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금년도 최고의 화제를 보이고 있다는 서바이벌 오디션 예능 ‘트로트 왕자’.
이 오디션 프로에 배우 차서준이 천만 관객 공약으로 참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농담처럼 이런 말이 퍼지곤 했었다.
└ 어우차 아닌가요?
└ 어우차? 그게 무슨 말임? 너무 차갑다 뭐 이런 건가?
└ ㄴㄴ 어차피 우승은 차서준이 아니냐는 말임. 위로 올라갈수록 무대마다 문자 투표가 중요한 상황인데. 다른 참가자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지만 차서준은 이미 압도적이잖아.
└ 맞지. 다른 참가자들은 죄다 여기서 처음 보는 무명들인데. 차서준은 그냥 말도 안 되는 탑급 연예인이니까. 정해진 거 같은데 그냥 차서준 우승 트로피 주고 시작하자. ㅋㅋㅋㅋㅋㅋ
└ 위에 분들은 어제 트로트 왕자 본방 사수 안 하셨나 보네. 처음에는 다들 차 배우, 차 배우만 외쳤었는데. 최근 흐름이 좀 달라졌어요.
└ ㅇㅈ 나는 아무리 봐도 차 배우 인생 2회차인 거 같아. 어떻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모습을 보여줄 수가 있는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저런 반응들이 나오는 걸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관심 속에서. 나는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형들과 만난 상태였다.
“서준아!”
“어? 한결같은 한결이 형!”
내 농담 식 인사에 돌아오는 반응은 좋지 못하다. 나름 회심의 개그였는데. 별로였나?
김한결만 표정이 별로였음 모르겠는데. 옆에서 찍고 있던 카메라맨의 입가도 그대로 굳어버렸다.
“우리 서준이가 못 하는 게 있었네. 처음 서준이 너한테 인간미가 느껴져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왜요? 저 인간미가 없었어요?”
내 물음에 김한결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너만 몰랐냐는 듯한 표정으로.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못 하는 게 없잖아. 노래 끝내줘, 인성은 더 끝내줘, 연기는 뭐···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가 있나. 대체 못 하는 게 뭐냐는 말이 많았는데. 개그를 너무 못하네. 충격적이었어.”
“맞아. 방금 아재 개그는 충격과 공포 수준이더라. 아재 개그란 말을 꺼내고 보니 드는 생각인데. 서준이 너 인생 2회차 썰이 있던데. 진짜 아니야? 어린애가 무슨 그런 개그만 좋아해.”
뜨끔. 순간 옆에서 던진 강민우의 말에 살짝 놀란 나였다. 당연히 표정 관리를 했기에 스태프들도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진 못했겠지만.
움찔하게 만들 만큼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긴 했다. 내 회심의 개그가 그만큼 별로였나?
“하하.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보다 형들 무대 준비는 잘하고 있어요?”
“당연하지. 나는 이번에 오디션 무대가 다 끝나더라도 서준이를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며 살려고.”
말을 마친 강민우가 나를 번쩍 안아 올린다. 마치 진짜로 생명을 구한 은인을 바라보는 표정을 한 채 말이다.
“왜?”
“몰라서 물어? 서준이가 팀 매치 때 핵심 파트를 나한테 양보해줬잖아. 이 부분은 형이 불러줘야 맛이 확 살 거 같아요 하고서.”
강민우의 말에 김한결이 그제야 아, 하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강민우가 시청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나와 팀매치에서 같은 팀원이 되었을 때부터였다.
제작진에선 핵심 파트를 내가 불러주었음 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 파트를 강민우에게 양보해주었다. 잘하는 사람이 해야지.
“그러고 보니 나도 처음에 서준이랑 준비 과정에서 티키타카가 되면서부터 관심을 받았던 것 같아.”
당장 김한결의 문자 투표 화력이 떡상한 순간도 나와의 케미가 카메라에 잡힌 뒤부터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선한 미소, 그리고 노래 부를 때 감동을 주는 목소리와 풍부한 표정까지.
저 형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기회만 제공했을 뿐이었다. 김한결, 강민우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에게도 똑같이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온 건 결국 본인들의 실력이었으니까.
“에이, 다 형들이 끝내주게 잘 불러서 그래요. 형들 그 말 못 들어봤어요? 어우차.”
“응? 그게 뭔데? 또 어우, 엄청 차갑다 뭐 이런 개그 하려고 하는 거 아니지? 저기 카메라 찍고 있어. 제발 그러지 마.”
아니, 이 형들이 자꾸 내 개그 센스를 의심하네. 그래도 집에서 하면 하준이, 하윤이가 빵빵 웃어주는 개그였는데.
물론 엄마, 아빠에게 해드리면 ‘하하··· 우리 서준이 개그가 많이 늘었네?’ 하면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어우차는 그런 아재 개그를 위해 꺼낸 말이 아니었다.
“어차피 우승은 차서준. 이런 말이 처음에 나왔었잖아요. 워낙에 문자 투표가 압도적으로 나와 버려서.”
“어어? 어?”
“그···.”
대놓고 꺼내는 내 말에 형들이 당황한다. 그럴 만도 한 게 다른 사람도 아닌 어우차의 당사자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겠지.
나도 카메라맨이 옆에서 찍고 있다는 걸 알면서 꺼낸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봐요. 어느 순간에 한결이 형이 문자 투표로 저를 앞섰잖아요. 처음엔 화제성과 이름값이 중요했지만. 최선을 다한 무대들을 시청자분들께 보여드리면서 다들 느끼신 거예요. 아, 저 가수는 정말 트로트를 사랑하고. 가창력이 정말 뛰어나구나. 이렇게요.”
‘트로트 왕자’ 방송 시작 처음만 하더라도 이대로 가다간 차서준이 그냥 우승을 차지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트로트 왕자’가 진행되는 내내 진짜 실력과 스타성을 가진 보석들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당장 실력을 논외로 하더라도. 모든 참가자들이 주어진 기회를 잡기 위해 절실하게 임했으니까.
그 결과가 눈앞의 두 사람이었다.
“형들 최근에 라이벌이라는 말이 살짝 나오고 있는 거 알아요?”
“우리가?”
“네. 서로 상반된 이미지에 형들 모두 노래를 끝내주게 잘 불러서 라이벌이라고 불린대요.”
아직 카메라 앞이 능숙하지 못했던 과거의 김한결, 강민우의 매력을 내가 자연스럽게 끌어내어 보여준 것.
지금도 은근슬쩍 두 사람에게 ‘라이벌’의 이미지를 언급해주었다. 아마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될 터였다.
덕분에 저번 무대의 문자 투표에서 강민우와 나는 접전을, 그리고 김한결은 나를 앞서 나가는 기염을 토해낼 수 있었다.
“자, 그러면 연습 시작할 거지?”
“네. 최고의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야죠.”
내 말에 맞다는 듯 미소를 짓는 김한결, 강민우였다.
*
“서준이 너 어떻게 형들한테 이럴 수가 있어!”
“네?”
만나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하는 김정범 때문에 나는 얼빠진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또 무슨 일 때문에 섭섭하단 표정을 하고 있는 거래.
“이해해. 요즘 트로트 왕자에서 탑6 형들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저 형이 질투하는 거야.”
아, 왜 김정범이 옆에서 툴툴거리는지 알 수 있었다. 어느새 ‘트로트 왕자’가 파이널 무대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
여기까지 올라오다 보니. 탑6에 함께 올라온 형들과 제법 친해지게 되었다.
농담처럼 연기에 연사모 형들이 있다면. 이제 트로트에는 탑6 형들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
“이거 봐!”
김정범이 핸드폰에 무언가를 띄워 보여준다.
[이제 차 가수의 진정한 형들은 탑6 형들 아닌가요?]
└ 맞아요. 트로트 왕자 지난주 방송을 보니까. 탑6 형들이 차 가수를 엄청 예뻐하더만요. 다들 자기 무대를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서도 우정들이 엄청 깊어진 것 같아요.
└ 촬영하는 동안에 서로들 엄청 친해졌다잖아요. 농담처럼 서로가 우승을 차지한다 하더라도 질투가 나지 않는다고 하던데.
└ 그럴 만도 한 게. 이제 탑6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정말 돈방석에 앉는 일만 남았잖아요. 지금 어머님들이 지갑 장전하고 기다리고 계심. ㅋㅋㅋㅋㅋ
└ 우리 집도 저녁만 되면 문자 투표 하라고 난리도 아님. ㄷㄷ 거기에 오디션 다 끝나고 콘서트 하게 되면 무조건 표 구해달라고 당부까지 하심. ㄷㄷㄷ
└ 농담이 아니라 인기가 정말 뜨거워요. 어머님들 사이에서 밀어주는 수준이 아이돌 팬들 저리가라임. 당장 음악 차트 트로트 왕자 음원들이 죄다 점령했잖슴. ㅋㅋㅋㅋㅋ
뭔가 했더니 결승 무대까지 오면서 형들과 친해진 것 때문에 그런 모양이었다.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는데.
“형. 그래서 형은 누구한테 문자 투표를 했는데요?”
“어? 어어? 맞다, 나 집에 전화해주기로 했는데.”
저거 봐. 움찔거리며 순식간에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도망치는 김정범이었다.
“으휴. 본전도 못 건질 거 왜 저런데. 그보다 서준이 넌 결승 무대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어?”
김우승이 그런 김정범을 보며 혀를 쯧쯧 차다 내게 묻는다. 결승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는 내가 걱정된 모양.
“괜찮아요. 팀 미션을 할 때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었던 거지. 차라리 혼자 올라가서 부르는 무대는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그렇지. 우리 서준이가 어디 가서 긴장하고 그럴 애가 아닌데. 팀 미션 당시에 그런 모습을 처음 봤다니까.”
“맞아.”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박우형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마침 잘됐다. 오늘 형들을 찾은 이유가 있었으니까.
“우형이 형. 그러고 보니 이제 공개까지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맞지.”
그랬다. 넷비티에서 공개를 앞두고 있는 ‘왕자의 난’ 시즌2. 드디어 예고편에 이어 본편들의 공개를 앞두고 있었다.
“이번 드라마 어떨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직접 연기한 배우가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이 터질지, 아니면 속이 터질지에 대해서 말이다.
“음. 느낌은 좋아. 대본도 좋고, 연출은 뭐 따로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고. 무엇보다 정범이와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제법 좋은 장면들이 많이 뽑혔거든. 이번에 서준이 너도 같이 보게 된다면 정말 좋을 텐데. 아쉽게도 시청 등급이 청소년 관람 불가로 판정받았더라고.”
“맞아요. 저도 이번에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요.”
시즌1에 이어 ‘왕자의 난’ 시즌2 역시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덕분에 이번에도 나는 넷티비에서 공개가 되더라도 형들과 같이 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냥 몰래 같이 볼까?”
김우승이 슬쩍 물었지만.
“아니에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건. 그만큼 어느 순간에 질타를 받을지 모른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 혹여나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애초에 안 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면 볼게요. 시즌1도 같이요.”
“잘 생각했다.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는 배우가 되었는데. 괜히 사소한 실수 하나에 발목을 잡히면 안 되지.”
그런 내 설명에 박우형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저쪽에서 눈치를 보던 김정범이 은근슬쩍 다시 다가왔다.
“아쉽네. 그보다 서준이 너 결승 무대까지 다 끝나면 이제 뭐 할 거야?”
“일단 힐링 가족도 촬영해야 하고. 또 미국에도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미국? 미국은 왜?”
“저를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정확히는 감독님들이었다. 크리스 앤더슨,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함께 모임을 하는 감독님 외에도. 나를 보고 싶다는 감독님들이 제법 생겼으니까.
천만 관객 공약으로 참가했던 ‘트로트 왕자’에서 결승 무대까지 올라와 버리는 바람에 제법 오랫동안 찍게 되었다.
그러니 결승 무대가 끝나고 나면 다녀와야지. 안 그래도 어제도 전화가 왔었다. 도대체 언제 오냐면서.
“설마 당장 차기작 같이 하자고 그래?”
“아뇨.”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경우에는 미리 써두었던 작품에 내가 맞았기에 과감하게 추진했던 거고.
다른 감독들에겐 지금 어린 나이의 차서준보단. 성인이 된 이후의 차서준이 탐이 나는 셈이다.
시간이란 쏜살같이 흘러가는 법이니. 미리미리 성인이 된 이후의 스케줄을 예약하겠다는 뜻.
“그래서 감독님들을 만나러 미국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성인이 된 배우 차서준의 작품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