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최근 몇 년간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는 히어로 무비 시리즈가 월드 코믹스 영화였다.
그런 인기 덕분에 히어로 솔로 무비라지만 ‘디멘션 소서러’ 역시 잘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할리우드 거장이라고까지 불리는 크리스 앤더슨이 감독 자리를 승낙했을 땐. 그 소식을 들은 할리우드의 많은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였으니.
[그러면 이번 디멘션 소서러는 무조건 잘 되긴 하겠네요?]
└ 잘 되겠다 뿐이겠어요? 크리스 앤더슨 감독에 할리우드 스타 데이븐. 마지막으로 우리 차 배우까지. 해외에선 확실히 몰라도 일단 한국에서는 무조건 흥행할 거예요.
특히나 ‘디멘션 소서러’에 합류한 배우가 데뷔 이후 필모에 올린 작품들을 모두 성공시킨 차서준이었다.
오죽하면 차서준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그 필모와 작품을 보는 눈만큼은 인정한다고 할까.
어쨌거나.
그렇게 모두의 관심이 주목된 상황 속에서 개봉한 ‘디멘션 소서러’의 성적은. 어느 정도 흥행을 예상했던 이들조차 경악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 영화 ‘디멘션 소서러’ 개봉 단 하루 만에 ‘100만’ 관객 돌파.
- 이번에도 터진 차 배우 효과. 시작부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디멘션 소서러’
- 개봉 4일 만에 400만 관객 근접. 극장가에 적수가 없는 월드 코믹스 영화 ‘디멘션 소서러’
- 월드 코믹스 영화 시리즈 최초 히어로 단독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을까?
└ 성적이 미쳤네. ㄷㄷ 이 정도면 우리 차 배우의 첫 할리우드 영화 대박 난 거 아닌가요? ㄷㄷ
└ 대박이 아니라 초대박임. 1페이즈의 마무리 영화 세이버스가 천만 관객을 달성하긴 했는데. 거긴 빌드업한 히어로들이 총집합되어 나온 덕분이고. 지금 디멘션 소서러는 히어로 솔로 무비인데 이 성적인 거임. ㅋㅋㅋㅋ
└ 심지어 지금 경쟁작도 없는 상태에 지금 실관람객 평들조차 너무 좋아서. 무난하게 1000만 관객 달성할 듯요. 우리 차 배우의 첫 할리우드 영화가 천만 관객 영화라니. ㄷㄷㄷ
└ 지금 국내 성적보다 중요한 게. 해외에서 차 배우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임. 여기에서도 감탄을 멈추지 못했던 데블 오리엔트 연기를 해외에서는 더 높게 평가하는 것 같음.
└ 해외에서도 지금 입소문 타고서 점점 예매율이 올라가고 있어요. 특히나 관람하고 나온 해외 관객들이 우리 차 배우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무서운 흥행 기세에 연일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개봉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예매율 1위는 ‘디멘션 소서러’가 굳건히 지키는 상황.
히어로 솔로 무비라고 하기엔 경이로운 누적 관객수 숫자는 말해봤자 입만 아플 정도였다. 이 모든 성적의 영광은 배우 차서준을 향하고 있었다.
“축하한다. 서준아.”
“다 삼촌 덕분이에요.”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서도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방긋 웃는다.
이제는 내가 걸어 다니는 비타민이라 말하는 서도현이었다. 일에 치여 피곤하다가도 나를 보면 피로가 싹 가신다나 뭐라나.
사실 개봉 전부터 어느 정도 흥행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1페이즈의 마지막 ‘세이버스’의 관객수가 천만 관객을 넘기도 했었고. 또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을 정도로 월드 코믹스 영화 팬들이 많은 한국이었으니까.
하지만.
“일주일 만에 누적 관객수가 600만 돌파라. 이 정도면 저번에 월드 코믹스 히어로들이 총출동했던 세이버스와 비슷한 속도인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감독님이랑 데이븐도 그런 말을 했었어요. 지금 미국에서도 반응이 엄청 좋대요.”
“삼촌도 그 소식 들었다. 저쪽에서도 많이 놀라고 있다고 하던데. 이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 터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더라.”
단일 히어로 영화의 성적이라고 보기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얻고 있는 성적이 심상치가 않았다.
영화 개봉 전까지 광고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했었는데. 개봉 이후 빠르게 퍼지는 입소문 덕분에 그 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으니.
평소 월드 코믹스 영화, 특히 히어로 무비에 부정적인 말만 하던 해외 어떤 평론가는.
“히어로 영화이지만 유치하지 않은 매력적인 악당. 배우들의 연기에 잡아먹히는 2시간.”
이런 평론까지 내어 사람들의 관심을 주목시켰을 정도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앞서 말했던 미국 내에서 배우 차서준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것.
사실 아무리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나, 데이븐이 언급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지만. 해외에선 배우 차서준에 대한 관심은 아무래도 국내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디멘션 소서러’가 개봉되고 나니. 관람을 마치고 난 관객들이 데블 오리엔트를 연기한 배우 차서준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영화관에 갔다가 미친 연기를 보고 왔다고!]
월드 코믹스 만화책 시절부터 오랜 팬이라. 지금까지 월드 스튜디오 영화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봤단 말이지.
그런데 이번 디멘션 소서러의 캐스팅 소식을 듣고선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 아니, 솔직히 말해 더럽게 실망했었다고.
지금까지 월드 스튜디오가 뽑은 악역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이번 데블 오리엔트 배우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퍽!
그래. 영화를 보기 전의 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고.
영화를 본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가 뭔 줄 알아?
왓 더···.
대체 그 동양의 어린 배우 정체가 뭐야?
솔직히 크리스 앤더슨이 월드 투어 인터뷰에서도 극찬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나이를 찾아보니 고작 10살이었어. 그 어린 나이에 그런 미친 연기가 가능하다고?!
└ 이 친구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무슨 앞뒤 다 짤라 먹고 흥분만 담아 올리면 어쩌자는 거야. 누가 저 글 좀 해석해줄 사람 없어?
└ 아마 얼마 전 개봉한 디멘션 소서러 보고 온 모양이네. 위에 있는 친구. 너도 얼른 영화관에 달려가서 보고 오라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안 보면 인생 손해니까.
└ 왓? 대체 무슨 말인데. 나 월드 코믹스의 히어로 시리즈는 유치해서 안 본다고. 그거 애들이나 보는 거 아니야?
└ 워워.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구시대적인 발언을 하고 그래. 이번 디멘션 소서러가 영상이면 영상. 배우들의 연기면 연기. 모두 끝내주게 뽑혔다고. 아직도 소문 못 들었어?
└ 할리우드에서 데블 오리엔트 연기한 어린 친구를 주목하고 있는 거 몰라? 엊그제 대니 라이먼 감독도 같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 질문에 그 친구 이름을 꺼냈다고.
└ 참고로 그 어린 배우 친구의 드라마가 올 12월에 넷티비에서 공개된다는 말이 있어. 동양의 퓨전 사극이라는데. 기다렸다가 한 번 보려고.
이처럼 동양에서 온 어린 배우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러브콜로 이어지고 있었다.
촬영 당시 떠돌았던 소문 속의 배우 차서준의 연기가 정말 끝내준다는 걸 직접 확인했으니.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당연히 그 달콤한 제안들은 소속사인 구름엑터스로 들어왔다. 그러니 서도현이 피로한 눈을 꾹꾹 누르다가도 날 보고선 활짝 웃은 거겠지.
“내년이나 내후년에 기획 중인 작품들이 제법 들어오고 있는데. 서준이 네 생각은 어때?”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번 ‘디멘션 소서러’가 개봉하고 나면.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에서 러브콜이 올 거라는 것 정도는.
하지만.
나와 서도현이 예상했던 것보다 ‘디멘션 소서러’의 흥행 덕분에 더 많은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삼촌.”
“응?”
“일단은 왕자의 난 촬영에 집중하고 싶어요.”
내 대답을 예상했음일까. 서도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역시. 서준이 너라면 그렇게 대답할 거라 생각했다.”
“배우라면 현재 촬영 중인 작품에 집중해야 되니까요? 차기작을 국내도 아닌 할리우드까지 고려하기엔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고요.”
“그래. 누누이 말했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가 배우 차서준에 주목했다면. 드라마가 공개되고 나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텐데. 굳이 지금 우리가 먼저 움직일 필요가 없겠지.”
애가 타는 건 저쪽이 될 테니까.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서도현이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땐.
“이건 서준이 네게 들어온 광고들이다. 특별히 광고 촬영 시간이 짧으면서도 괜찮은 것들로 추렸으니까. 지금 한번 살펴보렴.”
‘디멘션 소서러’ 흥행 이후 다시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한 광고 제안서들과 함께였다.
서도현의 말을 들으며. 나는 건네주는 광고 제안서들을 살폈다.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숫자였다.
“역시 삼촌의 말이 맞았어요.”
“앞자리 숫자부터가 달라진다고 했지?”
“네.”
정말로. 지금까지는 국내에서만 인기 있는 배우였다면. 이번 영화를 통해서 할리우드에서 주목하는 배우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배우 차서준의 몸값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순서.
“삼촌. 일단은 광고도 지금 하고 있는 드라마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 시작하고 싶어요.”
“오케이. 그러면 삼촌이 그렇게 일정들을 조율해보마. 아니지. 아예 우리 배우가 맘 편하게 촬영할 수 있도록 그때 다시 계약을 검토해보자.”
역시 서도현이었다. 당장 건네준 광고 제안서들도 모두 짧은 시간 내에 촬영할 수 있도록 추려놓은 것이었는데.
내가 오직 ‘왕자의 난’ 촬영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하자. 내 의견에 따라 촬영 이후에 생각해보자며 제안서들을 가지고 간다.
“요즘 촬영장 분위기는 어때?”
안 그래도 궁금하긴 했을 터였다. 촬영장까지 찾아오기엔 이제는 정말 바빠진 사람이 구름엑터스 대표였으니.
당장 내가 원한 대로 촬영을 마친 이후로 광고 계약을 조정하려면. 대표인 서도현이 바쁘게 다니며 조율해야만 할 터였다.
그런 서도현의 물음에.
“지금 촬영장 분위기 완전 최고예요.”
내가 대답했다.
*
드라마 ‘왕자의 난’ 촬영 현장.
“오늘 중요한 촬영인 거 알지? 괜히 배우들 감정 잡은 거 흐트러지지 않게 다들 조심하라고 전해. 알았지?”
“네. 안 그래도 모두에게 주의시켜 두었습니다. 박우형도 한참 전부터 도착해서 감정 잡고 있고요.”
조연출의 말처럼. 바쁘게 촬영 준비 중인 현장 분위기와 다르게.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대본을 살피는 박우형이 있었다.
딱히 까탈스러운 배우는 아니었으나. 감정을 잡고 있는 배우를 건드려서 집중을 깰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박우형 말고도. 박시연, 주정혁 등등. 비중 있는 캐릭터의 배우들은 모두 대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
“서준이랑 김정범은?”
“거의 다 왔다고 했으니까. 곧 도착할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도 잘 부탁드립니다!”
차서준이 등장하고. 언제나처럼 생글생글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촬영장에 울려 퍼졌다.
분명 오늘 촬영 때문에 다들 조심조심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평소와 똑같은 차서준의 모습에 당황하는 스태프들의 모습이 보인다.
“와, 왔어?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
“엄청 좋아요! 오늘 조명도 잘 부탁드려요, 감독님.”
차서준의 인사를 받은 조명 감독이 당황한다. 먼저 도착한 다른 배우들은 대본을 손에서 떼질 못하고 있는데.
정작 오늘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차서준은 싱글벙글한 채로 인사를 다니고 있으니.
보통 이 정도로 감정을 몰입해야 되는 씬에서는 배우들 역시 평소보단 날카롭게 반응하곤 했었다.
하지만.
마치 어제, 그제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차서준을 보던 조연출이 김주철 감독에게 속삭였다.
“감독님. 진짜 쟤는 똑딱이 스위치 있는 거 아닐까요? 툭 누르면 연기가 시작됩니다. 하고 발동되는 그런 스위치요.”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준비 끝내.”
“넵! 알겠습니다.”
이런 말을 꺼낼 만도 한 것이. 박우형조차 아까부터 대본을 넘기면서 감정을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서준은 평소와 똑같았으니 말이다.
넷티비에서 제작하는 드라마 ‘왕자의 난’
2년 전. 갑작스러운 세자의 죽음 이후 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 인영대군.
그렇게 후계 구도가 안정되나 싶었는데. 왕이 아끼던 애첩이 아들을 낳게 되면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데.
잠시 후.
“자, 슬슬 촬영 시작합시다.”
김주철 감독이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