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82화 (182/220)

182화

배우 차서준의 영화 ‘라이프’가 개봉하기 전. 언론 시사회에서 기자들이 질문 하나를 내게 던졌었다.

바로 관객수 공약에 관한 것.

다른 감독도 아닌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였다. 기자들 역시 ‘라이프’에 관한 미국 소문을 들었기에 백만, 이백만 수준의 공약을 묻지 않았다.

“차 배우. 혹시 만약에 이번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는다면. 많은 사랑을 보내준 관객들을 위해 생각해둔 공약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배우 차서준의 다채로운 공약들이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터라. 답변을 기다리는 기자들의 눈빛이 빛났다.

천만 관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를 언급한 것도. 자잘한 공약보다 큼직한 무언가를 말해달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제가 얼마 전에 팬미팅을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제가 준비한 노래들을 엄청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만약에, 정말 만약 라이프가 천만 관객을 넘는 사랑을 받게 된다면 팬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배우 차서준의 영화 ‘라이프’ 관객수 공약이 결정되었다.

문제는.

정말로 영화 ‘라이프’가 천만 관객을 돌파해버렸다는 점.

조회수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일제히 공약 관련 기사를 써 올린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 배우 차서준 영화 ‘라이프’ 공약 선언. “사랑을 보내주신 팬들께 노래로 찾아뵙겠습니다.”

- 결국 천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 ‘라이프’. 배우 차서준의 공약 이행을 기다리는 팬들.

- 다시 한번 팬미팅? 배우 차서준의 천만 관객 공약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 배우 차서준 영화 ‘라이프’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차 배우의 흥행 기록을 이어가.

서도현이 방금 내게 재밌는 제안이라고 한 것이 바로 저 천만 관객 공약과 관련이 있었다.

“삼촌. 이거··· 트로트 오디션이네요?”

서도현이 보여준 것이 바로 트로트 오디션이었으니까.

“그래. 일단 서준이 네가 관객수 공약으로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고, 라이프가 결국 천만 관객을 돌파했으니까. 이제 슬슬 어떤 방법으로 공약을 지킬지 발표를 해야지.”

안 그래도 오늘 그와 관련해서 서도현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던 참이었다.

“맞아요. 저도 공약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차라리 깜짝 게릴라 버스킹은 어떨까 생각을 해서. 삼촌에게 오늘 말하려고 했어요.”

내가 떠올렸던 아이디어는 바로 게릴라 버스킹이었다. 막무가내로 진행할 수는 없을 테고. 경호 업체와 안전을 관리할 사람들까지 섭외해서 진행해야 할 테니.

다른 연예인도 아닌. 지금 관심도가 최고조에 다다른 배우 차서준의 버스킹이었다. 아마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주변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 터였다.

만약 공약으로 버스킹을 하게 된다면 안전사고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드는 비용 역시 만만치가 않을 테고.

“버스킹? 그것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삼촌 선에서 이 오디션 제안을 컷하지 않고, 서준이 네게 이걸 말한 이유가 있어.”

“이유가요? 어떤 건데요?”

궁금했다. 방금 서도현이 했던 말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내게 트로트 오디션을 보여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지금 서준이 네가 건 천만 관객 공약에 대해. 국내를 넘어서 해외에서도 제법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어요. 데이븐이 전화로 말해주더라고요. 해외 팬들도 제가 공약을 어떻게 보여줄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렇지. 특히나 공약으로 인하여. 영화 목소리와 과거 영상들을 찾아본 해외 팬들에게 노래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올라간 상태니.”

내 대답에 서도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영화 ‘목소리’와 과거 내가 부른 노래 영상들을 찾아보며 감탄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올라간 기대치만큼 공약으로 어떤 무대를 보여줄지에 대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

“삼촌이 생각하기엔. 넷티비의 왕자의 난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적인 것도 충분히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줬다고 판단되거든.”

역시 서도현이다. 모두가 넷티비 ‘왕자의 난’ 대박에 감탄만 하고 있을 때. 눈앞의 서도현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에서 먹힌다는 점에 주목한 것.

지금까지 해외에서 통하려면. 그 나라에 진출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왕자의 난’이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실제로 김도경 시절 한국 각종 문화가 세계에서 제대로 통한 사례들이 많았었다. 영화, 드라마, 아이돌 등등 말이다.

“해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지금. 서준이 네가 트로트 오디션에 출연한다면. 한국적인 음악이 해외 무대에 선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추천했다.”

“천만 관객이라는 사랑을 보내준 팬들에게 보답과, 한국적인 음악 홍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거네요?”

“그렇지.”

나는 서도현이 건네준 프로그램 포맷을 잠시 살펴보았다. 비슷하다. 김도경 시절 초대박이 났었던 그 오디션 프로그램과 말이다.

천천히 다 읽은 결과 알 수 있었다.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이건 확실히 먹힌다.

김도경 시절과 비교해보자면 몇 년은 조금 이르게 진행되는 셈이지만.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그 오디션 프로그램이 엎어지니, 마니를 하고 있는 상태이긴 한데.”

“왜 그런지는 알 것 같아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죠? 시청률도 많이 저조했고요.”

“그렇지. 아무래도 그런 상황 속에서 굳이 거액의 상금까지 걸고서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하지만 말이다.”

배우 차서준이 참여한다는 소식으로 이목만 집중시킬 수 있다면. 확실하게 대박 날 터였다.

지금까지와 다른 시청자들에게 신선함과 충격을 선사할 포맷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서준이 네가 출연한다고 하면. 초반 화제성 확실하게 잡을 수 있을 테고. 또 삼촌이 생각하기엔 젊은 사람들로 트로트 오디션을 연다는 게 꽤나 먹힐 것 같다고 여겨지거든.”

역시 서도현이다. 연기가 아닌 다른 장르인 노래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된다는 성공의 냄새는 확실하게 맡는다.

“그런데 삼촌.”

“응?”

“만약에 제가 예선에 출연했다가 계속해서 올라가면 어떻게 해요?”

내 물음에 서도현이 웃음을 터트린다. 가뜩이나 화제성, 인지도, 가창력. 이 모든 것들이 일반인 참가자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나였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제안했다는 건. 서도현 역시 내가 충분히 예선 정도는 통과할 거라고 예상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더 재밌는 상황이 나오는 거지. 천만 관객 공약을 확실하게 달성하는 거기도 하고. 또 계속 출연한다면 한국적인 음악을 해외에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

마치 서도현은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성공한 이후까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삼촌. 그런데 이거 프로그램 제목이 뭐예요?”

내 물음에 서도현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아, 제일 중요한 걸 말해주지 않았구나. ‘트로트 왕자’ 지금은 가제이긴 한데 아마 그걸로 갈 것 같은데.”

*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예산 때문에 인상을 한껏 찌푸리던 예능국장이었다. 구박도 서슴지 않았고.

그런데.

“장우철이! 내가 역시 믿고 있었다니까. 하하하.”“가, 감사합니다. 제가 진짜 발로 뛰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국장님.”

“그러게. 내가 장우철이 말고 누구를 믿겠어. 위에서도 팍팍 밀어주라고 하시니까. 더 이상 다른 건 신경쓰지 말고 제작에만 신경 써. 알았지?”

하루아침 사이에 상황이 뒤바뀌어버렸다. 가뜩이나 범람한 오디션 프로그램들 때문에 시청자들이 피로를 호소하는 상황.

과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각종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어느새 시들시들해진 시청률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온갖 구박을 견디며 추진하고 있던 ‘트로트 왕자’였는데. 미운 오리 새끼가 하룻밤 사이에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되어버렸다.

장우철 PD가 국장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오자. 기다리고 있던 박중욱 CP가 후다닥 그에게 다가왔다.

“우철아. 대체 어떻게 섭외한 거냐? 지금 네가 일으킨 기적 때문에 다들 난리도 아니야.”

“그, 그러게요?”

정작 실낱같은 희망으로 못 먹는 감 찔러나 봤던 장우철 PD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했다.

대체 왜?

배우 차서준의 출연하겠단 답변을 듣는 순간. 멍청하게도 섭외 제안을 했던 장우철 PD가 떠올렸던 멍청한 생각이었다.

당장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찍었던 영화 ‘라이프’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거기에 할리우드의 많은 감독들이 같이 작품을 하자며 러브콜까지 쏟아내고 있는 상황.

아무리 천만 관객 공약을 걸었다지만. ‘트로트 왕자’에 출연할 이유가 없단 말이다.

그런데.

구름엑터스 서도현 대표에게서 직접 연락이 왔다. 차서준이 ‘트로트 왕자’에 출연하겠다고. 대신 일절 특혜 없이 다른 참가자들과 동등하게 대접해달라고.

“선배님.”

“응?”

“제가 이거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알다마다. 옆에서 같이 들었잖아. 심지어 저번에 국장실에서 제대로 깨졌었지. 트로트 그게 돈이 됩니까? 지방 농수산물 축제에 내보내게? 이거였잖아.”

가뜩이나 쏟아진 각종 오디션들에 피로를 호소한 시청자들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르신들이나 좋아하는 트로트가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 우철 후배님이 준비한 포맷이 끝내주긴 했지. 기존 나이 든 기성 트로트 가수가 아니라. 젊은 신인들. 그리고 트로트 가수를 꿈꾸는 젊은 유망주들로 해보자니.”

“그래서 더 깨졌잖아요. 트로트 주 시청자들이 좋아할 가수들을 다 제쳐놓고. 이름도, 얼굴도 거의 모르는 애들 데리고 소꿉장난할 거냐고.”

다 과거형이었다. 화제성은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현재 가장 핫한 연예인인 배우 차서준이 출연을 결정해버렸다.

차서준의 가창력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이전 활동들을 통해 보여주지 않았던가. 특히나 팬미팅에서 부르는 노래들은 이미 영상까지 떠돌고 있는 상황.

“이제 중요한 건 하나만 남았네.”

“차서준까지 섭외했으니. 다른 지원자들에게 문제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겠네요.”

배우 차서준이 출연하는 순간.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젊은 지원자들로 오디션을 만들려면. 확실한 과거 검증은 필수였다.

*

일단 서도현에게 ‘트로트 왕자’ 출연을 결정한 뒤. 집에 돌아와 말하니 엄마, 아빠 역시 반겼다.

저번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가 누구는 꼭 올라가야 된다며 문자 투표를 보내던 엄마였으니까.

“어머? 그러면 우리 서준이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거니?”

“네! 엄마 생각은 어때요?”

“엄마는 우리 서준이가 노래를 부를 때가 제일 좋은걸. 아마 이 소식이 알려지면 팬들도 엄청 좋아하실 거야.”

연기를 하는 배우 차서준도 좋아했지만. 특히나 노래를 부르는 나를 좋아하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위해 가끔씩 집에서 미니 콘서트를 열기도 했었고.

‘힐링 가족’과 광고 촬영을 제외하곤 바쁜 스케줄이 없는 터라. 때마침 오디션 참가 소식에 기뻐하신다.

“그런데 트로트라고?”

“네. 색다른 음악이다 보니 신선함도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제 공약으로 나가는 거잖아요. 해외에서도 한국적인 음악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어요.”

“우리 서준이가 트로트 오디션에 나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또 기사들이 엄청 나오겠네.”

안 그래도 차 배우 효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아마 이번 트로트 오디션에 출연 결심한 이유가 알려지는 순간.

방금 아빠가 했던 말처럼 기사들이 쏟아질 터였다. 공약 이행 겸 해외에 한국적인 음악을 알리고 싶다는 정말 좋은 취지가 함께였으니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준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형아! 그러면 또 TV 나와서 노래 부르는 거야?”

“그럼. 하준이는 형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면 어떨 거 같아?”

“너무 좋아! 나도 형한테 소중한 한 표 투표할 거야.”

나중에 문자 투표가 필요할 때에.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말하는 하준이 덕분에 잠시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 언제부터 촬영 시작하니?”

“다음 주부터 시작할 것 같아요.”

[우리 차 배우 천만 관객 공약으로 노래 부르기로 했잖아. 그런데 오디션 프로에 나온다는 소문이 있음.]

심지어 일반 노래 오디션 프로가 아니라. 노래 장르가 트로트라던데. 뭐지?

└ 장우철 피디가 기획한 거라는데. 오디션 붐을 일으켰던 피디고. 팬미팅 다녀온 사람이라면 차 배우 노래 실력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고. 정말 기대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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