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힐링 가족’의 메인 연출을 맡고 있는 이주연 PD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그것은 예능국장 역시 마찬가지.
오죽하면 신입 막내 PD가 큰 실수를 했음에도 웃으며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을까. 이렇게 이주연 PD가 미소 천사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자료 영상들 잘 준비하고 있어? 저번처럼 실수하면 안 돼. 알았지?”
“네. 한국인 최초, 그것도 에미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잖아요. 수상 소감 말하는 장면까지 다 따두었어요.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겠습니다.”
‘힐링 가족’ 출연자 중 한 가족인 배우 차서준이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상소감의 마지막에 언제나 그렇듯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잔뜩 표현하기까지 했단다. 그것도 앞서 수상소감을 말하던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가족 예능에 있어 이보다 더 훌륭한 자료 소스가 있을까. 거기에 배우 차서준이 촬영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희소식까지.
“피디님이 차 배우를 잘 설득하신 덕분에 우리 다시 대박 날 것 같아요.”
“당연하지. 차 배우가 프로그램 하차를 고민한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알아?”
“알죠. 저희도 진짜 눈앞에 캄캄해졌었잖아요. 차 배우 동생들이 아니었더라면 진짜 하차했을지도 몰랐잖아요.”
안 그래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라이프’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차서준과 서도현. 그리고 이주연 PD가 잠시 미팅을 가졌었다.
주제는 배우 차서준 가족의 ‘힐링 가족’ 출연 존속 여부. 이주연 PD는 강력하게 미국으로 떠난 기간 동안만 잠시 다른 가족들의 분량을 늘리겠다고 주장했었다.
다행히 차서준의 동생들이 ‘힐링 가족’ 출연을 너무나도 즐거워 한 덕분에 하차를 막을 수 있었고.
잠시 주춤하고 있는 ‘힐링 가족’의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다.
“선배님. 혹시 있잖아요.”
“왜? 무슨 일 있어?”
그때 프로그램에 새롭게 합류하게 된 막내 PD가 이주연 PD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 PD인지라. 배우 차서준에 대한 걱정이 많은 모양이었다. 차서준이 미국으로 떠난 직후에 합류했으니.
“이번에 차서준이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타고. 또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랑 영화까지 촬영하고 왔잖아요. 혹시 변하지 않을까요? 이미지가 변하면 안 되는데. 시청자들이 그런 건 또 날카롭게 캐치하잖아요.”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긴 했다. 배우 차서준과 함께 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면.
연예인 중에 뜨기 전과 뜨고 난 후가 180도 달라진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괜히 ‘연예인 병’이라는 단어까지 생긴 게 아니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막내 PD를 잠시 바라본 뒤.
“설명해줘.”
이주연 PD는 친절하게 다른 이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넘겼다. 입 아프게 더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주연 PD가 고기를 던지자마자 우르르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이미 일전에 대형 사고를 칠 뻔한 신입인 막내 PD인지라. 나가는 말이 곱지 않았다. 특히나 그 대상이 여기 있는 이들이 너무나도 사랑하는 차서준이라면 더욱더.
“멍청아. 넌 차 배우가 몇 살에 데뷔했는지 몰라?”
“아, 알죠. 6살이잖아요.”
“그래. 6살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대박만 연달아 치고 있는데. 어디서 차 배우 인성에 관한 잡음 들은 적 있어?”
“아, 아뇨.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미담만 넘치면 넘쳤지.”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는 듯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막내 PD.
“거봐. 솔직히 그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나면. 어린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성인이어도 고개가 빳빳해지기 마련인데. 차 배우는 그냥 탑스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천생 연예인이라고.”
차서준이 영화 촬영 때문에 미국으로 떠난 이후 ‘힐링 가족’에 합류한 막내 PD라면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차서준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았다.
여행 도중에 섭외된 맛집에 들르면 잊지 않고 스태프들의 것까지 챙겼다. 그 음식들은 모두 차서준 본인의 사비로 충당하면서.
괜찮다며 스태프들이 손을 저어도 ‘이거 진짜 맛있어요. 한 번 맛만 보세요. 진짜 대박!’ 이렇게 활짝 웃으며 건네곤 했었다.
그런 차서준을 같이 일했던 사람이라면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차서준의 동생들도 ‘이고 징짜 마이써여.’ 하며 같이 먹자고 재촉하는데. 그 모습들이 비방용 영상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모레면 차서준 가족 촬영이잖아. 아마 이번에 다녀오면 자기도 차 배우 팬클럽에 가입할걸?”
이미 다들 가입했는지. 옆에서 듣고 있던 이들이 맞지맞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들을 아직 차서준을 경험하지 못한 막내 PD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아침부터 우리집에 흥얼흥얼 콧노래가 울려 퍼졌다. 흥이 오른 주인공은 바로 하준이었다.
당연히 미국으로 오랫동안 떠났던 내가 집으로 돌아와서 저런 것도 있겠지만.
“형아! 우리 진짜 찍는 거야? 다시 TV에 나와?”
“그래. 하준이가 촬영만 기다리고 있었구나?”
“응!”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미국으로 떠나므로 잠시 하차했던 ‘힐링 가족’ 촬영일이 밝았기 때문이었다.
TV에 나온 다음 월요일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슈퍼스타가 되어 좋았다던 하준이, 하윤이었다. 당연히 오늘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아직 졸음기를 눈에 대롱대롱 달고 있음에도 하준이의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그 모습을 집안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가 담았다.
“엉아! 나 이고 어때?”
“하윤이가 그 옷 입으니까 너무 귀여운데?”
“증말?”
하윤이도 신이 나는지 이 옷, 저 옷을 입고 나타나 소감을 묻는다.
내가 알기론 하윤이가 지금 들고 있는 옷이 ‘피치노’에서 하윤이가 모델로 입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배우 차서준이 슬슬 졸업할 나이가 다가옴에 따라. ‘피치노’는 모델로 하준이와 하윤이를 발탁하였다. 결과는 성공적.
아쉽게도 배우 차서준이 피치노 모델에서 내려옴에 따라. 엄마와 피치노의 배우 차서준 한정판 콜라보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어? 그거 우리 하윤이가 피치노에서 광고 찍을 때 입었던 옷 아니야? 하윤이가 그 옷을 입을 때가 제일 예쁘던데.”
“마자! 이고 이뻐.”
하윤이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는 듯. 자기를 봐달라며 빙그르르 한 바퀴 돈다. 나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찰칵 찍었다.
나중에 ‘힐링 가족’에서 저 모습을 다시 볼 순 있겠지만. 놓치지 말고 내 핸드폰에도 담아둬야지. 지칠 때 보고 힘을 내기 위해서.
“하준이, 하윤이. 오늘은 운동화 신어야 되는 거 알지? 많이 걸어야 돼.”
“알아!”
“아라!”
오늘 차서준 가족의 ‘힐링 가족’ 여행지는 지방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하준이가 좋아하는 동물들을 보러 가기 위해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갈 예정.
넓은 동물원을 온종일 구경하기 위해선. 발이 편한 운동화가 제격이었다.
내 눈에 어깨를 덩실덩실 흔드는 하준이가 보인다.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저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하준이는 아직도 동물이 그렇게 좋아?”
“응! 보고 있으면 기분이 막 좋아. 동물 최고!”
벌써부터 동물들을 볼 생각에 신이 난 하준이었다. 그렇게 동생들의 옷을 모두 챙긴 뒤.
“엄마! 얼른 가요!”
하준이와 하윤이가 엄마를 향해 말했다. 오늘 엄마를 향한 인사가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닌 이유는 간단했다.
“어머? 벌써 다 준비했니?”
“네! 형아가 도와줬어요.”
“엄마, 아빠도 준비가 거의 다 끝났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네!”
오늘 ‘힐링 가족’의 여행은 엄마, 아빠도 같이 떠나기로 했으니까.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배우 차서준이 에미상 최초 한국어로 말하며 우리 가족을 사랑한다고 했었다.
당연히 한국에 돌아와 하는 ‘힐링 가족’ 첫 촬영이니 가족들과 함께 가야지. 엄마, 아빠 이야기를 꺼냈더니 오히려 이주연 PD가 활짝 웃으며 반겼다.
그 덕분에 오늘 차서준 가족의 운전기사는 바로 아빠였다. 평일이니 주말처럼 차가 막히지 않을 테니 괜찮겠지.
“엄마, 아빠도 준비 끝났어요. 그러면 우리 하준이가 좋아하는 동물들 보러 출발할까?”
“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서는 터라. 내가 봐도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달라진 엄마가 화사하게 웃는다.
“우리 서준이, 하준이, 하윤이. 안전벨트 잊으면 안 돼요.”
“네!”
평일 촬영이지만. 특별히 연차를 써서 ‘힐링 가족’ 여행을 같이 떠날 수 있게 된 엄마, 아빠였다.
여름휴가 당시에는 영화 ‘라이프’ 촬영에 바빠 가족들과 별로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렇게 떠날 수 있게 되니 정말 즐겁다.
“다 함께 동동동!”
“다 함께 동동동!”
과거 내가 불렀던 동동이 친구들 주제곡을 부르며. 차 안은 하준이, 하윤이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동물원에 도착하고 나니. 하준이의 눈동자가 아주 초롱초롱해진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는 카메라맨.
“형아. 왜 여기엔 동물이 없어? 분명 아기 사막여우가 있다고 했는데. 안에 아기 사막여우가 없어.”
하준이가 텅 비어 있는 유리 너머를 보며 아쉽다는 듯 내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하윤이와 함께 간식을 사러 갔다. 기다리는 동안 하준이가 사막여우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때마침 치료를 받으러 가는 바람에 아기 사막여우가 없던 것.
“아기 사막여우가 아파서 의사 선생님한테 진찰받으러 갔대. 하준이도 아프면 의사 선생님 만나러 가지?”
“응! 아기 사막여우가 아파서 없는 거구나.”
시무룩한 얼굴로 잠시였다. 이내 무언가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끄덕이는 하준이.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내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최근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으니까.
“하준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웅?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형이 배우가 되었듯이. 형은 우리 하준이가 앞으로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서.”
내 물음에 하준이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시선은 나와 치료를 받느라 텅 빈 사막여우의 우리를 번갈아 본다.
그렇게 1분을 고민했을까.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
“의사 선생님?”
“응! 그런데 사람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 말고. 동물들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
이런. 엄마가 넌지시 말했던 것처럼 하준이이게 꿈이 생긴 모양이다. 그것도 동물들을 치료하는 수의사라는 꿈이.
최근 들어 하준이가 엄마에게 수의사와 관련된 질문을 이것저것 했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이번 ‘힐링 가족’ 여행지도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정한 것이고.
“그러면 하준이가 나중에 동물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 되려면. 공부 엄청 열심히 해야겠네?”
“응? 공부 많이 해야 돼?”
수의사라는 꿈이 생겼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
“그러엄. 우리 하준이가 동물들을 치료하려면. 어디가 아픈지, 또 어떻게 치료해야 되는지 다 알아야 되잖아. 그러려면 공부 엄청 많이 해야 돼.”
“형이 연기 공부하던 것처럼?”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하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맞다며 대답한 나였다.
“그럼. 형처럼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 하준이도 동물들을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이 될 수 있어.”
“그러면 나도 형처럼 어어어엄청 열심히 공부할 거야!”
하준이의 당찬 포부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만 나였다.
잠시 후.
나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서 간식을 사 온 하윤이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하윤아.”
“엉?”
“하준이는 커서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하윤이는 꿈이 뭐야?”
내가 묻자. 하윤이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노래 부르는 게 저아!”
응? 안 그래도 ‘힐링 가족’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것이 하윤이의 노래 실력이었다.
가끔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걸 보긴 했는데. 정말로 하윤이가 음악을 좋아할 줄이야.
‘힐링 가족’에 출연하면서. 사람들이 하윤이의 노래를 칭찬하자 본인도 엄청 좋아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 오빠랑 노래 부를까?”
“저아!”
‘힐링 가족’의 출연 결심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커가면서 바뀔지 모르겠지만. 당장 하준이, 하윤이에게 미래에 되고 싶은 꿈들이 생겼으니.
“하윤이가 좀 더 크면. 오빠가 찍는 드라마나 영화 노래도 불러주겠네?”
“엉! 불러주꺼야!”
방금 나와 하윤이가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찍었다.
영화가 개봉될 내년이 얼른 왔으면 싶다가도. 이렇게 귀여운 하준이, 하윤이가 또 쑥쑥 자랄 생각을 하면 안 왔으면 싶기도 하다.
그때였다.
♪♬♪~ 내 핸드폰이 울린 것은. 촬영 중이라 안 받을까 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의 이름을 본 순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가르시아. 거기 시간은 밤 아니에요? 무슨 일이에요?”
저쪽은 밤인 시간에 가르시아 알렌에게 전화가 걸려 온 것.
그리고.
수화기 너머 들려온 가르시아 알렌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한국에 놀러 오겠다고요? 데이븐이랑 같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