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연말 콘서트 이후.
우리 하윤이가 달라져 버렸다.
“오빠.”
“응?”
“물 가져다가 줄까? 목 안 말라?”
“괜찮은데.”
“그러면 먹을 거 가져다줄까?”
날 바라보는 하윤이의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처음에는 하윤이가 내게 원하는 것이 있어서 저러는 줄 알고 이렇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하윤아. 오빠에게 부탁할 게 있어?”
“아니! 그냥 오빠가 멋져 보여서.”
공원에서 버스킹을 할 때에도. 수십 명의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고 했던 하윤이었다.
그런데.
큰오빠인 내가 무려 3만 명의 팬들 앞에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터진 절절한 함성. 그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만든 노래까지.
아마 큰오빠의 그런 모습들이 하윤이의 머릿속에 아주 강렬하게 각인이 된 듯싶다.
단순히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보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우리 하윤이가 달라진 점 하나 더 있었다.
“내일 저녁에 버스킹할 거 준비 다 했어?”
“응! 그런데 오빠랑 더 연습하고 싶어.”
“그럴까? 우리 하윤이의 완벽한 무대를 위해서 조금 더 연습할까?”
“응! 오빠 최고야!”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다. 전에는 어느 정도 연습을 하고, 내가 오케이라는 말을 하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던 하윤이었다.
그런데.
“오빠. 방금 마지막은 방금 불렀던 것과, 그 전에 불렀던 것 중에 어떤 게 더 좋았어?”
노력으로 조금이라도 더 발전하는 모습을 추구하는 하윤이가 되어버렸다. 열의가 생겼다고나 할까.
저 초롱초롱한 눈망울 너머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정이 보인다. 저걸 보고도 어떻게 안 도와주겠어.
“음. 오빠가 듣기에는 방금이 더 좋았어. 하윤이가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결과가 두 번째 꺼 맞지?”
“맞아! 역시 오빠야. 나는 오빠가 한 번에 듣고서 알아차릴 줄 알았어.”
이런. 이러다가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다음 날 저녁.
너튜브 채널 ‘하윤이의 뮤직 박스’에 예고한 대로 공원으로 향한 우리였다.
왜 우리냐고?
“오늘 날씨 좋은데?”
“그러게. 끝나고 뭐 먹을래? 뜨끈한 걸로 어때?”
“콜! 서준이가 사주는 거면 무조건 대환영이지.”
카메라 감독이자, 영상 편집자를 겸하고 있는 미래의 감독 최지환이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서준아.”
잠시 하윤이의 뒤에서 따라가던 최지환이 슬쩍 내게 다가와 작게 부른다.
“왜?”
“하윤이 뭔가 달라진 거 같은데. 나만 느끼는 건가?”
최지환의 작은 말에 나는 그만 미소를 짓고 말았다. 하윤이의 큰 결심이 최지환에게도 보이는 모양.
미래의 감독을 꿈꾸는 만큼. 대상의 작은 변화도 바로바로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난 최지환이었다.
“저번 콘서트에서 내가 했었던 무대들을 진짜 감명 깊게 봤대.”
“아, 이해했다. 차 배우 효과구만.”
“응?”
차 배우 효과라니? 그런 내 표정을 읽었음일까.
“생각해 봐. 도윤이야 널 만나기 전부터 원래 배우를 꿈꾸었다지만. 나나 지우는 널 만나고 인생이 완전히 바뀐 거잖아.”
“그렇네?”
“그렇네가 아니라 그렇다니까. 널 안 만났으면 지우가 지금 아이돌 하고 있겠어? 나랑 학교 끝나고 피시방이나 갔을걸?”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6살의 어린 나이에 아역 배우로, 그리고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해 나가는 날 옆에서 지켜본 사총사 친구들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아이돌 블랙홀 멤버가 된 하지우가 있었고. 또 온갖 청소년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있는 미래의 감독님 최지환이 있었다.
“그러니 버스킹할 때마다 미안해하면서 안 불러도 돼. 너가 그러면 내가 나중에 널 못 부려먹는다니까?”
나는 최지환의 말에 그만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빠?”
“아니야. 지환이가 재밌는 농담을 던져서 웃은 거야.”
하윤이가 다시 오늘 부를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앞서 걷고. 나는 한쪽 눈을 찡긋 윙크를 하는 최지환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봐도 맞지? 버스킹 한 번당 나중에 한 번 출연으로 하자. 우와, 이게 초대박을 부르는 투자 아니겠어?”
“알았다, 알았어. 나중에 지환이 네가 작품 찍는다고 하면 무조건 도와줄게. 친구인데 당연히 도와야지.”
“땡큐!”
사실 최지환이 말은 저렇게 해도. 진짜 차서준을 자기 작품 배우로 모실 자신이 없으면 부르지도 않을 터였다.
옆에서 지켜봤기에, 배우 차서준의 이름이 가진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감독님을 꿈꾸고 있는 최지환이었으니까.
“어어? 오빠! 저기 기다리는 사람 어어엄청 많아!”
하윤이가 저번 버스킹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보며 방방 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저번에는 버스킹 시작 전에 한 20명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다면. 오늘은 그보다 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더 많은 이들이 날이 추운데도 하윤이의 노래를 듣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서준이가 노래 안 부르는 건 다들 알고 있을 텐데. 저분들 모두 다 하윤이 보러 온 것 같은데?”
“진짜? 나 보러 온 거야? 내 노래 들으러 온 거야?”
최지환의 말에 하윤이가 방긋 웃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미소로.
“그럼. 우리 하윤이 노래를 듣기 위해서 다들 온 것 같네. 그러면 얼른 가서 준비할까?”
“좋아!”
하윤이가 얼른 가자며 걸음에 속도를 올렸다.
[어제 하윤이 버스킹 보고 왔어요.]
사실 시간이 되면 산책 겸 꼬박꼬박 하윤이의 버스킹을 보러 갔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유독 사람이 많더라고요?
아마 저번 3만 석 매진을 시킨 차 배우 콘서트 소식을 듣고서. 관련 검색을 하다가 하윤이의 버스킹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관객이 많아져서 그런지 몰라도. 하윤이의 노래가 어제따라 반짝반짝 빛나더라고요.
새로 온 관객들이 농담처럼 앵콜! 하고 외치니까. 콘서트처럼 3번을 더 돌아와서 불러주었어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다들 엄청 웃었네요. ㅎㅎ
└ 차 배우가 정말 대단한 거 같음. 3만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 얼마 전이었는데. 추운 날씨에도 동생을 위해서 기타를 들고 버스킹을 같이 해주는 거잖슴. ㄷㄷ
└ 우리 차 배우의 가족사랑은 데뷔 때부터 유명했잖아. 오죽하면 세계적인 각종 시상식에서 매번 마지막에 한국말로 동생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ㅋㅋㅋㅋㅋ
└ 엄마가 내년에도 콘서트 티켓 꼭 부탁해 아들! 이러시는데. ㄷㄷㄷ 제발 차 배우. 아니지, 차 가수가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좌석으로 콘서트해줬음 좋겠네요. ㅠㅠ
└ 저도 어제 버스킹 구경했는데. 하윤이가 진짜 너무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저게 연예인의 아우라인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ㅎㅎ
└ 역시 하윤이도 차 배우의 동생인가요? 어릴 때부터 힐링 가족에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는데. 진짜 미래에 차 가수처럼 가수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 근처에 사시면 한 번 와서 들어보세요. 생각보다 라이브가 너무 좋아서 깜짝들 놀래요. 처음 온 사람들이 어? 왜 이렇게 잘해? 하면서 놀라고들 해요. ㅋㅋㅋㅋㅋ
*
토요일 저녁.
나는 서도현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맙다 서준아.”
“에이, 삼촌. 제 팬이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닌 제 콘서트 때 일어난 일이니까 같이 가아죠.”
“안 그래도 계속 괜찮다고 해서 마음이 편치 않던 참이었거든. 이런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고 가야 되는 일이니.”
콘서트가 있던 날. 서도현의 차와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 그것도 내 팬이라는 분과. 그렇다면 당연히 내가 가야지.
구름엑터스를 국내 최고의 배우 소속사로 키운 사람이 서도현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같이 있던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었기에 확실하게 매듭짓고 싶어 한 것이다.
식당에 도착하여 안내된 룸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어? 안녕하세요.”
꽤나 낯이 익은 얼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6살의 어린 나이에 아역 배우로 데뷔한 나였다.
그로부터 10년을 넘게 배우로 활동하고 있던 터라. 매년 몇 차례 있던 팬미팅 때마다 자주 오는 팬들의 얼굴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처음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보내준 팬들은 이름까지 외우게 되었다.
“시율 누나. 맞죠?”
“맞아요. 이름까지 기억해 주다니. 차 배우, 오늘 저 진짜 계 탄 거 같아요.”
먼저 앉아서 기다리던 여성이 활짝 웃으며 기뻐한다.
어떻게 이름을 알았냐고? 처음부터 차 배우를 좋아해 준 팬들 중에서도. 꽤나 미인에 젠틀한 누나여서 가장 먼저 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우와, 이거 인연 아니에요? 어? 아닌가?”
이걸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아닐지 순간 고민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를 순수하게 팬심으로 좋아한 팬을 이렇게 만나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서도현과의 가벼운 사고로 만난 상황을 미안해야 하는 건지 말이다.
“제가 차 배우의 오랜 팬이니. 좋은 인연이 아닐까요? 솔직히 살짝 넘어진 거라 다치지도 않았고요.”
다행히 김시율이 밝게 미소를 지어주며 말한다. 때마침 통화를 마친 서도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구름엑터스 대표인 서도현입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저번 일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김시율이에요. 몸은 정말 괜찮아요.”
응? 뭐지?
서도현의 반응이 약간 이상하다.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여배우들을 누구보다 많이 만난 사람이 서도현인데.
이상하게 방금 만난 김시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캐스팅할 것도 아니면서.
“삼촌. 여기 시율 누나가 제가 데뷔한 이후부터 쭉 팬미팅에도 오셔서 선물도 주시고 한 오랜 팬이에요.”
서도현이 내 설명에 그제야 왜 방 안에 먼저 들어간 내가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안 모양. 의외라는 눈빛으로 김시율을 바라본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배우 차서준의 오랜 팬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니.
“정말이십니까?”
“네. 그렇다고 해서 막 차 배우를 귀찮게 따라다닌 건 아니에요. 혹시 오해하실까 봐.”
저건 사실이었다. 팬클럽에서 활동하거나, 팬미팅에 자주 참석할 뿐. 김시율은 정말 순수하게 멀리서 응원을 보내온 고마운 팬이었다.
“맞아요. 저번에 삼촌도 보고 놀랐던 선물 있잖아요. 손 편지랑 같이 받은 거요. 그거 여기 시율 누나가 준 거예요.”
“어? 그걸 기억하네요?”
“당연하죠! 제 팬이 절 위해서 열심히 준비한 건데. 소중하게 다 간직하고 있어요. 힘들 때면 편지를 읽으면서 힘내고 있고요.”
내 말에 김시율이 밝게 미소를 짓는다.
그 후 식사가 나오며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어? 진짜에요? 금동이맘이 시율 누나 어머니세요?”
“네. 사실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럽긴 한데. 차 배우와 만난다고 하니 꼭 전해주고 사인 좀 부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인연이 맞았다.
방금 김시율의 입에서 나온 ‘금동이맘’ 역시 팬클럽에서도 유명한 네임드가 아니었던가.
극성맞은 팬이란 게 아니다. 누군가가 배우 차서준을 향한 허위 사실과 거짓으로 깎아내리려고 하는 순간. 마치 히어로처럼 나타나 싸운 네임드 팬이라는 뜻.
잠깐.
“어? 누나. 그러면 저번에 금동이맘 님이 쓰신 글도 사실이에요?”
“푸웁!”
우아하게 물을 마시던 김시율의 입에서 순간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 뿜어진 물이 향한 곳은 맞은편에 있던 서도현의 상의. 화들짝 놀란 김시율이 재빨리 일어나 닦아준다.
“금동이맘 님이 쓴 글이라면···.”
일반적인 소속사 배우였다면 팬클럽 관리 같은 건 직원들에게 일임했을 것이다. 따로 방문하지도 않았을 테고.
하지만.
배우 차서준은 서도현에게 있어 그냥 배우가 아니었다. 자신이 발굴해 세계적인 스타로 키운 마치 자식이나 다름없는 배우.
당연히 서도현이 팬클럽에서 일어나는 일들 역시 유심히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게···.”
지금까지 세련된 커리어 우먼처럼 보이던 김시율이 허둥지둥한다. 마치 여기서 들켜서 안 되는 흑역사가 공개된 사람처럼.
“하아, 맞아요. 그런데 오해하진 마세요. 주책맞게 차 배우에게 반해서 지금까지 혼자 있고 그런 건 아니에요.”
마치 래퍼가 랩을 하듯 김시율이 다다다 말을 잇는다.
“여기 제 명함이에요. 사실 차 배우를 좋아하게 된 것도 힘든 회사 생활에 큰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거든요. 연애 같은 거보다 일이 더 재밌어서 열심히 달리다 보니 지금이 되었을 뿐이고요.”
응? 대기업 명함이었다. 그것도 방금 김시율이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한 내용을 담고 있는.
삼촌? 왜 그걸 그렇게 유심히 보시나요.
“누나. 어머니께서 부탁하신 사인 어디다가 해드리면 될까요?”
“아, 제가 가지고 왔어요.”
삼촌에게 늦봄이 오려나 보다.
*
드디어 그날이 밝았다.
배우 차서준, 김도윤 주연. 배우 김정범의 특별출연으로 완성된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의 공개일이.
그리고.
“우리끼리 있는데 서준이도 맥주 정돈 마셔도 되지 않나?”
“쟤 아직 미성년자야. 술은 나중에 어른이 되고 정식으로 배워야지.”
“근데 하는 거 보면 마셔도 될 것 같기도.”
아지트에는 박우형, 김정범, 김우승, 그리고 내가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라마 ‘학교 생존’이 전 세계 동시 공개될 시간만을.
“형들. 얼른 먹어요. 드라마 시작하고 나면 먹을 시간이 없으니 미리 먹어야 된다면서요.”
그전에 우리가 한 일은 바로 저녁 식사부터 미리 해결하는 것이었다.
‘왕자의 난’부터 형들이 모여서 드라마를 같이 볼 때마다 먹는 것도 잊은 채 마지막까지 쭉 이어서 본다고 했었다.
일반 시청자들이 아닌, 배우인 형들이기에 몰입감은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어? 시작한다.”
‘학교 생존’이 공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