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35화 (135/220)

135화

사실 아무리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다고 한들. 내 정체가 숨겨질 리가 없었다. 다른 출연자보다 작은 체구. 그리고 아직 어린 티가 나는 목소리까지.

이건 대놓고 ‘나는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하는 차서준입니다.’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노래 경연 프로그램 섭외에 긍정적인 답변을 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오랜만에 팬들에게 얼굴을 비춘다는 것. 작년에 ‘타임슬립’을 종영한 이후. 광고 외엔 딱히 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나였다.

└ 우리 차 배우 미국으로 촬영 떠나기 전에 다른 스케줄은 없나요? 올해 들어선 연사모 형들 SNS 말고는 올라오는 소식이 없어서 슬프네요. ㅠㅠ

오죽하면 월드 코믹스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알지만. 혹시나 그 전에 다른 스케줄이 없는지 애타게 기다리는 팬들의 글들이 계속 올라올 정도였다.

그런 팬들에게 오랜만에 TV에서 얼굴을 비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기다렸을 팬들을 위한 노래는 좋은 선물이 될 테니까.

다른 하나는.

“어머. 서준이가 가면 왕좌에 출연한다고? 하준이가 나중에 정체를 공개한 형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좋아하겠네?”

“맞아요. 사실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는 그 부분이 컸어요. 하준이가 TV에 깜짝 등장한 절 보고 좋아할 것 같아서요.”

바로 우리 가족을 위해서였다. 특히 하준이가 TV에 형이 나올 때 가장 좋아했다.

그것이 드라마든, 광고든, 아니면 가끔씩 출연했었던 예능 프로든 간에. 형이 TV에 나오면 두 손 번쩍 들고 좋아하는 하준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깜짝 선물로 경연 대회 출연 한 번쯤은 괜찮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운이 좋아 2라운드까지 진출한다면 2곡 정도를 부를 수 있을 테니까.

“하준아.”

“응?”

“형이 TV에 나오면 좋아?”

“응! 노래 부르면 더 조아!”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하준이가 있는데. 심지어 형이 TV에 나와 노래 부를 때 더 좋다는데. 어찌 섭외 제안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이제 곧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야만 하는 상황.

아마 형이 그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하준이가 엉엉 울면서 ‘엉아! 가디마!’ 하고 다리를 붙잡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서준아.”

“네?”

“우리 서준이가 노래 잘해서 계속 출연하게 되면 어떻게 되니? 조금 있으면 미국도 가야 되잖니.”

사실 서도현도 섭외 이야기를 꺼내면서 농담처럼 저 말을 하긴 했었다.

나와 함께 종종 보던 ‘가면 왕좌’다 보니. 우승자는 다음 주에도 무대 위에 오른다는 사실에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가 내게 물었다.

신곡 홍보를 하러 나왔다가. 5주 연속 왕좌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해 홍보를 못했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에이, 걱정 마세요. 제가 봤는데 요즘 쟁쟁한 실력을 가진 가수들이 엄청 많이 나오시더라고요. 아마 운이 좋아도 2라운드까지 한두 곡 부르고 떨어질 거예요.”

“엄마는 우리 서준이가 세상에서 제일 노래를 잘하는 것 같은데.”

1라운드 경연은 비슷한 실력자들끼리 붙이기에 그럴지도 몰랐다. 허나 2라운드부터는 진정한 고수들의 맞대결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이번에 이벤트 느낌으로 출연하면서. 지금까지 도전해보지 않았던 색다른 장르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 엄마의 걱정은 괜한 우려일 것이 분명했다.

*

NBC 음악 경연 프로그램인 ‘가면 왕좌’의 연출을 담당하고 있는 김홍철 PD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한 상태였다.

현재 소속사를 통해 할리우드 진출이 확정되었다고 알려진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고작 10살의 어린 나이로 말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친분이 있던 서도현에게 슬쩍 부탁을 했었는데. 이게 웬걸. 출연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온 것이다.

그 소식에 김홍철 PD는 물론, 조연출들부터 작가진들까지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었다.

그런데.

“뭐라고?”

“그게···. 차서준 측에서 록발라드를 부르고 싶답니다.”

“차서준이 그런 장르를 불러본 적이 있었나?”

“제가 알기론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차서준이 출연하겠다는 말에 재빨리 관련 정보들을 모조리 찾은 김홍철 PD였다.

작년 팬미팅에서 금동이 팬들을 위한 트로트까지 불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록 계열의 노래를 불렀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그런 차서준의 선택이 걱정되었음일까. 조연출이 조심스럽게 김홍철 PD에게 물었다.

“말려야하지 않을까요?”

“왜?”

“네?”

조연출의 물음에 김홍철 PD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놈도 갈 길이 멀구만. 이런 표정으로.

아직 연차가 쌓이지 않은 PD다 보니. 숲이 아닌 나무만 보이는 모양.

“너 생각해봐. 차서준이 우리 프로에 나올 이유가 있을까?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론 할리우드 진출이 확정된 것 같던데.”

“···없겠죠?”

“그래. 바로 그거야. 솔직히 나조차도 왜 차서준이 우리 섭외 제안에 승낙을 했는지 모르겠는 상황인데. 록발라드를 부르든, 랩을 하겠다든 간에 무조건 넙죽 엎드려야 되는 상황 아니야?”

“아. 맞습니다.”

까마득한 선배님의 가르침에 조연출은 개안한 듯한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홍철 PD는 ‘가면 왕좌’를 비롯한 각종 음악 예능을 성공을 시킨. 예능국에서 입지적인 인물이었으니까.

“막말로 이거 안 됩니다. 저건 어떨까요? 이러다가 저쪽에서 삔또 상해서 나 안 해! 외치면 우리만 손해인 상황이라고. 누가 갑인지부터 잘 파악해야지. 오케이?”

“예.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저는 선배님 말씀을 듣고서야 아차 싶었는데.”

조연출의 아부에도 피식 헛웃음 한 번으로 무시하는 김홍철 PD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요?”

“차서준이 무대 위에 올라서 동요를 불러도 대환영이라고.”

물론 저 말은 동요를 부르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하는 말이었지만. 김홍철 PD는 진짜로 무대에 올라 동요를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서준이 불렀던 동동이 친구들 주제곡이 아주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는 걸 기억했으니까. 경연곡에는 어울리지 않으니 힘들겠지만.

“막말로 이번 출연이 홍보를 위해서도 아니잖아. 아직 촬영 시작도 안 했드만. 그냥 차서준 측에서 하고 싶다는 거 다 하게 놔둬.”

“예. 선배님.”

차서준 출연 회차의 대진을 어떻게 짜야 하나. 록발라드란 말에 섭외된 출연진들을 떠올리는 김홍철 PD였다.

*

갑작스럽게 출연하게 된 음악 경연 프로그램 ‘가면 왕좌’였지만. 그 준비 과정에서 나는 꽤나 좋은 인연을 만날 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나.”

“서준이 왔어? 오늘도 운동을 하고 왔겠네?”

“맞아요. 엄청 힘들었어요.”

“그럴 줄 알고 오늘 누나가 샌드위치 만들어 봤는데. 한번 먹어볼래?”

“좋아요! 고맙습니다.”

바로 성우 이설아. 이번에 출연하게 된 ‘가면 왕좌’에서 1라운드 상대가 바로 눈앞의 이설아였다.

몰랐는데 동동이 친구들 중에 한 캐릭터의 성우를 맡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누나였다.

성우답게 목소리도 정말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미녀 성우로 유명할 정도로 예뻤다. 그것 말고도 정말 다양한 재주를 가진 능력자가 이설아였다.

“설아 누나는 요리도 진짜 잘하는 것 같아요. 너무 맛있어요. 저는 샐러드가 이렇게 맛있는지 몰랐어요.”

“그치? 나는 열심히 만든 요리를 누가 맛있게 먹어주면 그게 그렇게 좋아. 특히 서준이 너는 그 보람이 배는 더 큰 것 같아.”

이렇게 연습할 때마다 만들어오는 간식은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비주얼은 또 어떻고.

영화 촬영 준비를 위해 체력 훈련 및 식단 관리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만들어 오는 간식들도 식단에 딱 알맞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힝. 서준아.”

“네?”

“이거 제작진 측에서 상대를 잘못 정해준 것 같아. 아무리 봐도 서준이가 훨씬 잘하는데. 나 비교당해서 흑역사 영상 생기면 어쩌지?”

누나임에도 제법 귀여웠다. 연습할 때 진지하게 집중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방금 전처럼 귀엽게 토라지는 모습에서 반전 매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반했다는 건 아니고. 이설아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인데. 그 정도로 사람이 매력적이란 뜻이었다. 마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주고 싶을 만큼.

“설아 누나.”

“응?”

“누나는 쉴 때 보통 뭐해요?”

“응? 나는 주로 집에서 누워서 쉬는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별로 없는 쉬는 날에는 집에서 이렇게 요리 만들면서 힐링해.”

합격. 내가 알기론 이설아는 따로 만나는 사람도 없는 걸로 알고 있었다. 성우계에서도 유명한 워커홀릭이었다. 주변에서 평판도 너무나도 좋았고.

“누나. 그러면 우리 녹화 다 끝나고. 그 다음 주 누나 쉬는 날에 밥 먹을래요? 매번 간식 만들어 주셔서 제가 누나한테 맛난 거 사주고 싶어요.”

“정말? 나 진짜 잘 먹는데. 그래도 괜찮아?”

“당연하죠! 매일 연습할 때마다 누나가 간식이라며 이것저것 엄청 잘해줬잖아요. 제가 제대로 한 번 쏠게요!”

이런. 해맑게 웃는 이설아를 보니 살짝 고민이 되긴 했다. 설아 누나가 더 아까운 것 같기도 한 거 같은데.

정식으로 소개를 주선하겠다는 건 아니고. 김우승과 김청아 때처럼 우연을 가장한 자리를 한번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인연이라면 잘될 것이고. 아니면 말겠지 뭐. 이런 내 속셈을 모른 채. 이설아는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마냥 웃을 뿐이었다.

저 해맑은 미소를 보니 다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범이 형에겐 좀 과분한데? 물론 김정범도 객관적으로 보면 제법 괜찮은 형이긴 하니.

그렇게 ‘가면 왕좌’ 무대를 앞둔 나와 이설아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

체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려 8시간에 달하는 긴 녹화시간 동안 3번의 무대를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최상의 컨디션으로 쌩쌩하게 마칠 수 있었으니까.

그래.

체력적으로 성장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까지는 좋았다 이 말이지.

문제는.

“우와. 서준아 축하해! 대표님도 이미 소식을 듣고선 엄청 좋아하셨대.”

“수진 누나. 이거 축하할 만한 일인 건 맞죠? 왜 아닌 거 같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다음 경연을 또 준비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1, 2라운드 탈락보다는 멋진 무대를 보여주면서 결승전에서 이긴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가면 왕좌’의 3번의 경연 무대에서 모두 승리하고 왕좌에 앉아버렸다는 점이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출연했던 음악 방송이나, 팬미팅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과 경연 프로에 나가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막상 경연 무대 위에 오르니. 나도 모르게 지금까지 불렀던 그 어떤 순간보다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좋아도 너무 좋아버렸고.

“사실 서준이가 노래 잘 부르는 건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듣는 순간에 정말 소름이 쫙 돋았어. 대박! 소름!”

“무대 위에서 경쟁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니까. 저도 모르게 최선을 다하게 되더라고요.”

“거기에 오늘 결승 무대를 보니까. 하늘이 오늘 우승하라고 점 지어준 것 같았어.”

원래 왕좌에 앉아있던 3연속 우승자가 하필 감기 몸살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제대로 된 무대를 선보이지 못해버린 것.

거기에 더해 마스크로 정체를 가렸다지만.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차서준 무대 위에서 환상적인 공연을 선보여 버렸으니.

정말 나도 몰랐고, 매니저인 수진 누나도 예상치 못한 왕좌의 자리에 앉아버리는 결과가 나와 버렸다.

“서준아. 정말 농담으로 했던 말처럼 우리 이거 출연을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하게 되는 거 아니야?”

“누나.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설마 다음 주 촬영 때에도 이러겠어요?”

에이, 설마.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