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김시율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어디에 최선을 다했냐고? 바로 차 배우. 아니, 차 가수의 연말 콘서트 티켓팅에.
시간이 되기까지 모니터만 노려보다가. 오픈됨과 동시에 열심히 클릭한 보람이 있었다.
“역시 우리 딸밖에 없어. 사랑해 우리 딸.”
마치 소녀처럼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넌 언제까지 혼자 있을 거니. 커리어 성공으로 돈 많이 버는 것도 좋긴 한데. 엄마는 손주가 더 좋아.
이런 잔소리가 한동안은 잠잠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것만으로도 김시율에겐 큰 성과였다.
“아니. 글쎄 우리 딸이 차 가수 콘서트 티켓을 성공했대. 그래, 이번 연말에 김한결, 박민우와 함께하는 그 콘서트. 매일 속만 썩이더니, 어떻게 이런 기특한 효도를 할 생각을 다 했는지 몰라.”
“어, 엄마?”
얼마나 기뻤는지. 엄마는 친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랑을 멈추질 못했다. 평소 못난 딸이라고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시더니.
지금까지 김시율이 본 엄마의 모습 중에서 가장 행복해 보인다면 착각일까? 그 바람에 섭섭함 한 스푼이 있었다는 건 비밀.
어쨌거나. 엄마, 아빠를 모시고 콘서트장으로 향한 김시율이었다.
무려 3만 명이 찾아오는 콘서트장이었다. 효도를 하려면 모셔다드리고, 모셔오기까지 완벽하게 해야지.
“고마워 우리 딸. 아빠가 엄마랑 즐겁게 놀다 올게.”
“딸 최고!”
꽉 찬 주차장에 간신히 차를 대고 나니. 주변에 자신처럼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해서 다행이네.”
엄마가 굿즈를 사야 된다나 뭐라나.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아빠를 깨워 아침 일찍부터 서울로 출발한 덕분에 주차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주차까지 오래 걸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딜 가 있어야 하지.”
엄마, 아빠는 굿즈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는 문자를 받았다. 문제는 이제부터 김시율이 할 일이 없다는 것.
김한결, 박민우, 차서준 콘서트는 작년에도 앙코르곡을 부르기 위해 몇 번이나 다시 무대에 올랐었다고 들었다.
“근처 카페라도 가 있어야겠다.”
차에서 내린 김시율이 그렇게 생각하며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끼이익.
갑작스럽게 눈앞에 들이닥친 고급 외제차 때문에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
크게 다친 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차에 놀라 넘어진 것일 뿐.
부모님을 모셔다드리고 카페로 향하는 자식들이 많이 보였던 터라. 급한 마음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다 오는 차를 보지 못했다.
운전자 역시 그녀를 발견함과 동시에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에 부딪치진 않았다. 혼자 놀라 넘어졌을 뿐.
“괜찮으십니까?”
운전석이 아닌 뒷자리에서 내린 누군가가 김시율에게 다가오며 괜찮은지 물었다.
“···괜찮아요. 제 잘못도 있으니 그냥 가세요.”
김시율이 떨어뜨린 핸드폰을 주워 확인한 순간.
“아, 새로 샀는데.”
놀라 던져지는 바람에 강하게 떨어졌는지. 금이 쭉쭉 가버린 액정이 보였다.
차에서 내린 남성 역시 그걸 확인했는지.
“여기 제 명함입니다. 핸드폰 수리와, 혹시 넘어져서 아플지도 모르니 병원부터 가시죠.”
미안함을 담아 김시율에게 명함을 건넸다. 쪽팔림에 고개를 숙이며 명함을 받은 뒤 확인하는 순간.
“어어?”
방금 전 감정조차 잊은 채 고개를 홱 들고만 김시율이었다.
“서도현 대표?!”
“저를 아십니까?”
“아, 아뇨. 제가 차 배우 열렬한 팬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표님에 대해선 많이 알게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런. 제가 서준이 팬분을 다치게 만든 모양이군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서도현의 뒤를 따라 내린 운전자가 오뚝이 인형처럼 김시율에게 연신 사과를 했다.
갑자기 들어온 문자를 확인하다가 김시율을 뒤늦게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것.
얼굴이 사색이 되어 고개 숙이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괜찮다며 김시율이 상대를 다독여야만 할 정도였다.
“괜찮아요.”
“아닙니다. 일단 제가 지금은 콘서트 때문에 가봐야 해서. 연락처를 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김시율은 서도현이 건넨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하고 말았다.
*
차하윤은 노래 부르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몇 년 전 오빠를 따라 출연했었던 ‘힐링 가족’에서 시청자들의 칭찬을 받았던 것이 그 시작이었다.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이 들으며 즐거워하고. 또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는 것의 기쁨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런 차하윤에게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다.
“엄마.”
“응?”
“오늘 진짜 오빠 콘서트 보러 가?”
“그러엄. 실외에서 하는 거니 엄마가 따뜻하게 입어야 된다고 했지?”
“응! 여기 내복도 입었어.”
큰오빠는 아침부터 콘서트 준비를 위해 집을 나간 상태.
사실 작년에 큰오빠가 김한결, 박민우와 함께 대형 콘서트를 했었지만. 그때는 차하윤이 몸살이 나는 바람에 가질 못했었다.
아픈 자신을 두고서 집을 나서는 큰오빠의 얼굴에 걱정이 얼마나 가득하던지. 결국 시간이 되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영상 통화를 했었더란다.
그렇게 도착한 콘서트장.
“우와!”
“대단해!”
3만 명이라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막상 마주한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차하윤의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건 옆에 있는 작은오빠 차하준 역시 마찬가지.
처음 보는 엄청난 광경이었다. 작년에 이보다 조금 작은 규모로 진행했었지만. 차하윤이 아파 가족들 모두 병간호를 하느라 못 왔었으니까.
“형은 진짜 대단한 것 같아.”
작은 오빠 하준이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정신없이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점점 가득 채워가는 관객석들을 바라본다.
오늘 콘서트의 주인공인 차서준의 가족인지라. 특별히 바깥 어마어마하게 긴 줄을 건너뛸 수 있었던 차하윤 가족이었다.
차하윤은 단순히 사람이 많다고 해서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오빠의 노래를 듣기 위해 온 사람들이구나.”
저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큰오빠인 차서준의 노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온 팬들이라는 것.
‘얼마나 행복할까?’
동네 공원에서 버스킹을 할 때. 수십 명의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정말 행복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수만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 얼마나 행복한 무대일지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너무 행복해서 기절하면 어쩌지?
차하윤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왜 사총사 친구 중 한 명인 지우 오빠가 인터뷰에서.
“···연습생 생활이 안 힘들었냐고요?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서준이를 지켜보며 커온 덕분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더더더 노력을 해야 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더라고요.”
괜히 저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즐겁고, 또 나중에 가수가 되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하윤의 눈에 엄청난 열기의 콘서트를 보게 만들었으니.
잠시 후.
본격적으로 콘서트가 시작할 시간이 되고.
꺄아아아----!!!
온몸을 진동시킬 정도로 엄청난 환호성이 무대 위에 등장한 세 가수를 향했다.
‘···멋있어.’
반했다는 게 아니다. 이 3만 명이라는 팬들을 찾아오게 만든 김한결, 박민우, 차서준이라는 세 사람의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을 뿐.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상상만으로도 벌써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지는 차하윤이었다.
물론, 아직 어리지만 국내에 이런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가수가 몇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오빠.”
“응? 대박이다. 우리 형 진짜 최고야.”
이미 작은 오빠는 팬들의 뜨거운 열기에 합류하여 방방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큰오빠의 노래에 떼창을 부르는 팬들. 그 열기에 휩싸여 형아 최고!를 외치는 작은 오빠까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 있잖아. 나도 큰오빠처럼 진짜 멋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 나중에 이런 커다란 곳에서 나를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팬들들 보면서. 저기 무대 위에서 이 열기를 느껴보고 싶어.”
차하윤은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에 눈을 떴다.
*
연사모 형들에게 따로 콘서트가 어땠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날 보자마자 우리 서준이 최고! 라며 둥개둥개를 해주는 형들이었다.
“서준아! 내가 너 때문에 산다!”
“우리 집에서도 너무 좋아하시더라. 덕분에 효도 제대로 했어.”
“나도.”
이미 형들은 양가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았는지. 먹고 싶은 것 없냐고. 오늘 배가 터지도록 시켜주겠다며 사랑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너도 그랬어?”
“무슨 말이 필요해. 최고라고. 우리 사위밖에 없다고 얼마나 칭찬을 계속 하시던지 몰라.”
“나도 어깨가 으쓱으쓱 했다니까.”
눈앞의 형들의 반응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트로트 가수 김한결, 박민우, 차서준. 한우준 콘서트는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팬들의 사랑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준비했던 곡들이 끝나고. 앙코르곡을 무려 10곡이나 더 불렀을 정도.
이 정도는 앙코르곡으로 준비해야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어머님 팬들에게 보답이 될 거라는 내 강력한 주장이 빛을 본 순간이었다.
“아니. 그 많은 팬들이 콘서트장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뒷자리가 깨끗하다는 게 말이 돼?”
“그래서 사람들이 차 가수, 차 가수 하는 거잖아. 그 가수 그 팬.”
사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미 넷상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었다.
- 올해도 뜨거웠고. 마지막까지 아름다웠던 한우준 콘서트
- 팬들은 가수를 닮는다? 3만 명이 다녀갔음에도 무사고, 뒷정리까지 완벽하게 하고 간 한우준 팬들.
- “내년에도 또 했으면 좋겠어요.” 벌써부터 내년 콘서트를 기다리는 사람들.
- 앙코르가 무려 10곡?! 멀리서 아침부터 올라온 팬들을 위한 김한결, 박민우, 차서준의 행복한 선물.
└ 머임? 기사에 올라온 저 사진들 콘서트 시작 전에 찍은 거 아님? 무슨 3만 명이 다녀갔는데. 좌석들이 왜 이리 깨끗함?
└ 그 가수, 그 팬들 모름? ㄹㅇ 어머님 팬들이 내 가수 욕 먹이기 싫다면서. 콘서트 끝나고 나니까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가시더라. ㄷㄷㄷ
└ 심지어 3만 명이 몰려서 혼잡하지 않을까 경찰들도 엄청 많이 출동했는데. 생각 외로 다들 질서 잘 지키고, 서로서로 양보하면서 사고 하나 없었다고 함. ㅋㅋㅋ
└ 내가 엄마, 아빠 모시고 저기 다녀옴. 정확히는 난 밖에 주차장에서 기다렸지. 근데 재밌는 게 뭔지 아심? 주변 차 안에 나와 비슷한 자식들 엄청 많더라. ㅋㅋㅋㅋ
└ 인근 가게들 대박 났잖아. 부모님 모시고 온 자식들이 가게에 들어가서 매상 올려주면서 기다림. ㅋㅋㅋㅋㅋ
└ 김한결이 괜히 트로트 황제라고 불리는 게 아님. 거기에 박민우, 차 가수까지. 그냥 가수들 인성부터 시작해서 팬들까지 최고의 팬덤임. ㄷㄷㄷ
이렇게 콘서트가 끝나고 난 뒤. 팬들이 떠나간 뒤의 풍경들이 화제가 된 것.
3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기에. 당연히 쓰레기를 그 자리에 버리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선한 영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팬들이 그런 쓰레기들마저 깔끔하게 뒷정리를 한 것이다.
“콘서트가 끝났으니. 이제 메인이벤트가 남은 셈이네?”
“그렇지. 나 외박권 허락도 받았어. 우형이 형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더니만.”
“받았어.”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이 공개되는 날. 아지트에 다 같이 모여서 보자며 계획을 세웠던 형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박우형이 탈락할 뻔했으나. 나도 처음으로 함께하는 자리라는 말에 허락을 받았단다.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던 김정범이 날 보더니 흠칫 놀란다. 가장 중요한 나를 안 물어봤다는 사실이 생각난 모양.
“서준이 넌?”
“어? 서준이 안 돼? 그러면 안 되는데.”
화들짝 놀라는 김우승을 보면서 내가 답했다.
“에이. 이번이 처음인데 무조건 형들이랑 봐야죠.”
*
구름엑터스 대표실을 찾은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응? 삼촌,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래. 계속 괜찮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한 일이니 보상을 해드려야지. 문제는 저쪽에서 계속 괜찮다며 거절하고 있다는 건데.”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였다. 김한결, 박민우와 함께 연말 콘서트를 했었던 날. 가벼운 접촉 사고가 있었다는 것.
실제론 부딪치지 않고 급브레이크에 놀라 넘어진 것이라지만. 그 상대방이 내 열렬한 팬이라면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심지어 핸드폰 액정까지 망가졌다고 하지 않던가. 다른 장소도 아닌 내 콘서트를 찾은 차서준 팬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내 팬은 내가 챙겨야지.
“그러면 삼촌.”
“응?”
“저랑 같이 저녁 식사하자고 해요. 다른 곳도 아닌 절 보기 위해 온 콘서트장에서 있었던 일이잖아요.”
“너랑 같이?”
서도현이 놀라 묻는다.
“네. 이대로 넘어가면 삼촌도 내심 불편할 거 아니에요. 마침 제 팬이라면 보상도 해드릴 겸.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면 거부하진 않으실 거예요.”
“잠시만. 일단 물어보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도현이 상대방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우우웅. 곧바로 돌아오는 답장. 때마침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지. 정말 그래도 되냐면서 답장이 왔단다.
“이런. 서준이가 만능 치트키네.”
계속된 거절에 난감했던 삼촌이었는데. 내 이름 한 방에 해결되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린다.
“아, 근데 삼촌.”
“응?”
“그분 남자에요?”
“아니. 여성분이었다. 그것도 꽤나 미인이신.”
서도현의 대답에 순간 차서준 연애 조작단이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털어낸 나였다.
에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