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왕자의 난’ 촬영이 모두 끝났다. 아직 초등학생인지라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촬영장으로 달려가야 하는 나날이 끝난 셈이다.
그 결과.
오랜만에 사총사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서준아. 잘 먹을게.”
“고마워! 너무 좋아!”
“···맛있어.”
좋은 일이 있으면 찾아가는 돈가스 단골 가게를 찾은 우리였다. 메뉴는 언제나처럼 치즈돈가스 세트로 통일.
“혹시 부족하거나 그러면 말해. 더 시키면 되니까. 알았지?”
내 말에 애들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입 안에 치즈돈가스를 우물우물한 채로.
오늘은 특별히 영화가 대박 난 내가 쏘기로 했다. 사총사 친구들에게도 기쁜 소식들이 있다고 들었으니. 맛난 걸 사주면서 축하해줘야지 않겠어.
“어이쿠. 사총사들 왔구나. 잠깐만 기다릴래?”
안 그래도 재작년 ‘어린이 감독 영화제’가 끝난 이후. 배우 차서준이 사총사 친구들과 함께 몇 년 동안 방문한 단골 가게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덕분에 동네에서 나름 알아주던 맛집이. 어느새 타지에서도 와서 줄을 설 정도로 유명한 집이 되어버렸단다.
가게 사장님이 우리를 보면 활짝 웃음꽃이 피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자, 이건 서비스. 지우는 제로 음료 맞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잘 먹겠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일이 있다며 방문한 우리를 보면서. 돈가스 가게 사장님의 얼굴이 아주 싱글벙글했다.
해마다 쑥쑥 성장하는 우리 사총사와 함께 찍은 사진들을 전시해놓는 게 취미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11살이 된 사총사 사진을 걸 수 있을 테니.
“서준아. 그러면 이제 드라마 촬영은 모두 끝난 거야?”
“어. 아직 후반 작업이 좀 남았는데. 다 끝나면 예고편이 공개될 거야. 예고편 공개까지도 시간이 좀 남았지만.”
“매일 학교 끝나자마자 촬영장으로 달려가더니. 축하해!”
넷티비의 ‘왕자의 난’ 촬영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건 당연 김도윤이었다. 연사모 형들뿐만이 아니라 쟁쟁한 배우들이 함께한다는 소식도 들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축하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김도윤이었다.
친구 김도윤이 아니라. 아역 배우 김도윤에게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
“도윤아. 나 오늘 삼촌에게 들었는데. 주말 연속극에 최종 캐스팅 확정되었다면서?”
“어? 들었어? 사실 나도 아침에 연락받았어. 오늘 학교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깜박했다.”
김도윤이 뒷머리를 긁으며 배시시 웃는다. 다른 학교 친구들이 없을 때 말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타이밍을 노리다가 깜박한 모양.
서도현이 축하 좀 부탁한다며 연락이 왔다. CBS에서 편성 준비 중인 주말 드라마에 김도윤이 캐스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정말 기쁜 일이었다. 일단 기본 시청률이 보장되는 황금 시간대의 주말 드라마인데다가. 이번에는 꽤나 대사가 많은 캐릭터라고 했으니.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치즈돈가스에 얼굴을 파묻던 최지환의 얼굴이 번쩍 이쪽을 향한다.
“잘됐다! 내가 봤을 땐 타이밍이 정말 최고인 것 같아!”
“뭐가?”
“최고의 연기 스승님인 서준이가 마침 휴식기잖아! 도윤이가 캐릭터 분석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서준이에게 도움 부탁하면 되겠네!”
“어?”
김도윤의 떨리는 눈동자가 삐걱거리며 나를 향한다. 아마 빨간 모자를 쓰고 엄격하게 가르치던 내가 떠올라서겠지.
설마 이번에도? 이런 생각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정답.
“안 그래도 삼촌에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생각이 났어. 마침 내가 휴식 기간이고. 도윤이 너에겐 정말 좋은 기회잖아. 열심히. 아니, 최선을 다해 죽어라 노력해서 최고의 연기를 선보여야지. 이번 기회에 김도윤이라는 아역 배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야. 연기력 역시 정말 기대가 되는 어린 배우라고 말이야.”
“···.”
“···.”
“···.”
이런. 또다시 흥분한 덕분에 말이 조금 길어진 모양. 나를 바라보는 사총사 친구들의 시선이 어딘가 익숙하다.
마치 내가 ‘연기’ 버튼이 눌린 박우형을 바라보는 그 느낌이라면 착각이겠지?
어쨌거나.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광고 계약을 준비 중이던 나였다. 시간이 남는 상황이니 김도윤의 대본 리딩이 있기 전까지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 가서 차서준의 친구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차 배우에 비해 너무 부족한 거 아니야?’ 이런 말은 안 듣게 해야지.
“고마워. 사실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준이 네가 생각났는데. 이제 촬영이 끝나고 쉬고 있는 서준이에게 부탁한다는 게 조금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어허. 친구 사이에 그런 건 부탁도 아니야. 당연히 친구끼리 도와야지. 만약에 내가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언제든지 도와줄 거잖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연하지!”
최지환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입가에 묻은 양념 소스나 좀 닦지.
다행히 사장님이 너무 유명해진 나를 배려해서 구석진 자리로 안내를 해주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자기도 돕겠다고 외쳤던 최지환이었으나.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고 자리에 다시 앉는다. 내가 건네주는 휴지를 받아 입을 닦으면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는 하지우가 있었다.
아, 한 가지 더 기쁜 소식이 있다고 했지. 이번 기쁜 소식의 주인공은 바로 하지우였다.
“지우도 정말 기쁜 소식이 있다며? 무슨 일인데?”
“···응. 나 또 월반했어.”
이건 우리도 정말 몰랐던 소식이기에 듣고 있던 김도윤과 최지환이 화들짝 놀란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알기론 하지우가 이제 소속사에서 월반을 하기 위해선. 최소 초등학교는 졸업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들었으니까.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연습실로 달려갈 정도로 열심히 했던 하지우였다. 그런 노력이 드디어 월반이라는 결실을 맺은 셈이다.
“정말?!”
이제 한 단계만 더 올라가면 데뷔조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는지. 최지환이 다시 한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입가에 묻은 소스 좀 닦으라니까. 내가 다시 휴지를 건네주자 벅벅 닦는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를 얻었네.”
정말 기쁜 소식이 맞았다. 다른 곳도 아닌 4대 기획사 중 한 곳이 바로 하지우의 소속사였다.
주먹구구식 운영이 아닌지라.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클래스를 단계별로 밟아 데뷔조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단 한 단계만 남은 셈이다. 데뷔조를 선발하는 반까지 한 단계. 고작 11살의 나이에 말이다. 내가 알기론 하지우가 소속사에서도 첫 케이스일 거다.
“···응. 정말 열심히 노력했더니. 레슨 선생님들도 칭찬 많이 해주셨어.”
“축하해! 역시 지우가 잘할 줄 알았다니까!”
이건 최지환의 축하 멘트였고.
“우와. 우리 사총사 친구들에게 다 좋은 일만 가득 생기는 것 같아.”
이건 행복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말하는 김도윤의 말.
마지막으로.
“고생했어, 지우야. 하지만 다른 연습생 친구들이나 선배들보다 빠르게 월반한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또 누군가를 얕봐서는 안 돼. 이 바닥은 정말 좁은 곳이야. 몇 년이 지나서 저 친구가 연습생 때 거만했더라. 이런 소문만 돌아도 순식간에 추락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러니 항상 겸손하고 주변을 배려하는 마음을 잊으면 안 돼. 잘할 수 있지?”
“···응. 그 이야기도 10번도 넘게 들었던 거 같아.”
그랬나? 아무래도 사총사 친구들에게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라는 의미로 격려를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과했던 모양이다. 애들에게서 또 저런 표정이 떠오르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김정범에게 배웠다. 바로 빠르게 화제를 전환해버리기.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시킬까? 여기 아이스크림도 엄청 맛있잖아. 어때?”
“좋아!”
“역시 서준이가 최고야.”
“···난 초코아이스크림.”
돈가스만 먹고 헤어지기에 아쉬워서 사장님께 추천했던 후식용 소프트아이스크림 메뉴였는데.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고 들었다.
배우 차서준이 꼭 챙겨 먹는다는 후식이라고 소문이 난 덕분에. 찾아온 팬들이 후식 소프트아이스크림까지 꼭 주문해서 먹는다고.
“자, 이것도 서비스! 좋은 소식이 있다면서. 당연히 우리 사총사들과 오랜 인연이 있는 나도 축하해줘야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자. 이번에도 사장님이 서비스라며 가져다주었다. 다 먹고 사인과 사진 잊지 말아야지.
“역시 이 맛이야!”
“맞아. 돈가스 먹고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어.”
“···초코아이스크림 최고야.”
아이스크림을 정신없이 먹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비롯한 사총사 친구들에 대해 얼핏 본다면.
“어? 그냥 재능 있는 친구들끼리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거 아니야?”
이렇게 치부할지도 모른다.
당장 탑급 배우가 된 나. 그리고 아역 배우 김도윤.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서 2년 연속 대상을 탄 최지환. 마지막으로 아이돌 연습생 하지우까지.
겉으로만 본다면 우아한 백조처럼 잘 나간다고 생각할지 모를 테니까.
하지만.
이 사총사 친구들이 오늘날의 결과들을 얻는 데에는 특별한 비결이 하나 있었다.
바로 ‘노력’.
그것도 그 기준이 배우 차서준에 맞혀져 있는 노력이라는 점. 또래 수준의 열심히 정도가 아니라. 프로 수준의 노력을 어릴 적부터 옆에서 지켜본 결과인 셈이다.
그러니.
“도윤아.”
“응?”
“내일부터 시작이야. 오늘 집에 가서 열심히 분석하고 내일 회사에서 이야기하자. 알았지?”
옆에서 열심히 도와줘야지. 내 말에 딸꾹 하며 놀라는 김도윤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다 잘되라고 하는 일이니.
*
회사가 가장 바쁜 시기였지만. 김시율은 업무에 치이면서도 힘을 낼 수가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 배우의 넷티비 드라마가 나온다니.”
그 어떤 피로회복제보다 힘이 나는 소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몇 달 전 개봉했었던 배우 차서준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 천만 관객 영화 ‘디멘션 소서러’에서 보여준 데블 오리엔트의 연기가 어땠던가.
“난리도 아니었지. 서양 월드 코믹스 팬들조차도 저 배우가 대체 누구냐며 호들갑을 떨 정도였으니.”
단 한 편의 데뷔작으로. 수많은 할리우드 감독들의 주목을 받은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그런 차서준의 차기작이었다. 혼자도 아닌, 무려 연사모의 박우형, 김정범과 함께 촬영하는 드라마라니. 심지어 그 감독이 김주철이고, 작가가 박정아란다.
이보다 더 화려한 뷔페가 있을 순 없었다. 이미 드라마 제작 소식이 알려졌을 때부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정도였으니.
“일단 우리 차 배우의 작품을 보는 안목을 따져봤을 때. 무조건 성공 아니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차서준의 팬클럽 사람들 역시 애타게 12월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
그때였다.
대체 넷티비를 통해 공개될 ‘왕자의 난’이 얼마나 대박일지에 떠들던 채팅창을 침묵에 빠져들게 만든 채팅 하나가 올라온 것은.
└ 이럴 때가 아니에요. 지금 떴어요. 왕자의 난 메인 예고편이 떴다고요!
드디어.
넷티비를 통해 전 세계 동시 공개될 ‘왕자의 난’ 메인 예고편이 공개되었다.
[왕자의 난┃1차 예고편┃넷티비(2:23)]
└ 미쳤다!!! 드라마라며? 근데 왜 예고편의 영상 퀄리티가 무슨 영화 예고편 수준인데??? 심지어 배우들의 한복이 무슨 한 폭의 그림 같이 나왔는데???
└ 무슨 화보 모음집이냐고. 왜 이리 영상미가 끝내주는 거 같지?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죠?
└ 왕자의 난 감독이 김주철 감독임. 미쟝센이랑 액션이 탑급이라고 평가받는 사람인데 당연하지. 그보다 저 정도 퀄리티면 해외에서도 반응 괜찮겠는데요?
└ 지금 영상 아래 달리는 댓글들 보니까. 해외 시청자들도 꽤나 흥미롭다는 반응이네요. 아마 디멘션 소서러 보고서 많이들 기대하는 거 같아요.
└ 역시 우리 차 배우! 아직 시작도 안 한 드라마의 홍보를 영화로 제대로 해버렸네요. ㅋㅋㅋ 그나저나 회당 제작비가 30억이 더 넘었다는데. 결과물이 어떨지 진짜 기다려지네요. ㅋㅋㅋ
└ 공개일 확정 됐네요. 12월 13일. ㄷㄷㄷ 언제 기다리지. ㅠㅠ 빨리 저 날이 되어서 왕자의 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