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넷티비 드라마 ‘왕자의 난’을 끝으로, 몇 년 만에 한국 작품으로 복귀하게 된 배우 차서준이었다.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 이후. 4년이란 시간 동안 할리우드에서 2작품의 커리어와 각종 시상식 트로피들을 쌓았다.
그런 차서준의 몇 년 만의 복귀 소식만으로도 난리가 날 텐데. 심지어 같이 캐스팅된 배우에 김도윤, 최이안이 있단다.
[이거 정말인가요? 차 배우 한국 드라마 복귀작에 사총사 친구와 함께하는 건가요?]
└ 네. 차 배우가 샛별반부터 친하게 지낸 사총사 친구이자 배우 김도윤이 넷티비에서 같이 ‘학교 생존’ 하기로 했대요. 심지어 최이안도 같이요!
└ 최이안 같이 하는 게 왜 호들갑임? 최근 젊은 배우들 중에서 연기력 잘한다고 소문이 나긴 했지만. 차서준, 김도윤 사이에 들어가기엔 접점이 없지 않음?
└ 이분 뉴비 팬이시네. ㅋㅋㅋㅋㅋㅋ 옛날에 차 배우가 아역 배우로 막 데뷔했을 당시 라이벌로 불리던 배우가 최이안이었어요. 이제는 아득하게 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안이도 잘 컸음요.
└ 맞지. 저 세 배우가 처음으로 같이 하는 작품이라잖아. 거기에 특별출연으로 배우 김정범이 나온다고 함. ㄷㄷ 이 정도면 진짜 지리는 라인업 아님?
└ 지리지. 만화 원작 드라마인지라. 원작 캐릭터들의 맛만 잘 살릴 수 있으면 무조건 대박 날 거 같음. 거기에 배우들 캐스팅할 때 다 연기력만 보고 뽑은 거 같으니.
의외의 인연이 이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것은 사총사의 한 명인 김도윤과 아역 배우 출신 최이안 역시 마찬가지.
분명 김도윤과 최이안은 같이 작품을 촬영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만나자마자 반갑게 악수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거야? 같이 작품을 한 적도 없을 텐데.”
제법 친분이 느껴지는 김도윤과 최이안의 모습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도윤과 최이안의 고개가 나를 향한다. 마치 그걸 너가 정말 몰라서 물어? 이런 시선과 함께.
“서준이 너 때문이잖아.”
응? 나 때문에?
“맞아. 전에 시상식에서 만난 덕분에 알게 되었어. 당시 잠깐 형이랑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 제법 통하는 부분이 많더라고.”
김도윤의 저 통하는 부분이라는 건 아마 나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했다.
사총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배우 차서준과 같이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김도윤. 그리고 아역 배우로 데뷔작인 ‘너에게 다시’ 촬영 당시 경쟁상대로 불렸던 최이안.
특히 아역 배우 시절의 최이안은 연기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차서준이 함께 언급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에게는 배우 차서준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셈. 본인들이 원하지 않아도 항상 옆에 차서준이라는 이름이 놓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야 뭐 어릴 때 조금 비교되고 말았지만. 도윤이 넌 정말 힘들었겠다.”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좋더라고요. 막히는 문제가 있으면 옆에 정답지를 펼쳐놓는 기분이랄까.”
“그건 좀 부럽다. 세계적인 배우가 내 절친이라니. 심지어 연기에 있어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주었다면서.”
김도윤의 말에 최이안이 정말 부럽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안 그래도 이번 ‘학교 생존’ 캐스팅 과정에서 최이안이 물망에 올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서도현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삼촌, 최이안 괜찮을까요?”
“왜? 과거 시끌시끌했던 것 때문에 그렇구나.”
“네. 그때 제법 기사가 쏟아졌었잖아요.”
아역 배우로 데뷔한 최이안이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고.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제법 잡음이 많이 터져 나왔다.
그중 가장 많은 기사 타이틀을 차지했던 것이 바로 인성 문제. 너무 어린 나이에 데뷔해 제법 인기를 얻은 덕분에 인성이 별로라는 것.
나야 넷티비 이후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던지라 그 뒤의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그건 이전 소속사에서 더럽게 장난질 친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통 어린 배우를 상대로는 그렇게 안 하는데. 거기 사장이 좀 뒤가 구렸거든.”
만약 최이안에게 정말 인성 문제가 있었더라면. 서도현이 중간에서 움직였을 것이다. 촬영장에서 잡음이 터지면 기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으니.
특히나 차서준과 김도윤이 함께 들어가는 첫 작품이었다. 서도현이 세심하게 하나하나 체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삼촌이 좀 알아보니까. 소속사 때문에 잠깐 방황을 한 적은 있었는데. 그 뒤로 정신을 차렸는지 주변 평들이 좋아.”
정말이었다. 만약 최이안이 사람이 별로였다면 김도윤이 저렇게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겠지.
거기에 하나 더.
최이안이 제법 사교성이 뛰어났다. 분명 나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는 건 처음임에도 제법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몇 년 전에 잠깐 삐딱해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서준이에 관한 할리우드 인터뷰를 보고 정신 차렸잖아.”
“어떤 인터뷰요?”
“서준이가 촬영 현장에 들고 오는 대본에는 빼곡한 글씨들이 가득하다고. 단순히 타고난 게 아니라 뒤에서 끊임없는 노력을 동반한다고. 그걸 보는 순간 재능도 부족하면서 노력도 부족한 내가 부끄럽더라고. 거기서 정신이 번쩍 들었지. 그래서 서준이 널 만나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이런 기분이구나. 박우형과 가르시아 알렌에게는 제법 적응이 되어서 괜찮았는데.
최이안이라는 새로운 인연에게 비슷한 냄새를 맡고 나니. 나도 모르게 속으로 흠칫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 눈빛도 조금 부담스럽다. 마치 평소 존경하던 인물을 직접 만난 사람처럼. 최이안의 반짝이는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안 되겠다. 배우가 만났으면 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야지. 이건 절대 박우형과 가르시아 알렌의 영향을 받아 생긴 습관은 아니다. 정말로.
“도윤이랑 이안이 형은 대본 분석 좀 했어요? 지금쯤 대충 다 끝냈을 거 같은데.”
흠칫. 내가 말을 꺼냄과 동시에 화들짝 놀라는 김도윤과, 그런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최이안. 아마 경험자와 경험하지 못한 자의 차이겠지.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
갑자기 일어난 괴현상으로 생긴 검은 돔으로 덮인 학교. 그 안에 갇힌 학생들과 선생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포효하는 정체 모를 괴물까지.
괴물의 등장과 동시에 눈앞에 떠오른 타이머. 정해진 시간이 모두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생존하라.
그 생존 과정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인간 군상 이야기였다.
“서준이가 보기엔 부족하겠지만. 나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는 해왔는데.”
최이안이 가방에서 손때가 가득한 대본을 꺼낸다. 그걸 본 순간 나는 플러스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김도윤이야 이미 나의 오랜 교육 덕분에 확인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면.
“지금부터 주인공들 주변 캐릭터의 행동과 감정 분석을 시작해볼까요?”
본격적으로 시작할 기본은 갖춘 셈이다. 자기가 연기할 캐릭터만 분석한다고 끝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학생들. 다양한 성격을 가진 학생들과 완벽한 장면을 뽑아내기 위해선. 상대방이 어떤 성향의 캐릭터인지 이해하는 건 필수였다.
“도윤아, 준비해왔어?”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김도윤이 기다렸다는 듯이 노트 하나와 팬을 꺼내서 앞으로 다가온다. 노트엔 이미 몇 장의 필기까지 되어있다.
역시 숙달된 조교의 행동은 다른 법이다.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준비를 해왔으니.
그에 반해.
“응? 뭘 한다고?”
당연히 나와 처음 연습하는 최이안은 당황한 얼굴로 되물을 뿐이었다.
*
고등학생이 된 사총사 친구들에게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꺄아! 지우다!”
“지우야. 이거 먹을래?”
“오늘 더 귀여운 것 같아. 어떡해!”
작년에 하지우가 오랜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아이돌로 데뷔한 것.
보통 아무리 학생 신분이라 하더라도. 아이돌로 데뷔하고 나면 학업보다는 스케줄에 집중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성공을 위해서라면 고등학교 자퇴도 은근슬쩍 요구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하지우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소속사에서 하루라도 결석하지 말고 학교를 열심히 다니라고 매니저가 데려다 줄 정도.
그 이유는 간단했다.
- 국민 연예인 차서준의 사총사 친구 하지우. 보이그룹 ‘블랙홀’로 데뷔!
- 오랜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보이그룹 블랙홀에 최종 합류한 막내 하지우.
- 해외에서도 ‘준’의 친구라는 소식에 많은 관심을 보여. 시작부터 해외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블랙홀’
- 배우 차서준. “정말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한 친구예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사총사 의리 인증.
- 차 가수 팬들의 엄청난 화력 지원. 시작부터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한 ‘블랙홀’
└ 대기업에서 작정하고 키운 그룹인데. 거기 멤버 막내에 차 배우의 사총사 친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건 성공 치트키지. ㅋㅋㅋㅋㅋㅋㅋ
└ 심지어 노래도 좋음. 첨에는 차 가수 팬들의 화력에 음원 차트 뚫는 거 보고 관심 가졌는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입덕하는 팬들 생기고 있음. ㅋㅋㅋ
└ 차 배우 팬들이라면 다 알지. 하지우 저 친구 너무 귀여움. 심지어 차 배우가 친구를 위해서 적극 나섰다며.
└ 그것이 사총사 우정이니까.(끄덕) 저번 인터뷰 보니까 웃기던데. 힘들 때 어떻게 견디셨나요? 하고 물으니까 ‘···서준이 보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이럼. ㅋㅋㅋㅋㅋㅋ
└ 하지우도 당장 옆에 엄청난 목표가 있잖아. 작년에 차 가수가 김한결, 박민우와 함께한 잠실 콘서트가 매진되었다지? ㅋㅋㅋㅋㅋㅋ
└ 저 셋이 현재 트로트계 황제들이잖아. 아이돌로 놓고 비교하려면 국내 압도적 원탑이 되어야 할 듯. 친구 차서준을 보면 하지우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겠네요.
하지우가 다니는 학교에 배우 차서준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유치원 샛별반부터 시작된 사총사 우정은 아직도 견고했다.
‘블랙홀’이라는 이름에 코웃음부터 쳤던 사람들은. 하지우의 데뷔 무대와 함께 이름 그대로 블랙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구멍 하나 없는 멤버들의 탄탄한 보컬 실력.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이는 완벽한 칼군무까지.
이래서 대기업에서 작정하고 키운 그룹이구나.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데뷔 무대부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니까.
“···배고파.”
“빵 좀 줄까?”
“···안 돼. 체중 관리 해야 돼. 서준이 부럽다. 어떻게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지?”
정작 하지우는 예전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저런 모습이 또 나름 매력적이라고 팬들의 사랑을 받으니 상관없겠지.
하지우는 내가 꺼낸 빵을 아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 이내 체중 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책상에 엎드리고 말았다.
이거 맛있는데. 내가 우물우물 빵을 하나 먹는 순간. 옆 반의 최지환이 나도 줘! 하고선 후다닥 달려온다.
이럴 줄 알고 3개가 묶음으로 들어있는 것으로 가지고 왔다.
“우유는?”
“중간짜리 하나 있는데 나눠 먹자.”
“역시 서준이야! 그럴 줄 알고 내가 네스초코 가지고 왔지!”
역시. 최지환이 우유를 좀 마실 줄 알았다.
이렇듯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사총사였다.
*
학교 정규 수업을 마치고 나면. 넷티비 드라마 ‘학교 생존’ 준비를 위한 스케줄을 소화해야만 했다.
특히나 이번에는 정체 모를 괴생명체에 쫓기는 장면이 많은 터라. 격렬한 도주 장면을 위한 몸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고 나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돌아왔다.
무슨 시간이냐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내가 도어락 비번을 누르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오빠!”
하윤이가 우다다 달려와 내게 안긴다.
“어이쿠! 우리 하윤이 오빠 기다렸어?”
“응! 오늘 나 학교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하준이는 막 귀찮다면서 듣지도 않고 방에서 쫓아냈어! 혼내줘!”
이런. 또 열심히 공부하는 하준이 옆에서 다다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다 쫓겨난 모양이다.
그 전에.
“하윤아. 하준이한테 오빠라고 해야지.”
“아, 맞다. 잘못했어. 헤헤.”
내가 지적하자 배시시 웃으며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 아무래도 1살 차이의 연년생 남매다 보니 클수록 투닥투닥 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면 하준이 때문에 속상했을 테니. 오빠가 우리 하윤이의 슬픔을 맛있는 걸로 치료해줘야겠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꺄아! 하면서 나를 안아주는 하윤이었다.
메뉴가 뭐냐고?
뭐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