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201화 (201/220)

201화

어느새 ‘학교 생존’의 현장 촬영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오늘 찍을 마지막 장면은 시간이 모두 카운트되고 괴현상의 끝을 맞이하는 씬.

사실 넷티비에서 한 번에 공개될 예정이었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촬영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학교 생존’의 마지막 장면을 찍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도 끝이라는 느낌이 확 살도록 마지막 장면은 마지막에 찍어야지.”

박성필 감독의 저 뜻에 따라 가장 마지막 장면을 오늘 찍게 된 셈이다.

나는 방금 전 리허설을 통해 박성필 감독의 디렉팅을 되새기고 있는 김도윤을 향해 다가갔다.

“컨디션은 어때?”

“최고야. 오히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아쉽다는 생각만 날 정도로. 그리고 서준이 너가 이렇게 응원을 위해 와줬잖아.”

내 물음에 김도윤이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사실 내가 오늘 촬영장에 올 필요는 없었다.

최우정의 마지막 분량 촬영은 어제 끝났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촬영장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김도윤이 마지막까지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서. 혹여나 정신이 풀린다면 단호하게 혼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하나 더.

몰랐는데 김도윤이 나를 무슨 토템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매일 같이 촬영장에서 함께하던 내가 없어지면 징크스처럼 연기력이 흔들릴지도 모르니.

촬영장에 같이 가자는 내 말에 혼자 웅얼웅얼 무슨 말을 하긴 했는데. 잘 들리지 않아 넘겼다.

“도윤이. 준비 다 됐어?”

“네! 감독님 준비 다 됐습니다. 나 다녀올게.”

김도윤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날 보더니 힘차게 카메라 앞으로 달려간다.

그런 김도윤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번 ‘학교 생존’을 통해 가장 많이 성장한 배우가 김도윤이 아닐까.

*

크아악!

괴물의 날카로운 손끝이 뒷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토해내며 슬라이딩하듯 몸을 던지는 김정열. 그 눈동자는 오직 이 지옥 같은 상황이 시작됨과 동시에 떠오른 타이머에 향해 있었다.

[ 00 : 00 : 00 : 01 ]

괴물이 쩍 벌린 입이 김정열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끄, 끝났다···.”

타이머의 숫자가 모두 0으로 변하고. 거짓말처럼 김정열을 집어삼키려던 괴물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지옥처럼 학교 주변을 감싸고 있던 검은 돔 역시 마찬가지. 그대로 김정열이 서둘러 옥상으로 뛰어가 밖을 바라본 순간.

“이, 이게 무슨···!”

[ 07 : 00 : 00 : 00 ]

이번에는 하늘 위에 거대한 타이머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숫자가 가리키는 시간은 7일.

우우웅. 진동하는 핸드폰.

- 정열아. 이게 무슨 일이라니? 괴물이 나타나고 사람들 잡아먹고 난리도 아니었어. 아들 무사한 거지?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지친 기색 가득한 어머니의 목소리.

그랬다.

이 괴현상은 학교 하나에서만 펼쳐지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상황.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이제 다음 생존을 위해 준비를 해야만 했다.

“커엇!”

박성필 감독의 마지막 오케이 사인을 듣는 순간. 김도윤은 막내 스태프까지 찾아다니며 수고하셨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로써 현장에서 찍어야 하는 ‘학교 생존’ 촬영이 모두 끝났다.

후시 녹음, CG 작업, 배경 음악 등 후반 작업들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당장 배우들이 현장에서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일은 모두 끝난 셈.

“도윤이 마지막까지 표정 너무 좋은데?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를 해보면 완전히 다른 배우를 앞에 두고 있는 기분이야.”

“다 감독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김도윤이 꾸벅 인사를 하자, 박성필 감독이 웃음을 터트린다.

사실 다른 누구보다 김도윤 본인이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드라마 시작 당시와 지금의 배우 김도윤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건 모두 차서준 덕분이었다.

배우 김도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한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장이었다.

“고생했어. 내일 쫑파티 갈 거지?”

“무조건 가야지. 그보다 정말 고마워 서준아. 갑자기 이 말이 하고 싶네.”

“고맙긴. 친구끼리 당연히 돕고 그런 거지.”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촬영장으로 함께 와준 친구였다.

아마 자신이 마지막 촬영이라는 사실에 들떠 흔들린다 하더라도. 힘을 내라며 등을 토닥여줄 멋진 스승이기도 했다.

거기에 이번 촬영 기간 내내 단순히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런 식으로 가르침을 준 것이 아니었다.

“도윤아. 너가 만약에 김정열이라면 여기서 어떤 표정을 지었을 거 같아?”

저런 식으로 김도윤이 끊임없이 김정열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연구할 수 있도록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방금 그런 표현도 좋았어. 그런데 한 번 이렇게도 생각해보자. 괴물에 쫓기고 있는 상황이잖아. 이게 잡히면 어이쿠 잡혔네. 이게 아니라 죽어. 만약 살인마가 뒤에서 칼을 들고 한 걸음 뒤까지 쫓아왔다고 생각해보면 조금 더 느낌이 다가오지 않을까?”

할리우드에서 연달아 3작품을 하는 동안 같이 한 감독들, 할리우드 스타들의 인정을 받은 세계적인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그럼에도 같이 대본 연습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차서준의 입에선 ‘틀렸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김도윤이 더 많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또 더 나은 표현이 없는지를 찾게 만들었을 뿐.

“서준아.”

“응?”

“나중에 내가 필요하면 말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네 말이라면 무조건 할 거니까.”

“그래? 그러면 내일 쫑파티 같이 가자.”

혹여나 친구 사이에 마음의 빚이라도 생길까 저렇게 던지는 농담까지.

정말 멋진 친구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그 카드가 이런 결과를 가지고 올 줄이야.’

6살. 샛별반에서 전학 온 차서준을 처음 만났던 날. 수많은 고민 끝에 건넸던 황금 카드왕의 야광 카드의 투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

이미 ‘학교 생존’ 쫑파티 장소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상태였다.

“밖에 기자들부터 시작해서 사람들 가득한 거 봤어?”

“나 깜짝 놀랐잖아. 분명 오늘은 가벼운 쫑파티라고 해서 그냥 편하게 입고 왔는데. 사람들 쫙 깔려가지고.”

“당연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닌 차 배우 관련 행사인데. 난 그럴 줄 알고 이렇게 입고 왔지.”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당장 촬영에 참여한 이들이 더 잘 아는 법이다. 이번 드라마가 될지 안 될지에 관해선.

이번 ‘학교 생존’에 대한 느낌은 어떠냐고? 아직 후반 작업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즐거워 보이는 표정들이 말해주고 있지 않을까.

“이번에도 줄까?”

갑자기 툭 꺼낸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즐거운 분위기 속 쫑파티에서 뜬금없이 뭘 달라는 이야기를 꺼냈으니.

“뭘 줘?”

“그러게. 고기는 더 달라고 하면 마음껏 준다잖아.”

“대신 술은 만취할 정도로 먹지 말라더라. 차 끌고 온 사람은 다 대리 불러줄 테니 운전대 잡을 생각 하지도 말라고 하고.”

그 뜬금포에 모두가 각자의 말들을 꺼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알겠다는 듯 툭 말을 꺼냈다.

“서준티 말하는 거네. 맞지?”

그제야 모두가 떠올랐다는 듯이 차서준이 있는 테이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몇 년 전 차서준이 할리우드 진출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이 촬영한 작품이 끝나면 서준T를 나눠주곤 했었다.

농담처럼 차서준과 함께 작업을 했으면 당연히 서준T를 가지고 있어야 증명이 된다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촬영했던 드라마 ‘왕자의 난’ 시즌1도 몇 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이제는 안 하지 않겠어?”

“안 할 만하지. 나는 차라리 서준티보다 조금 있다가 우리랑 사진 좀 같이 찍어주었음 좋겠던데.”

“맞아. 촬영 중일 때는 배우 감정선 잡을 수 있게 다가가지 말라고 했잖아. 서준이야 촬영장에 등장하면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이런 날 사진이 추억으로 제격인데.”

국민 연예인이라고도 불리는 배우 차서준이다. 아무리 차서준이 막내 스태프에게까지 인사를 한다지만. 스태프 입장에선 마냥 편하게 대할 순 없는 법.

가뜩이나 괴물에게서 생존을 위해 쫓기는 ‘학교 생존’의 특성상. 촬영 전 감정을 잡아야 하는 배우에게 선뜻 요청을 하기 힘들었다. 위에서도 자제하라고 당부했고.

몇 년 전과 달라진 차서준의 위치를 떠올리며. 이번에는 안 하지 않을까 다들 마음을 접을 무렵.

가게 문이 열리며 구름엑터스 직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차서준.

“아직 모두 끝난 게 아니지만. 그동안 너무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제가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울려 퍼지는 환호성과 휘파람.

“아시다시피 큰 건 아니에요. 그저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학교 생존이라는 드라마를 촬영했다는 추억을 담은 티셔츠와 작은 선물입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까지 한 분 한 분 저와 사진 찍는 거 잊으시면 섭섭해요.”

막내까지 단둘이 사진을 찍어 기념하자는 차서준의 말에. 방금 전까지 그 이야기를 나누던 테이블에서 가장 격렬한 환호성이 터졌다.

[쫑파티 차 배우 이야기 조금 풀겠음.]

차 배우 본인에게 살짝 올려도 되냐고 물었는데. 흔쾌히 좋다고 해서 아주 살짝만 쫑파티 이야기를 풀어봄.

일단 내가 차 배우와 작업했다는 증거부터 보여줘야겠지?

(차 배우와 서준T 들고 찍은 사진)

크. 드디어 나도 차 배우와 함께 한 작품을 했다 이 말이야.

쫑파티 못 온 사람들은 종방연 때. 그때도 못 오는 사람들은 따로 주소 물어봐서 보내준다고 하더라.

서준T 말고도 고생하셨다면서 선물도 하나 준비했더라. 감동. ㅠㅠ

역시 사람들이 차 배우, 차 배우 하는 이유가 있음. 인성 미쳤음!

└ 역시 차 배우구나. 몇 년 만에 한국 복귀작이라 서준T 같은 건 넘어가나 싶었는데. 잊지 않고 이번에도 준비했네요. 심지어 자리에 없는 사람들도 다 챙긴다니. ㄷㄷ

└ 괜히 연예인들 중 인성 하면 차 배우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아님. 최근까지도 스케줄 없거나, 가족들이랑 있을 때가 아니면 팬들 하나하나 사인 다 해주잖아.

└ 촬영이 끝났나 보네요. 아직 CG 작업 같은 게 남았을 텐데. 학교 생존 넷티비에서 언제 공개되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

└ 이게 원작 만화를 드라마로 만드는 거라. 배우들 촬영이 끝났어도 후작업 엄청 오래 걸릴 거예요. 아마 올 연말쯤에나 공개되지 않을까 싶음.

└ 차 배우와 사총사 김도윤의 첫 작품. 그것도 둘 다 주연으로 출연하는 드라마라니. 원작 만화 봤는데 진짜 기다려지네요. ㅋㅋㅋ

└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촬영장에서 그렇게 감탄들이 터졌다던데. 배우들 연기력이 미쳐서요. 잘하면 이번에 차 배우가 사총사 김도윤이랑 같이 사고 칠지도 모르겠네요.

*

내 촬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우리집에.

“오빠. 이제 진짜 학교 끝나고 바로 촬영장으로 안 가도 돼? 밤늦게까지 촬영 안 해도 괜찮은 거야?”

“그럼. 촬영 다 끝나서 후반 작업 스케줄에만 잠깐잠깐 다녀오면 돼. 우리 하윤이 오빠랑 하고 싶은 거 있었어?”

“응!”

하윤이가 요 며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날 보며 은근슬쩍 묻더니 배시시 웃는다.

대체 나와 무슨 일을 하고 싶기에 저렇게 물어볼까. 어디로 여행을 가자거나 그런 건 아님이 분명했다.

만약 그랬다면 하준이와 멍이까지 불러서 내게 어디로 가야 한다며 설득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하윤이가 나에게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인데.

“무슨 일인데?”

“나 요 앞 공원에서 버스킹 해보고 싶어.”

“버스킹을?”

“응! 오빠는 너무 유명하니까. 직접 같이 부르지 않아도 괜찮아. 혼자서는 준비하기가 어려워서 오빠가 도와줬음 좋겠어.”

안 그래도 하윤이가 예전 힐링 가족에 출연할 때부터 제법 노래에 관심을 가졌었다.

옆에서 듣기에도 재능이 있었고. 또 하윤이 본인도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었기에 집에서도 종종 기타 반주를 쳐주었다. 당연히 저녁 말고 낮에만.

“하준이 오빠도 수의사 되겠다고 엄청 열심히 하잖아. 나도 노래 좋아하니까 열심히 해보고 싶어.”

사총사의 한 명인 하지우처럼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게 아니었다.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러준 영향일까. 하윤이는 통기타를 반주 삼아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러면 오빠가 도와줄까?”

“응! 도와줘.”

하윤이에게도 꿈이 생기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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