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주말 아침부터 집에 활기가 넘쳤다. 이 옷 저 옷 입고 나타나 ‘이고 어때?’ 하고 묻는 하윤이 때문에.
“오늘 하윤이는 뭘 입어도 귀여운 것 같은데?”
“징짜?”
“정말이지. 오빠 눈에는 하윤이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걸.”
내 칭찬에 하윤이가 방긋 웃는다. 과거 김우승 결혼식 때에는 하윤이가 울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어느새 훌쩍 자라 여러 옷들을 입어가며 이건 어떠냐고 묻고 있는 하윤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카메라에 담았다.
“형아! 나는?”
“하준이는 오늘 턱시도 입고 가려고?”
“응! 어때?”
“멋진걸. 그거 입고 형이랑 가면 되겠다.”
“좋아!”
거기에 하준이도 애들용 턱시도를 입고 나타나 나에게 어떠냐고 묻는다.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너무 귀여워서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할 것 같은데.
아침부터 번갈아 가며 나를 붙자고 떠드는 동생들을 보던 엄마가 나섰다.
“하준이, 하윤이. 형이 오늘 축가 불러야 해서 준비를 해야 되잖니. 방해하지 말고 엄마에게 오렴.”
“네!”
괜찮은데. 사실 이번에는 축가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설아가 축가로 불러줬으면 하는 노래가 있다고 예전부터 말했던 곡이 있었으니까.
“서준이는 결혼식에 입고 갈 옷 다 정했니?”
“네! 조금 있다가 나가기 전에 입으려고요.”
그랬다. 어느새 연사모의 두 번째 주자가 된 김정범의 결혼식 날이 밝은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과도 친하게 지내온 김정범이다. 그런 김정범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부터 우리집이 시끌시끌했던 것이고.
“형아. 그런데 오늘 선생님도 결혼식에 온대.”
“수아 선생님이 하준이에게도 말했어?”
“응! 오늘 혼자 있을 것 같다고. 나한테 같이 있어 줄 수 있냐고 물어봤어.”
박우형이 연애를 시작했단 폭탄선언을 하고 나서. 커플 모임으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박우형의 연인이 된 김수아였기에. 당연히 김정범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셈이다.
안 그래도 박우형에게 부탁을 받은 참이었다. 오늘 결혼식을 하는 동안에 김수아 선생님과 함께 있어 줄 수 있냐고 말이다.
이제야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두 사람이다. 아직까지 주변에 연애를 비밀로 하고 있는 상황.
그런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박우형이 여성과 손을 잡고 나타난다면 곧바로 기사가 뜰 터였다. 오늘 결혼식장 앞에 기자들이 쫙 진을 치고 있을 테니.
나와 하준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엄마가 의아하다는 듯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하준이 유치원 선생님이 오늘 결혼식에 온다고 하니.
“응? 하준아, 유치원 선생님이 오늘 정범 삼촌 결혼식에는 왜 오시니?”
이런. 엄마에게 설명해두는 걸 깜박했다. 최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고 만 셈.
박우형의 부탁도 있었고. 김수아 선생님도 우리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 테니 설명해드려야지.
“그러니까요 엄마. 놀라지 말고 들으셔야 돼요.”
“응? 무슨 깜짝 이야기라도 있니?”
“네. 우형이 형 아시죠. 이게 저도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엄마, 아빠에게 박우형과 김수아 선생님의 만남 사실을 말씀드리자.
“어머? 정말이니?”
화들짝 놀라는 엄마와.
“우형 아우가 연애라니.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데. 정말로?”
몇 년 동안 제법 친분이 깊어져 박우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빠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나 되묻는다.
하긴. 나를 포함해서 김정범, 김우승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부터 나왔는데. 엄마, 아빠의 저런 표정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내내 옆에서 어깨를 으쓱으쓱하고 있는 하준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를 마구 칭찬해달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어찌 안 하겠어.
“하준이가 우형이 형이랑 김수아 선생님을 이어줬어요.”
“응? 우리 하준이가?”
내가 소개를 해줬다고 하면 오히려 납득하셨을 테지만. 갑자기 하준이의 이름이 나오자 엄마, 아빠가 고개를 갸웃하신다.
그리고.
자기 이름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하준이었다.
“응! 저번에 선생님이랑 있다가 우형 삼촌이랑 영상통화 했었는데. 그다음에 우연히 만나게 되어서 사귀게 되었대요.”
“어머? 그러면 우리 하준이가 영상 통화로 선생님을 우형 삼촌에게 소개시켜준 거네?”
“응! 저번에 서연이랑 놀고 있는데 몰래 데리러 온 거 들켜서 나한테 만난다고 말해줬어요. 서연이가 나한테 엄청 잘한 거라고 칭찬도 많이 했어요.”
내 설명을 듣던 하준이가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한다.
잠깐만. 저 말은 유치원 끝나고 박우형이 김수아 선생님을 데리러 왔다는 건데.
대체 그 시간까지 왜 서연이랑 단둘이 있었니 동생아.
*
김수아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세상에나. 내가 대체 어딜 간다고 한 거야.”
일종의 사고였다. 과거 샛별반에서 선생님을 잘 따르던. 이제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배우 차서준의 동생 하준이 덕분에 발생한 사고.
“선생님! 여기에 인사 좀 해주세요.”
얼마 전 갑자기 영상 통화 도중 자신을 부르는 하준이의 외침에 어머님인 줄 알고 인사부터 했던 김수아였다.
그 화면에 떠오른 얼굴이 배우 박우형임을 알고서 얼마나 놀랐던가. 하준이의 재촉 때문에 같이 이런저런 대화를 한 다음 날.
우연인지, 운명인지 홀로 찾았던 식당 옆자리에서 다시 박우형을 만난 김수아였다.
소문처럼 정말 과묵한 사람이긴 했지만. 정말 알면 알수록 진국인 사람이었다.
“선생님! 여기에요!”
정작 결혼식장에 도착했지만. 혼자 온 탓에 아는 이 하나 없어 방황하고 있던 김수아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엔 하준이가 형인 차서준의 손을 잡고서 자신을 향해 방방 뛰고 있었다.
“하준이 왔구나. 서준이도 오늘 멋진데?”
“고맙습니다. 우형이 형은요?”
“같이 오려고 했었는데. 밖에 기자들이 너무 많다고 해서 따로 오기로 했어. 조금 있다가 식 시작하고 나면 같은 테이블에 앉으려고.”
안 그래도 심장이 얼마나 두근두근하던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식장 밖에 쫙 깔린 기자들을 보면서 심장이 콩딱콩딱 뛰었던 김수아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저희 가족이랑 같이 다녀요.”
화끈. 차서준의 어머님이 하윤이의 손을 잡고 나타나 저 말을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만 김수아였다.
잠시 후.
차서준의 축가와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을 보면서.
‘부럽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럽다는 생각을 하고 만 김수아였다. 순간 시선을 박우형에게 향했다가 눈을 마주쳐 화들짝 놀라며 피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비밀을 아는 김우승 부부에게 들켜 잠시 고개를 숙이기도 했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충분히 견딜 만한 일들이었다.
투욱.
자신의 손에 잘못 던져진 부케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어어? 이, 이게 왜 여기에.”
식장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손에 들린 부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김수아였다.
*
“푸하하! 서준이 너 그때 우형이 형 표정 봤어?”
김정범의 결혼식에서 꽤나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겼다. 원래 이설아의 친구가 받기로 한 부케를 잘못 던졌는데. 그만 김수아의 품에 떨어져 버린 것.
비밀을 알고 있는 김우승 부부, 우리 가족, 김정범 커플의 표정이 순간 얼마나 움찔했던지.
심지어 얼음처럼 굳어버린 박우형의 표정이 정말 일품이었다.
당연히 비밀을 모르는 하객들의 입장에선 순간 생겼던 재밌는 일화였겠지만. 아마 나중에 두 사람의 열애 사실이 알려지고 나면. 그날 일이 재조명 받을지도 몰랐다.
“우형이 형. 알지? 부케 받고 6개월이래.”
“서준아. 김수아 선생님 어때?”
“엄청 좋은 분이에요. 제가 샛별반에 있을 때 아역 배우로 데뷔를 했는데 잘 배려해주셨고요. 무엇보다.”
잠시 내가 뜸을 들이자. 형들의 시선이 내 입을 향해 집중된다.
“수아 선생님이 아이들을 엄청 좋아해요. 애들이 난리를 피워도 짜증 한 번 안 부려서. 저는 처음 만났을 때 천사인 줄 알았다니까요.”
반쯤 농담, 반쯤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 정말로 유치원 생활하는 내내 느꼈거든. 김수아는 애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좋은 선생님이라고.
혹시나 박우형과 잘 되어 결혼하게 된다면. 둘 사이에 태어날 2세에게 정말 좋은 엄마가 될 터였다.
“우형이 형. 왜 말이 없어.”
“맞아. 목이 타? 자꾸 물만 마시고 있네.”
정말 이상하다. 내가 아는 박우형이라면 ‘그만해.’ 하고서 단호하게 제지했을 텐데.
“너희들 결혼 생활은 어때?”
오히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김우승과 김정범에게 결혼 생활에 대해 묻는 박우형이었다.
그런 박우형의 모습에 씨익 짓궂은 미소를 짓는 두 형들이었고.
“우형이 형. 자, 이제 막 신혼의 달콤함을 경험하고 있는 내가 말해줄게. 가끔 집에 들어갈 때면 좀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잖아. 그렇지?”
“어.”
“그런데 이제 집에 들어가면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니까. 일하다가도 자꾸 집에 들어가고 싶어지는 거야. 형도 가끔 집은 넓은데 좀 공허하다고 했잖아. 그게 싹 사라지는 거지. 거기에 또 얼마나 행복한지 우승이한테 물어보면 안다니까. 진짜 형도 하루라도 빨리···.”
다행이었다. 우형이 형이 평생 혼자 지내는 거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축가를 부를 날이 빨리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가 개봉하고 25일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천만 관객이라는 대업적을 달성하고 말았다. 당연히 그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기사들이 쏟아졌다.
-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 영화 ‘라이프’ 천만 관객 돌파!
- 또다시 입증된 배우 차서준의 티켓 파워. ‘라이프’ 천만 관객 넘어서.
- 흥행 그 이상의 성적. 해외 유명 감독들이 배우 차서준을 주목하는 이유는?
- 국, 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라이프’. 개봉 4주 차 만에 천만 관객 달성.
- 과연 차서준 주연의 영화 ‘라이프’의 최종 월드 박스오피스는?
└ 미쳤다!!! 결국 우리 차 배우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구나. ㄷㄷㄷ 지금도 예매율 순위 괜찮던데 이러면 최종 스코어도 지리겠네!!!
└ 사실 개봉 1주 차 성적부터 천만 관객은 예약이나 다름없다는 말이 많았음. 지금 중요한 건 몇만 관객이냐가 아니라. 이 영화로 차 배우가 얼마나 주목받는지 아니겠음?
└ 맞지.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 모임에서도 차 배우랑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감독들이 있었다잖아. 그뿐만이 아님. 할리우드에서 차 배우 엄청 주목하는 중.
└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검증된 작품성, 그리고 차 배우의 흥행성까지 합쳐지니. 이거 이번 영화로 또다시 차 배우의 해를 만들겠네요. ㄷㄷ
└ 내년 각종 영화제에서 상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올해는 드라마로, 내년에는 영화로. 그냥 쇼 앤 프루브를 해버리네요. ㅋㅋㅋ
사람들의 관심이 향한 곳은 몇만 관객이냐가 아니었다.
이미 첫날 스코어 45만을 돌파하고. 또 관람객들의 호평이 쏟아졌을 때부터 천만 관객은 시간문제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었으니까.
- 과연 배우 차서준은 드라마 ‘왕자의 난’에 이어, 영화 ‘라이프’로 각종 시상식을 휩쓸 수 있을까?
바로 배우 차서준이 영화 ‘라이프’로 ‘왕자의 난’ 때처럼 각종 시상식에서 수상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쏠린 것.
가뜩이나 오스카의 남자라고 불리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배우 차서준의 만남이었으니까.
이런 반응은 국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먼저 터져 나오고 있었다.
└ 과연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이번에도 오스카의 남자가 될 수 있을까?
└ 왓? 설마 너 영화를 안 본 거야? 아니면 영화 보는 내내 자기라도 한 거야? 대체 라이프를 보고서도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할 수가 있지?
└ 워워. 진정하라고 친구. 나도 저 질문에 장님이야? 하고 되묻고 싶지만 간신히 참고 있다고. 퍽! 눈은 장식이냐고!
└ 흥행은 이미 관객수 및 박스오피스가 증명하고 있으니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테고. 이제 남은 건 라이프가 얼마나 많은 시상식을 점령하느냐지.
└ 내가 봤을 땐. 돌아오는 오스카에서 준이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가 보여준 중후반부 연기력이 그냥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거든.
이처럼 미국에서도 배우 차서준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내고 있을 때.
“서준아. 이건 어때? 삼촌은 꽤나 재밌다고 생각하는데.”
서도현이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