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네티즌 수사대는 정말 무서웠다. 몇 년 전 김우승이 했던 아주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선 증거들을 찾아내었다.
어떤 증거들이냐고? 차서준이 ‘한밤에’에 나와 김우승이 외로워했다는 증거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찾음. ㅋㅋㅋ]
진짜 옛날 유니온 리더 시절부터 느꼈지만.
김우승이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많더라. ㅋㅋㅋ
여기 김우승이 다른 아이디로 자기 연기력 칭찬한 증거들이 발견되었음요.
(각종 증거 사진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통 이렇게 과거 일이 터지면 문제가 되어야 정상인데.
김우승은 귀여운 흑역사가 생겨버렸음. ㅋㅋㅋ
└ 보통 자기를 띄우려고 남을 깎아내리기 마련인데. 김우승은 철저하게 자기만 칭찬했네요. ㅋㅋㅋ
└ 심지어 저 때 대놓고 김우승만 칭찬해서. ‘우승이 어서 오고’ 이 말도 들었었네. 그래도 계속함. ㅋㅋㅋㅋㅋㅋ
└ 근데 저 때 잘하긴 했어요. 나름 김우승의 인생 캐릭터가 저거 찍으면서 탄생했으니. 잘하면서 저러니 귀여운 흑역사네요. ㅋㅋㅋㅋ
└ 그러니까. 우리 차 배우 말씀에 따르면. 김우승이 저러고 논 이유가 다 외로워서 그랬다는 거죸? ㅋㅋㅋㅋ 대체 얼마나 외로웠던 거야. ㅋㅋㅋㅋ
└ 그러다가 차 배우 응원차 촬영장에 갔다가 김청아를 보고 한눈에 반했으니. 이해합니다. 파파라치에게 들킬 수밖에 없었네. ㅋㅋㅋㅋ
└ 근데 연사모에 있는 배우들은 진짜 구설수 하나 없네요. 파도파도 귀여운 이야기들과 미담들밖에 없는 듯.
당연히 김우승은 아지트에 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서준이 이 나쁜 놈!”
“형. 미안해요.”
내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넘겨준 ‘힐링 가족’을 통해 자상한 남편이자, 사랑꾼 이미지를 열심히 쌓아놓은 김우승이었다.
그런데.
그 부드러운 사랑꾼 이미지가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렸다. 거기에 흑역사까지 실시간으로 네티즌들에게 발굴되고 있는 상황.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미 배워둔 나였다. 누구에게? 눈앞에 있는 우승이 형에게.
바로 화제 돌리기.
“너 이거 어떻게 할 거야!”
“형. 그런데 형 이야기 덕분에 청아 누나가 제대로 주목받고 있어요. 사람들 반응 보셨어요?”
“···그건 맞지.”
사실 김우승이 외로움에 사무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김청아에게 한눈에 반해 쫓아다녔단 이야기는 딱 저기서 끝났었다.
애초에 내가 청아 누나와 함께 토크 예능에 나간 이유도 배우 김청아를 홍보해주기 위함이었으니까.
내가 ‘한밤에’에 출연해서 MC들과 나눈 이야기는 모두 김청아의 연기에 관한 것들이었다.
저번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캐릭터보다. 더 좋은 캐릭터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정말 기대되는 배우라고.
아마 앞으로는 수많은 작가님, 감독님들이 찾는 연기력을 갖춘 배우 김청아가 될 것 같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나였다.
당연히 시청자들 역시 김우승 이야기에 웃음을 터트린 뒤. 이어지는 김청아의 이야기에 관심이 향할 수밖에 없었다.
“청아가 고맙다고. 너 만나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맛있는 거나 사주고 오라고 하긴 하더라.”
“그죠? 저 진짜 큰맘 먹고 나간 거라니까요. 토크쇼는 제 영화 홍보 때에도 안 나갔던 거 알잖아요.”
“맞지. 그래서 내가 너무 고마웠었잖아.”
됐다. 거의 다 넘어왔다.
내가 안도의 숨을 내쉬려는 순간.
“푸하하! 너 진짜 연기력 칭찬해 달라고 댓글 작업했어?”
다 완성된 작업에 초를 치면서 김정범이 등장했다. 그것도 폭소를 터트리면서.
“몇 년 전 일이야.”
“나 기억난다. 아니, 쟤가 연락할 사람도 없으면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질 못하는 거야. 그게 저 일들을 하느라 그랬다니.”
이 기회를 놓칠 김정범이 아니었다. 에베베 하는 심정으로 진짜 마음껏 놀리더라.
아, 정범이 형! 겨우 간신히 김우승을 달래놓았는데. 왜 다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붓고 그래요.
“이, 이게 다 서준이 때문이야!”
결국 성공 직전까지 갔던 화제 돌리기는 실패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난입한 정범이 형 때문에.
어쩔 수 없지. 1안이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준비한 2안으로 넘어가면 될 테니.
“우승이 형. 그러니까···.”
내가 김우승에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우우웅. 김우승의 핸드폰이 울리며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음을 알렸다.
“김우승입니다. 네. 네?!”
뭐야. 뭔데 저렇게 놀라고 그래.
잠시 중요한 통화라고 손짓하며 김우승이 베란다 밖으로 나간다.
“뭐지? 왜 저리 놀라면서 나가고 그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잠시 배란다 유리 너머 통화하는 김우승을 보던 김정범이 내게 슬쩍 묻는다.
심지어 전화를 끊고 나서.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또 거는 것이. 무언가 일이 생긴 것처럼 보였으니까.
“서준아. 방금 내가 너무 심하게 놀렸나?”
“정범이 형.”
“응?”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내 말에 김정범이 뒷머리를 긁적긁적 긁었다. 그냥 놀릴 거리가 생겨서 조금 신이 나 놀린 것뿐인데.
갑자기 김우승이 놀란 표정으로 전화를 받으니 덩달아 놀란 모양.
어차피 두 형들이 티격태격하는 일이 하루 이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서로를 잘 챙기는 형들이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각자 집에 보낼 선물도 하나씩 가지고 왔는데. 진짜 좋은 거로 준비했단 말이야.”
지금처럼 병 주고 약 줄 준비를 모두 마친 채 놀렸다는 뜻.
통화가 모두 끝났는지. 베란다 문을 열고 김우승이 들어왔다.
“서준아!”
그것도 나를 격하게 부르면서.
“왜왜?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불안한 마음에 김정범이 사과를 할 준비를 한 채 물었으나.
“역시 우리 서준이가 복덩이라니까!”
그런 김정범을 무시한 채. 김우승이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왈칵 안아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형?”
“나 토크 프로 섭외 제안이랑, 광고 들어왔어.”
“정말?”
“어. 청아랑 같이 그때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고 연락이 왔더라고. 그리고 가족 대상으로 하는 광고도 들어왔고.”
뜻하지 않게 우승이 형에게 좋은 선물을 주게 되었다.
“역시 우리 서준이밖에 없다니까!”
방금 전 나쁜 놈! 하고 들어왔던 기억은 완전히 잊어버린 채. 김우승이 해맑게 웃으며 나를 번쩍 안아주었다.
이런 게 황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는 것인가. 조카랑 청아 누나 선물만 준비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우승이 형까지 챙기게 된 셈이다.
“거봐요. 형, 제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말한 거라니까요.”
그러면 얼른 생색부터 내야지.
이럴 때마다 내가 배우라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
국민 연예인 차서준의 위상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회사에서 주목받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차서준의 아버지인 차우진 부장.
오죽하면 농담처럼 우리 회사 최고의 복지는 차우진 부장님이 다니는 것이다. 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을까.
참고로 그 말이 나오기 시작한 이유도 직원 결혼식이면 차서준이 식권 한 장에 축가를 불러주었기 때문이었다.
차서준이 따로 축가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복지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사장님 역시 차우진 부장을 애지중지했다.
“소식 들었어요? 어제 김한결 콘서트에서 연말에 또 만나자고 했대요.”
“진짜? 이번 전국 투어 콘서트를 했는데. 또 연말에 한 번 더 하려고 하나?”
“아이고. 제발 좀 했으면 좋겠어요. 저번에 티켓팅 실패했는데. 집에서 괜찮다고 하시지만 얼마나 시무룩해하셨는지 몰라요.”
어머님 세대들에게 있어. 현 수많은 가수들 중에서 트로트 황제라고도 불리는 가수가 김한결이었다.
‘트로트 왕자’로 전 국민에게 이름을 알린 뒤. 이어진 행보는 말 그대로 황제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방금 직원이 했던 말처럼 콘서트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 정도.
“아닐걸요. 개인 전국 투어 콘서트 말고. 작년에 했던 거 올해도 한다고 했대요.”
“어? 그러면 서준이, 김한결, 박민우. 이 셋이서 또 함께 콘서트를 한다는 거야?”
“네. 그 소식 때문에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한 명 콘서트 티켓도 구하기 힘들어 죽겠는데. 셋이 뭉치는 콘서트는 말 그대로 전쟁이잖아요.”
한숨을 푸욱 쉬면서 말하는 대리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대리가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작년에는 잠실에서 했잖아요. 그것도 순식간에 매진 당하긴 했지만. 이번에도 거기서 하면 자리가 엄청 많아서 괜찮을지도 몰라요.”
“맞네. 그때 몇 만 석이라고 했더라? 진짜 역대급 규모의 콘서트였다고 하던데.”
“처음 트로트 왕자 할 때만 하더라도. 거기 출신 가수들이 이 정도로 대단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였다. 여기 삼삼오오 모인 이들의 대화 주제였던 차서준의 아버지. 차우진 부장이 출근한 것은.
“다들 좋은 아침! 모여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나누고 있었어?”
“안녕하세요, 부장님. 어제 김한결 콘서트에서 나왔던 이야기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어요. 연말에 서준이까지 해서 3인 콘서트 한다면서요?”
“아, 그거 알려졌구나.”
역시나. 아들과 관련된 일이니 만큼 차우진 부장도 미리 알고 있었다.
“맞다. 김 과장 어머님이 올해 칠순이라고 하지 않으셨어?”
“어?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지난번에 스쳐가듯 말했던 건데.”
“당연히 기억하지. 따로 잔치 같은 건 안 하고. 가족, 친척들끼리 모여서 한다고 했잖아.”
갑자기 차우진 부장이 김 과장의 어머니 칠순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내가 서준이에게 연말 콘서트 티켓 두 장 부탁했어. 김 과장 어머니께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네.”
“예?! 정말이십니까?”
김 과장이 차우진 부장과 친분이 깊다곤 하지만. 이렇게까지 챙겨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지 김 과장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뭘 놀라고 그래. 다행히 연말 콘서트가 큰 곳에서 한다고 하더라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김 과장 어머님 칠순은 챙겨야지.”
“추,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자자, 이제 들어가서 일 시작할 준비들 하자고.”
아들이 챙겨준 선물 덕분에. 아침부터 어깨가 으쓱할 수 있었던 차우진 부장이었다.
“우와. 진짜 우리 회사 복지는 차 부장님이라니까.”
“너 저번 달에 다른 부서 막내 결혼식에서 차 배우가 축가 불러준 거 기억 안 나? 주변에서 엄청 부러워하고 장난 아니었대.”
“알지. 그러니 사장님이 차 부장님을 엄청 챙기잖아. 회사 핵심 인물이라고. 내 생각엔 사장님보다 차 부장님이 더 중요할 듯.”
“아마 차 부장님 나간다고 하면. 사장님 눈물 흘리면서 다리라도 붙잡을지 몰라.”
농담이지만 농담이 아니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사내 체육대회만 기다리는 직원들도 많을 정도였다. 특별히 직원 가족들까지 함께하는 일종의 작은 축제였다.
말이 사내 체육대회지. 실제로는 국민 연예인 차서준의 팬미팅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사내 체육대회 언제 하지?”
“왜?”
“차 배우랑 사진 찍고 싶어서. 곧 촬영 끝난 넷티비 드라마 공개될 거 아니야.”
“맞네. 연말 콘서트랑 드라마 공개되면 바빠질 텐데. 그 전에 해야 될 텐데. 물어봐야겠다.”
실제로 많은 직원들이 일 년 중에 가장 기다리는 날이기도 했다.
*
사람들의 자신의 노래에 환호해 줄 때의 짜릿함을 느꼈던 탓일까. 하윤이는 제법 버스킹에 있어 진심을 가지게 되었다.
“오빠!”
“응?”
“내일 저녁에 비가 많이 온데. 그래서 버스킹 못할 거 같아.”
원래 내일 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미뤄야 한다며. 조금 시무룩해진 채 말한다.
하윤이의 그런 모습이 퍽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채널에 공지하고. 일주일만 미룰까?”
“다음 주에 오빠 시간 괜찮아?”
“그러엄. 다른 사람도 아닌 하윤이의 버스킹인데. 무조건 하윤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앞에 두고 나서 일정 조율해야지.”
“헤헤. 오빠 최고야!”
행복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오빠 최고 하면서 안아주는 하윤이를 보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하윤이가 버스킹과 너튜브 채널을 시작하고 나서. 제법 많은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었다. 자신들이 하윤이를 훌륭한 가수로 키우겠다고.
안 그래도 그것과 관련해서 하윤이에게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본인이 원한다면 제안이 온 곳들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소개해주면 될 테니.
“하윤아.”
“응?”
“하윤이도 지우처럼 소속사에서 배우고 싶어?”
“지우 오빠처럼?”
“지우도 어릴 때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갔잖아. 하윤이와 함께하고 싶다는 소속사들의 연락이 좀 있어서 물어보는 거야.”
내 물음에 하윤이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아마 회사와 계약을 하고 나면. 조금 더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윤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니. 지금은 싫어.”
하윤이가 의외의 대답을 꺼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오빠랑 같이 버스킹 준비하고. 또 같이 가서 즐겁게 노래도 부르는 게 너무 행복해.”
“정말?”
“응. 나중에 더 크고 나서. 그때도 지인짜 가수가 되고 싶으면 그때 가서 생각할래.”
이런.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하윤이를 안아주었다. 그러니 품에 안긴 하윤이의 입에서 까르륵 하는 웃음이 터진다.
“그러면 오빠랑 버스킹에 부를 노래들 조금 더 연습할까?”
“응!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