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200화 (200/220)

200화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 촬영 현장.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배우들이 펼치고 있는 열연만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 좋고. 표현 좋고.’

박성필 감독은 모니터 너머 보이는 배우들의 눈동자 움직임까지 매의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이제 촬영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 배우들이 입고 있는 교복들 역시 시간의 흐름을 말하듯 엉망이 된 상태.

‘지금부터가 중요한데.’

박성필 감독은 입술 끝을 깨물면서 눈에 힘을 주었다. 혹여나 사소한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당탕!

“저, 정열아. 나 그냥 두고 가.”

“조용히 해. 여기서 너 버리고 갈 거였으면. 진즉에 버렸어. 입 열 힘 있으면 조금이라도 다리에 힘줘.”

김정열이 이를 악물고 넘어진 친구를 부축한다. 그 뒤에서 크아악! 하고 들려오는 괴물의 포효.

분명 그렇게도 많은 희생자들을 먹어 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저 괴물은 여전히 허기가 진다는 듯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 나서고 있었다.

[ 00 : 00 : 32 : 23 ]

아직까지 저 괴물의 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눈에 떠오른 시간은 이제 32분 정도. 이 알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시간이 다 지나가고 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괴물에게서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희망이 무너지려던 김정열의 마음을 다잡게 만들었다.

“그, 그 새끼 또 왔어.”

“···제길.”

부축을 받고 있는 친구 박일도의 말에. 김정열이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이 괴현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니, 터지고 본심을 드러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듬직했던 반장 최우정.

그 인간의 탈을 쓴 또 다른 괴물은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본인의 목숨까지 올려놓은 채 다른 사람을 사냥하는 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말이다.

“다쳤네? 내가 도와줄까?”

말라 갈라진 입술을 핥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쭈뼛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다.

차라리 뒤에서 쫓아오는 괴물이 더 나았다. 그동안 웃고 떠들며 지내던 친구들을 먹이로 던지는 저 미친 새끼보단.

“그 손에 든 것부터 내려놓고 말하면 어떨까?”

김정열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린 최우정이 기어코 뽑고 말았다. 소화기의 안전핀을.

푸아악!

한 치 앞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하얀 분말들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요란한 분사음에 기어코 괴물이 소리를 듣고 말았다. 쿵쿵. 묵직한 소리가 이쪽을 향해 점차 다가온다.

“···도망가. 난 여기까진가 보다. 내 동생 아직 살아있을 테니까. 만나면 꼭 좀 부탁할게.”

박일도의 기침 섞인 말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김정열을 고집부리지 못했다.

사람은 앞을 보고 사물을 분간한다. 하지만 저 괴물은 오직 소리로만 먹잇감들을 찾고 있었다.

지금 눈앞을 가득 가린 이 상황조차. 저 괴물에겐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음이 분명했다.

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김정열이 친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순간.

“···너?!”

박일도가 김정열을 거칠게 앞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괴물을 유인하기 위해 악을 쓰듯 외치는 비명.

“커엇!”

순식간에 놀람, 당황, 분노, 슬픔을 보여준 김정열. 아니, 김도윤의 표정 변화를 보면서. 박성필 감독이 만족감 가득한 얼굴로 오케이를 외쳤다.

*

이번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을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발전한 배우가 있었다.

최이안? 최이안도 발전된 모습이 눈에 띄긴 했지만. 그 주인공은 아니었다.

바로 김도윤.

배우 차서준의 사총사 친구이자, 이번 ‘학교 생존’의 주연 김정열을 맡은 김도윤이 그 주인공이었다.

“방금 마지막 장면 찍을 때 도윤이 표정 봤어? 예전과 비교해보면 훨씬 좋아졌는데?”

“그러게. 분명 처음 촬영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감독님이 지속적으로 말했던 거 같은데. 이젠 별말 없으시네.”

“당연하지. 박성필 감독님이 없는 거 가지고 트집 잡고 그런 분이 아니잖아.”

“차서준이 많이 도와줬다더라. 김도윤이 연기 스승 말할 때 항상 차서준 말하잖아. 이번에는 같이 촬영도 하고 있으니.”

이렇듯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하루하루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준 김도윤에게 감탄을 멈추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은 김도윤 본인이었다.

당장 내뱉은 대사에 싣는 감정, 사소한 눈매 움직임, 손끝 미세한 떨림 등 이전과 달라진 자신이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서준아.”

“응?”

“다 네 덕분이야. 고마워.”

“도윤이 네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지.”

사실 이번에 ‘학교 생존’ 출연을 결정한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단순히 대본 연습을 도와주는 것과. 지금처럼 촬영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으니까.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내가 슬쩍슬쩍 건네는 가르침들을 배우며 쑥쑥 성장하는 김도윤이었다.

“감독님도 그러셨잖아. 촬영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날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른 배우 같다고. 솔직히 서준이 너 아니었음 이렇게까지 발전하지도 못했을걸.”

김도윤이 뒷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애써 부끄러움을 숨기며 고마움을 말한다.

친구가 좋다는 게 뭐겠어.

이럴 땐 자연스럽게 다음 화제로 넘어가면 된다. 아직 촬영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음 장면 준비는 다 했어?”

“당연하지. 내가 못 하면 옆에서 엄한 표정으로 도윤아, 하고 부를 사람이 있는데. 최선을 다해 준비했어.”

그런 김도윤의 대답에 미소가 그려진다.

무엇보다.

김도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번 ‘학교 생존’이 첫 주연작이라는 점에 있었다.

아역 배우로 데뷔해 단역부터 시작해 조연까지 경험을 쌓아가며 10년 동안 성장한 배우 김도윤의 첫 주연 작품.

“왜 이번에 열심히 준비해야 된다고 했는지. 진짜 촬영이 시작되고 나니까 절실하게 느껴지더라.”

“주연이잖아. 단순히 출연료가 얼마, 촬영 분량이 어느 정도를 떠나서. 내 손에 작품의 성공이 달렸다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위치니까. 단순히 내 연기만 잘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 상대와의 호흡, 작품의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주연의 손에 달렸거든.”

“맞아. 옆에서 조연으로 나오는 것과. 주연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의 차이가 크더라고.”

사실 김도윤의 경우에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에 해당했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배우를 주연으로 쓰는 경우가 많진 않았으니까.

만약 넷티비에서 제작하지 않았고. 또 배경이 학교인 ‘학교 생존’이 아니었더라면. 아무리 김도윤이라 하더라도 주연의 기회는 조금 더 뒤를 기약해야만 했을 것이다.

“근데 내일도 진짜 같이 연습 안 해도 돼?”

김도윤이 조금 불안한 듯 내게 묻는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다음 장면을 위한 대본 연습을 함께했던 우리였다.

하지만.

이제 일일이 하나하나 잡아주는 단계는 지났다. 당장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후 나와 함께한 세월이 몇 년인데.

아직 내 눈에는 부족함이 보일지 몰라도. 김도윤 역시 어느새 데뷔 10년 차를 향해 가고 있는 배우였다.

“당연하지. 도윤이 너 혼자서 열심히 준비를 해보고. 그다음 뭔가 걸리는 부분만 나와 함께 해결하자.”

김도윤의 연기력이 눈에 띄게 발전하면서. 나는 본인 스스로가 느끼기에 부족하다는 부분의 도움 요청만 해결해주었다.

지금이 배우 김도윤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시기였으니까.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정도인데. 본인은 얼마나 체감이 되겠어.

말 그래도 ‘연기’에 엄청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시점인 셈이다. 저기서 더 발전하면 또 한계에 부딪쳐 고민이 생기겠지만. 그때 가서 도와주면 된다.

김도윤이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준비하러 간 사이. 김정범이 슬쩍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서준이 너 아멜리오 펠리니 감독 제안 왔었다며. 진짜야?”

응? 이 형이 어떻게 알았지? 아멜리오 펠리니 감독의 연락이 개인적으로 오긴 했었다.

슬슬 완성되어 가고 있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는데. 같이 할 생각이 없냐면서.

아쉽게도 ‘학교 생존’의 연락도 받았던 터라. 다음에 기회가 되면 무조건 달려가겠다며 거절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였어? 근데 왜 너 여기서 드라마를 찍고 있어. 그 감독이라면 정말 좋은 제안인데.”

“에이. 그래서 형이랑 같이 드라마 하나 더 하잖아요. 난 이게 더 좋은데.”

감.동. 아마 김정범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해석해보자면 저것이 아닐까.

전부터 차기작을 같이 하자고 노래를 불렀던 김정범이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그 기회가 없었다.

김정범이 ‘학교 생존’ 특별출연을 결심한 것도. 나와 함께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사실 해외 유명 감독님들이랑 하는 것도 좋긴 한데. 이렇게 한국에서 정범이 형이랑 도윤이와 같이 하는 게 더 즐겁거든요.”

“서준아!”

벅차오르는 감동에 김정범이 나를 껴안는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는지 놓아달라는 말을 무시하며 묻는다.

“응? 그런데 너 나와 함께하고 싶었다면서. 왜 최종 선택은 이거였어? 당시 이거 나 캐스팅 안 되었을 때였는데.”

이런. 가끔 발동되는 예리한 헛탐정 김정범의 모드가 발동된 모양.

괜찮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벗어날 방법을 미리 준비해두었으니까.

“형. 근데 저 올해도 연말에 콘서트를 할 거 같아요. 한결이 형, 민우 형이랑요.”

“저, 정말?! 이번에도 티켓 구해줄 수 있는 거야?”

효과는 엄청났다. 방금 전까지 떠오르는 의혹들은 순식간에 잊어버린 채. 티켓을 갈구하는 눈망울만 하고 있는 정범이 형이었다.

그만큼 김한결, 박민우, 차서준이 함께하는 트로트 콘서트 티켓 파워는 엄청났다.

잠시 후.

나는 촬영에 몰입한 김도윤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람들이 오해하곤 한다. 차서준은 어린 나이에 말도 안 되는 기록을 써 내려간 배우이니까. 욕심을 내서 더 많은 트로피를 쌓고 싶어 한다고.

만약 내가 김도경 시절이었더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배우로서의 명예, 사람들의 인정. 이런 것들에 목말랐던 시절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트로피가 쌓이면 나도 배우인지라 당연히 좋다. 허나 그걸 위해 주변조차 내팽개친 채 달려갈 생각은 없었다.

엄마, 아빠, 하준이, 하윤이와의 행복, 친구들, 형들과의 우정까지. 배우로서 성공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부끄럽잖아.

또 한 가지 주변에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아멜리오 펠리니 감독의 제안을 거절한 결정적인 이유. 그것은 바로 시나리오 내용이 너무 예술적인 심오함이 담겨있어서 그랬다.

아직 어린 하준이, 하윤이가 내가 출연하는 작품들에 대한 소식을 다 찾아보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건 좀 그랬거든.

이건 서도현도 모르는. 아멜리오 펠리니 감독과 나 둘만이 아는 이야기. 나중에 작품이 만들어지고 나면 알게 되겠지만. 미리 말할 필요까진 없겠지.

때마침 넷티비와 ‘학교 생존’ 제작사에서 배우 차서준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액의 출연료를 제시했다.

그리하여 ‘학교 생존’ 선택이 더 매력적이게 된 것이다. 물론 선택 과정에서 사총사 친구인 김도윤과 함께한다는 점도 작용했고.

“커엇!”

박성필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격한 숨을 토해내는 김도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감정적으로 엄청난 몰입이 요구되었던 장면이었지만. 박성필 감독의 요구 이상의 연기를 선보인 김도윤이었다.

그런데.

쟤 시선은 또 왜 저래.

*

김도윤은 바보가 아니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던 차서준이 갑작스럽게 차기작으로 한국 드라마 ‘학교 생존’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모를 수가 없었다.

과거 캐스팅 확정 이후. 삼촌이자, 구름엑터스 대표인 서도현도 말했었다. 차서준이 어떤 기회를 마다하고 자신과의 작품을 선택했는지.

“도윤이 너 친구 하나는 진짜 잘 두었어.”

“서준이가 나 때문에 학교 생존 선택한 거지 삼촌?”

“그래. 물론, 학교 생존의 대본이 매력적이니 최종 선택한 거겠지만. 그래도 그 선택 과정에 있어 널 많이 생각한 건 알아둬야 한다.”

이어지는 서도현의 말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아멜리오 펠리니 감독의 제안조차 거절하고 자신과의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

“서준이에겐 내가 말해줬다고 하지 말고.”

“알았어.”

서도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구인 차서준이 차기작으로 ‘학교 생존’을 선택한 것에는 자신과 함께한다는 이유가 결정적이었던 셈이다.

유명 감독의 제안도 거절한 채.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한국으로 복귀한 것이다.

오직 유치원 샛별반부터 시작된 사총사와의 우정을 위해서.

가뜩이나 지금 촬영하고 있는 ‘학교 생존’의 장면이 친구들과의 우정에 관한 부분.

“커엇!”

박성필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듣는 순간. 김도윤은 차서준을 바라보았다.

회상 씬과 이어지는 절규하는 김정열을 연기하다 보니. 문득 자신을 위해 선뜻 출연을 결정한 차서준이 눈에 들어온 것.

김도윤은 생각했다.

서준이가 자신을 도와준 만큼. 나중에 자신 역시 서준이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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