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62화 (162/220)

162화

“엄마! 아빠!”

김정범의 집에서 형들과 자고 난 다음 날.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 아빠를 찾았다.

다른 곳도 아닌 TV에 얼굴이 나오는 일이다. 지금까지 팬들이 찍은 짤방 수준의 사진들이 올라오는 것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일.

“응? 우리 서준이 아우들이랑 재밌게 놀고 왔어?”

“네. 그보다 엄마, 아빠에게 묻고 싶은 일이 하나 있어요. 나쁜 일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좋은 일이에요!”

혹시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 내 말에 엄마, 아빠의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까. 끝까지 말을 잇는 나였다.

괜히 형들과 자고 온 아들이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러면 놀라게 되잖아.

뒷말까지 모두 말하길 잘했다. 화들짝 놀라려던 아빠의 얼굴에 떠오른 안도감을 보면.

“무슨 일인데 그러니?”

마침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던 엄마가 아빠에게 잔을 건네며 묻는다.

“형아!”

“엉아!”

그와 동시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던 동생들도 우다다 달려오며 나를 반겼다. 아니, 반기는 줄 알았는데 말도 없이 외박을 한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거였다.

“형아, 어제 집에 왜 안 들어왔어? 나빠!”

“마자! 왜 안 와써. 나빠!”

특히 밤에 잠들기 전. 오빠와 나란히 누워 책 읽어주기를 좋아하는 하윤이의 볼이 빵빵하게 서운함을 표현했다.

“미안해. 대신 오늘은 자기 전에 3권 읽어줄게. 알았지?”

“저아!”

화가 난 동생을 잠시 달래준 뒤. 우리 가족은 거실에 앉았다.

“원래 엄마, 아빠에게 말씀드렸듯이.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차기작을 선택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때마침 좋은 섭외 요청이 하나 들어왔어요. 어떤 제안이 들어왔냐면···.”

내 설명이 이어질수록 엄마, 아빠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잠시 후.

“음. 그러니까 가족 예능 프로그램이 런칭 준비 중인데. 거기에 우리 서준이뿐만이 아니라. 하준이, 하윤이까지 섭외를 원한다는 거네?”

“네! PD는 소소한 하루의 메인 연출을 맡았던 이주연 PD에요. 성격상 자극적인 방송을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메인 연출을 맡은 PD가 믿을 만하지 못했더라면. 제안을 듣자마자 거절했을 터였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겠다고 자극적인 편집을 하는 예능 PD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소소한 하루’를 몇 번 같이 하면서 이주연 PD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인 나였다.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힐링 감성이 있는 PD이기도 했고.

“아빠도 우승 아우에게 그 PD님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듣긴 했었어.”

방송가에 대해 완벽하게는 몰라도. 아들이 몇 년 동안 배우로 활동한 덕분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엄마, 아빠였다.

특히 아빠는 연사모 형들과 가끔씩 모여서 술 한 잔 기울일 때도 많았던지라. 엄마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김우승이 아빠에게 ‘소소한 하루’에 관한 이야기도 몇 번 했었던 모양.

“내 생각에는 꽤나 괜찮은 거 같은데.”

“여보? 왜 그렇게 생각해요?”

아빠가 꽤나 좋은 기회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있던 엄마가 아빠를 보며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듯 묻는다.

잠시 하준이와 하윤이를 바라본 뒤. 아빠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주말이 되더라도 우리 서준이와 밖에 나가기가 좀 힘들었잖아. 하준이, 하윤이가 그렇게 원해도 나갔다가 금방 돌아와야만 했고. 아빠는 그게 좀 마음에 걸렸어”

“맞아요. 그전까지는 팬들도 가족들과 있을 때에는 자제를 했었는데. 올해부터는 사람들이 다짜고짜 사진 같이 찍자는 요청도 많아졌어요.”

“그렇지. 그런데 서준이의 말처럼 예능 프로그램으로 찍는다면. 어딜 가더라도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거 아니야.”

역시 아빠다. 출연료 같은 금전적인 부분, TV에 나오면서 얻을 수 있는 인지도. 이런 것들을 다 뒤로하고 하준이, 하윤이가 가장 원하는 것부터 생각한다.

휴식기를 가진 형이랑 마음껏 놀러 가고 싶다는 것이 하준이, 하윤이의 소원이었으니까.

그런 아빠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는 왜 이런 제안을 엄마, 아빠에게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추가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제가 이 제안이 들어왔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한 이유가 더 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한 이유?”

“네. 아직 하준이, 하윤이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는 게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꼭 장래 희망 칸에 연예인을 염두에 두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엇이든 경험하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는 만큼. 하준이, 하윤이가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출연료다.

“만약에 이번 가족 예능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다면. 하준이, 하윤이도 용돈 통장에 출연료를 받을 수 있게 조율할 생각이에요.”

“어머? 그러면 우리 하준이, 하윤이가 스스로 돈을 버는 거네?”

“맞아요. 배우 차서준의 가족이니. 제가 조금 출연료를 조정하면 하준이, 하윤이도 괜찮게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당장 번다고 해서 마음껏 쓸 수 있게 줄 수는 없다. 아직 금전 감각을 배우지 못한 하준이, 하윤이었으니까.

다만. 스스로 번 돈을 자기 통장에 모아두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터였다.

일단 엄마, 아빠의 표정을 보니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신 것 같다. 이제 남은 건 당사자인 하준이, 하윤이의 의견인데.

“하준이 생각은 어때?”

“형아. 내가 TV에 나와? 형이랑?”

“응. 형이랑, 하윤이랑 같이 놀러도 다니고. 주말 저녁엔 TV에도 나올 거야.”

잠시 하준이의 고개가 나와 TV를 번갈아 향한다. 형이 TV에 나올 때가 가장 좋다고 외치던 하준이었으니.

그런 TV에 형이랑 동생이랑 나온다? 유치원에서 마음껏 자랑할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하준이의 표정이 보인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몇 번 시달리고는 주말이 되더라도 놀러 가자는 말을 꾹꾹 참는 게 보였는데.

평일에 유치원도 빼먹고 형, 하윤이랑 같이 놀러 갈 수 있다니. 그것도 재밌게 논 모습이 TV로도 나온단다.

이건 못 참지.

“TV에 나오면 진짜 용돈도 줘?”

응? 하준이에게 용돈이 필요했나? 먹고 싶다는 거 가능하면 다 사주려고 했고. 또 가끔씩 엄마 몰래 용돈도 쥐여 줬는데.

나와 엄마, 아빠의 대화를 유심히 들었는지. 용돈이란 말에 눈동자를 반짝반짝이는 하준이었다.

출연료에 관심을 가지는 하준이에 대한 내 궁금증은 이어지는 말에 해결이 되었다. 그것도 몸에 힘이 탁 풀리면서.

“형아. 나 용돈 마아니 모아서 서연이랑 대게 먹고 싶어.”

“서연이? 아, 유치원에서 친해진 친구?”

“응! 서연이도 대게 엄청 좋아한대. 그런데 엄마가 자주는 못 먹는다고 했대. 그래서 엄청 슬펐대. 대게 진짜 맛있는데.”

유치원에서 다양한 친구를 만나면서. 자신과 다른 친구들에 대해 배우고, 또 이해하고 있는 하준이었다.

특히 우리집처럼 대게를 밥 먹듯이 먹을 수 있는 집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 모양.

한 번 시킬 때마다 몇 마리씩 먹기에는. 아무래도 대게가 저렴한 음식은 아니었으니까.

워낙 대게 사랑꾼인 하준이와 하윤이가 있는 우리집만 예외였던 셈이다.

“그러면 하준이는 출연료를 받게 되면. 열심히 모아서 서연이랑 대게 먹을 거야?”

“응! 아, 아니! 그전에 엄마, 아빠, 형, 하윤이랑 먼저 먹을 거야. 내가 사줄 거야!”

이런. 저렇게 말하는 동생이 있는데.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유치원 친구보다. 용돈을 모아 우리 가족에게 먼저 사주겠다고 당차게 말하고 있는데.

“알았어. 그러면 하준이는 TV에 나와도 괜찮은 거지?”

“좋아! 하고 싶어! 형아랑 하윤이랑 놀러 가고 싶어!”

하준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하겠다고 외쳤다.

그 다음은 하윤이의 의사가 중요했다. 하준이가 오케이를 외쳐도 하윤이가 싫다고 하면 말짱 도루묵이니.

내가 하윤이의 의사를 묻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이미 옆에서 다 듣고 있던 하윤이가 외쳤다.

“저아! 나도 은서랑 깨!”

오빠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자신도 어린이집 단짝 친구인 은서와 대게를 먹겠다고 외치는 하윤이었다.

그런 동생들의 모습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 우리 가족이었다.

*

출연을 결심했다 해서 곧바로 편성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출연을 결심한 이상 편성은 확정이나 다름없겠지만. 다른 출연자 가족들을 섭외해야 하는 일이 남았으니까.

♪♬♪~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주연 PD. 안 그래도 어젯밤 서도현과 자리를 가졌다는 말을 들은 참이었다.

지금 나도 서도현을 만나기 위해 회사로 가는 길이었고.

“안녕하세요, 피디님.”

- 고마워요, 차 배우. 어제 서도현 대표님을 만나서 이야기 들었어요. 몇 가지 조건만 맞는다면 출연하겠다고 했다면서요?

“네. 다른 피디님이라면 조금 더 고민을 해봤을 테지만. 우리 이주연 피디님과 제가 소하에서 오랫동안 인연을 쌓았잖아요.”

수화기 너머 이주연 PD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탑급 연예인이 된 내가 자신만을 보고서 출연 결심을 했다고 한 셈이니.

게다가 S급을 넘어선 위치에 오른 연예인이 된 나였지만. 요구하는 조건들 역시 연출 입장에선 크게 까다로운 것도 아니었다.

- 일단 최종 승인을 받아야겠지만. 차 배우가 말한 조건들은 무조건 통과가 될 거예요. 다른 출연자도 아니고 우리 차 배우가 원하는 것들이니까요.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저만 출연하는 게 아니라 동생들도 함께 나오는 거라서. 그런 부분들을 대표님을 통해 말씀드렸어요.”

- 당연히 이해하죠. 그러면 우리 내일 저녁에 서도현 대표님까지 해서 만나면 어떨까요? 안 그래도 어제 다 듣긴 했는데. 차 배우와 직접 밥도 먹으면서 대화를 더 나눠 봐도 좋을 것 같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뵐게요. 피디님.”

이미 서도현에게 내일 저녁 약속도 들은 참이었다. 이주연 PD가 나를 만나려는 건. 정확한 내 생각을 직접 듣고 싶어서겠지.

내가 이주연 PD에게 요구한 몇 가지 조건들은 간단했다.

첫째. 과도한 PPL이나 시청자들에게 박탈감을 줄 만한 너무 고가의 제품들은 제외해 달라는 것.

둘째. 내 출연료를 조금 낮추고, 동생들의 출연료를 올려달라는 것.

기타 외에도 조금 더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저 두 가지였다.

배우 차서준의 가족이 예능에 나와 홍보한 제품들이나 협찬 장소들은 불티나는 인기를 얻을 테니까. 너무 과한 것들은 오히려 독이 될 터였다.

아무래도 나 혼자가 아닌 동생들까지 출연을 결정해야 되는 일인 만큼. 까다롭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서준아. 그러면 출연하기로 결심한 거야?”

“네, 누나. 하준이, 하윤이도 TV에 나온다니까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전화를 끊고 나니. 운전을 하고 있던 수진 누나가 묻는다. 안 그래도 가족 예능에 출연할 건지에 대해 매우 궁금했던 모양.

그때였다.

♪♬♪~ 갑작스럽게 다시 울리기 시작한 전화기 때문에 나와 수진 누나의 대화가 끊긴 건.

“응? 크리스 앤더슨 감독님인데?”

미국에서 ‘디멘션 소서러’ 2편을 준비 중인 크리스 앤더슨 감독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감독님. 오랜만이에요.”

- 준! 연말인데 잘 보내고 있나? 어제 왕자의 난을 다시 봤는데. 다시 봐도 내용, 연출,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두 끝내주더군. 그중에서도 준의 존재감이 가장 눈에 띄던데.

이미 넷티비에서 공개되자마자 봤다고 몇 달 전에 연락도 했으면서. 어제 생각이 나서 다시 봤다며 이야기를 꺼내는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었다.

처음 만난 이후부터 차 배우라고 부르던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었지만. 어느새 데이븐처럼 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그렇게 ‘왕자의 난’에 대해 한참 수다를 떠들던 크리슨 앤더슨 감독은. 이내 자신이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했는지에 대해 떠올렸는지.

- 이런, 미안하네. 내가 또 너무 흥분을 해버려서 말이 길어졌구만. 준은 혹시 1월 초에 잡혀있는 스케줄이라도 있나?

스케줄? 따로 잡힌 건 없었다. 마침 1월엔 학교도 겨울 방학일 테니 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조만간 이주연 PD와 함께 가족 예능을 할 예정이지만. 그건 아무리 빨라도 1월 말에나 촬영 시작이 가능할 터였다.

“지금은 딱히 정해진 스케줄이 없어요. 왜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침 잘 되었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잘됐네. 그러면 며칠만 시간을 내서 미국에 잠깐 놀러 오게. 온 김에 나와 데이븐도 만나고. 그리고 소개해주고 싶은 감독들이 좀 있어서. 비용은 이쪽에서 전부 부담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응? 안 그래도 저번 데이븐과 같이 봤을 때 듣긴 했었다. 할리우드 거장들 중에서 크리스 앤더슨 감독과 마음에 맞는 몇이 새해마다 모임을 가진다고.

- 저번에 말했던 새해마다 보는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친구들이 준을 꼭 보고 싶다고 하도 성화여서. 나쁘지 않은 시간이 될 거야. 이유 없이 보고 싶다는 친구들이 아니거든.

정말?

할리우드의 거장들의 모임이다.

그러면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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