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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64화 (164/220)

164화

나를 만난 크리스 앤더슨 감독은 미안한 표정부터 지었다. 당장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른 셈이 되었으니.

“미안하네. 그 친구가 준을 조금이라도 빨리 봐야겠다고 얼마나 성화를 내던지.”

“괜찮아요. 저는 감독님이 오랜만이라 정말 보고 싶었는데. 하루라도 더 빨리 봐서 좋은데요?”

“뭐? 하하. 준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기쁜걸.”

방긋 웃으며 오히려 보고 싶었다는 내 말에.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입에서 웃음이 터진다.

아쉽게도 서도현은 나를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집에 데려다주고선 근처 호텔로 향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은 사람은 나 하나였으니까.

한국에서야 구름엑터스 대표라는 명함이 꽤나 묵직했겠지만. 그 무게가 이곳 할리우드 감독들 사이에 함께하기엔 아직 부족했다.

그때였다.

“뭐하는 겐가! 빨리 보여주지 않고!”

크리스 앤더슨 감독 어깨 너머로 누군가의 구시렁거리며 툴툴대는 말이 들려온 것은.

“거참. 이제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양반이. 그것도 못 기다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나를 보며 눈을 찡긋한다. 마치 저 양반도 곧 처음의 자신처럼 내게 반할 거라고 작게 속삭이면서.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뒤를 따라가자. 드디어 오스카의 남자라고도 불리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보인다.

고집스러운 눈매, 삐뚜름한 입가. 그리고 시니컬한 표정까지. 많은 배우들이 그토록 원하는 감독이면서도. 또 싫어하는 감독 명단에 오르는 이유를 첫인상부터 알 수 있었다.

내가 듣기론 ‘디멘션 소서러’, ‘왕자의 난’을 모두 보았다던데. 그래서일까 나를 보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눈빛이 반짝인다.

“호오. 이 어린 친구가 자네가 말한 그 배우인가?”

“그렇네. 준, 인사하게. 여기는 한 고집하는 양반인 세르지오 디난테.”

“안녕하세요 감독님. 한국에서 온 배우 차서준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준이라고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이상하다. 내가 꾸벅 인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첫인상부터 뭔가 마음에 안 들었나?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이거. 꽤나 재밌는 어린 친구였구만.”

날 보며 선문답 같은 말을 하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었다. 정확하게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그 표정이 참 묘하다. 마치 어디서 이런 물건이 불쑥 등장한 거지? 그런 눈빛으로 날 보고 있다고. 저 고집스런 눈매가 말하고 있었다.

“일단 앉게. 저녁은 아직 안 먹었지?”

“네. 저녁 같이 먹자고 하셔서 안 먹고 왔어요.”

그다음은 일상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몇 달 동안 잘 지냈는지에 대해 물어봤고. 나 역시 그가 잘 지냈는지에 대해 물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자네는 오늘 준을 꼭 만나야겠다고 그렇게 성화를 부려놓고선. 왜 직접 만나니 한 마디도 안 하는 겐가.”

우리의 대화를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을 뿐.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 역시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뿐.

“음. 내가 지금까지 감독 생활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배우들을 만나봤는데 말이지.”

“또또 시작이군. 준, 저 헛소리는 신경 쓰질 말게나. 매번 무슨 상대방의 눈동자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는데. 내가 봤을 땐 순 사기야.”

옆에서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또 시작이라며 툴툴거렸지만. 정작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잊었냐는 듯 크리스 앤더슨 감독에게 한마디를 하기까지.

“아니지. 저번 작품 때 자네와 같이 할 뻔했던 그 친구 잊었나?”

“크흠. 그건···. 인정함세. 자네가 사람은 제법 볼 줄은 알아.”

안 그래도 미국에 도착한 뒤. 당장 날 보고 싶다는 감독의 정체가 누군지 알아내자마자. 서도현은 준비해온 자료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한 것을 재빨리 찾아보았다.

큰 기사는 아니고. 찌라시 느낌의 가십지에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올라온 적이 있었다.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전작에 주연을 맡을 뻔한 배우 하나가 이후 커다란 사고를 저질렀는데. 오디션 당시 우연히 같이 있었던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격하게 반대를 했었다고.

“안 그래도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봤어요.”

“호오. 어떤 것이던가?”

“배우 오디션을 할 때에 꼭 시작 단계부터 참석한다는 점이요.”

내 말에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음일까. 결국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참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묻는다.

“그래. 여기 눈앞에 준을 직접 보니 어떻던가?”

“재밌어.”

재밌다고? 그 말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려는 순간.

“아직 몸은 어린아이인데. 눈빛만큼은 꼭 찬란한 재능을 만개했던 배우의 것이야. 풍파를 겪은 눈빛.”

흠칫. 나도 모르게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내가 아무리 애어른의 면모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저 천재는 다르구나. 하고서 넘기던 이들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뭔가 꿰뚫어 보듯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다.

“뭐?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 준은 천재라고 천재. 나도 우리 준처럼 찬란한 재능을 가진 친구를 본 적이 없었네.”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말에도 다시 묘한 미소만 짓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었다.

때마침 음식이 나왔기에. 그 부분에 대한 대화는 거기서 끝날 수밖에 없었다.

식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는 ‘디멘션 소서러’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나를 만났을 때 어땠는지. 또 촬영이 진행됨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경악했는지에 대한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준이라고 했나?”

“네. 편하게 준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러지. 내가 저 친구에게 처음 월드 스튜디오 영화를 찍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뭐라 했는 줄 아나?”

몇몇 할리우드 거장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었다. 바로 히어로 영화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

“히어로 무비를 찍을 바에는. 그냥 차라리 은퇴를 해버려라. 뭐 이런 비슷한 말 아니었을까요?”

“뭣? 으하하하.”

이렇게 돌직구로 나올 줄은 몰랐는지.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웃음을 터트렸다.

보통 아무리 어리더라도 배우인 이상 자신의 앞에 서면 떨림을 감추지 못했을 테니까. 할리우드 내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감독이란 그런 존재였다.

내 대답에 정답이라는 듯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추임새를 덧붙인다.

“에잉. 역시 준이야. 몇 마디 안 나눠봤음에도 저 친구가 어떤 인간인지 단박에 꿰뚫어 봤구만.”

그냥 짚어본 건데 정말이었어? 실제로 그런 독설을 내뱉었는지.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 고집스러운 눈매를 보아하니. ‘지금이라도 히어로 무비 따윈 집어치우게.’라고 말할 듯싶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정답일세. 그런데 저 친구가 자신만만해하면서 영화관에서 꼭 보라더군. 내 그래서 직접 영화관까지 가서 보고 나니. 내가 지금까지 너무 틀에 갇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

의외였다. 보통 자신의 분야에서 정점까지 오른 이들은 쉽게 고집을 꺾지 않는데.

심지어 오스카의 남자라고 불릴 만큼 작품성을 중시하는 감독이 세르지오 디난테 아니던가.

“그래서 오늘 준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한 걸세. 직접 만나보니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만.”

그렇게 말을 하면서.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무언가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넨다.

오늘 이것을 위해 그렇게 친구를 닦달했다는 말을 하면서.

“이건?”

“응? 자네 그건···.”

크리스 앤더슨 감독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 놀란 표정으로 내게 건네는 것을 바라본다.

“시나리올세.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해 몇 년 동안 책상 서랍 구석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조금 더 설명을 해주자면. 썩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다면서 처박아두었던 것이지. 우리들은 다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했던 끝내주는 작품이지.”

이런.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으나. 다른 감독도 아닌 세르지오 디난테가 이렇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건넬 줄을 몰랐다.

당장 저 시나리오의 배역 오디션만 열어도. 한걸음에 달려올 배우, 그것도 트로피에 목마른 할리우드 탑급 배우들이 한 가득일 텐데.

내가 정신없이 건네준 시나리오에 빠져든 사이.

“준은 아직 초등학생이네. 만약 잘 이야기가 되더라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방학 기간에만 촬영을 할 수 있어.”

이미 나와 함께 작업을 한 경험이 있는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옆에서 말한다.

만약 내가 긍정적인 답변을 꺼냈을 때. 혹여나 독불장군처럼 자신의 촬영 스케줄에 맞추라고 강요할까 걱정이 된 모양.

그런 크리스 앤더슨 감독에 별것 아니라는 듯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어깨를 으쓱한다.

“별문제가 되나? 학업 문제라면 자네가 촬영했던 것처럼 방학 기간을 이용하면 될 텐데. 그리고 아직 확정을 지은 게 아니야.”

“자네 그러면 정말로···.”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누든 말든 간에. 나는 그 대화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시나리오에 푹 빠져버렸으니까.

그 덕분에 듣지 못했다.

“그래서 자네가 봤을 땐 어떨 것 같은가. 준이 잘 소화할 수 있을까?”

“노코멘트. 나중에 직접 확인해보게.”

크리스 앤더슨 감독과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내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느낀 감정은 하나였다.

‘과연 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괜히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 지금까지 자신의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었다고 말한 게 아니었다.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간단했다.

함께 떠났던 이들이 자연재해를 맞이하게 되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움직임이 시작되는데.

문제는 극의 중간부터는 주인공 혼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와 동시에 극한에 몰린 주인공의 절절한 처지를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기까지.

다른 감독도 아닌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의 눈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배우 차서준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잠시 후.

“어떤가?”

“왜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었다고 했는지 알겠어요.”

내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는 세르지오 디난테 감독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마주 웃었다. 오랜만에 정말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킬 만한 작품을 만났는데. 배우로서 어찌 웃지 않겠어.

*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 한 장의 사진이 가져온 파급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배우 차서준이 휴가 겸 미국으로 떠났다는 건. 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문제는.

미국에 간 배우 차서준이 함께 사진을 찍은 사람들의 정체 때문이었다.

[이거 뭐임? 왜 우리 차 배우가 저기에서 같이 사진을 찍고 있는 거임?]

└ 응? 저기 모임 그거 아님?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이 연초마다 모이는 거. 저기 있는 사람 하나하나가 다 커리어 지리던데. ㄷㄷㄷ

└ 맞긴 맞는데··· 대체 왜 저기에 우리 차 배우가 같이 있는 거지? 심지어 난 세르지오 디난테가 저렇게 활짝 웃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크리스 앤더슨 감독 때문에 저기에 간 듯. 월드 스튜디오 영화 찍는다고 했을 때. 할리우드에서도 정말 많이 놀랐다잖아요. 저 감독이 대체 왜 히어로 영화를? 이러면서. ㅋㅋㅋ

└ 뭔가 복선 아닐까요? 저기에 있는 감독들 중 한 명과 우리 차 배우가 함께 차기작을 한다. 뭐 이런 복선이요. 너무 무리수였나?

└ ㅇㅇ 저기 있는 감독들과 작업하고 싶어서 셀프 테입 보내면서까지 어필하는 할리우드 스타들도 있을 정돈데. 그리고 지금 저기서 차기작 준비할만한 감독은 딱 한 명밖에 없음.

└ 세르지오? 저 감독 기준이 너무 높은데. 아무리 우리 차 배우가 디멘션 소서러나 왕자의 난에서 보여줬다지만. 저 감독 작품 준비한다고 오디션 열면 달려갈 탑급 배우들이 한가득임. 그것도 무려 할리우드에서. ㄷㄷ

그렇게 올라온 사진 한 장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난리가 나고 있을 때.

나는 서도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서준이 덕분에 삼촌이 다시 바빠지겠어.”

“삼촌이 미국까지 많이 왔다 갔다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당연히 해야지. 우리 배우님을 위한 일인데.”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배우 차서준의 차기작 관련 계약과 일정 조율을 위해서 서도현이 해야 할 일은.

차기작 감독이 다른 사람도 아닌 세르지오 디난테다. 미국까지 오가야 하는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이 알려지면 또 난리가 나겠구나.”

서도현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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