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토요일 아침.
아직 코오 자고 있어야 할 하준이 방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혼자가 아닌지 하윤이 목소리도 같이 들린다.
가끔 멍! 하는 소리가 작게 하모니를 이루는 걸 보니. 강아지도 함께 있는 모양.
아침부터 무슨 이야기를 저리 나누지? 하고 슬쩍 방 안을 살펴보자. 하준이, 하윤이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빠. 그건 너무 별로야. 밖에서 그 이름을 부르면. 듣는 순간 얘가 부끄러워서 도망칠지도 몰라.”
“왜? 엄청 좋은 이름 아니야?”
“아니야! 그건 절대 안 돼!”
동생들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했는데. 우리집 막내가 된 강아지 이름을 정하고 있었던 모양.
어제 밤늦게까지 강아지에게 어떤 이름을 정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하준이, 하윤이었다. 결국 자고 일어나서 하라는 엄마의 말에 잠들었다가 아침 일찍부터 눈을 뜬 것이다.
하준이가 어제부터 고민한 나름 멋지다고 생각한 이름을 꺼냈는데. 그걸 들은 하윤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듯싶다.
“멍!”
“왜? 누구 왔어?”
강아지가 멍! 하고 방문을 향해 아주 작게 짖자. 강아지 이름을 두고서 떠들던 하준이, 하윤이의 고개가 이쪽을 향한다.
“형이다. 형아 잘 잤어?”
“오빠. 오빠는 좋은 이름 생각해둔 거 없어?”
하준이와 하윤이가 나를 향해 두 손을 번쩍 들며 반긴다. 둘이서는 한참을 떠들어도 강아지 이름 정하기가 끝나질 않았으니.
때마침 적절한 순간에 등장한 나를 가운데에 앉힌다.
“하준이, 하윤이. 언제부터 그거 가지고 토론하고 있었던 거야?”
“30분은 더 된 거 같은데?”
“맞아!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눈이 번쩍 떠졌어.”
원래대로라면 주말이라 늦잠을 잘 동생들이었는데. 새롭게 식구가 된 강아지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진 모양.
아침부터 하준이 방에 모여. 서로 지어주고 싶은 이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던 셈이다.
이럴 때는 내가 나서서 중간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또 둘이서 투닥투닥할지 모르니.
일단 하준이가 밤늦게까지 생각했다는 이름부터 들어보자.
“하준이는 어떤 이름을 생각했어?”
“노블레스 3세. 멋지지 않아? 뭔가 귀족적인 이름이잖아.”
그건 좀. 차마 별로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나는 하준이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괜히 하윤이가 별로라면서 반대를 한 것이 아니었구나.
무엇보다 다른 집도 아닌 배우 차서준이 있는 우리집의 막내로 들어오게 된 이상. 강아지의 이름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국민 연예인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차서준의 막내 강아지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게 될 테니까.
“어머. 차 배우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혹여나 산책에서 만난 팬이 이렇게 강아지 이름을 물어봤는데.
“노블레스 3세요.”
이런 대답을 할 순 없잖아. 아직도 저번 놀이동산 흑역사 짤이 돌아다니고 있는 상황.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순 없었다.
미안하다 하준아.
아무리 그래도 노블레스 3세는 좀 그래.
“음. 하준아, 저 강아지를 처음 봤을 때 서연이도 같이 있었다고 했지?”
“응. 같이 있었어.”
“서연이에게도 저 강아지 이름을 노블레스 3세라고 짓고 싶다고 말했어?”
“···응. 사실 어젯밤에 문자 주고받으면서 말했었는데···.”
벌써 했구나. 내 물음이 끝남과 동시에 하준이가 시무룩해진다.
보나마나 서연이도 ‘그건 좀···’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 귀여운 모습에 노블레스 3세는 좀 그렇지 않니.
“하준이 말한 이름도 나쁘진 않은데. 혹시 하윤이가 생각한 좋은 이름 있어?”
내가 하윤이에게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윤이가 강아지를 안으면서 외쳤다.
“멍이! 얘가 부르면 멍! 하고서 대답해줘.”
“멍이?”
“응!”
나쁘지 않았다. 시고르자브종인만큼 뭔가 순박하면서도 나름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일까. 하윤이가 강아지를 끌어안으며 생각을 묻는다.
그렇게 본인에게 물어본다 한들. 강아지인데 알아듣겠어?
“본인에게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면 되잖아. 멍이가 좋지 멍아?”
“멍!”
응? 알아들었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하윤이가 멍아! 하고 부르니 강아지가 멍! 하고서 대답한다.
자기를 부르는 걸 알아차린 모양. 하준이가 재빨리 품으로 데려와 ‘노블레스 3세야.’하고 불렀지만. 이번에는 멍! 대신 침묵을 지킨다.
그러고 보니 처음 하준이가 데려왔을 때부터 제법 똑똑한 구석이 많이 보였다.
우렁차게 짖지도 않고.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때에도 코앞에서만 작게 들리도록 멍! 하고 외친다. 대소변도 위치를 가르쳐주니 거기서 해결하고.
“자, 그러면 하준이는 여기, 하윤이는 여기 앉아서 각자 생각한 이름을 불러보자. 달려가는 쪽으로 이름을 정하는 거야. 알았지?”
“응.”
“좋아.”
잠시 강아지를 안아 다섯 걸음 물러섰다. 앞에서 하준이, 하윤이가 손을 열심히 흔들며 ‘노블레스 3세!’ ‘멍이야!’ 하고 불렀다.
내가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는 순간.
“멍!”
강아지가 순식간에 하윤이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자기를 구해준 하준이를 조금 더 따랐지만. 노블레스 3세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
“자, 그러면 우리집 막내 이름은 멍이로 하자. 알았지?”
“응!”
“···알았어.”
아직 노블레스 3세라는 이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싶지만. 이로써 우리집 새 식구가 된 막내의 이름은 멍이로 결정이 되었다.
*
멍이가 막내로 우리집에 온 뒤.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엄마! 산책 다녀올게요.”
“하준이 혼자?”
“아니요. 하윤이랑 같이 다녀올 거예요.”
바로 산책 시간이 생겼다는 것. 아직 멍이가 어렸기에 멀리 나간다는 게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내를 돌다가 오겠다는 것.
“산책 준비물은 챙겼니?”
“네! 여기 다 챙겼어요.”
엄마가 묻자 하윤이가 손을 번쩍 든다. 그 손 안에는 리드 줄, 작은 물병 하나,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한 대변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엄마도 같이 나갈까?”
“아니요! 멀리 안 나갈 거예요. 아파트 산책로만 구경하다가 돌아올 거예요. 아직 어리잖아요.”
아직 멍이가 어린 터라. 하준이, 하윤이도 멀리 나가지 않았다. 그저 아파트 단지 내를 조금 돌다가, 놀이터에서 놀다 돌아올 뿐.
“그리고 형아도 같이 나간다고 했어요.”
“형이랑 같이? 서준이가 동생들이랑 같이 나갈 거니?”
“네. 저녁 바람도 쐴 겸. 하준이, 하윤이, 멍이랑 같이 다녀오려고요.”
산책 타임은 꽤나 즐거웠다. 세상 행복한 미소를 터트리는 하준이, 하윤이를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니.
뒤돌아보니 어느새 쑥쑥 자라난 동생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귀여운 모습들도 놓치지 말고 카메라에 담아둬야지.
가볍게 아파트 산책로를 돌고 놀이터에 도착한 순간. 아이들이 우다다 달려와 우리들을 반긴다. 정확히는 멍이를.
“멍이다!”
“멍아!”
“멍이야. 너무 귀여워.”
과거 ‘힐링 가족’을 촬영할 때부터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하준이, 하윤이었다.
거기에 국민 연예인 차서준의 동생들이었기에. ‘힐링 가족’에서 하차한 뒤 시간이 흘러도 그 인기는 여전했다.
그런 하준이, 하윤이가 정말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등장한다? 이건 아이들이 몰려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머? 차 배우네 강아지예요?”
“네! 이름은 멍이에요.”
평소에는 멀리서 구경만 하던 아파트 주민이자, 팬들이었지만. 갑자기 같이 등장한 강아지에 호기심이 발동한 모양.
팬들이 다가와 새롭게 들어온 우리집 막내에 대해 묻자. 하준이가 그렇다며 멍이의 이름까지 소개했다.
“응? 나 강아지 종류 엄청 많이 아는데. 멍이는 처음 보는 외형인 거 같아.”
“마자. 멍이 엄청 귀여운데. 어떤 종류의 강아지야?”
멍이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 어떤 견종인지 묻자. 하윤이가 당당하게 멍이의 정체에 대해 소개했다.
“우리 멍이는 시고르자브종이야.”
“응? 시고르자브종? 그게 뭐야?”
“나도 처음 들었는데. 뭔가 엄청 멋있는 것 같아.”
“맞아. 멍이 귀여워서 잘 어울려.”
아이들은 해맑게 ‘우와! 시고르자브종이다!’ 하고 외쳤지만. 그걸 듣던 어른들 중 그 의미를 알아듣는 사람들의 입에선 웃음이 터졌다.
비웃음이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럴싸하게 시고르자브종이라 소개했는데. 멍이의 모습이 어지간한 품종견보다 귀여웠기 때문.
“멍!”
멍이도 맞다는 듯 작게 소리쳤다. 그런 멍이를 보면 볼수록 똑똑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님들. 차 배우네 막내가 새로 생긴 거 아시나요?]
어제 놀이터에서 차 배우랑 동생들 만났는데. 막내랑 같이 왔더라고요.
최근 막내를 위해서 산책도 엄청 자주 나오고. 또 놀이터도 자주 오는데. 완전 인기 최고예요.
저도 너무 귀여워서 진짜 사진 엄청 찍었어요.
└ 응? 차 배우네 막내 동생은 하윤이 아님? 차 배우네 동생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거 같은데?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분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음. 하준이가 버려진 강아지를 주워서 ‘멍이’라는 이름을 붙였대요. 차 배우네 새식구임. ㅋㅋㅋㅋ
└ 여기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사진 가져왔어요. 멍이 사진입니다. ㅋㅋㅋ (사진 첨부)
└ 와, 처음 보는 견종인 거 같은데 엄청 귀엽네요? 혹시 강아지 잘 아시는 분 계신가요? 어떤 종인지 너무 궁금해서요.
└ 아이들 중 누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하준이가 시고르자브종이라고 하더라고요. 주변에서는 막 웃던데. 혹시 왜 그런지 아시는 분 있나요?
└ 앜 ㅋㅋㅋㅋㅋㅋ 그 말은 그냥 똥··· 크흠. 차 배우네 새로운 식구가 생겼나 보네요. 이름이 ‘멍이’라니. 사진과 보니까 은근 잘 어울리는 거 같네요.
역시나 차 배우의 막내가 된 멍이 소식이 인터넷에 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집에만 있으면 멍이가 답답하다고 놀이터와 아파트 단지 내에 데리고 다니는 하준이, 하윤이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차서준이 키우게 된 강아지가 시골 믹스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에게서 좋은 반응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 차 배우는 역시 국민 연예인 할 자격이 있네요. 품종견이 아니라, 하준이가 버려진 강아지를 데리고 왔음에도 키우는 걸 보면요. 역시 차 배우!
*
사실 차서준이 국민 연예인이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 차서준의 이미지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었다.
“엄마. 차 배우 지금 한창 드라마 촬영 중이잖아. 아직 콘서트 소식은 없어.”
- 엄마도 알고 있어. 그냥 혹시나 갑작스럽게 생긴 스케줄이라도 있는지 싶어서 물어본 거야.
“내가 매의 눈으로 살펴보고 있어. 혹시나 스케줄 관련 소식 뜨면 엄마한테 바로 전화할게. 알았지?
- 그래. 네 아빠랑 여행 중이라 수시로 확인하기가 힘드네. 엄마는 우리 딸만 믿고 있을게.
차서준의 열렬한 팬인 김시율은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서 헛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빠랑 여행을 떠나고서도 차 배우 소식만 기다리고 있는 게 말이 돼?”
차서준의 연기에 빠져 팬클럽까지 가입했던 엄마였지만. 영화 ‘라이프’의 천만 관객 공약으로 참가했었던 ‘트로트 왕자’ 이후 노선이 바뀌었단다.
배우 차서준보다 가수 차서준을 더 좋아하기 시작한 것. 그냥 둘 다 같은 차서준이 아니냐고 물어봤지만.
“너는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그러니. 우리 차 가수는 김한결, 박민우와 함께 앞으로 트로트를 이끌 스타들인데.”
이미 트로트를 부르는 차서준에게 푹 빠져버린 엄마였다. 차 가수는 어머니 또래에서 트로트 황태자라고 불리기까지 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배우 차서준의 팬들 화력보다,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 차서준 팬들의 화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
그냥 농담이 아니라. 작년에 있었던 ‘트로트 왕자’ 출신 김한결, 박민우와 함께했었던 잠실 콘서트로 증명을 해버렸다.
“이번 넷티비 드라마 촬영이 다 끝나고 나면. 올해도 김한결, 박민우랑 콘서트 할 거 같은데.”
김시율이 아쉽게 실패했던 저번 콘서트 티켓팅에 대해 떠올리고 있을 때.
*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 촬영장에선.
“서준이 너 완전 미친놈인 줄 알았어!”
“완전 미친놈이었잖아!”
김도윤, 최이안이 차서준을 향해 극찬(?)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