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영화 ‘라이프’의 천만 관객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 참가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트로트 왕자’였다.
“직접 출연해보니까 어때?”
“엄청 재밌어요. 서바이벌 오디션 무대라는 게 생각보다 가슴을 엄청 두근두근하게 하더라고요.”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과거 김도경 시절 오디션 프로그램을 재밌게 본 적은 있어도. 직접 출연을 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음악 프로그램이나, 팬미팅 같은 무대 위에서 부를 때와는 또 다른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심지어 과거 출연했었던 ‘가면 왕좌’의 경연 무대와도 느낌이 달랐다.
“참가자들이 발표가 나기 전에 왜 그런 표정이 되는지 몰랐는데. 막상 무대 위에 서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안 그래도 삼촌도 그 짤방들 봤다. 서준이 네가 긴장한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다면서 다들 신기해하던데.”
차라리 혼자 무대를 완성하고. 그 결과를 혼자서만 받아들이는 거였다면 덤덤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가면 왕좌’에서 경험도 했었으니까.
만약 나보다 상대방이 더 뛰어난 무대를 보여줬다면. 아쉽네 하는 감정과 함께 내려오면 된다.
하지만.
‘트로트 왕자’의 장우철 PD는 확실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과거 그가 최초 도입했던 팀 미션이라는 것이 사람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나 혼자 떨어지는 것이 아닌 팀 전체의 탈락. 정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도전한 팀원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덤덤해질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팀원 형들이 간절함에 손까지 떠는데. 그걸 보는 저까지 너무 떨리더라고요.”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개되기 전의 그 두근거림을 매 무대마다 느낄 수가 있던 셈이다.
“어때? 삼촌 말처럼 출연하길 잘했지?”
“네. 덕분에 정말 색다른 경험들을 해보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특히 어머님 팬들이 엄청 좋아하시고 계시잖아요.”
‘재벌가 금동이’ 이후 배우 차서준의 팬이 된 어머님들이 많았다. 만약 그분들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영화 ‘라이프’의 천만 관객도 불가능했을 터.
그런 어머님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트로트 오디션에 나왔다고 말하니. 그날 방송 이후 한동안 팬클럽이 아주 뜨거웠었다.
“그렇지. 지금 트로트 왕자가 흥행을 넘어 돌풍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
서도현의 말처럼 ‘트로트 왕자’가 열기가 식어 한물갔다고 평가받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말도 안 되는 기록들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이대로 상위 무대가 방송되는 회차까지 간다면. 말도 안 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삼촌도 꼬박꼬박 방송을 다 챙겨봤는데. 같은 팀이 된 팀원들이랑 잘 지내던데. 카메라 꺼지고도 똑같았다면서?”
“네. 분명 파트에 욕심이 날 텐데도. 제가 부르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면서 양보하려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면서요.”
거기에 한 가지 더.
이번 ‘트로트 왕자’에 출연하면서 제법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연사모 형들을 알게 되었다면. 이번 오디션 참가를 통해 트로트 가수 형들을 알게 되었달까.
“다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엄청 간절하더라고요. 제가 출연해줘서 정말 고맙대요.”
몇 푼 안 되는 행사비를 받으면서 전국 팔도를 뛰어다녔다던 김한결. 그는 같은 팀이 된 날 보자마자 손을 꼭 잡고 감사의 말부터 전했다.
출연을 결심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또 연습하는 내내 최선을 다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이다.
수없이 쏟아진 오디션 프로그램. 싸늘해진 대중들의 반응. 그 결과는 고생 끝 우승자조차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게 만들었으니까.
“그렇지. 서준이 네가 출연한 덕분에 1화 시청률을 두 자리 수부터 시작을 할 수 있었고. 거기에 이제는 사람들에게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 되었으니.”
“맞아요. 무엇보다 엄마, 아빠가 너무 즐겁게 보고 있으시데요. 매주 문자 투표도 잊지 않고 꼬박꼬박 하고 계신대요.”
“삼촌도 하고 있다. 아마 도윤이도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동원해서 하고 있을걸.”
응? 서도현도? 안 그래도 사총사 친구들, 연사모 형들에게서도 인증샷들이 매주 날아오곤 했었다.
차서준의 팀이 매치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다면서.
“해외에서도 문자 투표할 방법 없냐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대요.”
*
영화 ‘라이프’를 통해 배우 차서준을 알게 된 에이미. 그녀는 어린 배우의 연기에 푹 빠져든 뒤. 이것저것 차서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두 섭렵하고 있었다.
└ 대체 준의 그 천만 관객 공약이라는 건 언제 하는 거야? 지금까지 올라온 노래 영상들은 다 봤다고. 팝송도 좀 불러주면 좋을 텐데.
‘라이프’에서 보여준 차서준의 제이스 연기가 얼마나 경악스러웠던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찾아본 차서준의 노래 영상은 에이미를 빠져들게 만들어버렸다.
미국에서도 팬미팅을 하게 된다면 당장 찾아갈 텐데. 아쉽게도 차서준의 팬미팅은 한국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런데.
└ 헤이, 브로. 지금 라이프의 준에 대한 소식 기다리고 있었지? 지금 사우스 코리아에서 그 공약에 관한 소식이 나왔다고.
에이미는 누군가가 올린 채팅에 재빨리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왓? 트롯? 이건 대체 무슨 장르의 음악이야?”
에이미가 배우 차서준의 영상들을 좋아한 이유도 평상시에 노래 듣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트로트라는 장르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건 비단 에이미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닌 모양.
└ 대체 저 트롯이라는 게 뭔데? 무슨 한국의 전통 음악 그런 건가?
└ 궁중 음악인가 뭔가 하는 그거 아니야? 라이프 전에 찍었던 왕자의 난의 배경 음악이 정말 끝내줬었다고.
└ 그 궁중 음악에 사람이 노래도 불러? 그런데 준이 나온다는 프로그램이 오디션이라는데. 그러면 다른 거 아닐까?
└ 헤이, 멍청한 친구들. 사실 한국의 트로트라는 장르가 해외엔 잘 안 알려져 있어서 모를 거야. 그래서 내가 너희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려고 해.
안 그래도 다들 기사에 뜬 ‘트로트’라는 장르가 무엇인지에 대해 격렬한 의문을 떠올리고 있을 때.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라며 누군가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예선전에서 배우 차서준이 부른 영상과 함께.
└ 뭐지? 뭔가 구수하면서도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이. 나도 모르게 흥이 나. 대체 이 묘한 음악은 뭐냐고!
└ 처음 들어보는 음악 장르이긴 한데. 분명 가사를 번역해 보니 이별에 관한 건데. 왜 이리 신나는 건데. 가사는 슬픈데 음악은 너무나도 신난다고!
└ 저 꺾기라는 것이 묘하게 재밌네. 운전할 때 들으면 제법 흥겨울 것 같은데? 자주는 아니더라도 졸릴 때 들어야겠어.
└ 그런데 왜 준이 참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왜 낮에 하는 거지? 사람들이 퇴근하고 난 저녁 이후에 하면 좋을 텐데.
└ 멍청한 친구 같으니라고. 사우스 코리아와의 시차를 생각하라고. 여기는 낮이지만 저기는 밤에 하는 거야.
└ 나도 준에게 문자 투표를 하고 싶은데. 혹시 방법 아는 친구 없어? 준의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
*
장우철 PD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질 못했다.
“트로트 오디션? 그게 돈이 된다고 생각해? 트로트 시청자 세대가 문자로 참가자들 응원을 하겠냐고. 해도 그깟 몇 명이나 하겠어. 당장 죽 쑤고 있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 안 보여?”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방송 시작 전만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트로트가 돈이 되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자 투표들을 압살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돈이.
이 엄청난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장우철 PD가 기획한 포맷도 좋았지만. 배우 차서준이 초반에 끌어온 이목이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우철아. 이건 선물. 목마르지? 마시고 해.”
“아, 선배님. 커피 감사합니다.”
“요즘 주변에서 아주 난리다 난리. 우리 부모님도 사인 좀 받아다 달라고 얼마나 말씀을 하시는지 몰라.”
“다 차 배우 효과 덕분인 것 같아요.”
차 배우 효과라는 말을 듣기만 했었지. 직접 경험해보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처음 런칭하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그것도 밤 10시에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방 시청률이 14.3%가 나왔다.
그 앞자리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기까지는 고작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제는 진짜 오디션 프로그램 최초 3이라는 숫자를 달성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초대박이 난 셈.
유료임에도 쏟아지는 문자 투표는 언급하면 입만 아플 정도였다.
“연출의 감으로 봤을 때. 차서준이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아?”
“글쎄요. 문자 투표 화력이야 말도 안 될 정도니 걱정할 필요도 없고. 노래 실력도 워낙에 출중해서요.”
“잘하면 진짜 우승까지 가지 않을까?”
만약에 배우 차서준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것 나름대로 프로그램에 비상이 걸리게 될 터였다.
만약 차서준의 영화 ‘라이프’가 스크린에서 내려간 지 얼마 안 된 터라 시간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단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이번에 ‘트로트 왕자’에 참가한 이유도 천만 관객 공약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달성한 덕분이었으니까.
“나도 라이프 보고 왔는데. 와, 미안해서라도 트로트 가수 하면 어떠냐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겠더라.”
“저도 봤어요. 왜 할리우드에서 차 배우, 차 배우 하는지를 알겠더라고요.”
“그지? 만약에 진짜 차서준이 우승한다 하더라도, 기획하고 있는 콘서트를 못 할 수도 있겠어. 그냥 해외 각종 시상식에 다 불려가겠더만.”
차서준의 영화 ‘라이프’를 본 이들의 감상이 다 박중욱 CP의 반응과 비슷했다. 심지어 골든 글로브니, 오스카니 하는 말들이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고 하니.
하지만.
“거기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지금 다크호스가 제대로 주목받고 있으니까요.”
“누구? 아, 김한결?”
“네. 처음에는 같은 차서준과 케미가 좋아 주목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압도적인 실력에 다들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수많은 오디션 무대의 연출을 담당했던 장우철 PD의 눈에는 보였다. 앞으로 슈퍼스타가 될 재능과 실력을 가진 가수가.
“그냥 최종 탑6 안에만 들어가도 방송 마지막까지 출연이니. 어떻게 보면 우리 트로트 왕자가 최대 수혜자 아니겠어요?”
장우철 PD의 말에 박중욱 CP가 뭘 모르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지. 서로에게 윈윈인 거지. 이번에 차서준이 트로트 왕자에 출연하면서. 탑급 배우가 아니라 이제 국민 연예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버렸잖아.”
“아, 맞다. 그렇네요. 이제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고 불린다면서요?”
그랬다.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는 최근 천만 관객을 달성한 ‘라이프’만 보더라도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주말 예능 ‘힐링 가족’으로 안방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트로트 왕자’를 통해 어머님, 아버님 세대의 아이돌이 되어버린 차서준이었다.
“우철이 너 그 썰 들었어?”
“무슨 썰이요?”
“그 있잖아. 차서준이 엄마, 동생들 손잡고 시장 갔다가 난리 난 썰.”
*
“서준아. 이게 무슨 일이래니.”
엄마가 오랜만에 정말 놀란 얼굴로 장바구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러게요?”
당황한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과거 ‘재벌가 금동이’를 통해 어머님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었던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참가했던 ‘트로트 왕자’의 파급력은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돈? 안 받아! 우리 서준이가 트로트 왕자가 되어서 상금 받으면. 그때 와서 줘.”
“이건 서비스. 뭐? 산 것보다 이게 두 배는 더 많다고? 이게 시장 인심이여. 얼른 가져가.”
“내가 문자 투표도 이렇게 꼬박꼬박하고 있어. 이거 가지고 가서 서준 엄마가 힘낼 수 있게 차려줘. 알았지?”
‘재벌가 금동이’ 방송 당시 덤을 값을 주고 산만큼이나 받았다면. 이제는 공짜로 주시거나, 산 것보다 2배 이상을 서비스라며 주고 있는 상황.
“우리 서준이 어머님들에게 엄청 사랑받네?”
그런 시장 상인분들의 뜨거운 사랑을 본 엄마가 활짝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