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70화 (170/220)

170화

백상예술대상.

올해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영화 부분은 몰라도. 이미 TV 부문은 결정되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곤 했었다.

작년 말 넷티비에서 공개된 ‘왕자의 난’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기 때문. 실제로 올해 초부터 각종 시상식을 휩쓸고 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긴장감을 감출 수 없었다.

“후우.”

“서준아, 왜 심호흡을 하고 그래?”

오늘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두고 쟁쟁한 선배님들과 경쟁하기 때문이 아니다. 또 남자 예능상 후보에 올라서도 아니었다.

“누나. 저 시나리오 나온 거 회사에서도 다 알죠?”

“당연히 알지. 미국에서 사람이 직접 건너와 대표님을 만났는데. 이미 회사 내에 소문이 쫙 퍼졌어.”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완성한 시나리오가 내게 도달했다는 소문이. 회사를 넘어 김정범에게까지 들어갔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오늘 형들을 만났을 때 시나리오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의 눈이 희번득하게 변할 테니 말이다.

“아, 박우형 씨 때문에 그렇구나.”

데뷔 이후부터 나와 함께 해온 매니저가 수진 누나였다. 척하면 척이라고. 이제는 내 표정만 보더라도 얼추 알아차리는 수준까지 도달한 셈.

“맞아요. 사실 우형이 형에게 시달린다고 싫다는 게 아니라.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서 그래요. 하준이랑 하윤이가 기다릴 텐데.”

“그건 그렇네?”

월드 스튜디오처럼 본인 외엔 누구도 보여줘선 안 된단 내용의 각서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촬영 전인 영화 내용이 외부에 흘러 나가선 안 된다.

하지만.

형들이라면 오히려 보여주고 시나리오 분석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터였다.

내 생각이 항상 정답이 될 순 없다. 최대한 정답에 가까운 연기를 준비해서 가야만 했다. 나 때문에 촉박한 촬영 일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니.

영화 촬영이 시작하기 전까지. 아니,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함께 대본 리딩을 하기 전까지 완벽하게 대본 분석을 마치는 것이 필수였다.

다른 배우도 아닌 김정범과 박우형이라면. 누구보다 지금 상황의 내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겠지만 말이다. 그 문제란 오늘 내가 과연 집에 들어갈 수 있겠냐는 것이겠지.

우웅. 벌써부터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은.

[우형이 형]

지금쯤 김정범과 만났을 박우형이었다. 그리고 나는 형들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기 위해 만나러 가고 있었다.

괜찮겠지?

*

이미 채팅창은 시끌시끌한 상태였다.

└ 아니 ㅋㅋㅋㅋㅋㅋㅋ 왜 우리 차 배우의 이름이 TV 부문 남자 예능상 후보에도 올라가 있는 거임? 이거 대체 무슨 일임? ㅋㅋㅋ

└ 힐링 가족의 파급력을 모름? 차 배우네 가족이 다녀간 관광지들 다 대박이 났잖슴. 특히 잘 안 알려진 지방 관광지 위주로 다녀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최근 힐링 가족 파급력이 장난 아님.

└ 맞아요. 차 배우 효과라고 기사도 많이 났을 정도잖아요. 거기에 가족 예능 후발주자인 CBS 힐링 가족을 방송사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로 올려버렸고요.

└ 시청률 장난 아니더라. 차 배우 효과라는 말이 예능판에서도 먹힐 줄은 몰랐음. ㄷㄷ 방송 기간은 아직 짧아도 다른 예능상 후보에 밀리지 않는다는 게. ㄷㄷㄷ

└ 밀리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그냥 차 배우가 남자 예능상 탈지도 모르겠던데요. 최근 예능 프로그램이 꾸준하게 시청률 20프로 이상 찍은 게 없을 텐데요.

└ ㅇㅈ 그래서 사람들이 올해는 차 배우의 해라고 하잖아. ㅋㅋㅋ 왕자의 난으로 시상식 쓸어 담고. 또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영화 촬영도 앞두고 있고. ㄷㄷ

TV 부문 최우수 연기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질 않았다.

이미 2, 3월에 있었던 해외 시상식들로 인하여. 몇 달 뒤에 있을 ‘골든 글로브’. ‘에미상’에서 차서준이 쾌거를 이루는 게 아니냐는 말이 솔솔 나오고 있을 정도였으니.

다만, 이번에 후보가 공개되면서 난리가 났었던 TV 부문 남자 예능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다행히 반차를 쓴 덕분에. 오늘은 본가에 내려와 엄마와 함께 시상식을 기다리고 있는 김시율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얘는. 당연히 다 우리 금동이거 아니겠어? 네 아빠도 주말만 되면 힐링 가족 보려고 TV 앞에서 기다려.”

역시나 금동이맘인 김시율의 엄마는 이미 차서준이 수상한 거나 다름없다는 반응.

“그래도 후보들 보니까 다들 만만치가 않던데? 솔직히 나도 우리 차 배우를 응원하긴 하는데. 누가 탈지 잘 모르겠어.”

현재 채팅창 반응들도 그랬다. 후보에 오른 만큼 다들 차서준이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다른 후보들 역시 누가 받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김시율은 막 도착한 치킨 박스를 오픈하며 엄마에게 물었다.

“오늘 왕자의 난이 몇 개 부문 후보에 올랐는지 알아?”

“엄마도 알지. 우리 금동이 팬클럽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떠들었는데. 8개잖니.”

“역시 우리 엄마야. 이미 다 알고 있네. 우리 차 배우는 예능에도 2개가 더 올랐어. 진짜 대단한 거 같아.”

그랬다. 백상예술대상에서 발표한 각 부문 후보들 중에서. ‘왕자의 난’이 들어간 부문이 8개. 차서준은 TV 예능 부문에 2개를 추가해서 총 10개에 연관이 있었다.

시작은 극본상부터였다. ‘왕자의 난’ 대본을 쓴 박정아 작가가 시상 무대 위에 올라 마이크 앞에서 소감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올라오기 시작하는 채팅들.

└ 역시 박정아 작가도 우리 차 배우를 언급하네요. 오늘 우리 차 배우가 총 몇 번이나 언급되려나요?

└ 차 배우 관련 후보가 총 10개이긴 한데. 그중 2개는 차 배우 본인이 올라와서 안 될 테고. 몇 관왕 차지하느냐에 따라 달린 것 같을 듯요. ㅋㅋㅋㅋㅋㅋㅋ

└ 박정아 작가가 지금 말하네요. 자기가 머릿속으로 떠올렸던 세자보다. 차 배우가 연기로 보여준 세자가 훨씬 좋아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요.

└ 시즌2 이야기 나오던데. 우리 차 배우가 없어서 좀 아쉬울 듯싶어요. ㅠㅠ

└ ㄴㄴ 시즌1의 주인공이 세자인 차서준이었다면. 시즌2는 박우형이 중심이 될 거라는데. 그러면 다음 시즌도 기대해볼 만한 것 같아요.

치킨 박스 옆에 놓인 태블릿 PC에는 실시간으로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김시율과 엄마는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며 TV와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역시 조연상은 김정범이 받네.”

“좌의정으로 극 중 긴장감을 제대로 줬잖아. 시즌2에선

왕과 대립각을 세운다는데. 어, 엄마?”

방금 전까지 김시율과 대화를 나누던 엄마였는데. 어느새 옆을 보니 핸드폰을 열심히 누르고 계신다. 그와 동시에 태블릿 화면에 떠오르는 금동이맘 채팅.

└ 역시 우리 금동이의 연사모 형들이네요. 정범 배우가 우리 금동이를 계속해서 언급하네요.

그런 작은 소란이 잠시 있은 뒤.

예능 작품상을 CBS 가족 예능 ‘힐링 가족’이 수상했을 때. 사람들의 머릿속에 서서히 한 가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차서준이 TV 부문 남자 예능상을 타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이주연 PD가 시상식 무대 위에 올라와 수상 소감을 말하기 시작하자.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지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온다.

└ 진짜 우리 차 배우가 예능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ㄷㄷ

└ 솔직히 가능성은 더 올라간 듯? 방금 힐링 가족이 예능 작품상 받으면서 언급되었잖아요. 긍정적인 파급력을 보여준 프로그램이라고.

└ 맞음. 그 파급력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차 배우네 가족이었는데. 진짜 될지도 모를 거 같은데?

└ 받으면 최초 아닌가요? 지금까지 백상에서 예능상이랑 최우수 연기상 같이 받았던 사람이 있었나요?

└ 있겠냐? 그냥 받으면 차서준이 써내려가는 최초 기록에 한 줄 더 추가되는 거지. 그런데 최우수 연기상을 줘야 하니 안 줄 듯. ㅋㅋㅋㅋㅋ

잠시 채팅창을 보던 김시율은 화들짝 놀라며 엄마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 싸우면 안 돼.”

“얘는. 엄마가 누구랑 싸운다고 그러니. 그냥 금동이를 향해 공격적인 말을 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거란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토록 뜨거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여태까지 동시에 수상한 사람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딸. 우리 금동이 진짜 대단하지 않니? 고작 12살인데 기록을 써내려가다니.”

“올해보다 내년이 더 대단할지도 몰라 엄마. 여름 방학 시작하면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랑 영화 찍으러 가잖아.”

잠시 후.

모두가 설마설마하던 남자 예능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남자 예능상···. 축하드립니다! 차서준님입니다.

└ 와씨. ㅋㅋㅋㅋㅋㅋ 진짜 차 배우가 탔네요? ㅋㅋㅋㅋ

└ 지금 수상 이유 설명해주네요. 힐링 가족을 통해 예능 그 이상의 좋은 영향력을 보여주었다고요.

└ 차 배우는 정말 자기가 탈 줄 몰랐나 본데요? 카메라가 자기 잡으니까 화들짝 놀라는데? ㅋㅋㅋㅋㅋㅋ

└ 귀엽네요. ㅋㅋㅋ 그런데 우리 차 배우 한 번도 시상식에서 자기 이름 불러졌다고 놀란 적이 없지 않았나요?

└ 진짜 받는다고? 이러면 최초이자 앞으로도 기록을 깰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거 같은데? ㅋㅋㅋ

카메라에 잡힌 배우 차서준이 자신의 이름이 수상자로 호명된 순간.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 음. 안녕하세요. 힐링 가족 서준이네 가족으로 출연 중인 배우. 아니지. 여기선 예능인 차서준이겠네요. 정말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제가 받을 줄 정말 몰라서 수상 소감을 준비를 안 했는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받을 줄 몰랐나 보네. 무대 위에서 말 더듬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은데. ㅋㅋㅋ

└ 당연하지. 차서준 팬들이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랬던 거지. 다른 후보들이 워낙 쟁쟁했는데.

└ 처음으로 수상 소감 말하면서 당황하는 거 같네요. ㅋㅋㅋ 예능상을 수상하니 예능을 보여주는 우리 차 배우 ㅋㅋㅋ

└ 귀엽네요. 힐링 가족에서 동생들이랑 보여주는 모습들도 처음이고. 수상 소감에서 저런 모습 보여주는 것도 처음인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 차 배우 오늘 밤에 이불킥 좀 찰 것 같은데요? 벌써 당황하는 차 배우 짤방 떠서 올리기 시작함. ㅋㅋㅋ

당황스러움과 함께 차서준이 예능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내려가고.

“오늘 기사 엄청 나오겠네.”

“벌써 실시간으로 쓴 기사 올라오고 있대. 말보다 기사가 더 빨라.”

김시율과 엄마는 벌써 올라온 ‘예능상 수상자 배우이자 예능인 차서준.’ 제목의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내려갔던 차서준이 다시 시상 무대 위에 올라온 것은. TV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발표했을 때였다.

백상예술대상 최초로 예능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사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넷티비 ‘왕자의 난’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5관왕 쾌거!

- 백상예술대상 대상 김주철 감독, 박정아 작가 ‘왕자의 난’ 수상

- 배우 차서준 ‘힐링 가족’으로 예능 작품상, 남자 예능상 수상. ‘왕자의 난’으로 최우수 연기상 수상.

- 백상예술대상 최초 예능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동시에 수상한 배우이자 예능인 차서준.

5월에 있었던 백상예술대상이 끝나고 나서. 예년보다 훨씬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었다.

백상예술대상 최초로 예능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모두 수상한 배우 차서준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정말 많은 축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거기에 시나리오 소식을 듣고 흥분한 박우형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이제 와 생각해보면 재밌는 일화도 있었다. 정말 재밌었지.

“주말에 대본 리딩 때문에 미국에 다녀오는 거지?”

“네. 형들,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뭘. 오히려 재밌었는데.”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대본 리딩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시간이 된 것.

“우형이 형. 형이 봤을 때 이번 서준이 영화 어떨 거 같아?”

김우승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다. 박우형과 김정범이야 내 대본 분석을 도와줬다지만. 김우승은 육아에 바빴었으니까.

그런 김우승의 질문에.

“대본 리딩 때부터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 것 같은데.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을 포함해서.”

박우형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그것도 확신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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