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말 그대로 폭탄선언이었다.
“···.”
“···.”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어지간한 일에 감정 변화가 드문 박우형조차.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김우승만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저 형이 일 년에 몇 번 보기 힘든 경악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김정범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
“그, 그러니까. 우, 우승아?”
김우승을 몰아붙이던 김정범이 말까지 더듬으며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한다.
이제야 방금 자신의 귀로 들은 말이 해석되기 시작한 모양.
“아빠가 된다고? 우승이 네가?”
“어. 그것 때문에 급한 일이라고 보자고 한 거야. 나도 어제서야 알았어.”
아마 지금 형들만 그런 게 아니라. 나 역시 형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와우, 대박인데?’ 이런 생각만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뜨겁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활활 타오르고 있었을 줄이야.
“다른 사람들보다 형들이랑 서준이에게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아직 나랑 청아만 알고 있는 상태야. 각자 집에도 말을 안 했거든.”
“···축하한다.”
버퍼링에서 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박우형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사실 김우승이나 김청아 역시 적은 나이가 아니니. 속도위반은 오히려 두 사람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김우승이 가끔씩 두 사람이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슬쩍 꺼낼 때가 있었으니까. 그러니 정말로 축하받아야 할 일인 셈이다.
“마, 맞아! 축하해야 할 일이지! 우리 우승이가 드디어 아빠가 된다니. 그러면 식은 어떻게 하게?”
뒤이어 정신이 돌아온 김정범이 결혼식에 관한 질문부터 꺼냈다.
이미 김우승 역시 그 부분에 대해 김청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김정범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년이라는 대답을 꺼낸다.
“오늘 형들 만났으니까. 내일 청아네 집에 인사드리러 가서 날 잡을 거야. 우리집이야 간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테니까.”
“내일?”
“응. 그리고 가능하면 결혼식은 최대한 빠르게 하려고. 아마 1월 초에 하지 않을까 싶어. 와줄 거지?”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닌 우승이가 결혼한다는데. 모든 스케줄 미루고 가야지!”
사실 크게 준비할 것도 없었다. 돈이야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자인 김우승이었고. 살고 있는 집은 신혼집으로 살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칠 수준이었으니.
내 집처럼 다니던 김우승의 집 대신 박우형의 집에 모이기 시작한 것도. 어느새 붙어 지내기 시작한 두 사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많이 못 마셔. 조금 있다가 대리 불러서 가려고.”
“잘 생각했어. 내일 내려가서 인사드리러 간다면. 그것도 그런 소식과 함께 간다면 중요한 자리일 텐데. 술 냄새를 풍기면서 가면 안 되지.”
오늘 김우승과 밤새 달리겠다며 냉장고를 가득 채워둔 김정범이었지만. 그 사실을 쏙 빼둔 채 말한다. 그냥 오늘은 술 대신 이야기나 좀 나누다가 가라면서.
형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내 머릿속이 슬슬 정리가 되어갔다.
그러니까.
내게 조카가 생긴다는 거지. 아직은 그 조카가 남아일지, 여아일지는 모르겠지만.
“우승이 형.”
“응?”
내가 부르자 김우승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우리 조카에게 필요한 것들은 다 제가 선물할 거예요. 나중에 성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알려주세요.”
“으, 응? 서준이 네가?”
“네. 하준이, 하윤이 덕분에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다 공부했거든요. 제가 조카를 위해서 알차게 선물들을 준비해볼게요.”
이런 날이 올 것 같아서 따로 통장도 만들어둔 나였다. 김우승, 김정범, 박우형. 이렇게 세 사람을 위한 각각의 선물 통장을.
김우승은 이번 기회에 쓸 수 있을 것 같고. 보아하니 김정범도 머지않아 쓸 것 같은데. 문제는 박우형이었다.
저 형은 어떻게 해야 하려나. 지금도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연기에만 빠져 살고 있는데.
“서준아. 그러지 않아도 괜찮은데. 너도 알다시피 나도 여유가 많은 상황이니. 내가 그냥···.”
“아니요. 하준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형이 많이 도와준 덕분에 얼마나 든든했는지 몰라요. 이제는 그때의 고마움에 제가 보답할 차례에요.”
연사모 형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인연을 맺은 사람이 김우승이었다.
당시 힘들었던 우리 가족을 위해 선물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 역시 우승이 형이었고.
나중에 가격을 알게 된 엄마가 부담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었을 만큼. 우리 가족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던 형이기도 했다.
그러니 보답해야지. 선물 말고 선물들로. 이제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사줄 수 있을 만큼 많이 벌고 있으니까.
“우승이 형. 저 이번에 할리우드 다녀오고. 또 형들이랑 차기작 들어가면서 엄청 번 거 아시죠?”
“알지. 그런데 서준아. 연예인이란 앞일을 모르는 법이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저축을 해야···. 아,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서준이 너한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연예인이란 평생 정상에 있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과거의 톱스타들이 현재 사람들에게 잊혀져버린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
그렇기에 연예인은 보통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때. 미래를 위해 부지런히 저축과 투자를 해놓아야만 했다.
그 부분을 말하려던 김우승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이제 고작 10살의 나이로 할리우드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한국에서 보았을 땐 정상에 다다랐을지 몰라도. 세계를 기준으로 봤을 땐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는 상태.
“맞지. 서준이 쟤가 나이만 10살이지. 내년에 주연으로 출연한 월드 코믹스 영화 개봉 앞두고 있지. 또 넷티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출연 예정이잖아. 쟤 전성기는 아직 오지도 않았을걸.”
김정범 역시 그런 김우승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작 10살의 나이에 탑급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출연료를 받게 된 나였다.
심지어 내년에 있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얼마나 더 몸값이 뛸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상황.
“이야. 우리 중에 누가 가장 먼저 장가를 갈까 걱정했는데. 우승이가 형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가네.”
김정범이 놀리듯 말했지만.
“왜? 요즘 슬쩍 보니까 형도 머지않은 것 같던데.”
아빠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성장한 것인지. 어깨를 으쓱이며 받아넘기는 김우승이었다.
차서준 연애 조작단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
내가 홍보 대사로 참석한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서. 이번에도 최지환이 대상을 수상했다.
작년에 배우 차서준 덕분에 대상을 탄 것이 아니냐는 뒷말들이 조금 있었는데. 올해도 수상하면서 그 논란을 잠재운 것.
최근 할리우드까지 다녀오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배우 차서준인지라. 그와 관련된 기사들도 쏟아졌었다.
- 작년에 이어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최지환 어린이 감독.
- 올해는 홍보 대사로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차서준.
- 출연료는 어떻게 했냐는 질문에 “올해도 치즈돈가스 세트로 협의했어요.” 모두를 웃게 만드는 답변.
- 올해도 이어진 배우 차서준과 사총사 친구들의 의리.
└ 올해도 사총사 친구들의 의리는 굳건하네요. ㅋㅋㅋㅋ 또 치즈 돈까스 세트를 받고 영화에 출연하다니. ㅋㅋㅋ
└ 심지어 우리 차 배우는 몸값이 거의 하늘을 뚫고 있는 상황에서. 친구들을 위해 홍보 대사로 활동함. ㄷㄷ
└ 어린이 감독 영화제 관계자들조차 진짜 차 배우가 홍보 대사 제안을 수락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ㅋㅋㅋ
└ 당연하지. 지금 연예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이 우리 차 배우인데. 다른 제안들 다 거절하고 저기 홍보 대사로 나와 준 거잖아.
└ 그래서 사총사 친구들 치즈 돈까스 먹으러 갈 때. 우리 차 배우도 같이 갔더라고요. 팬들 중 한 명이 보고 글 올렸었음. ㅋㅋㅋ
└ 귀엽네요. 할리우드까지 다녀왔음에도 여전한 우정을 보여주는 사총사 친구들도 다 귀엽고. 저도 저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부럽다 ㅠㅠ
그 기사들이 나감과 동시에. 올해도 이어진 배우 차서준과 사총사 친구들의 우정에 대한 반응들이 터졌다.
그렇게 바쁜 연말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올해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 서준아. 나 내년에도 열심히 노력하고 활동해서. 나중에 서준이 너랑 같이 작품할 거야!
“기다리고 있을게. 그리고 내년에는 더 잘될 거야. 혹시나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하고. 알았지?”
- 응! 고마워!
내년에는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김도윤과 통화를 끊고 나니. 기다리고 있던 동생들이 후다닥 달려와 얼른 오라고 재촉한다.
“올해는 형이랑 같이 있어서 좋지?”
“응! 좋아!”
“엉! 저아!”
작년에는 연기대상에 참석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보내지 못했는데. 올해는 집에서 형들의 시상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우리 하준이, 하윤이가 가장 사랑하는 대게와 함께.
사실 하준이, 하윤이가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것도. 대게가 식기 전 뜨끈할 때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먼저 먹고 있으라니까.”
“안 돼!”
“안 대!”
맛있는 건 다 같이 먹어야 한다며.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대게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하준이와 하윤이었다.
그렇게 내가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던 식탁에 앉자. 신이 난 하준이와 하윤이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께! 께!”
“깨! 깨!”
올해의 마지막 저녁은 동생들과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대게를 잔뜩 포장해왔다. 연말이라 주문이 밀렸을까 아빠가 직접 다녀오신 것.
내가 김도윤과 통화를 하는 사이에. 아빠가 대게를 가지고 돌아온 것이다.
시상식을 보면서 먹을까 했지만. 그때쯤이면 동생들이 코오 잠이 들 시간이라 저녁 메뉴로 결정했다.
동생들이 정신없이 대게를 맛보고 있을 때.
“세상에. 우승 아우가 다음 주말이면 결혼을 한다니.”
“그러게요. 잘 되어가는 아가씨가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갈 줄은 몰랐어요.”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잖아.”
“맞아요. 정말 좋은 소식이라. 듣고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엄마, 아빠는 며칠 전 청첩장을 주고 간 김우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갑작스럽게 결혼식을 올리게 된 이유를 듣고 난 뒤, 진심 어린 축하를 아끼지 않았던 엄마, 아빠였다.
몇 달 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도 계속하셨다. 하준이, 하윤이가 태어나고 난 뒤. 누구보다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김우승이었으니까.
“서준아. 몇 달 뒤 태어날 조카에게 선물한다고 했지?”
“네. 우리 하준이, 하윤이가 우승이 형에게 정말 많은 선물들을 받았잖아요.”
“그러면 우리 서준이가 선물을 할 때. 엄마, 아빠도 보태주고 싶어.”
“좋아요! 우승이 형도 엄청 좋아할 거예요.”
선물도 선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엄마, 아빠의 마음에 더 기뻐하지 않을까 싶다.
잠시 후.
[10, 9, 8,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종소리가 울린다. 이미 코오 잠이 든 동생들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소원을 빌었다.
‘올해도 우리 가족이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서준아.”
“네?”
“아빠가 봤을 땐. 올해는 정말 우리 아들의 해가 될 것 같아.”
아빠의 말처럼 한국의 배우 차서준을 넘어. 세계적인 배우 차서준이 될 새해가 밝았다.
그 첫걸음은 월드 코믹스 영화 ‘디멘션 소서러’의 개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