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하준이, 하윤이와 함께 ‘힐링 가족’ 출연을 결심한 것은.
‘디멘션 소서러’와 ‘왕자의 난’이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한 뒤로 한동안 외출에 제약이 걸렸던 나였다. 오죽하면 동생들과 약속했었던 주말 나들이조차 못 갔을까.
그런데.
이번 가족 예능에 출연하는 동안 했던 내 발언들이 기사화되면서. 더 이상 무례하게 요청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
또 하나 더.
“삼촌. 정말 이 많은 것들이 다 이번에 새롭게 들어온 광고 제안들이에요?”
“그래. 서준이 네가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이번에 들어온 것들은 지금까지 오던 것들과는 조금 달라.”
정말 그랬다. 후발 주자였던 CBS 주말 예능 ‘힐링 가족’이 배우 차서준 덕분에 대세 예능이 되어버렸다. 까탈스럽던 예능국장이 미소천사가 되어버렸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
주말마다 달성하는 20%의 시청률은.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광고들의 단가조차 달라지게 만들어주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방금 서도현의 말처럼 배우 차서준에게 들어오는 광고들의 종류가 조금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 소식을 하준이랑 하윤이가 들으면 엄청 기뻐할 거 같아요.”
“그렇지. 집에서도 하준이랑 하윤이 힐링 가족 출연료가 나오면서 엄청 기뻐하셨다면서?”
“맞아요. 동생들 이름으로 된 통장에 차곡차곡 출연료가 쌓이고 있으니까요. 엄마, 아빠도 좋아하고. 또 하준이랑 하윤이도 TV에 나온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이번에는 그 출연료에 광고료까지 추가될 거고. 금액도 훨씬 커질 테니 부모님이 더 기뻐하실 거다.”
‘힐링 가족’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출연자 가족들이 바로 배우 차서준과 동생들이었다. 주말에 방송이 끝나자마자 실시간으로 기사들이 쏟아질 정도,
그런 인기에 힘입어 광고주들이 배우 차서준뿐만이 아니라. 동생인 하준이, 하윤이까지 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 찍었던 피자 브랜드 광고도 들어왔네요? 안 그래도 동생들이 요즘 여기 피자를 엄청 좋아하고 있는데. 딱 거기서 제안이 오다니.”
“그래? 예전에 금동이 덕분에 브랜드가 단번에 성장한 곳이었으니. 이번에 하준이, 하윤이까지 해서 들어왔더구나.”
피자 말고도 재밌는 것도 있었다. ‘힐링 가족’에서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보여준 나와 동생들의 케미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자동차 광고까지 들어온 것.
“어? 저는 빼고 하준이랑 하윤이만 원하는 광고들도 있네요?”
“아무래도 배우 차서준의 광고비가 만만치 않으니까. 하준이, 하윤이만 원하는 제품들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의 금액이 부담스러울 거다.”
맞는 말이었다. 예능까지 점령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몸값이 천장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나였다.
특히 여름방학부터 시작될 할리우드 거장 세르지오 디난테와의 영화 촬영까지 알려진 상황.
그 때문에 몇몇 어린이 제품 관련 광고주들은 하준이, 하윤이만 원한 셈이다. 이것도 동생들에겐 나쁘지 않을 것 같고.
서도현이 들어온 수많은 광고 제안들을 일차적으로 걸렀기에. 어떤 것을 고르더라도 나와 동생들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것들만 남아있었다. 그것도 제법 많이.
“일단 삼촌이 일차적으로 추리긴 했는데. 중요한 건 광고에 출연할 동생들의 의사니까. 집에 가서 보여주고 나서 마저 이야기하자.”
“네. 동생들이 원하는 걸 하게 해주고 싶어요. 삼촌 말처럼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도 보여드리고. 결정되면 말씀드릴게요.”
광고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안건은 올 여름방학부터 시작될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영화에 관한 것이었다.
“일단 스케줄은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곧바로 미국으로 넘어가는 걸로 잡았다. 그리고 이거. 드디어 완성되었단다. 어제 직원이 직접 가지고 왔어.”
“어? 드디어 온 거예요?”
“그래.”
드디어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 배우 차서준의 나이에 맞춰 수정 작업이 진행되었던 그 시나리오가 말이다.
며칠 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통화를 할 때. 나를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는데. 막상 확인한 그 선물은 정말 깜짝 놀랄 만했다.
그 전에.
“삼촌이 봤을 땐 어땠어요? 기존의 주인공과 제 나이 차이로 인한 변화가 생겼잖아요.”
서도현의 의견을 듣고 싶었다. 누구보다 작품을 보는 눈이 뛰어난 사람이 서도현이었으니까.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가장 먼저 주인공의 나이, 성격을 비롯한 설정들. 그로 인한 대사의 변화. 주변 캐릭터들과의 관계까지.
큰 뼈대는 그대로일 테지만. 몇 달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을 정도로 세부적인 내용들은 많이 바뀌게 되었다고 했다.
내 물음에도 서도현에게 대답이 없다. 혹시 주인공의 변화로 인하여 전보다 못해진 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직접 보면 알겠지만. 30대의 주인공보다 서준이 널 모티브로 한 주인공이 훨씬 좋아. 오히려 작품성이 더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도현이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냐는 듯 말을 잇는다.
“정말요?”
“그래. 전에 수정되기 전의 시나리오도. 읽는 순간 아, 이래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하고 싶어 했구나. 이걸 느꼈는데. 이번에 수정된 시나리오를 보고 나니까.”
보고 나니까?
“내년이 기대가 될 정도더구나.”
서도현이 정말 기대가 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
“자, 하준이랑 하윤이. 잠깐 이리로 올래?”
내가 부르자. TV에 나오는 ‘힐링 가족’ 속 자신들의 모습을 정신없이 보던 하준이, 하윤이가 나를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지금부터 하는 설명 잘 들어야 돼. 요즘 TV에서 힐링 가족에 나오는 거 말고. 내가 광고에 나오는 거 본 적 있지?”
“응!”
“엉!”
무슨 말이 필요할까. 최근 광고계의 블루칩이라 평가받는 배우가 차서준이었는데.
최대한 선별해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채널을 돌릴 때마다 TV에 배우 차서준이 나온다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덕분에 형이 TV에 자주 나온다며 좋아하는 하준이었다.
“그런 광고에서 우리 하준이랑 하윤이를 모델로 찍고 싶대. 하준이, 하윤이만 원하면 형처럼 TV에 자주 나올 수 있는 거야.”
아무래도 계약이니, 광고주니. 이런 단어와 설명들은 동생들에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최대한 심플하게 설명해야지.
“정말?”
“증말?”
내 설명에 동생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진다. ‘힐링 가족’이 주말에만 나온다고 아쉬워했었는데.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다 재방송이 나올 때마다 눈을 빛내며 보던 동생들이었다.
방송 프로그램 사이사이 나오는 광고들에 자신들이 나올 수 있다고 하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그래. 여기 있는 것들이 우리 하준이, 하윤이를 원하는 광고들이야. 하고 싶은 걸 고르고 나서. 엄마, 아빠에게 말씀드려서 결정해보자. 알았지?”
“좋아!”
“저아!”
원래는 엄마, 아빠에게 먼저 보여드리고. 그다음 동생들에게 말을 해주려고 했었으나. 생각이 바뀌었다.
먼저 동생들이 원하는 광고들이 무엇인지 확인한 다음. 엄마, 아빠에게 말씀을 드려볼 생각이었다.
하준이, 하윤이가 내가 보여주는 것들을 신중한 얼굴로 살펴본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형아. 이건 어떤 거야?”
“이곤?”
서도현이 하준이, 하윤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들어온 제안들을 어린이용으로 따로 만들어서 건네주었다.
그렇게 동생들과 함께 들어온 광고들을 보면서.
“그러니까 이건···.”
내가 친절히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우와!’ ‘대단해!’ 이런 동생들의 반응과 함께하는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잠시 후.
“어머? 그러면 우리 하준이, 하윤이한테도 광고가 들어온 거니?”
“네. 저랑 같이 찍길 원하는 것도 있고. 또 하준이랑 하윤이만 원하는 광고들도 있어요.”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 아빠의 얼굴에 기쁜 미소가 떠오른다.
“일단 하준이랑 하윤이가 어떤 광고에 나가고 싶어 하는지 아까 물어봤거든요. 하고 싶다는 것들은 모서리를 살짝 접어두었어요.”
“이거구나. 우리 하준이랑 하윤이가 하고 싶은 게 많네?”
내 설명에 잠시 제안서들 모서리를 살펴보던 아빠가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 많이 접혀 있는 것들을 보아하니 꽤나 많이 골랐다는 걸 아신 모양.
“네. 일단 도현 삼촌이 검토하고 넘겨준 것들이라. 다들 괜찮은 것들뿐이에요. 많다고 걱정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응? 이것도 있네?”
아빠가 말한 것은 자동차 광고였다. ‘힐링 가족’에서 나와 하준이, 하윤이가 보여준 차 안 케미 덕분에 들어온 것.
한 가지 재밌는 점은.
“엄마가 타고 다니는 차네?”
“맞아요. 저쪽에서 특별히 우리 가족이 타고 다니는 모델로 광고 제안을 한 것 같아요.”
엄마가 타고 다니는 차량 모델로 광고 제안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SUV였기 때문에 광고 효과도 제법 클 거라고 판단했는지. 들어온 광고들 중에서도 조건이 가장 좋았다.
“타지도 않는 차를 광고를 찍기 위해 선택하면 좀 그럴지도 모를 텐데. 아빠가 보기엔 이건 좀 괜찮을 것 같은데?”
“하준이랑 하윤이도 이 사진을 보자마자 어? 우리 차다! 이렇게 소리쳤어요.”
내 추가 설명에 엄마, 아빠의 입에서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어느새 하준이, 하윤이 성대모사의 달인이 된 나였다.
“엄마, 아빠는 우리 서준이랑 하준이, 하윤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응원한단다. 엄마 마음 알지?”
“응!”
“엉!”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동생들이 잘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나선 엄마를 꼬옥 안아주기까지.
“그러면 이제 좋아하는 피자를 시키면. 우리 하준이, 하윤이 얼굴이 있는 박스를 받을 수 있겠네?”
“너무 좋아!”
“너무 저아!”
신이 나서 방방 뛰는 동생들을 보고 있던 아빠가 불쑥 물었다.
“하준이랑 하윤이는 광고까지 찍어서 돈 벌면 뭐 하고 싶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는지. 하준이랑 하윤이가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긴다.
“웅.”
“후웅.”
찰칵. 그 모습을 잊지 않고 동영상으로 담아두었다. 사진은 저 귀여운 동작들을 담아내질 못하니.
“엄마, 아빠. 그리고 형아 맛있는 거 사줄 거야!”
“나도! 피자! 깨!”
그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우리 가족에게 웃음꽃이 피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녁은 당연히 대게 사랑꾼들을 위한 대게 한 상이었다.
*
스케줄이 예능 하나만 출연하고 있으니까. 올해는 제법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네? 누가 이런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우 차서준에게 있어 이번 연도는 생각보다 바쁜 일정들이 많았다.
넷비티에서 공개되었던 ‘왕자의 난’이 각종 시상식에 초청되었기 때문.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말이다.
2월 미국 배우조합상에 비영어 드라마 최초 노미네이트에 이은 3개 부문 수상.
3월에 있었던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 3개 부문 수상까지.
그 사이사이 각종 시상식들은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 배우 차서준의 해? 해외 각종 시상식에서 배우상 수상을 이어가.
이런 기사가 쏟아지고 있을 정도였다. 특히나 마지막에 죽음으로 대미를 장식한 배우 차서준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2, 3월에 있었던 쾌거가 말해주고 있었다. 몇 달 뒤에 있을 올해 ‘골든 글로브’와 ‘에미상’에서 ‘왕자의 난’이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팬들의 기대뿐만이 아니라. 이미 각종 기사들에서 그러 뉘앙스를 살짝살짝 언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전.
‘백상예술대상’이 후보를 발표했을 당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과 기사들이 폭발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 응? 왜 우리 차 배우가 TV 부분 최우수 연기상뿐만 아니라 예능상 남자 부문에도 이름을 올린 거임? ㅋㅋㅋㅋㅋ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차서준의 이름이. 예능상 남자 후보에 또다시 언급되었기 때문.
그렇게 모두의 관심 속에서.
‘백상예술대상’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