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42화 (142/220)

142화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하준이가 엉엉 울며 헤어지기 싫다고 떼를 쓰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배우 차서준의 ‘디멘션 소서러’ 촬영이 끝나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문제는.

“준, 정말 내일 바로 한국으로 갈 거야?”

“네. 학교에 가야 돼요. 그래야 혹시나 추가 촬영이 필요할 때 올 수가 있거든요.”

내일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 더 이상 결석일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니까.

추후 CG 작업을 하다가 추가 촬영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미국으로 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미리미리 출석 관리를 부지런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내일부터 혼자 촬영장에 와야 하다니. 이거 허전할 거 같은데. 매일 준과 함께하는 출근길이 즐거웠는데.”

“저도 데이븐이 없어서 허전할 거 같아요. 대신 한국에 돌아가서 연락 자주 할게요.”

‘디멘션 소서러’의 촬영이 모두 끝난 건 아니었다.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배려 덕분에 먼저 찍은 내 분량 촬영만 끝난 것일 뿐.

아직 데이븐은 한 달 이상을 더 촬영해야만 했다. 심지어 해외 로케 촬영까지 기다리고 있는 상태. 아마 앞으로는 지금까지보다 더 바쁠 가능성이 높았다.

“데이븐.”

“응?”

“고마워요. 데이븐 덕분에 촬영하는 동안에 잘 지낼 수 있었어요.”

“친구끼리 당연한 거 아니야? 나중에 한국에 놀러 가면. 그때는 내가 준에게 도움을 부탁할게.”

잠시 한국에 놀러 온다며 이야기를 하던 데이븐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낸다.

“한국에 준과 친한 배우들이 있다면서? 무슨 모임도 있다고 들었는데.”

“연사모요? 같이 작품 촬영을 하면서 친해진 형들이거든요.”

“맞아. 나중에 한국에 놀러 가게 되면. 그 모임 친구들도 해서 같이 보자고. 나도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준과 친해졌으니까.”

응? 한국 팬들이 데이븐의 SNS에 단 댓글들을 본 모양이다. 나중에 한국에 놀러 왔을 때. 연사모 형들과 같이 보자고 하다니.

과연 데이븐과 형들이 만났을 때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려나.

“오늘 마지막 저녁은 함께하는 건 어때? 준이 가장 맛있게 먹었다던 그곳으로 예약해두었는데.”

이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웠음일까. 데이븐이 같이 저녁을 먹자며 말을 꺼낸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스케줄을 비워두었지.

“좋아요.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다시 올 거지만. 그래도 데이븐이랑 헤어지는 게 아쉬웠거든요.”

내 말에 데이븐이 씨익 웃는다. 아쉬웠다는 저 말을 안 꺼냈으면 서운해할 뻔했겠네.

그리고 난 보았다. 저쪽 구석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서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사람을. 아닌 척하다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아, 데이븐. 저 내일은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해서. 오늘 저녁에 감독님이랑 함께 먹으면 어때요?”

“나야 좋지. 남은 촬영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었는데.”

크리스 앤더슨 감독도 함께하면 어떠냐는 내 말에. 데이븐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평소라면 촬영이 끝나고도 남아서 작업을 하는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기에 같이 먹자는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일단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던가. 최대한 하루라도 빨리 내 촬영 분량을 마칠 수 있도록 배려해준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었다. 같이 마지막 저녁을 함께해야지.

“감독님. 오늘 데이븐이랑 같이 저녁 어때요?”

“오. 좋지. 안 그래도 당장 내일부터 차 배우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

“내년에 다시 오잖아요. 그리고 월드 투어 할 때에도 또 만날 거구요.”

내가 저녁이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전에 끄덕이며 좋다고 하는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었다. 아마 내가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크게 서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후.

나와 크리스 앤더슨 감독은 데이븐이 예약한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식사와 함께 이루어진 대화 주제는 단연 배우 차서준에 관한 것이었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처음 차 배우를 봤을 때 탐탁지 않아 했던 걸 사과하네.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을 테니.”

“나도. 사실 대본 리딩에서 확인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지.”

두 달간의 촬영 기간 동안 정이 제법 든 탓일까.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갈 나를 보며 크리스 앤더슨 감독과 데이븐이 사과의 말부터 꺼냈다.

아마 처음 나를 만났을 당시 자신들의 태도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 데이븐이 나에게 계속해서 잘해주었던 데에도 첫 만남 당시의 미안함도 있었던 모양이다.

“괜찮아요. 아마 제가 감독님이나 데이븐이었어도 그랬을걸요.”

내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따라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촬영 기간 내내 너무 잘해줘서. 처음에 어땠는지는 다 잊었어요.”

“내가 지금 구상 중인 게 하나 있는데. 나중에 완성되면 같이 또 촬영해보는 건 어떻겠나.”

나쁘지 않은. 아니, 오히려 배우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할 제안이었다.

다른 감독도 아닌. 할리우드에서 증명한 크리스 앤더슨 감독의 출연 제안이었으니까.

여기서 내가 긍정적인 답변을 꺼낸다면.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완성해나갈 영화의 주인공이 나로 맞춰질 것이 분명했다.

“좋아요! 바로는 아니겠죠?”

당장은 아닐 터였다. 이제 막 트릴로지로 계획된 ‘디멘션 소서러’의 첫 편이 제작 중인 상황.

거기에 학업 때문에 방학 기간만 이용해서 촬영이 가능한 내 상황도 제약이 컸다.

“최소 5년 뒤.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오히려 좋다.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라면.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가장 잘하는 장르도 소화할 수 있을 테니까.

“감독님. 저는요?”

“몸값만 조금 깎아준다면. 당연히 감독의 입장에선 두 팔 벌려 환영이지.”

“준과 한 번 더 같이 할 수 있다면. 무조건 오케이입니다.”

그렇게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위해 왔던 미국에서의 마지막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다.

*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회사에 가서 서도현을 만나는 일이었다.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을 때. 누구보다 가장 많이 신경을 써준 사람이 서도현이었으니까.

미국에서의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고 보고해야지.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도현이 하던 일도 멈추고 일어나 다가온다.

“타지에서 촬영하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공항까지 마중 나갈까 하다가. 서준이 너도 회사에서 보는 게 더 편할 것 같아서 기다렸어.”

“맞아요. 저는 팬들이 그렇게 많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진짜로.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가득 찬 팬들이 한국으로 돌아온 나를 반겨주었다.

기자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철저한 보안을 위해 모든 촬영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월드 스튜디오였으니까.

매일 ‘할리우드 스타 데이븐과 출퇴근하는 배우 차서준’. 이런 기사만 쓰던 상황이었는데.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배우 차서준.’ 이런 기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팬들의 클릭에 의한 많은 조회수가 보장된 기회.

“안 그래도 정범이에게 들었는데. 우리 동네 변호사에 카메오로 출연하고 싶다고?”

“네. 형들이 같이 드라마를 찍는데. 우정 출연은 한 번 해야죠.”

“잘 생각했다. 안 그래도 반응이 좋은 상황인데. 서준이 네가 우정 출연을 하면 더 뜨거운 관심을 받을 테니.”

김정범과 박우형에게 말해둔 참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카메오로 ‘우리 동네 변호사’에 출연하겠다고.

김정범이 그랬지. ‘서준아! PD님이 카메오 이야기 듣고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던데?’ 이렇게 말이다. 배우 차서준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하는 가장 첫 번째 활동이니.

“한동안 기사가 많이 뜨겠어. 배우 차서준의 할리우드 촬영 복귀 후 첫 활동이 형들과의 우정을 보여주는 카메오 출연이니.”

만약 김정범이 구름엑터스로 옮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형들을 위해 우정 출연하겠다는 내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을 서도현이었다.

“그러면 우정 출연을 제외하고. 서준이 넌 당분간은 좀 쉬는 게 좋겠다.”

“휴식이요?”

“그래. 아무래도 타국에서 두 달 동안 지내면서. 그것도 빡빡한 촬영 일정을 소화하면서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였을 거다. 휴식도 중요해.”

서도현이 당분간은 무조건 휴식이 필요하다며 단호하게 말한다. 나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야기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에서 제법 오랫동안 잤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몸이 피곤하다고 느끼던 참이었으니까.

“아, 그리고 이건 서준이 네게 들어온 광고들. 삼촌이 먼저 살펴봤으니까.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렴.”

“네! 고맙습니다 삼촌. 그리고 이건 선물이에요.”

“응?”

누구보다 나를 위해 열심히 서포트해준 사람이 서도현이었다. 계약 조율을 위해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또 첫 촬영 당시에도. 가족들의 여름휴가 때에도 직접 움직였다.

단순히 소속사 배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나를 아끼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인 셈. 그러니 서도현을 위한 선물도 준비해야지.

“이건···.”

하나는 미국에서 사 온 명품이었고. 다른 하나는 손으로 쓴 편지였다. 나를 위해 정말 고생한 서도현을 향한 마음을 담은 편지.

“그거 지금 말고. 오늘 밤에 잠들기 전에 읽어보세요.”

지금은 절대로 안 된다는 내 당부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알겠다며 답하는 서도현이었다.

회사에 들러 서도현을 만나고. 또 직원들에게 선물을 건네준 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당연히 우리집이었다.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엉아!”

“엉아!”

문을 열자마자 하준이와 하윤이가 도도도 달려와 안긴다. 그다음으로 한 행동은 낑낑거리며 캐리어를 집안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하준이, 하윤이. 보고 싶었어요?”

“응!”

“엉!”

분명 여름휴가 때 미국에서 일주일 동안 같이 지냈었는데. 하준이, 하윤이에게는 내가 없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숨겨!”

“숭겨!”

내가 또다시 미국으로 떠날까 걱정이 되었는지. 하준이, 하윤이가 캐리어를 보면서 숨겨야 된다며 음모를 꾸민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 서준이. 촬영 잘 마치고 돌아왔니?”

“네! 다녀왔습니다. 엄마, 정말 보고 싶었어요.”

“엄마도 우리 서준이가 많이 보고 싶었단다.”

하준이, 하윤이까지 달려와 나를 꼬옥 안아준다. 가족들의 온기를 느끼고 나니.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미국에서 지내느라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매니저 누나도 있고 다들 잘 도와주셔서 괜찮았어요. 촬영장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안 그래도 엄마도 그거 봤어.”

아, 그거. 안 그래도 내가 한국으로 떠난 뒤에 데이븐이 올린 글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들었다.

[님들 우리 차 배우랑 같이 디멘션 소서러 출연하는 할리우드 스타 데이븐 SNS 봄? ㅋㅋㅋㅋ]

└ 아니! ㅋㅋㅋㅋㅋㅋㅋ 분명 영어로, 그것도 할리우드 스타가 쓴 SNS 글인데. 왜 익숙한 향기가 나는 거냐고. ㅋㅋㅋ

└ 정확히 김정범이 SNS에 글 올릴 때의 느낌이 났음. ㅋㅋㅋㅋ 우리 차 배우 챙길 때에는 박우형의 느낌이 나고. 역시 할리우드라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네요.

└ 매일 같이 밥을 먹던 ‘친구’가 없어서 허전하다는데. 열심히 강조한 저 친구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게 우리 차 배우 맞죠?

└ 100퍼센트임. ㅋㅋㅋ 촬영장에 데이븐의 차로 같이 다니고. 심지어 근처 맛집을 우리 차 배우 데리고 다녔던 거 유명했잖슴.

└ 할리우드에서도 신기하게 보더라. 보통 데이븐이 촬영이 끝나면 혼자 쉬는 걸로 유명한데. 심지어 파티도 거의 참석 안 하고. 그런데 차 배우랑은 열심히 다녀서 저쪽에서도 엄청 신기해 함.

└ 역시 형들을 홀리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차 배우네요. 연사모 형들은 차 배우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쁘다고 글 올렸던데. ㅋㅋㅋ

데이븐이 올린 글 덕분에 뜻하지 않게 나에 대한 관심도가 절정을 향한 상황.

“엄마. 저 이틀 뒤에 촬영이 있어요. 형들이 요즘 찍고 있는 우리 동네 변호사에 카메오 출연하기로 했거든요.”

“우리 서준이 피곤할 텐데. 그러면 오늘 일찍 자야겠네.”

엄마가 힘내라는 듯 나를 꼬옥 안아준다.

“조금 있다가 아빠도 오실 테니까.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을까?”

“네! 좋아요!”

메뉴는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맛있는 거’라는 말을 듣자마자. 하준이와 하윤이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께! 께!”

“깨! 깨!”

오랜만에 등장하는 대게 사랑이었다.

잠시 쉬면서 이틀 뒤 잠깐 촬영할 ‘우리 동네 변호사’ 대본부터 살피는 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