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점심시간.
학교 벤치에 앉아 광합성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국민 연예인 차서준, 배우 김도윤, 아이돌 하지우, 감독님을 꿈꾸는 최지환까지. 이 넷이 모이면 뭔가 특별한 대화를 나눌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오늘 점심 맛없더라. 왜 지난주에도 나왔던 코다리가 또 나온 거지?”
“그건 너가 생선 안 좋아해서 그런 거잖아. 나는 코다리 강정 진짜 맛있던데.”
“···아니야. 맛없어.”
이렇게 방금 먹은 점심 메뉴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만 나눌 뿐이었다.
반찬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적게 담았던 최지환과 하지우가 빵을 먹고 있었다.
“···이거 더 먹어. 나는 한 입이면 돼.”
“정말? 역시 지우는 최고야!”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손길로. 하지우가 최지환에게 한입 크기로 나눈 나머지 빵을 건넨다.
“근데 지우야.”
“···응?”
“이 정도는 다 먹어도 되지 않아? 너 솔직히 어렸을 때부터 우리랑 이것저것 다 먹어도 살 그렇게 많이 안 쪘잖아.”
“맞아. 그러고 보니 지우 너 왜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관리를 하는 거야?”
최지환과 김도윤이 하지우를 향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하지우가 대답 대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마치 쟤 때문에 하는 눈빛으로.
“응? 나?”
그 시선에 나는 멍하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하지우에게 먹지 말라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서준이가 그랬잖아. 자기 분야에 있어 최고가 되려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쌤들도 지금 이 몸 상태가 화면에도 제일 잘 나온대. 그리고 여기서 더 찌면 잔근육 만들어놓은 게 흐릿해져.”
이런. 왜 하지우가 왜 저렇게까지 철저하게 관리를 하나 싶었는데. 어릴 때부터 나를 옆에서 지켜본 결과인 듯싶다.
배우 차서준이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했던 노력들. 그걸 옆에서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본 사총사 친구들이었으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철저한 프로 의식. 고작 18살에 불과한 하지우였지만. 내 조기 교육 덕분에 훌륭한 마인드를 장착하게 된 것이다.
“···근데 오늘은 치팅 데이야. 빵은 이것만 먹고서 저녁에 진짜 맛있는 거 먹을 거야.”
사람이 무한정 자기 통제만 하며 살 순 없다. 하지우도 오늘 저녁만큼은 맛있는 걸 먹을 생각인 모양.
그걸 들은 최지환이 손을 번쩍 든다.
“얘들아. 오늘 저녁 먹을래? 나 마침 용돈 받아서 맛있는 거 사줄 수 있어. 마침 지우도 치팅 데이라잖아. 맛있는 거 먹자!”
“진짜? 그러면 돈까스 먹으러 갈까? 끝나고 농구도 한 판 콜?”
“···정말 좋다. 거기로 가자.”
최지환이 용돈을 받았다며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때마침 치팅 데이를 말했던 하지우도 오늘만큼은 시간이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쉽지만 오늘은 내가 시간이 안 돼.”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나였다. 오늘 저녁은 이미 선약이 있었으니까.
“왜왜? 오늘 돈까스 먹고 운동도 하면 딱인데. 평소에 식단 관리하고 시간도 없던 지우도 오늘은 괜찮다잖아. 가자.”
오랜만에 하지우까지 괜찮다는 말에 아쉬웠는지. 최지환이 늦은 저녁이라도 좋으니 먹자고 말한다.
나도 오랜만에 네 명이서 함께 저녁도 먹고. 농구도 할 수 있다는 제안에 끌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특히 하지우가 아이돌 그룹 ‘블랙홀’로 데뷔한 이후부터. 스케줄에 치인다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안 된다.
“오늘 저녁에 하윤이랑 같이 버스킹하기로 했어. 그것도 오늘이 첫날이야.”
“버스킹? 하윤이랑?”
“어. 하윤이가 오늘만 기다리면서 노래를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데. 그래서 안 돼.”
하윤이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최지환이 ‘그러면 절대 안 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누구보다 하준이, 하윤이를 향한 동생 사랑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으니.
그때였다.
“···그러면 나도 도와줄까?”
대세 아이돌인 블랙홀의 막내 하지우가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배우 차서준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소속사에서도 흔쾌히 허락할 테니.
그 말을 듣자마자 자동반사적으로 내 입에서 대답이 튀어 나갔다.
“괜찮아. 오늘은 나도 정체를 최대한 숨긴 채 기타만 칠거야.”
넣어둬. 지우야, 너가 오면 그건 버스킹이 아니라 게릴라 콘서트가 열려버려.
가뜩이나 데뷔와 동시에 무서운 성장세를 보인 아이돌 그룹 ‘블랙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흔히 말하는 1군 아이돌을 꼽을 때 ‘블랙홀’이 무조건 포함되었을 정도. 그중에서도 인기 많은 멤버인 하지우가 버스킹을 하겠다며 나타난다?
그러면 버스킹을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닌 안전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부터 걱정을 해야 될 것이다.
“맞아. 지우 너가 가면 그건 버스킹이 아니라 전쟁이 될지도 몰라. 소문 퍼지면 팬들이 벌떼처럼 몰려올걸.”
“당장 하교 시간 되면 우리 학교 정문 앞에도 기다리는 팬들이 많잖아. 지우 인기 완전 대박.”
“···맞다.”
내 말에 그제야 떠올랐는지. 최지환과 김도윤 역시 거든다. 하지우도 아차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앞뒤 생각 안 하고 도와주겠다고 나섰던 것 같다.
“응? 그러면 서준이 너가 먼저 하자고 했을 리는 없고. 하윤이가 먼저 말을 꺼낸 거야?”
“어. 하윤이가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자기는 노래 부르는 것이 정말 즐겁고 좋대. 마침 촬영도 끝났으니 버스킹 하고 싶은데 도와달라고 하더라고.”
내 말을 들은 최지환이 그렇게 된 거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하나 더 묻는다.
“그러면 만약 오늘 버스킹이 즐거우면.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하겠네? 더 나아가 지우처럼 가수를 꿈꿀 수도 있고.”
“맞아. 그런데 어릴 때부터 집에서 가끔 통기타와 함께 노래를 불러줘서 그런가. 지우처럼 아이돌보다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은가 보더라고.”
안 그래도 버스킹 날짜가 정해지니 무섭게 불타오르기 시작한 하윤이었다.
나한테 기타를 치는 법도 가르쳐달라고 하고. 또 어떻게 노래를 만들어야 하는지 찾아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윤이의 꿈이 지우처럼 아이돌이 아닌 싱어송라이터라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최지환의 아리송한 말에 나, 김도윤, 하지우가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말인지 이어질 설명을 기다리기 위해.
“서준이 너 오늘 하윤이랑 버스킹 할 때 영상으로 담아둘 거잖아.”
“당연하지. 동생들이 뒤돌아보면 쑥쑥 자라있어서. 지금 나이의 귀여운 모습들을 최대한 남겨둬야지.”
거기까지 듣고 나니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런 내 표정을 본 최지환이 역시 서준이야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환이 너 지금 하윤이의 버스킹 영상들을 올리자는 거구나?”
“맞아! 옆에 도윤이랑 지우는 대체 무슨 소리야? 하고서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 서준이는 한 번에 알아차리네.”
최지환이 말하는 건 간단했다. 하윤이와의 버스킹 영상들을 모을 테니. 만약 정말로 하윤이가 가수를 꿈꾼다면 지금부터 채널 하나를 만들자는 것.
하윤이가 정말로 가수를 꿈꾼다면. 어느새 하나둘 생긴 팬들의 응원만큼 커다란 힘이 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너튜브라. 중요한 건 내가 나오지 않아야 되는 거겠네?”
“그렇지! 서준이가 나오면 그게 서준이의 너튜브 채널이 되는 주객전도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마침 정체를 가리고 옆에서 기타만 친다고 했으니. 딱 좋은 조건인 거지.”
아직 하윤이는 초등학생. 조금씩 커 가면서 꿈이 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 옆에는 더 어린 나이부터 아이돌을 꿈꾸다 데뷔한 하지우가 있지 않던가.
여기까지 우리의 대화를 듣던 김도윤이 손을 들었다.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려면 편집자가 있어야 하잖아.”
“···편집자?”
“지우 너도 블랙홀 영상 회사에서 올릴 때 풀영상으로 안 올리잖아. 편집 다 한 최종본을 올리지.”
“···맞아.”
꽤나 예리한 지적이었다. 방금 최지환이 말했던 것처럼 최대한 내가 영상에서 가려져야만 했다.
배우 차서준의 모습이 영상에 많이 잡힌다면. 아무리 채널을 하윤이 이름으로 만든다 하더라도 차서준 채널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렇다면 적절하게 영상들을 편집해줄 능력 있는 편집자를 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참고로 능력 있는 편집자는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찾더라도 초등학생이 버스킹하는 채널의 수익으로는 쉽게 비용을 지불하기 쉽지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있네.”
“응? 뭐가 있어?”
갑작스럽게 있다는 내 말에 김도윤이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저기.”
또다시 선문답 같은 대답이었지만. 이번에는 김도윤이 되묻지 않았다. 그저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뿐.
그곳에는 최지환이 있었다. 잠시 최지환의 얼굴을 바라보던 김도윤, 하지우가 손뼉을 친다.
“맞네! 여기 훌륭한 편집자가 있었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어.”
“···지환이 능력 좋지.”
어릴 때부터 감독의 꿈을 키워온 최지환이었다. 과거 어린이 영화제를 비롯한 몇몇 영화제에 도전해서 수상한 이력도 있었고.
그 말은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편집 능력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했다.
“응? 나?”
응, 너.
그렇게 너튜뷰 채널 아이디어와 동시에 편집자까지 구해지는 순간이었다.
*
공원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이쪽을 힐끗힐끗 시선을 던진다.
“오빠. 들키는 거 아니야?”
“괜찮아. 오빠가 예전에 영화 촬영하면서 깜짝 버스킹 했던 거 몰라? 그때도 끝까지 정체를 안 들켰었어.”
“알아. 근데 자꾸 사람들이 이쪽을 봐서.”
“버스킹 준비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럴 거야.”
거짓말이었다. 나름 정체를 숨기겠다고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꼈지만. 누가 봐도 국민 연예인 차서준과 동생 하윤이의 조합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힐끗힐끗 바라만 보는 이유는. 차서준이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섣불리 다가가지 말자는 생각들 덕분이었다.
크게 세팅할 것은 없었다. 버스킹을 위한 아주 작은 앰프 하나. 그리고 가지고 온 통기타 조율뿐.
아, 한 가지 더 있었다.
“준비는?”
“다 됐어. 저쪽에서 찍고 있을게.”
영상 촬영자 겸 편집자가 된 최지환도 함께 있었다. 결국 기왕 돕는 거 제대로 하겠다며 영상 촬영까지 나선 것이다.
디리링. 맑은 기타음이 울리자.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멈춘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윤아. 떨려?”
“조금. 막상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려고 하니까···.”
혹시나 동생이 긴장을 너무 심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너무 흥분돼. 나 열심히 준비한 노래들을 최선을 다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섣부른 걱정이었다. 이미 몇 년 전 ‘힐링 가족’을 통해 수많은 영상들을 선보인 하윤이었다.
만약 남들 앞에 서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면. 당시 한두 번 출연하고 하차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면 한번 시작해볼까?”
“응!”
내 손이 기타 위로 올라가고.
하윤이가 잡은 마이크를 들었다.
[엊그제 차 배우 버스킹 봤어요.]
혹시나 오해할까 미리 말해두는데.
차 배우가 부른 게 아니라. 여동생 하윤이가 부르고. 차 배우는 그냥 옆에서 기타만 치더라고요.
나름 정체를 가려보겠다고 모자도 쓰고. 또 선글라스도 썼긴 했는데.
세상에 차 배우 팬들 중에서 차 배우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ㅋㅋㅋㅋ
거기에 귀여운 하윤이까지 같이 있는데.
덕분에 맑은 음색과 함께 즐거운 산책했네요.
└ 하윤이가 옛날에 힐링 가족 출연할 때에도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더니. 지금도 노래를 좋아하나 보네요.
└ 저도 우연히 지나가다가 봤는데. 진짜 음색 좋던데요? 막 고음을 지르는 게 아니라 팝송이랑 잔잔한 노래들을 부르는데. 진짜 좋더라고요.
└ 옛날에 차 배우가 정체 숨기고 버스킹 했던 일이 떠오르네요. 그때 영화 준비를 하기 위해 했었다고 했는데. ㅋㅋㅋㅋㅋㅋ
└ 혹시 차 배우도 노래 불렀나요?
└ 아뇨. 차 배우는 끝까지 옆에서 기타만 쳐주더라고요. 그래서 아쉽긴 했는데. 또 끝나고 하윤이가 벌떡 일어나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할 땐 귀엽더라고요. ㅎㅎ
엄청나게 뜨거운 반응까진 아니었지만. 몇몇 커뮤니티에 차서준과 동생 하윤이의 버스킹 이야기가 알음알음 올라왔다.
└ 어? 지금 너튜브에 채널 하나 만들어졌네요. ‘하윤이의 뮤직 박스’요. 영상을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는데 구도도 그렇고 꽤나 좋은데요?
그리고.
차하윤의 꿈을 위한 ‘하윤이의 뮤직 박스’ 채널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