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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34화 (134/220)

134화

월드 코믹스 영화 ‘디멘션 소서러’의 감독을 맡게 된 크리스 앤더슨 감독. 그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깜짝 놀란 상태였다.

20년 가까이 감독 생활을 하다 보면 특별한 능력이 하나 생긴다. 바로 짧은 시간 안에 배우를 파악할 수 있는 ‘눈’이라는 능력이.

‘딕션 좋고, 외모도 저 정도면 생각했던 데블 오리엔트보다 훨씬 훌륭하고.’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오늘 이 자리가 있기 전까지 동양의 어린 배우라기에 선입견이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당장 미국 땅 한 번 밟아보지 않은 배우에게 능숙한 언어를 기대하긴 어려울 테니까.

특히나 대사에 감정을 담아야 하는 배우의 특성상 언어 문제는 큰 장벽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툭툭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결과 크리스 앤더슨의 입꼬리가 씰룩거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부모님 중에 외국 분이라도 계신가?”

“아뇨! 두 분 다 한국 사람이에요. 제가 한국 나이로 6살에 데뷔했는데. 그때부터 꾸준히 준비했어요.”

차서준의 대답을 들은 크리스 앤더슨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게 던진 질문이 선을 넘어버린 셈.

크리스 앤더슨은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부터 했다. 어쨌거나 처음부터 부정적인 태도로 대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이런. 미안하네. 차별적인 발언을 하려던 게 아니라. 그만큼 유창한 영어 실력에 놀라서 그런 것이니.”

그만큼 눈앞의 어린 배우가 보여주는 표정, 말속에 담긴 풍부한 감정들을 보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건네받았던 자료에는 한국에서만 배우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직접 만난 차서준이라는 어린 배우는 감독이라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만큼 만족스러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리스 앤더슨이 가장 우려하던 언어에 대한 걱정은 그렇게 사르르 녹아내렸다.

“혹시 지금 테스트가 가능한가? 앞으로 데블 오리엔트를 하게 된다면 찍어야 할 장면을 좀 미리 확인하고 싶은데.”

시나리오의 전체를 보여주는 건 보안상 문제가 된다. 하지만 감독이 꼭 필요하다는 요청 하에 시나리오의 일부분을 테스트로 사용하는 건 문제가 되질 않았다.

특히 시나리오 수정이 잦은 것으로 유명한 월드 코믹스 영화 특성상. 지금 보여주는 내용도 언제 바뀔지 몰랐다.

게다가 이번 미팅에 월드 스튜디오의 사장까지 함께하고 있는 상태지 않던가.

“당연하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아주 좋아. 시간은 넉넉하게 주지.”

일생일대의 오디션 자리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감독인 자신, 그리고 월드 스튜디오 사장 릭카니까지 함께 있는 자리였으니.

최종 캐스팅 확정이냐, 탈락이냐를 앞둔 중압감은 어린 배우에게 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게 만들 가능성이 높았다.

“30분 정도의 시간을 주려고 하는데.”

그렇기에 크리스 앤더슨은 넉넉한 시간을 주려고 했다. 방금 전 자신의 본의 아닌 말실수까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뇨! 5분이면 충분해요.”

건넨 대본을 확인한 차서준이 당차게 대답해버렸다. 이 정도 중압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 모습에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는 크리스 앤더슨이었다.

“오케이. 그러면 말한 대로 5분을 주지.”

차서준이 말한 정확히 5분이 지난 뒤. 정말로 준비가 끝났는지 시나리오를 내려놓았다.

“시작할게요!”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차서준이 고개를 숙인다. 그 고개가 다시 올라온 순간.

‘왓?!’

광기에 번들거리는 그 눈빛에 크리스 앤더슨은 자신도 모르게 그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디멘션 소서러’의 감독 자리를 받고 나서부터 수도 없이 떠올렸던 데블 오리엔트. 그 광기에 찬 눈빛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하.하.하, 내 행성이 멸망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힘이 부족해서? 노! 거대한 적에 힘을 합쳐야 하는 그 순간에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는 위선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과연 이곳은 어떨까?”

대사 안에 담긴 일렁이는 감정. 번뜩이는 눈빛. 마지막으로 마치 정말로 눈앞에 있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는 제스처까지.

‘이게 고작 9살을 앞둔 아이의 연기력이라고?’

할리우드였다. 지금까지 감독 생활을 하면서 크리스 앤더슨이 봐온 어린 배우들이 활동하던 곳이 그 할리우드였단 말이다.

그런 할리우드에서도 저 나이에 이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주는 배우가 있었나?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었다.

뭐에 홀린 듯 곧바로 이어 간단한 액션 소화 능력까지 요청한 크리스 앤더슨이었다.

차서준의 테스트가 모두 끝나는 바로 그 순간.

“지져스! 난 저 친구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난 이제 이 친구 아니면 촬영 안 합니다!”

마치 과거의 자신은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크리스 앤더슨이 박수를 치며 외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돌변한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월드 스튜디오 사장 릭카니나 캐스팅 디렉터 윌리엄 모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감독인 크리스 앤더슨의 저런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것이었으니.

“어떻습니까?”

“역시 윌리엄이야. 배우를 보는 안목에 있어 그대를 따를 자가 없군. 앞으로도 지금처럼 뛰어난 능력 잘 부탁하네.”

사실 놀란 건 감독뿐만이 아니라, 사장인 릭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 배우의 연기를 눈앞에서 확인하는 건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릭카니와 윌리엄이 그렇게 속닥속닥 대화를 나누든 말든 간에.

“차스준? 뭐라고 부르면 되지?”

“발음이 어려우면 차 배우라고 불러주세요. 한국에선 다들 절 그렇게 부르거든요.”

“왓?! 역시 별명에서부터 배우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가 있고만. 좋아! 차 배우! 우리 이번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보자고!”

어느새 ‘우리’라는 단어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작 그 말을 내뱉은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모양.

오늘 차서준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마치 페르소나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는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었다.

*

감독의 오디션 겸 미팅이 끝난 뒤. 나는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니 열심히 출석해야지.

가뜩이나 올해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하게 된다면. 그때까지 최대한 결석 한 번 없도록 관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한 달을 조금 넘는 짧은 방학 기간 동안 만에 촬영을 끝마치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

“서준아.”

“네?”

“크리스 앤더슨 감독과 미팅 때 무슨 마술을 보여준 거니? 막상 만나보니 이보다 더 호의적일 수가 없던데.”

나에게 호감을 가진 윌리엄이 먼저 내부 분위기를 넌지시 알려줬기에 알고 있던 참이었다.

이번에 ‘디멘션 소서러’의 감독을 맡은 크리스 앤더슨이 동양에서 온 어린 배우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소식 때문에 주말 간 미국에 다녀오는 내 일정에 서도현이 따라오기도 했었고.

“삼촌이 걱정하는 것 같아서. 제가 감독님을 만나서 마술 좀 보여줬어요.”

“서준이 네 연기력이 감독들에게 있어 마술이긴 하지. 감독이랑 만날 때 월드 스튜디오 사장도 같이 있었다면서?”

“네. 그래서 더 제대로 보여줬어요.”

배시시 웃으며 하는 내 말에 미소를 짓는 서도현이었다.

서도현은 먼저 한국에 돌아온 나와 다르게. 계약 조건과 촬영 일정 조율이 남아 미국에 남았었다.

대표인 그가 따라온 것도 촬영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상황 때문이었다. 촬영이 시작되면 감독의 파워가 다른 무엇보다 강해질 테니까.

그런데.

“일단 가장 걸림돌이 될 뻔했던 촬영 기간에 대한 것도. 크리스 앤더슨 감독이 무조건 서준이 네 일정에 맞춰주겠단다. 그것도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던데.”

“정말요?”

“그래. 특히 서준이 너와 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학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 먼저 돌아가서 아쉽다고 전해달라더구나.”

막상 나를 만난 크리스 앤더슨이 내게 푹 빠졌단다. 아직 초등학생 신분인지라 출석을 몇 달간 빠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아예 여름 방학 때부터 촬영을 시작하자고 먼저 제안을 하던데. 서준이 네 생각은 어때?”

아예 내 일정에 맞춰서 촬영하겠다는 자세까지 보였단다.

이미 2페이즈 영화 라인업을 공개함과 동시에 제작 준비에 들어간 월드 스튜디오였다.

작년부터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들어갈 준비를 해두었기에. 7월로 조금 당긴다 하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저야 더 좋아요! 월드 코믹스 영화들이 차례대로 일정이 잡혀 있는데. 촬영 기간이 널널할수록 좋으니까요.”

물론 ‘디멘션 소서러’의 주연 배우들의 스케줄도 고려해야 했지만. 이미 감독의 의사가 저렇게 강한 이상 별문제는 없을 터였다.

내가 연기할 데블 오리엔트 분량만 여름 방학 기간에 맞춰 바짝 촬영을 하면 될 테니 말이다.

“그러면 여름 방학 기간부터 해서. 결석이 조금 생기더라도 최대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방향으로 해보자꾸나.”

“네! 좋아요!”

“녀석. 나머지 계약 조건들은 삼촌이 마저 월드 스튜디오와 최종 조율을 끝낸 다음 알려주마.”

감독인 크리스 앤더슨에 이어, 월드 스튜디오 사장인 릭카니까지 내 연기에 홀딱 반한 상황.

‘디멘션 소서러’의 데블 오리엔트 배우를 찾기 위해 몇 달을 고생한 월드 스튜디오의 고생을 알고 있는 이상. 공은 우리에게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

- 배우 차서준. “월드 코믹스 신작 영화 출연한다.” 소속사 구름엑터스 공식 발표.

- 월드 스튜디오. ‘디멘션 소서러’ 배우 라인업 공개. 한국인 배우 차서준 포함.

- 차서준이 연기할 ‘디멘션 소서러’의 데블 오리엔트는 어떤 캐릭터?

- 한국인 배우의 최초 월드 코믹스 영화 출연. 할리우드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여.

- ‘이중인격을 지닌 매력적인 악당’ 데블 오리엔트로 전격 발탁된 배우 차서준.

└ 와씨! 진짜로 우리 차 배우가 월드 코믹스 영화에 출연한다고? 그것도 주연급으로?

└ 조연으로 나왔어도 대박일 텐데. 디멘션 소서러에서 데블 오리엔트면 메인 악당 아닌가요? 배우 소개에도 주연으로 나올 거 같은데.

└ 무조건 주연이죠. 아마 영화 정보가 공개되고 나면. 주연 라인업에 우리 차 배우 사진이랑 이름 들어갈 걸요. ㄷㄷ

└ 미쳤다!!! 9살에 연기 대상을 수상하더니. 10살에는 할리우드로 진출을 해버리네!!! 내 무습다!!!

└ 저 월드 코믹스 영화는 하나도 안 봤는데. 우리 차 배우 영화 보려면 지금부터라도 미리 다 챙겨봐야겠네요.

배우 차서준의 월드 코믹스 영화 합류가 공식 발표되었다.

당초 계획보다 빠른 7월부터 촬영이 시작되기에. 월드 스튜디오에서도 일제히 언론보도를 시작한 것.

그 덕분에 한동안 잠잠하던 실시간 검색어에 빠르게 내 이름과 연관된 단어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늘도 잘 다녀왔어?”

“네. 오늘도 엄청 힘들었어요.”

“고생했다.”

나는 착실히 ‘디멘션 소서러’ 촬영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체력을 기르기 위한 운동이 필수였다. 어제도, 오늘도 훈련 때문에 손가락 하나 들 힘조차 없을 정도. 물론, 아직 성장기이기에 무리가 갈 만한 수준으론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미국을 자주 오갈 수 없기 때문에. 한정된 기간 내에 CG 작업에 필요한 모든 촬영까지 마쳐야 했다.

아마 촬영 기간 내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부터 열심히 체력을 길러둬야지.

“캐릭터 분석은?”

“그것도 얼추 다 끝나가고 있어요. 이번 주말까지면 당장 촬영에 들어가도 괜찮을 정도까지 될 것 같아요.”

캐릭터 분석에 연사모 형들이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아쉽게도 보안 문제로 인하여 그것은 불가능했다. 보안 유지 서약서까지 쓴 상태니.

사전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월드 스튜디오 직원이 직접 대본을 전달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전체 대본도 아니었다.

“그러면 이제 준비 때문에 바쁜 시기가 얼추 지나갔구나.”

“이제 숨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여름 방학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 당분간은 휴식의 연속이나 마찬가지인 셈.

“서준아. 네게 제법 흥미로운 제안 하나가 들어왔는데.”

흥미로운 제안? 드라마나 영화는 아닐 것이다. 재촬영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겨울 방학에라도 미국에 가야 할지도 모를 테니.

거기에 내년에는 월드 기자회견 투어까지 참석해야 한다. 최소한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는 차기작 결정이 쉽지 않았다.

“어떤 건데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인데. 일대일 대결로 탈락하기 전까지 가면을 쓰고서 노래를 부르는 음악 서바이벌. 서준이 너도 본 적이 있을 텐데.”

“아, 저도 엄마랑 종종 보고 있어요.”

꽤나 재밌는 예능이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도 엄마, 아빠랑 주말마다 자주 봤었다.

아니! 여기서 저 가수가 등장한다고?! 이런 쏠쏠한 재미와 소름 돋는 가창력을 함께 즐길 수 있었으니까.

“서준이 네가 말했던 팬들에게 깜짝 선물이 될 것 같아서. 어차피 가수들이 주로 출연하고 있으니 금방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서도현의 말처럼 1회성 출연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현역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프로였으니까. 어쩌면 1라운드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팬들이 나를 보고 싶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 작품을 할 수 없는 상태니 단발성 예능 출연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괜찮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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