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이번 깜짝 이벤트를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촬영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
다행히 사전 제작으로 진행되는 탓에 촉박한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었다. 거기에 다음 주까지는 세트장 촬영이 대부분인 상황.
“감독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는데요.”
“응?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아뇨. 특별한 건 아니고. 다음 주 저녁에 중요한 일이 하나 있어서요.”
김주철 감독에게 다음 주 촬영 스케줄을 정할 때. 하루 정도만 조정해 달라고 부탁하려는 순간.
“난 또 우리 차 배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놀랐네. 당연히 가능하지. 지금 우리 차 배우 덕분에 촬영 진행 중인 드라마임에도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런 건 사소한 문제도 안 된다는 듯 말하는 김주철 감독이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제법 가까워진 우리 사이이기도 했고.
김주철 감독의 저 말처럼. ‘디멘션 소서러’에서 보여준 내 연기력 덕분에 벌써부터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왕자의 난’이었다.
아마 광고업계 관계자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헐. 차서준이 그런 엄청난 광고비들을 마다하고 있는 상황인데. 촬영 스케줄까지 조정하면서 고작 그런 일정을 잡았다고?”
‘디멘션 소서러’가 개봉한 이후. 할리우드에서까지 주목하고 있는 배우 차서준을 향한 광고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앞자리 숫자가 바뀐 상태로.
그런데.
정작 차서준은 ‘왕자의 난’ 촬영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모든 광고 계약들을 보류한 상황인데. 아빠를 위해 촬영 스케줄까지 조정하며 가는 셈이었으니.
“아빠!”
“아바!”
회사에서 퇴근한 아빠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파에 앉아있던 동생들이 우다다 현관으로 달려간다.
“하준이, 하윤이 오늘 엄마랑 잘 있었어?”
“응!”
“엉!”
동생들을 양팔에 안은 아빠의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퇴근 후 하준이, 하윤이가 저렇게 반겨주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한 가지 더.
오늘 일전에 내가 말했던 회사에서 단체로 영화 관람 후 깜짝 이벤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 듯싶다.
회사에서도 그 말에 대환영을 했는지. 아빠의 입꼬리가 자꾸 멈추질 못하고 씰룩거렸다.
“다녀오셨어요. 아빠, 오늘 회사에 이야기해 보셨어요?”
“그러엄. 우리 아들이 아빠를 위해 정말 안 그래도 되는데.”
“정말요? 그러면 다음 기회로 미룰까요?”
“으응? 회사에 다 말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이 촬영 때문에 바쁘다고 하면 아빠는 괜찮아.”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시무룩해지면 어떻게 안 된다고 하겠어.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 가장의 어깨가 펴야 집안에 평화가 찾아오고. 그래야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내가 아빠를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겠다는 말에. 누구보다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 아빠의 저 모습이면 충분한 수고비가 아닐까 싶다.
“일단 지금 계획은 상영 전에 콜라, 팝콘 등을 준비하고요. 끝나고 스크린 앞 무대에서 인사드리고, 저녁 식사도 같이할 예정이에요. 식당 예약도 미리 다 해두었고요.”
“정말? 아빠는 우리 아들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아니에요! 저번에 아빠가 여름휴가 때 미국으로 오는 것도. 회사에서 동료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면서요.”
그건 그랬었지. 하면서 아빠가 고개를 끄덕인다. 앞뒤 주말까지 하면 10일이 훌쩍 넘는 시간을 휴가로 사용했었다.
회사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렇게까지 편안하게 자리를 오랫동안 비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가끔 연차를 쓴 쉬는 날에도 회사에서 연락이 오곤 했었으니까.
내게 고맙다며 머리를 쓰다듬던 아빠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괜찮아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사람이 없을 때 다녀올 생각이에요. 아직 하준이나, 하윤이가 대사를 다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그랬다.
원래대로라면 아빠가 하루 연차를 사용해서. ‘디멘션 소서러’가 상영관에서 내려가기 전쯤. 사람이 없을 때 다녀오려고 한 엄마, 아빠였다.
그런 계획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단체 관람을 하겠다고 한 셈이다. 내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엉아!’ 하고 외칠지도 모르는 하윤이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마침 잘됐다.
영화가 내려가기 전쯤을 노려서. 상영관에 우리 가족만 있을 때 다녀온다면. 내용이 궁금해 동생들이 질문을 던지더라도 설명해주면서 볼 수 있겠지.
“엄마. 그러면 아직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으니까. 조금 더 지나고 나서. 영화 내려가기 전쯤 제가 촬영 스케줄 없을 때. 사람 없을 시간을 노려서 같이 보러 가요.”
내가 나중에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자,
“좋아!”
“조아!”
옆에서 듣고 있다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대답하는 하준이, 하윤이.
그런 동생들의 반응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만 우리 가족이었다.
*
배우 차서준의 아빠 차우진의 회사 동료들이 모이면. 당연히 입에 오르는 주제는 차서준에 관한 것이었다.
회사 과장님 아들이 할리우드에서 주연으로 영화까지 찍고 온 배우가 되었으니까. 거기에 얼마 전 개봉한 영화의 엄청난 흥행 성적은 자연스럽게 화두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쉽다 아쉬워. 아역 배우로 데뷔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대단해질 줄은 몰랐는데. 돌잔치 때 사진 더 찍어둘걸.”
오늘도 누군가 이야기를 꺼내자. 듣고 있던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게요. 돌잔치에서 봤던 그 아기가 어느새 탑스타가 되었잖아요. 저는 친구한테 말해도 안 믿는다니까요.”
“우리 집사람이 차 배우 광팬이야. 집에서 서준이라고 부르면 화낸다니까. 차 배우라고 부르라면서.”
“그래도 과장님 덕분에 차 배우 사인 많이 받았잖아요. 저는 그 사인 덕분에 주변 지인들에게 으쓱했어요.”
차우진 과장의 첫째 돌잔치에 참여했던 직원들이라면.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손가락 꼬물하며 돌잡이 하던 아기가 어느새 탑급 연예인이 되어버렸으니. 그것도 고작 11살의 나이에 말이다.
그 이후 입사한 이들 중 둘째, 셋째 돌잔치를 노렸던 직원들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가족 행사는 가족끼리 보내기 시작한 차우진 과장이었다.
그러다 입사한 지 1년이 막 지난 신입이 차우진 과장에 대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꺼냈다.
“차 과장님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왜? 어떤 부분이?”
“혹여나 서준에게 무슨 말이 나올까 항상 조심하시잖아요. 부하 직원들에게도 항상 친절하시고.”
“넌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르는구나. 과장님 원래 친절하셨어.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았지.”
방금 말을 꺼낸 신입 같은 경우에는 차서준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혹시나 차우진 과장의 집안 행사에 참석하면 차서준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서 기대를 해봤지만. 아쉽게도 그 기회가 오질 않은 셈이다.
집안 행사를 그냥 가족끼리 조촐하게 보내는 차우진 과장의 결정 때문. 그래도 직원들이 부탁하면 친절하게 사인을 받아다 주었다.
“오늘 회사에서 단체로 영화 볼 때. 혹시 차 배우 오지 않을까요?”
마침 오늘 3시간 일찍 퇴근하고 단체로 보기로 한 ‘디멘션 소서러’가 떠올랐는지. 사원 중 누군가가 말을 꺼냈지만.
“에이, 되겠어? 지금 드라마 촬영 때문에 광고들도 다 마다하고 있다던데.”
“저도 그 기사 봤어요. 진짜 그거 보고 감탄했잖아요. 지금 광고 단가 장난 아닐 텐데.”
“그렇게 바쁜데 올 수가 있겠어?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하지 말고. 영화나 재밌게 보자고.”
‘왕자의 난’에 집중하기 위해 광고 촬영조차 미루고 있단 기사를 본 다른 누군가의 말에 기대감을 꺼트리는 직원들이었다.
그렇게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뭐야. 진짜 왔어? 아빠를 위해서 온 거야?”
“이야! 서준이 많이 컸네!”
“서준이가 뭐예요. 우리 차 배우라고 해야지.”
“맞다. 우리 차 배우 오랜만이야!”
회사에서 단체로 관람한 ‘디멘션 소서러’가 끝난 그 순간. 배우 차서준이 스크린 앞 무대 위에 나타났다.
그것도 모두를 환호하게 만들 만한 깜짝 선물을 준비해서.
*
내가 스크린 앞에 오르자. 관객석에 앉아 있던 아빠 회사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안녕하세요. 돌잔치 때 여기 계신 분들이 오셔서 축하주셨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제가 그때의 기억이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인사드리겠습니다. 배우 차서준입니다.”
이건 뭐. 거의 팬미팅할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수는 물론, 환호성에 카메라가 찰칵이는 소리까지.
아무래도 아빠의 회사 동료들이라지만. 내가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후 거의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젊은 직원들의 반응이 아주 뜨거웠다. 당장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이 사인과 사진 요청을 하러 달려오고 싶은 모양.
“아빠에게 오늘 제가 출연한 영화를 단체 관람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제가 작은 감사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무엇보다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중간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옆에 있는 동료들이 ‘이야, 서준이 진짜 완전 연예인이 되었네?’하면서 칭찬을 들으며.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자, 그러면 준비한 멘트부터 시작해야지. 미리 이야기가 된 회사 직원이 사장님을 앞으로 모셨다.
“무엇보다 오늘 이런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주신 사장님! 정말 감사드려요. 완전 최고!”
내가 준비한 선물과 함께 고마움을 표하자. 아빠 회사의 사장님의 얼굴에 함박미소가 피어난다. 이로써 앞으로 아빠의 승진에는 문제가 없겠지.
“제가 여기 근처 대형 식당을 예약했거든요. 혹시 바쁜 일이 있으신 분은 가셔도 괜찮···지 않고 서운할지도 몰라요. 다들 제가 준비한 선물 받아주세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반응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나 한우 가게에서 알바하는데. 우리 가게를 아예 통째로 예약한 손님이 차 배우더라.]
이날 밤. 아빠에게 효도한 차 배우 썰이 퍼졌다. 덕분에 ‘효자 차 배우’라는 별명이 새롭게 생긴 나였다.
아빠는 어땠냐고?
“아들! 아빠가 우리 아들을 너어무 사랑하는 거 알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며 잠이 들기 전까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
- ‘디멘션 소서러’ 1천만 관객 돌파. 단일 히어로 솔로 무비로는 최초 천만 외화.
- 확실하게 터진 차서준 효과. 첫 할리우드 진출 영화로 천만 관객 달성!
- 국내보다 더 무서운 성적을 해외에서 거두고 있는 ‘디멘션 소서러’. 그 영광의 주역은 바로 배우 차서준?
- 천만 관객 돌파 ‘디멘션 소서러’, 의미가 남다른 이유는?
└ 미쳤다!!! 결국 기어코 천만을 넘어서고 말았구나. ㄷㄷ 영화관에서 보고 대박 날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로 터질 줄이야. ㄷㄷ
└ 당연한 이야기임. 일단 월드 코믹스 시리즈 자체가 국내 팬들도 많은데. 거기에 차 배우 팬들까지 몰려갔으니. 2회차 관람 인증도 꽤나 올라왔었잖슴.
└ 사실 개봉 1일 차에 백만 관객 넘어섰을 때. 천만 관객 돌파는 예약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지금 해외에서도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 ㄷㄷㄷ
└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나 데이븐이 SNS에서도 말했잖아. 이번에 디멘션 소서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차 배우 덕분이라고.
└ 무엇보다 이번 영화를 통해 2페이즈의 기대감을 확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할리우드가 주목하고 있음. ㅋㅋㅋ 언제나 매력적인 악당은 환영하는 법이니.
└ 미쳤네요. 솔직히 10살에 연기대상 탈 때만 하더라도 커리어 하이 찍었나 싶었는데. 11살에 천만 관객 영화의 주연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드디어 월드 코믹스 영화 ‘디멘션 소서러’가 천만 관객을 돌파해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기사가 쏟아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순서였다.
“이야, 우리 서준이가 천만 관객 배우가 되어버렸네.”
“축하한다.”
“고마워요 형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아리송한 말을 꺼내자. 이어질 말이 궁금하다는 듯이 박우형과 김정범이 나를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 드라마가 영화보다 더 터질지도 모른다고요.”
“뭐?”
“맞지맞지. 천만 배우 서준이에다가. 우형이 형에 나.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들이 다 미쳤는데. 이게 안 터지면 뭐가 터지겠어.”
정말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고 나니. 제작사부터 김주철 감독, 박정아 작가까지 모두 이를 갈고 준비했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세트장부터 작은 소품 하나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촬영 환경부터. 구멍 하나 없는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아마 ‘왕자의 난’이 넷티비를 통해 공개되고 나면. 전 세계가 집중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