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77화 (177/220)

177화

영화 ‘라이프’ 촬영 당시 가르시아 알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가르시아. 나중에 한국에 놀러 오게 되면. 제가 진짜 풀코스로 대접할게요.”

“풀코스? 그게 대체 뭔데?”

풀코스란 내 말에 가르시아 알렌의 고개가 갸웃한다. 아직 12살의 꼬맹이의 입에서 나온 풀코스란 단어는 퍽 귀여운 느낌이었으니까.

내가 가르시아 알렌에게 말한 풀코스란 간단했다.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맛난 것들을 배가 터지도록 대접하겠다는 뜻.

“한국에 진짜 맛있는 음식들이 많거든요. 가르시아가 먹는 거 진짜 좋아하잖아요. 영화 촬영 때에는 체중 관리 때문에 못 먹고요.”

“맞아.”

“마침 영화 촬영도 끝났고. 차기작은 지금 신중히 검토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잠깐 쉬는 동안에 맛난 거 먹을 겸 한국에 놀러 와요.”

가르시아 알렌은 식도락을 좋아했다. ‘연기’ 외에 그나마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맛집을 찾아가는 것이라 하면 이해가 쉽겠지.

이번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같이 지내면서. 가르시아 알렌이 어떤 종류의 음식들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영화 촬영 내내 가르시아 알렌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보답해야지.

“한국에 제가 아는 맛집들이 제법 있거든요. 아마 처음 입에 넣는 순간부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러면 가야지.”

이렇게 짧은 대답으로 끝났던 대화였다.

그런데.

가르시아 알렌의 추진력 하나는 확실히 인정할 만했다.

“네? 데이븐이랑 일주일 뒤 비행기 표까지 모두 예약했다고요? 돌아가는 건 안 하고요?”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 날 만나러 한국에 오겠다고 연락한 다음 날 출발하는 비행기 표까지 예약했단다. 심지어 돌아가는 시간은 정하지도 않고.

안 그래도 저 연락이 처음 왔을 때가 마침 ‘힐링 가족’을 촬영하고 있을 때였다.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 날 보러 한국에 오겠다는 말에. 엿듣고 있던 이주연 PD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었지.

돌아가는 비행기를 예약하지 않았으니. 잘하면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 한국에 있는 동안에 ‘힐링 가족’에 한 번 출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올해 각종 시상식을 뜨겁게 달구었던 넷티비 ‘왕자의 난’ 시즌2 제작 일정이 정해졌다.

“11월부터 촬영 시작한다고요?”

“어. 대본도 나왔는데 보여줄까? 어제 막 완성된 따끈따끈한 대본인데.”

“네!”

봐야지. 안 보여준다고 해도 졸라서라도 봐야지. 물론 시즌1을 함께했던 나인지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재빨리 박우형이 건네주는 ‘왕자의 난’ 시즌2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박정아 작가가 하루 이틀 사이에 완성한 대본이 아니었다. 시즌1을 쓰면서 여기저기에 시즌2에 대한 떡밥을 투척해두기도 했었고.

또 넷티비 내부 시사회 당시부터 시즌2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관계자들과 김주철 감독, 박정아 작가 사이에 나오기도 했었다.

“어때?”

내가 마지막화 대본을 거의 다 넘겼을 무렵. 애가 탔는지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정범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묻는다.

“음.”

“왜왜? 별로야? 시즌1에 비하면 조금 손색이 있는 것 같아? 만약 그러면 작가님에게 말해서 빨리 수정을 하던지 해야 하니까. 읽어보니까 어떤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연사모 형들은 알고 있었다. 배우 차서준이 작품을 선택할 때 서도현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최종적인 선택은 내가 한다는 것을.

그 말은 나 역시 작품 보는 눈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배우 차서준의 필모그래피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고.

그러니 살짝 던진 ‘음’ 한마디에 김정범이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방금은 정범이 형 반응 보려고 장난쳤던 거고요. 읽고 난 소감은 정말 재밌어요. 시즌1 마지막에 죽지만 않았더라면 저도 참여하고 싶다고 떼를 쓰고 싶을 만큼 정말 좋아요.”

“그, 그래? 그렇지? 우형이 형도 보자마자 바로 이거다 하고 외쳤을 만큼 잘 빠졌다고 했거든. 그래도 서준이 너한테 보여주고 확신을 받고 싶어서.”

죽은 내가 다시 살아나 참여하고 싶을 만큼 재밌다고 하자. 안절부절못하던 김정범이 헤벌쭉 웃으며 싱글벙글 좋아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재밌다. 역시 박정아 작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방금 했던 말처럼 시즌1 마지막에 죽지 않았더라면 출연하고 싶을 정도였다.

박정아 작가가 괜히 에미상에서 극본상을 수상한 게 아니었다. 거기에 전부터 오랫동안 준비를 했다는 말이 농담이 아닐 정도로 설정 역시 탄탄했다.

“보통 시즌2로 넘어가면 설정 구멍이 숭숭 생기기 마련인데. 이건 시즌1의 궁금증까지 풀어주네요. 역시 박정아 작가님인 것 같아요.”

“인정.”

아, 맞다. 내가 오늘 형들을 보자고 한 이유를 깜빡하고 있었다. 날 보자마자 대본부터 불쑥 들이민 김정범 때문에.

“형들. 이틀 뒤에 시간 어때요? 혹시 일정이나 스케줄 잡힌 거 있어요?”

“아니.”

“나도 없어. 이제 우형이 형에게 잡혀서. 아니지. 같이 대본 분석을 시작해서 바쁘단 것만 빼면 다른 스케줄은 없어. 왜?”

왜긴. 미국에서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 오기 때문이지. 두 사람은 연사모 형들을 꼭 만나고 싶어 했다.

특히 ‘왕자의 난’을 재밌게 본 가르시아 알렌이 한국에 가면 연사모 형들과 만날 기회를 반드시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도플갱어들끼리 만나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과연 가르시아 알렌과 박우형이 만났을 때 어떤 그림이 그려지려나.

“그전에 정범이 형. 요즘 영어 공부 좀 했어요?”

“나 요즘 영어 공부 진짜 열심히 하고 있잖아. 개인 선생님까지 구해서 하고 있어. 올해 각종 해외 시상식에 다니면서 흑역사 영상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

안 그래도 김정범이 독하게 영어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해외 시상식에서 시즌2 이야기를 들은 기자들이 김정범에게도 질문을 많이 던졌거든. 시즌2에선 왕과 대립각을 세운다는데 어떠냐고.

한 번은 자기가 대답하겠다고 했다가 엉뚱한 답변을 하는 바람에. 각종 커뮤니티에 흑역사 영상이 떠돌았던 김정범이었다.

“정범이 형한테 방금 영어 공부에 대해 물어본 이유는요. 저번에 데이븐이 한국에 왔을 때 한 번 만났었잖아요.”

“응. 왜?”

“그 데이븐이 며칠 뒤에 한국에 들어온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이번에 영화 촬영했던 가르시아 알렌도 같이요. 데이븐이 저번 만남이 너무 즐거웠다고 이번에도 보자고 하던데요.”

“정말?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님도 연기력으로 칭찬이 많았던 그 가르시아 알렌이 한국에 온다고? 그것도 서준이와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잘됐네. 안 그래도 촬영하는 동안에 연기에 대해 좋은 의견들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는 언제든지 상관없으니···.”

가르시아 알렌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에 불이 번쩍 들어오는 박우형을 보면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저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해서.

별일이야 생기겠어?

*

그렇게 성사된 자리였다. 가르시아 알렌, 데이븐, 박우형, 김정범. 김우승. 마지막으로 나.

자리를 안내하던 직원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것이. 보나 마나 내일이면 오늘 모임이 떠들썩해질 것 같다.

직원들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데이븐이 SNS에 올릴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늘 만남이 비밀 모임도 아니고.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다.”

김정범의 입에서 어설픈 영어가 나오자. 듣던 데이븐이 씨익 웃으며 ‘앙뇽하세요.’하고 농담을 꺼낸다.

그 덕분에 오늘 모임의 시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데이븐이야 저번에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다지만. 가르시아 알렌은 형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당연히 대화 주제는 이번 모임의 중심인 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님이 그러더군요. 내가 할리우드에서 천재라고 불린 수많은 배우들을 만나봤지만. 준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을 가진 배우를 만난 적이 없다고. 실제로 촬영장에서 감독님 특유의 다시, 다시 이 말이 준이 혼자 촬영할 때에는 거의 나오질 않았었습니다.”

“그것이 서준만 가진 특별함이죠. 안 그래도 서준이가 가르시아 알렌에 대한 이야기를 엄청 많이 했습니다. 사실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님의 입에서 다시 이 말이 안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가르시아 알렌과의 대본 분석 덕분이라고 말입니다. 안 그래도 할리우드에서 주목하는 연기력 하면 떠오르는 배우라고 해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말입니까? 사실 준을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 배역을 뺏긴 것만 같아서 분했는데. 대본 리딩장에서 준을 처음 만나고 나니 정말 놀랍고···.”

제발 누가 저 두 사람의 입 좀 막아줘.

도플갱어가 서로 마주하게 된다면 죽는다고 하던데. 정작 죽는 것은 저 두 사람의 수다를 듣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이었었다.

이미 예상을 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김우승과 김정범. 이미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는 데이븐까지.

무수한 피해자를 양성하는 두 사람의 ‘연기’에 관한 수다였다.

때마침 주문한 식사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우리들의 귀에서 피가 나왔을지도 몰랐다.

“정말 맛있는데?”

방금 전 박우형과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과묵한 가르시아 알렌의 감탄.

옆에서 마찬가지로 진짜 맛있다며 놀라는 데이븐까지. 며칠 전부터 미리 예약을 해둔 보람이 있었다. 정확히 예약을 한 사람은 김우승이었지만.

“그러고 보니 서준이 며칠 뒤에 힐링 가족 촬영 있지 않아?”

잠시 음식을 음미하던 김정범이 생각났다는 듯 내게 묻는다.

방금 귀를 따갑게 한 두 사람의 수다 속에 돌아가는 비행기는 아직 예약하지 않았다는 말을 용케 들은 모양.

확실히 김정범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듯싶다. 그 빠른 말들 속에서 정확하게 캐치하다니.

“맞아요. 안 그래도 그거에 대해 가르시아랑 데이븐에게 말했었는데.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지방으로 가니 근처 맛집도 들를 생각이에요.”

내 말에 데이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지 왔는데. 낮에는 준이 학교에 가느라 함께하지 못하고. 또 1박 2일 촬영을 떠나게 되면 또 같이 못 있게 되니. 출연해야지.”

할리우드 스타인 두 사람이다. 특히나 데이븐은 ‘디멘션 소서러’로 몸값이 껑충 뛴 상태였고. 출연료 걱정부터 해야 하나 싶었지만.

“우정 출연이라니. 그 정도의 우정이라면 우리 연사모에 들어올 자격이 되는 거 아니야?”

흔쾌히 우정 출연이라는 말로 넘어간 두 사람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김우승이 저 말을 툭 던졌고.

“어? 괜찮은 생각인데? 방금 우형이 형이랑 가르시아 알렌 대화를 들어보니 자격이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야.”

어설픈 영어로 김정범이 그 말을 받았다.

“연사모? 안 그래도 준에게 그 모임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은 제안을 해줘서 기쁘군요.”

“잘됐네요. 서준이가 학교에 간 동안에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떻습니까?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아서.”

옆에서 데이븐이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박우형이 두 사람을 데리러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까지 잡아버렸다.

데이븐, 미안.

그렇게.

연사모 형들과 가르시아 알렌, 데이븐의 첫 만남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일주일 뒤.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데이븐의 개인 SNS에 올라온 글 하나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데이븐 SNS 글 보셨어요? 설마설마했는데 결국 만들어지고 말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연사모의 미국 진출이라니! 가슴이 정말 웅장해진다!! ㅋㅋㅋㅋㅋ 이제 연사모 소속 배우가 4명이 아니라 6명이 되었다!!!

└ 미국에서도 기사 나옴. ㅋㅋㅋ 차 배우를 중심으로 한 연기를 사랑하는 모임에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 합류했다고. ㅋㅋㅋ

└ 세계로 뻗어나가는 연사모라니 ㄷㄷㄷ 고작 6명인데 거기에 있는 배우들 한 명 한 명 이름값이 ㅎㄷㄷ 하네요.

└ 데이븐은 슬슬 디멘션 소서러2 제작 준비 단계에 들어갔고. 박우형과 김정범도 왕자의 난 시즌2 준비한다는데. 연사모에 기쁜 일들만 가득하네요. ㅋㅋㅋ

└ 이번 주 힐링 가족 예고편 보니까. 가르시아 알렌이랑 데이븐이 차 배우 동생들이랑 같이 여행 겸 떠난 것 같던데. 어떤 그림이 나올지 궁금하네요.

└ 저도 예고편 봤는데. 하준이, 하윤이가 제법 영어를 하더라고요? 근데 가르시아 알렌이랑은 단답형 대화인데 말이 통하는 게 너무 신기함. ㅋㅋㅋㅋㅋ

└ 할리우드 스타인 가르시아 알렌과 데이븐이 연사모라니. ㅋㅋㅋ 차 배우 친한 형들이 할리우드 탑스타네요. ㄷㄷ

*

맹추위가 서서히 물러나고.

넷티비 ‘왕자의 난’ 시즌2 촬영이 끝났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을 무렵.

배우 차서준 주연.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의 1차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 미쳤다!!! 예고편 마지막에 차 배우 미소 짓는 거 보신 분. 이거 개봉까지 어떻게 기다리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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