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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68화 (168/220)

168화

미국에서 기사가 터지기 얼마 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조만간 제작사를 통해 기사가 나갈 거라고.

때마침 타이밍도 좋았다. 그 전화가 온 다음 날이 ‘힐링 가족’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으니까.

“피디님.”

“응? 왜요 차 배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네. 피디님과 단둘이 나눠야 할 일이 하나 생겼어요.”

내 말에 끝나기도 전에 이주연 PD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진다. 혹시 출연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지 걱정되는 모양.

‘저번 하준이 연기 장면이 문제였나? 그래도 시청자들 반응도 귀엽다고 엄청 좋았는데.’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호, 혹시 출연 관련 문제에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무래도 피디님이 가장 먼저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얼추 맞는 말이긴 했다. 당장 여름방학 동안에 영화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면. 그 기간 동안 ‘힐링 가족’ 출연이 어려웠으니까.

하준이, 하윤이 모두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스타가 된 덕분에 TV 출연을 좋아했지만. 몇 달 동안 공백은 욕심이었다.

혹시나 주변에 듣는 이가 있는지 고개를 홱홱 돌린 이주연 PD였으나.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음. 잠시만. 나 마음에 준비 좀 하고 들을게요.”

후우후우. 이주연 PD가 심호흡을 한다. 내 입에서 그 어떤 폭탄선언이 터지더라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러나 흔들리는 동공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 당장 ‘힐링 가족’의 기둥과 뿌리를 담당하고 있는 출연자 가족이 차서준네 가족이었으니까.

“들을 준비됐으니 말해도 괜찮아요.”

“차기작이 결정되었어요. 조만간 기사도 나갈 거고요.”

“차기작이요?”

동생들 때문에 당장 하차하겠다는 말이 아닌 차기작이란 단어가 나오자. 이주연 PD가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마 차기작을 한국에서 할 거라는 생각에서 나온 반응인 듯싶다.

아직 안심하기엔 이른데.

“네. 저번에 미국에 갔을 때. 만났던 감독님들 중 한 분이 절 좋게 봐주셔서. 그분이랑 차기작을 같이 하기로 했거든요.”

“···어?”

역시. 폭탄선언을 맞은 이주연 PD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힐링 가족’의 출연자인 나에 대한 소식들을 모두 챙겨보고 있는 이주연 PD였다. 그러니 내가 미국에서 누굴 만났었는지도 잘 알고 있는 상태.

“그러니까. 저번 미국에서 사진을 같이 찍었던 감독님들 중 한 분이랑 차기작을 한다고요?”

“네.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님이요. 며칠 뒤에 기사가 나갈 거예요. 한국에서 말고 미국에서 먼저요.”

지금 이주연 PD가 당황하는 건. 배우 차서준이 저번 ‘디멘션 소서러’ 촬영 때처럼 방학 기간 동안 미국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

그 기간 동안은 ‘힐링 가족’에 차서준 가족의 공백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저 얼굴에 걱정이 보이지 않는 건. 촬영을 위해 떠나는 여름방학이 오기 전까지 내가 하차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

만약 그전에 하차를 원했다면. 그 이야기부터 꺼내고 시작했을 나란 걸 알고 있는 이주연 PD였으니까.

“저, 정말요? 그 오스카의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 맞죠?”

“네. 아직 절대로 새어나가면 안 되는 내용이니까. 며칠 뒤 미국에서 먼저 발표할 때까지 비밀로 해주셔야 돼요.”

“당연하죠. 역시 우리 차 배우. 와,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럴 줄이야.”

이주연 PD는 직접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는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은. 아마 이 소스를 어떻게 프로그램 홍보에 써먹을 수 있을지에 관한 것일 터였다.

얼마 뒤 기사가 나가고 나면. 현재 배우 차서준이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에 관심이 집중될 테니까.

“기사가 나가기 전까진 피디님만 알고 계셔야 돼요.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비밀을 지키기 어려우니까요.”

“당연히 우리 차 배우가 날 믿고 말했는데. 기사가 뜨기 전까지 절대로 입 밖에 안 꺼낼 테니 걱정 마세요.”

비밀엄수의 약속을 받은 뒤. 나는 생각해둔 떡밥 투척에 관한 내용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늘, 내일 촬영하는 동안에 차기작에 관한 소스를 살짝살짝 말해준다는 거네요. 나중에 기사가 터지고 나면 짤방들이 각종 커뮤니티에 쫙 퍼질 수 있게.”

“네.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피디님과 함께할 거잖아요. 우리 프로가 더 잘 되어야죠.”

내 말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 이주연 PD였다.

확실히 이주연 PD의 입은 무거웠다.

“하준아, 하윤아. 만약에 형이 저번처럼 오랫동안 미국으로 떠나면 어떨 것 같아?”

“싫어! 가지 마!”

“시러! 가디 마!”

내 농담과 동생들의 반응에. 지켜보던 작가들과 스태프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주연 PD가 있었다. 아마 편집 과정에서 이 장면을 잘 살리겠지.

배우 차서준의 차기작 소식이 발표되고 나면. 오늘 촬영 분량들을 통해 ‘힐링 가족’이 다시 한번 주목받을 테니 말이다.

“서준이 동생들이 엄청 잘 따르네.”

“저번 미국 촬영 다녀오고 나서. 한동안 옆에서 같이 잤다잖아요.”

“안 그래도 이번에도 미국 다녀왔잖아. 감독들이랑 찍은 사진 때문에 기사도 쏟아졌고.”

“그거 자료 구해서 살짝 넣죠. 방금 한 말이랑 보여주면 괜찮을 거 같은데.”

당연히 아직 그 소식을 모르는 작가들과 보조 PD들의 입에선. 사이좋은 차서준의 가족들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 준. 내일 기사가 나갈 걸세. 아마 거기와 여기가 시차가 있다지만. 제법 시끌시끌해질 테니 미리 알고 있게나.

“네, 감독님. 작업은 잘 되어가고 있으세요?”

- 당연하지! 배우가 감독에게 영감을 줬는데. 아마 이달 내로 완성된 시나리오를 보내주겠네.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할리우드 거장과 배우 차서준의 차기작 소식이 발표된다는 것.

시나리오 작업 이야기는 간단했다. 기존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쓴 주인공의 나이는 30대였다.

아무래도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나이가 그쯤이 가장 많았으니까. 그런데 주인공이 아직 12살인 내가 되었으니 전체적인 수정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

미국에서 시작된 소식은 국내에 도착할 때쯤 광풍이 되어버렸다.

당연히 미국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난리가 났다. 다른 감독도 아닌 세르지오 디난테였다.

현존하는 수많은 영화감독들 중에서 가장 많이 오스카의 레드카펫을 밟았다고 평가받는 감독.

2년 전에 그와 함께했던 배우가 결국 오스카의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였다.

- 차서준의 차기작은 할리우드에서? 미국에서 나온 깜짝 소식.

- 배우 차서준! 오스카의 남자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차기작 주인공으로 발탁!

- 할리우드 탑스타들도 원했던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시나리오. 그 주인공은 배우 차서준.

-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 “그 찬란한 재능을 보고도 어찌 같이하지 않겠는가. 나는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한 것.”

└ 미쳤다!!! 진짜 차 배우의 차기작 감독이 세르지오 디난테 맞음? 오스카의 남자라고도 불리는 그 감독 맞냐고!!!

└ 맞음. ㄷㄷ 저번에 할리우드 거장들과 찍은 사진 올라왔을 때. 누가 농담으로 세르지오랑 같이 작품 하나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헛소리하지 말라고 그렇게 욕먹었는데 진짜였네. ㄷㄷㄷ

└ 지금 할리우드에서 관련 썰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차 배우 직접 보고 싶어서 크리스 앤더슨 감독에게 부탁했다고 함.

└ 미쳤네. 우리 차 배우에게 이제 국내가 좁다고 느끼긴 했는데. 할리우드 거장에게 러브콜을 받을 정도라니. ㅋㅋㅋㅋㅋ

└ 저거 시나리오 탐낸 할리우드 탑스타들이 많았대요. 그런데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마음에 맞는 배우가 없어서 몇 년 동안 묵혀두었단 말이 있음. ㄷㄷㄷㄷ

└ 아니. 할리우드 첫 진출작은 크리스 앤더슨 감독과 주연급 메인 빌런을. 차기작은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주인공. 실화냐???

그리고 그 뜨거운 관심은. 당연히 배우 차서준이 출연하고 있는 ‘힐링 가족’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배우 차서준이 미국에 다녀온 다음 촬영 분량을 다시 보던 팬들은. 지나가듯, 또는 농담처럼 차기작 관련 이야기를 흘리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여기 보면 차 배우가 힐링 가족에서 슬쩍 말했는데? ㅋㅋㅋㅋㅋ]

└ 진짜네요? ㅋㅋㅋ 무슨 이스터 에그도 아니고. 차 배우가 동생들이나 형들에게 말하는 걸 자세히 보면. 차기작 관련 이야기를 꺼낸 적이 많네요. ㅋㅋㅋ

└ 지금 힐링 가족 다시 보면서 찾는 사람들 있음. 동생들에게 형이 미국에 가면 어때? 이런 대사들 계속 발굴 중. ㅋㅋㅋㅋ

└ 이러면 이번 주말에 하는 힐링 가족도 안 볼 수가 없네요. 영화 내용이야 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깨알 같은 재미가 있잖아요.

└ 운전수로 나오는 연사모 형들과 미국 썰도 푸네요. ㅋㅋㅋ 할리우드 거장들 첫인상 이야기도 하고. 이거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 다시 보니까 느낌이 다른데요?

└ 그나저나 동생들 반응을 보면. 디멘션 소서러 때처럼 오랫동안 미국에 가지 말라고 하는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괜찮지 않았다.

할리우드 거장 세르지오 디난테와 배우 차서준의 차기작 소식에 광풍이 불고 있을 때. 우리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아 미워!”

“엉아 미어!”

내가 ‘디멘션 소서러’ 때처럼 영화 촬영을 위해 오랫동안 미국으로 떠나야 된다는 사실을 동생들이 알게 된 것.

덕분에 오랜만에 하준이와 하윤이의 등만 바라보고 있는 나였다.

“하준이, 하윤이. 아직 미국에 가려면 몇 달이나 남았는데. 그때까지 이렇게 나랑 말 안 할 거야?”

“흥!”

“흥!”

이런. 제법 완강했다. 보통 이쯤 되면 등을 보여주더라도 살짝 각도가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오늘은 미동도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원래 이 방법은 잘 쓰지 않는 건데. 지금 상황을 해결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주말에 동물원이랑 수족관에 놀러 갈까?”

쫑긋. 등만 보여주고 있는 하준이와 하윤이의 귀가 쫑긋한다.

‘힐링 가족’의 출연 결정은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서준이 너 왜 갑자기 가족 예능 출연을 결심한 거야? 조금 쉬면서 동생들과 놀러 다니고 싶다고 했잖아.

-원래 주말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이랑 나들이를 자주 다니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인기가 많아도 너무 많아지면서 그게 힘들어졌어요.

배우 차서준이 나오는. 그것도 항상 수상소감 마지막을 장식한 동생들과의 예능 출연은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힐링 가족’에서 내가 말했다.

-그런데 영화에 이어, 드라마까지 전 세계적으로 대박이 나고 나니까. 동생들이랑 놀러 가도 사인이랑 사진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금방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어요.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절 좋아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 발언은 곧바로 기사로 나갔다. ‘어린 배우를 향한 팬심이 아닌 무례? 어린 배우에게 조금의 배려가 필요할 때.’ 이런 식의 기사들이 쏟아진 뒤. 극성이던 요청이 잦아들었다.

그러니 이제 엄마, 아빠, 하준이, 하윤이와 함께 동물원과 수족관에 간다하더라도. 전처럼 시달리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징짜? 갈 꺼야?”

“형아! 너무 좋아!”

효과는 매우 훌륭했다. 등만 보여주던 하준이, 하윤이가 ‘형아 최고!’ ‘엉아 체고!’ 하면서 안아준 것.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벌써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지나면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과 영화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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