때. 재밌겠다며 누구보다 즐거워 한 사람이 데이븐이었다.
역시 할리우드에서 탑급으로 인정받는 배우의 연기는 특별했다.
“커엇! 오케이. 좋았습니다.”
주우정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외쳐짐과 동시에. 방금 전까지 야매 외국인 강사처럼 보이던 데이븐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갭차이에 그제야 스태프들도 데이븐이 누군지 떠오른 모양.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멈추질 못했다.
‘역시 할리우드!’ 이런 감탄을 터트리는 사람들.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씨익 웃는 데이븐에게 다가가며 불렀다.
“데이븐.”
“응?”
“지금 촬영하고 있는 스태프들도 데이븐의 연기에 저렇게 놀라는데. 나중에 스크린으로 보는 관객들은 진짜 깜짝 놀랄 것 같아요.”
내 말에 데이븐이 다시 야매 영어 강사가 되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나 이줴 한쿡말도 잘해. 정말이라고.”
*
이번 촬영이 진행되면서 스태프들이 가장 놀란 부분이 무엇일까.
화려한 카메오 출연진? 저번에 어설프지만 꽤나 유창한 한국말을 선보인 데이븐?
그것들도 반쯤은 맞았으나 가장 놀라게 만든 요소는 아니었다.
바로 차 배우. 차서준이 보여주는 주인공 윤선우였다.
“차 배우 있잖아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뇨. 문제라곤 연기를 잘해도 너무나도 잘한다는 게 문제죠 뭐.”
‘탑스타 어게인’의 시나리오가 사실 차서준의 비밀을 푼 게 아니냐는 농담까지 촬영장에 떠돌고 있을 정도.
“감독님. 진짜 이거 영화가 아니라 페이크 다큐 아니에요? 진실을 절반 정도 섞은.”
“음. 아니라고 해야 되는데. 분명 나도 그냥 옆에서 차서준이라는 배우를 지켜보면서 참고만 했을 뿐인데. 저 연기를 보고 나니 헷갈리네.”
오죽하면 시나리오를 쓴 주우정 감독의 입에서 저런 말까지 나왔을까.
이미 할리우드에서도 증명한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그러나 이건 잘해도 너무 잘했다.
이게 연기인지, 아니면 실제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는지. 모니터로 지켜보는 주우정 감독조차 헷갈릴 정도로.
특히.
“야야! 이게 얼마만이야!”
“예? 누구?”
“···아, 처음 뵙겠습니다. 윤선우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일이 바빠서.”
먼저 돌아서는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아련한 눈빛.
분명 십 년 이상의 친분. 유일하게 속을 터놓을 수 있었던 친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낯설어하는 상대를 애써 초면인 척해야 하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
그 표현이 마치 경험자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들이 살아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더 낫겠다. 오히려 나를 모르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어.”
과거의 자신의 행동에 상처를 받았던 옛 연인을 바라보면서. 차라리 이대로 모른 채로 지내는 게 낫겠다고 다짐하는 주인공.
분명 차 배우가 연기력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배우인지라 잘할 것이라 예상들은 했지만.
지금 눈앞에서 보여주는 연기들은 마치 ‘어? 진짜 차 배우 인생 2회차 경험해 본 거 아니에요?’ 이런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컷!”
주우정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카메오 출연을 위해 구경하고 있던 연사모 배우들이 차서준을 향해 다가갔다.
*
김정범과 김우승이 후다닥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더니 주변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는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야야, 서준아. 이제 형에게 말할 수 있지 않아? 너 방금 그거 연기 아니지? 연기 아닌 거 같던데?”
“가능성 있지. 나 서준이 처음 만났을 때. 얘가 6살이었는데. 애가 애 같지가 않았다니까. 이제 그 의문점이 좀 해결되는 기분이네.”
응? 사실 이번 ‘탑스타 어게인’ 촬영은 정말 재밌게 임하고 있긴 했었다.
당장 김도경으로 눈을 감았던 내가 6살의 차서준으로 눈을 뜨지 않았던가.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린 덕분에 이건 연기가 아닌 메소드 그 자체가 되는 상황이니.
다른 사람들도 아닌. 나를 오랫동안 지켜본 김정범과 김우승이기에 뭔가를 눈치챈 모양.
그래. 이 형들이라면 이제는 진실을 말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형들. 맞아요. 사실 저 이번이 인생 2회차에요.”
내가 큰맘을 먹고서 진실을 고백하자.
“에이, 역시 서준이의 개그는 아재 느낌이 물씬 난다니까.”
“거봐. 내가 저럴 거라고 했지? 내기에서 이겼으니까 만원 내놔.”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듯 내기에 건 만원을 주고받는 김정범과 김우승이었다.
이 형들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