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꽤나 좋아 보이는 제안?
아마 ‘왕자의 난’ 시즌2는 아닐 것이다. 8화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한 왕자가 살아나는 순간. 그때부턴 사극이 아니라 판타지가 되어버릴 테니까.
물론, 퓨전 사극이라고 우기며 살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왕자의 난’이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핵심 매력 포인트를 스스로 버리는 행위였다.
고로 ‘왕자의 난’ 시즌2가 제작되더라도 배우 차서준의 자리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것이라는 뜻인데.
“삼촌, 어떤 건데요?”
“일단 드라마나 영화는 아니다. 서준이 네가 조금 쉬었다가 차기작을 하고 싶다고 삼촌에게 말했으니까.”
응?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고?
안 그래도 서도현에게 말해두었던 참이었다. 조금의 휴식기를 가지며 가족들과의 시간을 좀 보내고 싶다고.
차기작을 결정하게 된다면. 촬영 전부터가 아니라,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받는 그 순간부터 준비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런 내 휴식기 요청조차 접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 들어왔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
일단 나는 이어질 서도현의 설명을 기다렸다. 지금 쏟아지다시피 들어오고 있는 대본, 시나리오들을 두고선. 저런 말을 꺼낸 이유가 있을 테니까.
“들어온 제안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영화에 이어 드라마까지 터지고 나서 요즘 밖에 나가기가 쉽지 않지? 이번 인기는 이전까지와 차원이 다른 상황이니.”
“맞아요. 이제 정말 밖에 나가면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사람들이 엄청 따라다녀요. 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괜찮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나가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예요.”
‘왕자의 난’이 넷티비 전 세계 1위를 차지해버렸다. 거기에 지금도 해외 시청자들의 시즌2 제작 요구가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당연히 나를 향한 관심이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배우 차서준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
오죽하면 엄마, 아빠의 입에서 당분간은 주말 나들이를 나가기 힘들겠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전까지 배우 차서준의 팬들에겐 암묵적인 룰 하나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사인과 사진 요청을 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삼촌도 들었다. 최근 가족들과 있어도 계속해서 사인 요청이 들어온다면서? 막무가내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던데.”
“맞아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집에서 동생들이랑 쉬고 있어요. 집 앞 놀이터에 나가거나요.”
이번에 ‘디멘션 소서러’와 ‘왕자의 난’이 대박을 넘어 초대박을 치는 바람에 사람들의 관심이 대폭발을 해버렸다.
무슨 말이냐고? 길에서 내가 보이면 동생들과 함께 있더라도 사인 요청이 쏟아진다는 뜻이지.
그 덕분에 주말이라도 어디 놀러 나간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열기가 조금 가라앉고 나야 어디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원래 드라마 공개되고 나면 주말마다 엄마, 아빠랑 놀러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약속을 안 지킨다고 하준이, 하윤이의 볼이 빵빵해진 상태에요.”
이렇게요. 하면서 내가 하준이, 하윤이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따라 하자. 그걸 본 서도현의 입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하하, 맞아. 그래서 서준이 네게 쏟아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삼촌이 이걸 눈여겨보게 된 것이지.”
서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내게 건넨다.
응? 이건?
“이거 아직 기획 단계 중인 프로그램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지금 저쪽에선 서준이 널 애타게 원하고 있는 상태다. 후발주자가 선두 주자를 따라잡으려면. 사람들의 이목을 확 사로잡을 만한 한 방이 필요하니까.”
“그게 저고요?”
“그래. 밖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의 출연. 이보다 확실한 한 방은 없을 테니.”
지금 서도현이 흥미로운 제안이라며 보여준 것은. 방금 했던 말처럼 드라마도, 영화도 아니었다.
바로 예능 프로그램.
“예능 출연이라.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네요.”
정말로. 전에 김우승 때문에 몇 번 출연했었던 ‘소소한 하루’처럼 일상 예능이라 하더라도 단숨에 거절했을 나였다.
이제는 굳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면서. 배우 차서준에 대한 홍보 자체가 필요 없을 정도의 위치까지 올라선 나였으니까.
그러나.
서도현이나 내가 이번 예능 출연 섭외에 살짝 호기심을 보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다른 프로였더라면 바로 거절했을 텐데. 가족 예능이라는 점에서 좀 솔직히 끌리는 것 같아요.”
그랬다.
타 방송사에서 엄청 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족 예능에 CBS 역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
특히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힐링 감성을 추구하겠다는 프로그램 제작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지. 거기에 지금 그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 메인 PD도 서준이 네가 잘 아는 사람이니.”
과거 김우승과 함께 ‘소소한 하루’로 인연을 맺었던 이주연 PD의 이름이 메인 연출에 올라와 있었다.
김우승이 하차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에게 프로그램을 물려준 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셈.
확실히 이주연 PD의 기획이라 그런지. 타 방송사에서 하고 있는 가족 예능과 포맷 자체가 달랐다. 힐링과 여행이라니. 좋잖아.
무엇보다 연출이 이주연 PD라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아니, 출연자들과 말도 잘 통하고. 자극적인 걸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일단 그걸 추천한 이유를 말하자면. 거기 프로그램 포맷을 보면 알겠지만. 이게 연예인 가족들의 일상과 여행을 담는 거거든.”
“그러면 촬영을 이유로 하루 정도 학교를 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
아무리 탑급 연예인이라 한들. 쉬고 싶다며 학교를 마음대로 결석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예능 촬영을 위해서라면?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가 된다. 합법적인 이유로 평일에 동생들과의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뜻.
“서준이 너도 이주연 PD와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사전 답사를 통해 확실하게 준비를 하는 타입이라 괜찮을 거다. 촬영 기간 동안에도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할 테고.”
무엇보다. 지금 엄청난 인기 때문에 도저히 동생들과 놀러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방송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과 함께 다닌다면. 그 요청들에 조금 자유로워질 수가 있었다.
현재 활동 반경이 묶인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선. 꽤나 매력적인 제안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저쪽에선 최대한 요구 조건을 맞춰준다고 했어요?”
“그렇지. 다른 연예인도 아니고 배우 차서준을 모시려면 최대한 협조 해야지. 일단 과한 협찬은 안 된다고 할 생각이다.”
만약 내가 이 예능에 출연한다고 결심하게 된다면. 과한 PPL이나 협찬은 내 이미지에 오히려 독이 된다.
시청자들이 보는 순간에는 재밌을지 몰라도. 자식들이 ‘아빠! 나도 저기 가고 싶어!’라고 하는 순간 격차를 느끼게 될 테니까.
현재 프로그램 런칭 준비 중이라면. 이러한 내 요구 조건도 충분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주연 PD의 성격상 과한 PPL이나 협찬을 받을 리도 없었고.
“삼촌. 일단 집에 물어보는 게 먼저일 것 같아요.”
나 혼자 출연하는 예능이 아니다. 아빠야 출근으로 인하여 안 되겠지만. 수락한다면 출연하게 될 엄마나 동생들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법.
“그래. 그러면 집에다가 물어보고 나서 결정을 해보자꾸나.”
*
- 왕자의 난 효과? 민속촌으로 몰려드는 해외 관광객들.
- 문화 콘텐츠의 힘. “왕자의 난 보고 한국으로 여행 왔어요.” 인천 공항으로 입국하는 관광객 증가.
- 뜻하지 않은 호재. “지금 야근까지 하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해외에서 주문이 폭증하고 있다는 도포와 갓.
- 해외 유명 인플루언서들도 참가하기 시작한 ‘왕자의 난’ 콘텐츠 참여.
- ‘왕자의 난’ 최대 수혜자는 바로 배우 차서준? 그 이유는?
└ 국뽕이 차오른다!!! 해외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SNS에 도포 펄럭이면서. 머리엔 갓 쓰고 사진 찍는 거 실화냐? ㅋㅋㅋㅋㅋ
└ 기사들처럼 관광객도 늘고 있음. 지금 민속촌이나 경복궁에 가보면 왕자의 난 대여 세트 입고 돌아다니는 외국인들 엄청 많음. ㅋㅋㅋ
└ 솔직히 이 정도의 파급력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러면 앞으로도 한국에서 제작되는 드라마, 영화들이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겠네요.
└ 넷티비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할 텐데. 가입자 증가수를 보니까 회당 35억 제작비가 거저로 느껴지는 수준이더만.
└ 그런데 왜 배우 차서준이 최대 수혜자가 된다고 하는 건가요? 만약 소문처럼 시즌2가 제작 확정된다면. 계속 출연할 배우들이 더 수혜자 아닌가?
└ 위에 뭘 모르시네. 지금 TV 틀면 무조건 나오는 게 차 배우 광고들임.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 몸값 자체가 달라졌다고 함. ㄷㄷ 거의 국내 탑 오브 탑급 수준이 되었을걸요?
온 세상이 ‘왕자의 난’이다. 이런 농담이 나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었다.
넷티비 공개 이후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시청 시간이었다. 기존 가입만 하고 보지 않던 시청자들까지 넷티비로 데리고 온 셈. 총 1억 이상의 유료 가입 가구가 시청했다는 조사 결과만 보더라도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었다.
“그거 알아?”
“뭘?”
“넷티비에서 정식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에서 1위를 달성한 최초 작품이 왕자의 난이래.”
김정범이 엄청난 비밀을 알려준다는 듯 속삭였지만.
“그거 지금 형이랑 내가 보고 있던 기사 제목이잖아.”
아쉽게도 그 비밀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된 지 오래였다.
박우형, 김정범과 함께 출연한 ‘왕자의 난’ 성공 축하를 위해 모였다기엔. 이미 몇 번이나 만난 우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형들까지 전부 김정범의 집에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기쁜 소식이 있었으니까.
“어제 박 작가님한테 연락이 왔는데.”
“왔는데?”
“넷티비에서 시즌2 제작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네.”
“정말?!”
박우형의 말에 김우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마치 자기에게 기쁜 일이 생긴 것처럼 좋아하면서.
“응. 우승이 너도 알다시피 넷티비는 계약할 당시의 출연료가 전부잖아.”
“맞지맞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말이 좀 나오던데. 넷티비는 왕자의 난 하나로 엄청난 이득을 봤는데. 정작 제작진이나 출연 배우들은 보너스도 없다면서.”
안 그래도 저 부분에 대해 이미 기사들이 제법 쏟아진 참이었다.
나나 박우형, 그리고 재미 삼아 몇 주를 샀던 김정범까지. 우리야 별도의 보너스를 알아서 챙긴 셈이지만. 따로 러닝 개런티 조건이 없는 곳이 바로 넷티비였다.
제작사인 파란꿈나무 대표 박중수도 이 정도 공전의 히트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저번 회식 자리에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옆에 있던 제작 피디는 ‘대표님! 그래도 우리 제작사 이름 제대로 알렸지 않습니까!’ 라고 외치면서 울고 있더라.
“근데 형. 사실 이게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니까. 정확한 수치가 안 나오잖아요. 광고도 안 들어갔고요.”
“그건 맞지.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엄청난 비밀을 말하겠다는 듯 김정범이 비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직 계약 조건들은 안 나왔지만. 이번 보상까지 얹어서 제대로 제안할 거라고 하네.”
정말 기쁜 소식이었다.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계속 출연할 박우형이나 김정범은 더 올라간 회당 출연료를 받게 될 테니까.
대박! 이렇게 외치던 김우승의 시선이 나에게서 멈춘다. 그제야 8화 마지막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떠오른 모양.
“그러면 서준이는? 사실 왕자의 난이 이만큼 대박 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서준이었잖아.”
그랬다. 아무리 영상미부터 시작해서 음악까지 끝내준다고 한들.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해외 시청자들이 ‘왕자의 난’에 열광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세자를 연기한 배우 차서준에게 있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
“죽어서 하차한 다른 사람들은 걱정해도 되는데. 서준이 쟤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니지. 쟤가 우리를 걱정해야지.”
만약 다른 소속사였더라면 김정범 역시 김우승과 함께 나를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구름엑터스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김정범이었다. 이미 회사 내에 쫙 퍼진 나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할 리가 없다.
“쟤가 잘하면 머지않아 연예인 자산 순위에서 널 따라잡을지도 몰라. 쟤 몸값이 지금 업계 탑이야 탑. 거기에 찍은 광고가 몇 개고 앞으로 찍을 광고가 몇 갠데. 한 3년 푹 쉬어도 나보다 훨씬 많이 벌 걸.”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오늘 저녁을 모두 산 사람이 바로 김정범이었다.
그래. 마침 잘 됐다. 아직 집에다가는 들어온 가족 예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상태. 형들에게 먼저 자문을 구해봐야지.
잠시 후.
내 설명을 들은 형들이 뭘 고민하냐는 듯 명쾌한 결론을 내려주었다.
“그걸 왜 서준이 네가 고민해. 만약 출연하게 된다면 주인공은 서준이 네가 아니라. 하준이, 하윤이일 텐데.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거지.”
맞네?
얼른 집으로 가서 엄마와 동생들에게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