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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52화 (152/220)

152화

영화가 좋아, 또는 드라마가 좋아 이곳에 뛰어든 이들이었다. 당연히 그런 스태프들이 장안의 화제인 ‘디멘션 소서러’를 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이번 ‘왕자의 난’에 함께할 배우 차서준이 주연을 맡은 첫 할리우드 영화였으니.

그렇게 영화를 보고 온 스태프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서 배우 차서준이 보여주고 있는 인영대군 때문에.

‘그러니까. 데블 오리엔트와 저 인영대군이 같은 인물이라는 건데. 배우의 이미지가 이렇게나 확확 바뀔 수가 있는 건가?’

우수에 찬 눈빛.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눈동자. 허나 그 안에 담긴 굳은 의지. 지금 완벽한 인영대군 그 자체를 보여주는 차서준에게선. 데블 오리엔트의 광기에 찬 모습이라곤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배우 누구누구 이름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라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배우 이주형의 이름을 들으면 보통 날카로운 형사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만큼 작품마다 배우가 다른 옷을 입듯 색다른 느낌의 연기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는 뜻.

하지만.

“아바마마. 여기에 계셨사옵니까.”

“세자 왔는가.”

지금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고 있는 차서준은 인영대군 그 자체였다.

마치 과거 왕가의 핏줄을 이은 세자를 데려다 놓으면 딱 저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날이 좋아 잠시 나와 있었다. 슬슬 시간이 되었으니 들어가자꾸나.”

“아바마마. 오늘따라 형님이 참 보고 싶습니다. 이런 날이면 제게 몰래 챙겨왔다며 정과를 주었는데 말입니다.”

세자가 된 인영대군이 죽은 제 형을 찾자. 듣고 있던 왕의 이마가 꿈틀거린다.

순간 불쾌함마저 느껴지는 왕의 표정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꺼낸 인영대군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영아. 내 누누이 말했거늘. 또 그 이야기를 꺼낸단 말이더냐.”

“죄송하옵니다. 아바마마. 실은 소자의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생각이 났나 보옵니다.”

그리고.

‘그래, 이거지.’

모니터 너머로 박우형과 차서준의 연기를 보고 있던 김주철 감독은 속으로 쾌재를 삼켰다.

분명 두 배우의 표면적 대사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떠난 세자에 대한 그리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전혀 그렇질 못했다.

세 달 전, 애첩에게서 얻은 소생이 하필이면 사내아이. 애첩의 베갯머리송사에 왕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걸 알아차린 인영대군이 말에 가시를 담은 것.

이미 궁 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2년 전 세자 저하의 급작스러운 서거는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그걸 모를 왕이 아니었다.

“아바마마.”

“왜 그러느냐.”

“새로 태어난 동생이 보고 싶사온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거절이 계속되어 속상합니다.”

“허어. 내 그 마음은 이해한다만. 아직 어린 아기이니 세자가 조금 더 기다리거라.”

애첩에게서 득남을 했다는 소식에 들썩였던 왕궁이었다. 그 이후부터 왕이 대소사조차 소홀히 하며 아기만 찾는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

돌아가는 궐 안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떠올린 인영대군은 다시 입술을 떼는데.

“일전에 형님께서 제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이상하게 거리를 두는 분인지라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말입니다. 형님께선 참으로 살갑게 다가가고 싶은데 속상하다며 제게···.”

“세자! 내 경고했다.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

다시 한번 언급하는 인영대군의 말을 끊고 노려보는 왕.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커엇!”

김주철 감독은 그 숨 막히는 대치에 오케이를 외치고 말았다.

두 사람의 존재감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웠는데. 거기에 음악이 깔려 완성될 장면을 상상하면 몸이 짜릿할 정도였다.

“형. 방금 괜찮았어요?”

“좋던데. 시선 처리도 그렇고. 연습할 때보다 훨씬 좋았던 거 같다.”

말이 필요 없었다.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마자. 방금 전까지 서로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던 두 배우가 웃으며 서로의 연기에 대해 피드백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정도의 몰입이라면 쉬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마치 두 사람에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감독님. 방금 장면을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혹시나 부족한 부분이 없었는지. 모니터링을 위해 차서준과 박우형이 먼저 요청을 한다.

“당연하지! 우형 씨도 이쪽으로 더 와서 한 번 봐요.”

배우들이 먼저 열의를 보이는데. 감독의 입장에서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완벽을 추구하는 김주철 감독의 입장에서 한 가지 살짝 아쉬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허나 말 그대로 사소한 정도인지라 말을 꺼내지 않았었다. 다시 재촬영을 요구하기엔 방금 전 그림이 너무나도 끝내줬기에.

그런데.

“어? 형. 여기 이 부분을 저번 연습할 때 말했던 것처럼 해보면 어떨까요? 이게 영상으로 보니까 그쪽이 더 괜찮을 거 같은데요.”

“좋은 생각인데. 감독님, 혹시 다시 한번 가도 괜찮겠습니까? 서준이가 말한 부분이 조금 아쉽게 느껴지네요.”

오히려 두 배우가 모니터링 도중 그 부분을 발견하고. 감독인 자신에게 먼저 요청한다.

감독인 자신이 먼저 말한다면 사소한 꼬투리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배우들이 저렇게 말을 하니 옳다구나 하고 다시 촬영 준비를 지시하는 김주철 감독이었다.

“아니. 배우들이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데. 말릴 감독이 어디 있겠어요. 다시 갑시다.”

다시 촬영을 준비하는 박우형과 차서준을 보면서. 그 열정에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김주철 감독이었다. 그의 행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꼭 이 씨만이 저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법이 있소이까? 슬슬 주상전하의 눈이 가려지는 듯하오니 준비들 하십시다.”

좌의정 조인규. 연사모의 일원인 김정범의 연기력 역시 김주철 감독을 흡족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

파란꿈나무 대표 박중수는 아침부터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예예. 그러면 그날까지 준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전달하겠습니다. 검수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넷티비에서 공개될 ‘왕자의 난’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덕분에 문 너머 사무실 역시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때마침 박중수 대표가 전화를 끊었을 무렵. 제작 피디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촬영장 분위기는 어때? 별일 없었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촬영장에서 방금 막 돌아온 제작 피디가 심각한 표정으로 박중수 대표를 바라보고 있을 뿐.

그 모습에 커피를 향해 손을 뻗던 손이 멈췄다. 방금 통화하느라 말을 많이 한 탓일까. 괜히 목이 타는 것 같은 박중수 대표였다.

“···대표님. 차서준 있잖아요.”

“뭔데. 왜? 차서준이 촬영하다가 어디 살짝 다치기라도 했어? 아, 좀 답답하니까 말 좀 빨리!”

혹시나 촬영장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덜컥 심장이 내려앉으려던 찰나.

“진짜 천재 같아요. 흔히 말하는 말도 안 되는 미친 재능을 타고난 천재요.”

“허, 참. 겨우 그런 말이나 하려고 그렇게 사람 속을 철렁이게 해?”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최근에 월드 코믹스 영화를 보고 왔는데. 촬영장에서 본 차서준이랑 같은 배우라는 게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 그랬습니다.”

제작 피디의 입에서 나온 건. 차서준의 연기가 미칠 듯이 끝내줬다는 극찬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걸 듣고서야. 벌컥 멈췄던 박중수 대표의 손이 커피를 향했다. 후룩 한 모금을 마신 뒤.

“인마. 너 우리 회사 제작 피디라는 놈이 어디 가서 그런 소리 꺼내지도 마. 회사 욕 먹이는 소리니까.”

별일 없었다는 사실에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박중수 대표였다. 그러고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담아 제작 피디를 바라보았다.

“너 차서준이가 몇 살에 데뷔했는지 알아?”

“당연히 알죠. 이 바닥에서 일하면서 그거 모르면 간첩이게요? 6살이잖아요.”

“그렇지. 고작 6살에 데뷔해서 10살엔 할리우드까지 진출했지. 너 한국에서 그런 배우가 있었다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없죠?”

사실 박중수 대표가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캐릭터이긴 했다. 영화 스토리도 이렇게 짜면 욕먹을 텐데.

정작 현실로 보여주고 있는 배우 차서준이라는 주인공이 있었으니.

“이제 겨우 11살이야. 지금 첫 할리우드 영화로 천만 관객은 예약이나 마찬가지인 상태고. 또 우리 드라마는 어떻고. 이제 국내에서 품기엔 급이 달라졌단 이야기지.”

잠시 식어버린 커피 한 모금을 다시 후릅 마신 박중수 대표가 말을 이었다.

“촬영장에서 필요하다는 거 있음 다 해주고. 차서준을 비롯해 연사모인 박우형, 김정범도 친분 잘 다져놔. 매니저들한테도 기름칠 좀 잘해놓고.”

“안 그래도 최선을 다해 편의를 봐주곤 있습니다.”

“그래. 내가 봤을 땐 있잖아. 우리 드라마가 넷티비를 통해 공개되고 나잖아?”

현재 ‘디멘션 소서러’에서 데블 오리엔트를 보여준 차서준에 대한 관심은. 넷티비에서 ‘왕자의 난’이 공개가 되고 나면 옮겨올 것이 분명했다.

“나는 꼭 지금 영화보다 더 난리가 날 것 같단 말이지.”

*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누구보다 나를 반겨주는 동생들이 있었다.

“형아!”

“엉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우다다 달려온 동생들이 나를 꼬옥 안아준다.

예전에 내가 퇴근한 아빠에게 해주던 것을 기억하고 따라 하는 것. 이런 동생들의 반김이 기다려져 퇴근길이 설레는 나였다.

“오늘도 많이 기다렸어?”

“응!”

“엉!”

나도 동생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준아, 하윤아. 바깥에 나갔다 오면 뭐부터 해야 된다고 했지?”

“화장실!”

“하장실!”

“맞아요. 손부터 씻고 나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알았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들을 두고서. 손을 닦고 나오니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촬영이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보니. 먼저 퇴근한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우리 아들. 오늘도 촬영 잘하고 왔어?”

“네! 동생들이랑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서. 열심히 촬영하고 왔어요.”

“잘했네. 요즘 아빠가 회사에서 아주 어깨가 으쓱으쓱해.”

안 그래도 출근길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운 아빠였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아들이 10살의 나이에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심지어 그 영화가 월드 코믹스의 ‘디멘션 소서러’였는데. 그 영화가 얼마 전 개봉했다.

또 작년 나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왔었던 여름휴가에서. 할리우드 스타 데이븐과 쌓은 친분은 회사에서도 유명할 정도였으니.

“요즘 엄마 주변에서도 우리 서준이 영화 너무 재밌게 봤다고 많이 하네. 기사를 보니까 천만 관객을 달성할 수도 있다면서?”

“맞아요. 지금 성적이 너무 좋대요.”

거기에 엄마의 말처럼 천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흥행 성적까지.

단일 히어로 무비. 그것도 트릴로지의 첫 번째 영화가 1페이즈 히어로 총집합이었던 ‘세이버스’와 흥행 속도가 나란하다는 것 자체가 대성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성적은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의 평가가 더 좋은 상태였다.

아빠의 어깨가 으쓱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었다.

“모두 다 엄마, 아빠가 도와준 덕분이에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따뜻하게 엄마, 아빠를 안아주려고 하자.

“형아! 나도!”

“엉아! 흥!”

자기들은 왜 빼놓느냐는 듯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는 하준이, 하윤이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빠 회사에서 단체로 우리 서준이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네?”

정말? 안 그래도 이번에도 아빠 회사에서 단체 관람을 한다고 하면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아빠.”

“응?”

“그러면 회사에서 단체로 상영관 하나를 예약해서 볼 거잖아요.”

“그렇지?”

아직까지 아빠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오질 않는 모양.

그런 아빠를 보며 내가 말했다.

“혹시나 영화관이랑 예약 날짜, 상영 시간 정해지면 말해주세요.”

“왜? 우리 아들이 갑자기 그걸 왜···.”

말을 하던 아빠의 말이 갑자기 멈춘다. 내가 왜 그런 정보들을 물어보는지. 그 이유가 슬슬 추측되는 모양.

“제가 가서 고맙다고 콜라, 팝콘 선물하고 인사도 하고 싶어서요.”

아마 회사 사람들도 엄청 좋아할 터였다. 돌잔치 때 봤다곤 했지만. 이제는 고작 11살의 나이에 탑급 연예인이 되어버린 나였으니까.

아빠를 통해 가끔 사인을 받아 간다곤 하나. 직접 만나 사진까지 함께 찍는 건 다른 이야기일 터였다.

우리 아빠 어깨를 더 으쓱하게 만들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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