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그러니까.
정확히 차하준 연애 조작단 이야기를 들은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할 말이 있다며 자기 집으로 오라 한 김정범의 입에서 폭탄선언이 터졌다.
“서준아. 축가 불러줄 수 있지?”
“네? 축가요? 누구 축가인데요?”
“누구긴. 당연히 나랑 설아 결혼식이지.”
갑작스럽게 축가 이야기를 꺼낸 김정범 때문에 내가 당황하고 있자.
같이 놀랐지만. 빠르게 안색을 수습한 김우승이 이런 상황이 올 줄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김정범의 폭탄 발언을 해석해주었다.
“저 형 지금 눈에 뵈는 게 없어. 당장 내일이라도 혼인신고서에 도장부터 찍을 기세야. 서준이 네 영화 개봉만 없었으면 당장 돌아오는 주말에 결혼식 올렸을걸.”
갑자기? 저번에 이야기가 대략적으로 나왔을 땐. 설아 누나랑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더만.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당장이라도 청첩장을 줄 기세가 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데요?”
결혼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날을 잡은 사람처럼 말하고 있는 거야.
“날은 다음 달로 잡을 거야. 이번 달은 바쁠 거 아니야. 다음 달이라고 해도 얼마 안 남았으니 미리미리 서준이 스케줄 예약을 해둬야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범이 형이 결혼한다는데 무조건 시간 내서 가야죠. 축가도 당연히 불러드리고요.”
안 불렀다간 서운함을 넘어 삐질지도 몰랐다. ‘왜 우승이는 해주고 난 안 해주는데!’ 하고서 말이다.
“그나저나 정범이 형. 갑자기 왜 이렇게 저돌적이 된 거예요?”
혹시나 김우승처럼 사고라도 쳤는가 싶어서 물어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이틀 전에 저 형이 설아 씨랑 우리집에 왔는데. 꼬물꼬물 잡아주는 손을 유심히 보더니. 갑자기 얼른 결혼을 해야겠다! 이러더라고.”
“아니. 그 순간 작은 손이 내 손가락을 딱 잡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니까. 나랑 설아 닮은 아기라니. 이건 못 참지.”
그러니까. 김정범이 김우승의 집에 놀러 갔다가. 조카의 귀여움에 반한 뒤 자신과 이설아를 닮은 아기까지 상상한 모양.
마침 ‘왕자의 난’ 촬영도 모두 끝난 터라. 넷티비에서 시즌2가 공개되기 전까지 제법 시간이 있었다.
한마디로 김정범이 결혼하기엔 꽤나 좋은 타이밍이라는 뜻.
“그나저나 우형이 형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늦는다고 하는 거지? 집에서 대본 보는 것 말고는 취미도 없는 사람이.”
안 그래도 김정범이 모이자고 연락을 했는데. 딱 박우형만 선약이 있다고 조금 늦는다고 했단다.
그러면 뻔하지.
“수아 선생님 만나러 간 거 아닐까요? 본격적으로 만나보기로 했다면서요.”
“아, 맞다.”
내가 김수아 이름을 꺼내자.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김정범과 김우승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정범이 형보다 우형이 형 이야기가 더 폭탄선언이었지. 다른 사람도 아닌 우형이 형이 연애를 시작하다니. 또 깜빡하고 있었네. 그 형이 누굴 만난다고 하는 게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아서.”
“나도 계속 깜박하게 된다니까.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에도 도저히 믿기질 않네.”
하긴. 나조차 박우형과 김수아 선생님의 연애 소식을 듣고도 진짜냐고 몇 번을 되물었는데.
배우로서 탑급에 위치한 박우형이었기에. 혹여나 연애설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만난다고 들었다.
김수아 선생님은 다른 곳도 아닌 차서준의 동생이 다니고 있는 유치원의 담임선생님이었으니까.
그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우형이 등장했다.
“늦어서 미안.”
“형. 이야기 들었어? 정범이 형 결혼하겠다던데. 다음 달에 가겠대.”
깜짝 소식이었지만. 마치 박우형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럴 거 같더라. 혹시···.”
“아니야! 왜 다들 내 진심과 결심을 몰라주는 건데!”
김우승처럼 사고를 쳐서 가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에. 억울하다는 듯 김정범이 소리 지른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새롭게 합류한 연사모 형들에 대한 것.
“어? 그러면 정범이 형 결혼식에 데이븐이랑 가르시아 알렌도 오겠네요.”
“어?”
그 부분에 대해선 생각지도 못했는지. 김정범이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저번에 두 사람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내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박우형과 같이 다녔다고 했지.
“조, 좋은 거지! 다른 사람도 아닌 할리우드 탑스타들이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올지도 모른다는데.”
“맞지.”
김정범의 말에 추임새를 넣던 박우형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면 날은 서준이 영화 개봉하고 나서 할 거지?”
“당연하지!”
그러고 보니 드디어 코앞까지 다가왔다.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배우 차서준의 영화 ‘라이프’의 개봉일이.
*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 배우 차서준 주연의 영화 ‘라이프’의 시사회 날이 밝았다.
말이 시사회지. 이번에 차서준을 응원하러 올 연예인들을 예상해 본다면 연말 시상식이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
당장 차서준과 작품을 함께 했던 배우들뿐만 아니라. 음악 방송 활동, 예능 출연 등을 통해 인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넓어진 상태였으니까.
└ 라이프 시사회 표 못 구하나요? ㅠㅠ 지금 로튼 토마토 지수도 개 높던데. 심지어 평론가들 평도 진짜 좋음.
└ 로튼 토마토 신선도가 무려 97%임. 그렇다면 작품성은 검증되었다는 건데. 문제는 관객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 무조건 다가가지. 여태까지 우리 차 배우가 찍은 작품들 중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않은 것이 없었음. 우리 차 배우의 선구안을 믿으셈. ㅋㅋㅋㅋ
└ 가장 중요한 건 썩토냐 마냐가 아니라. 관객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느냐 아니겠음? 그래서 나는 개봉하자마자 첫 타임 영화 달려가서 확인해보려고.
└ ㅇㅈ 나도 개봉일에 이미 연차 썼음. 다행히 우리 부서는 연차 경쟁자가 없어서 살았음. 옆 부서는 여러 명 신청하는 바람에 경쟁 제대로 터짐. ㅋㅋㅋㅋㅋㅋ
미국에서 먼저 시사회가 있었는데. 이후 호평들이 가득해 사람들의 기대치가 점점 올라간 상황.
영화 ‘라이프’의 시사회가 있는 영화관은 이미 발 디딜 틈 하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상태였다.
특히나 조회수 냄새를 맡은 연예부 기자들이 죄다 몰려왔을 정도.
“아이씨. 여기 에어컨 더 안 틀어준대? 왜 이리 더워.”
“에어컨 풀가동 중이란다. 에어컨이 온도 내리는 속도보다 사람들이 더 몰려드는 속도가 빠르대.”
“오늘 완전 연말 시상식보다 화려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힐링 가족 출연자 가족들도 올 거 아니야.”
기존 다른 영화들의 시사회보다 훨씬 많은 연예인들이 참석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오늘 영화 시작 전 포토월 촬영 시간이 다른 영화보다 훨씬 길게 잡혀 있었고. 무엇보다 다른 배우도 아닌 탑스타라고 평가받는 차서준의 영화였으니까.
“이번 영화에서 한 번 미끄러졌으면 좋겠네.”
수많은 인파들로 인해 후덥지근해진 상황이 짜증났는지. 기자들 사이에서 누군가 툴툴거리며 불만을 꺼냈다.
“확 영화가 노잼이면 제대로 조회수 찍어볼 수 있을 텐데. 팩트 기반으로 쓰면 처음엔 욕먹어도 나중에 호응받잖아.”
“그러게. 딱 한 번만 미끄러지면 아주 볼만 할 텐데. 오늘 좀 신나게 타이핑 좀 해봤으면 좋겠다.”
단 한 번의 실패조차 경험하지 않은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고작 6살의 나이에 데뷔해 쉬지 않고 작품을 찍었음에도 말이다.
만약 이번 영화가 망작이라면 자극적인 기사들을 마음껏 쏟아낼 수 있을 텐데. 사람들에게 기레기라고 욕을 먹는 기자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자극적인 기사만큼 조회수를 제대로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없을 테니. 하지만 없는 사실로 썼다간 데스크에 불이 날 테니 어쩔 수 없었다. 계속해서 입맛만 다실 수밖에.
그런 기레기 둘을 못마땅한 눈빛으로 보던 연예부 기자들이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수다만큼 재밌는 것이 없으니.
“먼저 있었던 미국 시사회 후기들 봤어?”
“봤지. 그냥 제대로 된 영화 나왔다고 호평들이 가득하던데. 역시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라는 기사도 쏟아졌고.”
“그뿐만이 아니야. 이번 영화로 차서준에게 할리우드 감독들 러브콜이 쏟아질 거라는 말들이 많더라.”
단연 연예부 기자들의 관심은 영화의 흥행 여부였다. ‘라이프’가 대박이 날수록 쓸 수 있는 기사 소스들이 풍부해지는 셈이니.
“그거 알아? 차서준이 성공할수록 가장 웃는 사람이 서도현이라잖아.”
“왜? 아, 소속사 대표니까?”
“어. 차서준이 지금까지 받은 트로피들을 이번에 이전한 사옥에 쫙 전시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들은 기자 하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짜? 이번에 에미상이랑 골든 글로브에서 받은 남우주연상 트로피도?”
“어. 내가 차서준 부모라면 당장 회사 나와서 1인 기획사부터 차릴 텐데. 어떻게 저런 재능에 인성까지 끝내주지?”
“그러니까 타고난 연예인이라고 하잖아. 구설수나 잡음 하나 없어. 오히려 찾아볼수록 미담만 가득해. 그러니 어린 나이에 탑스타가 된 거겠지.”
그렇게 기자들이 차서준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드디어 영화 ‘라이프’의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포토월에 응원을 온 연예인들이 올라설 때마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몰려든 수많은 팬들의 카메라도 연신 셔터음을 터트렸다.
“진짜 연말 시상식보다 화려하네. 이러다가 내년부터는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오는 거 아닌지 몰라.”
포토타임이 끝나고 상영관 안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영화 시작 전 업무적인 태도로 앉아 있던 기자 한 명은. 상영관에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멍한 얼굴로 이런 말을 내뱉었다.
“고작 13살에 에미상,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까지 탔는데. 이제 남은 건 이번 영화로 오스카인가?”
- “단언컨대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것.” 시사회 반응 폭발한 영화 ‘라이프’ 후기
- 기립 박수 쏟아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 시사회
- 올해도 배우 차서준의 해? 해외부터 시작해 국내까지 시사회 이후 쏟아지는 호평들.
- 연말 시상식보다 화려한 별들의 잔치. 배우 차서준의 영화 ‘라이프’ 시사회 현장.
- ‘라이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생존 앞 인간의 본성을 담아낸 정말 끝내주는 영화.
└ 머임? 보통 까내리는 기사 한둘 정도는 나와야 정상인데. 왜 이리 호평들밖에 없음? 기자들 감독에게 돈이라도 먹음?
└ ㅋㅋㅋㅋㅋㅋㅋ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한국까지 와서 기자들에게 돈 줬겠냐? 이미 미국에서도 시사회 끝나고 평론가, 관람객들이 호평 쏟아냄. ㅋㅋㅋㅋ
└ 아니. 평들이 너무 좋은데. 특히나 배우 차서준이 이번 영화로 할리우드에서 제대로 주목받을 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던데. 대체 어떻길래?
└ 차 배우 연기력이 미쳤다는 말이 있음.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립서비스가 아니라. 그냥 본 사람들의 말이 다 그럼. 차 배우의, 차 배우에 의한, 차 배우를 위한 영화라고. ㅋㅋㅋㅋ
└ 본 사람들이 무조건 아이맥스에서 보라고 하던데. 그리고 영화관에서 안 보면 인생 손해라고 꼭 시간 내서라도 영화관 가라고 적극 강추함. ㄷㄷ
시사회 후기를 본 이들이라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얼마나 영화가 잘 빠졌기에 저런 극찬들이 쏟아지는 걸까. 그렇게 모두가 디데이만 기다렸다.
*
배우 차서준 주연,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가 개봉한 다음 날.
- 배우 차서준의 영화 ‘라이프’ 개봉 첫날 45만 돌파!
제대로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