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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72화 (172/220)

172화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연사모 형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얼마나 오라고 성화를 내던지.

회사에 들러 서도현을 만난 뒤. 나는 수진 누나의 차를 타고서 박우형의 집에 도착했다.

“어땠어? 내가 봤을 땐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나를 보자마자 김우승이 대뜸 묻는다. 대본 분석을 도와주었던 박우형과 김정범은 내 연기를 많이 보았지만. 김우승은 육아에 바빠 보질 못했으니.

“알면서 뭘 물어봐. 우리가 서준이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과 공포를 할리우드 배우들에게도 선사하고 왔겠지. 어떤 표정이었을지 그려지는데. 안 그래 우형이 형?”

“인정.”

말은 저렇게 했어도. 김정범 역시 내심 대본 리딩 현장의 분위기가 궁금한 모양. 호기심을 담은 초롱초롱한 눈빛이 나를 향한다.

“분위기 정말 좋았어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님도 이대로만 보여주면 된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요. 다 형들이 열심히 도와준 덕분에요. 그런데···.”

“그런데?”

내가 끝말을 흐리자. 김정범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응? 우형이 형은 왜?”

내 시선의 끝에 박우형이 있음을 확인한 김우승이 묻는다.

왜냐고? 대본 리딩이 끝나고 있었던 가르시아 알렌과의 만남 때문이지. 서도현이 준 자료 덕분에 어떤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나는 박우형 도플갱어가 미국에 나타난 줄 알았다. 만약 다음 날 아침 비행기가 아니었더라면. 가르시아 알렌의 숙소로 납치당했을지도 몰랐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고 미국으로 넘어오면 자주 이야기하자는데. 그 말이 얼마나 무섭던지.

“이번에 갔다가 우형이 형이랑 정말 비슷한 배우를 만났어요.”

“응? 그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나? 저 형은 내가 살아오면서도 정말 딱 한 번밖에 못 만나본 전설의 동물 같은 타입인데.”

김정범이 어떻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느냐는 듯 부정한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데이븐도 연기에 진심인 배우이긴 했지만. 우형이 형만큼은 아니었거든. 그런데 그 생각이 가르시아 알렌을 만나면서 무너져버렸다.

“맞지. 우형이 형. 청아가 진짜 괜찮은 사람 있다고 한번 만나만 볼 생각 있냐고 하던데. 형 생각은 어때?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만나보는 건?”

“괜찮아. 차기작 준비에 집중해야지. 서준이랑 연습하다 보니 부족함이 느껴지더라.”

안 그래도 육아에 하루하루 행복하다는 김우승. 그리고 슬슬 결혼 생각을 떠올리고 있다는 김정범까지.

정범이 형이 결혼하고 나면 이제 박우형 차례였다. 정작 본인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저거 봐. 저 형은 대본만 주면 배를 곯아도 기뻐하며 읽을 사람이라니까.”

안 그래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라이프’ 시나리오를 보는 박우형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넷티비 ‘왕자의 난’을 통해 해외에 제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 상태. 영어야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배우가 박우형이었다.

만약 올해 하반기에 촬영 시작될 시즌2를 제대로 성공시키기만 한다면. 배우 차서준에 이어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나저나 서준이 큰일 났네.”

“큰일? 서준이가 왜?”

그러게. 김정범이 툭 던진 말에 김우승도, 나도 의아하단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직도 모르겠냐는 듯 김정범이 말을 잇는다.

“저번에 월드 코믹스 영화 때문에 미국 떠날 때를 생각해봐. 이번에도 하준이랑 하윤이가 서준이 보내기 싫다고 난리를 치지 않겠어?”

“아. 제일 중요한 부분을 깜박하고 있었네요.”

‘형아 가지 마!’ 하고서 땅이 꺼지도록 울었던 하준이랑 하윤이가 있었지.

이번에는 어떻게 달래야 하나. 김정범의 말에 덜컥 걱정부터 드는 나였다.

*

이상하다. 저번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위해 떠나기 전을 생각해보자.

어땠더라?

“흐어엉!”

“엉아! 가디 마!”

내가 두 달 정도 집을 비운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직 가기도 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하준이와 하윤이가 말 그대로 대성통곡을 했었다.

그때부터 자는 사이에 내가 떠나버릴까 걱정이 되었는지. 항상 내 옆에서 코오 자기도 했었고.

떠나는 날에도 현관에서 가지 말라고 드러눕기까지 했었다. 그 덕분에 다시 집에 들어가 한참 동안 동생들을 달래고서야 공항으로 떠날 수 있었던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저번처럼 잠들기 전에 항상 내 방으로 오는 것까지는 똑같았다.

문제는.

왜 안 울지? 분명 이번에도 저번처럼 오랫동안 촬영 때문에 한국에 못 돌아온다는 걸 알 텐데.

“엉아. 이고 일고죠.”

“하윤이. 오빠한테 책 읽어달라고 3권이나 가지고 온 거야?”

“엉.”

하윤이가 너무 신이 난다는 듯 방긋 웃는다. 그 모습이 평소와 똑같았다.

저번에는 떠나기 며칠 전부터 세상이 무너져라 대성통곡을 했었는데. 물론 그 모습이 보고 싶다는 건 아니다.

그 뭐랄까. 우리 하윤이가 많이 컸다는 게 느껴져 대견하면서도. 조금, 아아아주 쪼오끔 섭섭하다는 정도?

“하윤이 그러면 오늘 오빠가 책 읽어주고 나면 같이 잘 거야?”

“엉! 같이 잘 꺼야!”

다르다. 저번과 너무나 다르다고. 결국 다음날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

“응? 우리 서준이 무슨 일 있니?”

“별일은 아닌데요. 하준이랑 하윤이 반응이 저번과 너무 다른 것 같아서요. 막 밤마다 엉아! 가디 마! 하면서 울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안 그러는 것 같아요.”

“동생들 반응이 달라져서 조금 섭섭했니?”

“네. 아, 아뇨. 그냥 조금 이상해서 물어봤어요.”

나도 모르게 동생 바보가 된 모양이었다. 하준이, 하윤이가 엉엉 울지 않는다고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다니.

이런 내 고민을 예상했음일까. 엄마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신다.

“저번에 우리 서준이가 미국에서 영화 촬영하는 동안. 아빠가 휴가 쓰고 가족 여행으로 갔었던 거 기억하니?”

“네. 이번에도 그러자고 했잖아요. 대신 저번보다 일정이 조금 더 늦는다고 들었어요. 날짜 정해지면 도현 삼촌이 비행기 표 예약해드릴 거예요.”

안 그래도 이번에도 아빠 회사에서 이야기가 나왔단다. 내가 작년에 각종 인터뷰에서 가족들이 와서 응원을 해준 덕분에 큰 힘이 되었다고 했었으니.

이미 배우 차서준이 오스카의 남자라고도 불리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의 영화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고 알려진 상태였다.

그 소식을 들은 회사에서 이번에도 아빠에게 제법 긴 여름휴가를 주었단다.

아들이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되었으니. 아빠가 회사에 오랫동안 다닐 수 있도록 사장님이 강력하게 지시했다고.

“하준이 하윤이가 몇 밤만 자고 나면. 우리 서준이를 보러 미국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그래.”

아, 이제야 왜 동생들이 괜찮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떠나도 며칠 밤만 꾹 참고 자면 나를 보러 미국으로 갈 테니 괜찮았던 셈이다.

“엄마. 동생들이 정말 돌아보면 쑥쑥 크는 것 같아요.”

“응? 우리 서준이가 그런 말을 하면. 엄마는 웃을 수밖에 없어요.”

엄마가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 서준이만큼 돌아보면 쑥쑥 자란 아이가 없었는걸.’ 이렇게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게. 6살에 아역 배우로 데뷔를 한 뒤. 12살의 나이까지 화려한 필모를 쌓은 나였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걱정하지 않도록 배려까지 하면서.

고작 울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생들이 성장했다고 대견해하는 내 모습에. 엄마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얼마 뒤 나는 동생들이 많이 컸다고 한 말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현관을 가로막고 바닥에 드러누워 엉엉 우는 하준이, 하윤이 때문에.

“흐어엉! 가디 마!”

“형아! 가지 마!”

이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 준비한 보람이 있네.

어젯밤까지만 하더라도 내 양옆에 누워 잘 다녀와. 하고 의젓하게 말하던 하준이, 하윤이었는데. 밤사이 자는 동안에 다시 귀여운 동생들로 돌아온 모양이다.

커다란 캐리어를 가지고 현관에서 인사를 하자. 그제야 내가 촬영 때문에 미국으로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났는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를 좋아하는 하준이, 하윤이가 있는데. 어떻게 동생 바보가 되지 않을까.

“자, 뚝! 형이 열 밤만 자고 있으면 돌아온다고 했잖아. 우리 하준이는 형이 했던 말 기억하지?”

“거짓말! 저번에도 열 밤 지나도 안 돌아왔잖아!”

“마자! 거짓말쟁이!”

응? 어느새 날짜 개념을 알아버린 동생들이었다. 저번에는 속았는데 이번에는 안 속네.

그런 하준이, 하윤이의 외침에 엄마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룬 우리집이었다.

“하준아. 대신 열 밤만 더 자면 아빠랑 같이 저번처럼 미국으로 여행 가기로 했잖니. 자, 하윤이도 오빠가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웃으며 보내줘야지.”

결국 두 눈이 퉁퉁 부운 하준이, 하윤이를 꼬옥 안아주고 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아. 그게 뭐야?”

“이거요? 동생들이 미국에서 촬영하는 동안 힘내라고 편지 써줬어요.”

삐뚤빼뚤한 글씨로 잘 다녀오라는 하준이, 하윤이의 편지를 받았다.

*

[지금 촬영 시작한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 있잖아. 거기 소문이 좀 들리는데.]

다들 영화 라이프 배우 라인업이 공개되었을 때 정말 놀랐잖아.

아니? 우리 차 배우 주연 영화에 저런 유명 배우들이 참여한다고? 이렇게.

그런데 최근 할리우드 관계자들 사이에 소문 하나가 돌고 있음.

내년에 영화 공개되고 나면.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또다시 오스카 밟는 거 아니냐고.

아직 촬영 단계라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 진짜 끝내준다고 배우들 입에서도 감탄이 나왔다던데?

└ 아! 나 저거 무슨 소식인지 알아. 할리우드 유명 배우 아멜리아의 SNS에 썰 하나 올라왔잖아. 남편인 제임스가 촬영만 하고 오면 감탄을 멈추질 않는다고.

└ 그거 우리 차 배우의 연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일까? 대본 리딩 때에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차 배우에게 극찬을 했다는 말이 있던데.

└ 그거 제작사에서 흘린 홍보용 멘트 아니었음? 매번 그러잖아. 누구 배우가 대본 리딩에서 감독을 홀렸다. 뭐 이런 뉴스 뿌리는 거.

└ ㄴㄴ 다른 감독이면 모를까.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을 홍보용으로 그렇게 써먹는다고? 당장 안 한다고 메가폰 집어 던질걸. ㅋㅋㅋㅋㅋㅋ

└ ㅇㅈ 다른 배우면 몰라도 차 배우잖아. 당장 연기력 하나로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을 홀린 배우인데. 아마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음.

└ 그러면 이번 영화도 꼭 영화관에서 봐야겠네요. 제목이 라이프라는 것 같던데. 대체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지 너무 기대되네요.

한국에서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라이프’에 관한 썰들로 떠들썩하고 있을 때.

“준. 그러니까 거기서 그런 감정을 담아 내뱉는 게 더 낫다는 거지?”

“네. 한번 생각해봐요. 극한의 상황에서. 그것도 죽음이라는 공포가 코앞까지 들이닥쳤는데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죽음의 직전에는 주마등처럼 모든 실수들이 펼쳐지는 거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감정은 후회.”

가르시아 알렌이 내 말에 맞다는 듯이 동의한다. 확실히 박우형, 김정범과 함께 대본 분석을 한 시간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주인공인 제이스의 시선에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을 둘러싼 극 중 캐릭터의 시선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상하네.”

그런데 가르시아 알렌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왜요? 혹시 다른 더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요?”

“아니, 그럴 리가. 캐릭터 분석에 관해서는 나조차 깜짝 놀랄 만한 분석을 해온 사람이 준인데. 그런데 준을 보고 있으면 꼭···.”

꼭? 내가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자. 가르시아 알렌이 내 눈을 바라보면서 말을 잇는다.

“방금 말했던 걸 경험해본 사람처럼 이야기한단 말이지. 또 표현도 연기라고 보기엔 그 이상의 것이 느껴지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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