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오늘 엄마와 함께 찾은 곳은 서울 외곽에 위치한 초대형 규모의 장난감 매장이었다. 1층 장난감 백화점, 2층 키즈 카페를 운영하는 초대형 매장.
엄마가 하윤이를 안고. 내가 하준이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와.”
“꺄하!”
하준이와 하윤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안에 가득 찬 장난감들은 동생들에게 있어 여기가 마치 천국처럼 느껴질 터였다.
“하윤이 여기 와서 좋아요?”
“엉!”
엄마의 물음에 하윤이가 방긋 웃는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하윤이를 안고 있던 엄마가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잠시 엄마를 바라보던 하윤이의 시선이 다시 매장 내부를 향한다. 눈앞 가득히 펼쳐진 장난감 세상에 어디부터 구경할지 고민이 되는 모양.
“흐응.”
그런 동생들을 보면서. 나는 여기에 오기 전 몇 번이나 당부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자, 크리스마스 선물로 꼭 원하는 것 3개씩만 사준다고 했어. 기억하지?”
“응!”
“엉!”
하준이는 내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옆에 있는 하윤이는 그저 장난감들이 좋아 오빠를 따라 했다.
“또 하나 더. 우리 하준이, 하윤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지?”
“엄마!”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하준이가 엄마를 외친다. 해석하자면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가 될 것이다.
“맞아. 오늘 선물을 사주면 엄마 말씀을 항상 잘 들어야 돼. 떼쓰고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응!”
“엉!”
사실 하준이나, 하윤이가 몇 개를 원한다 하더라도 사줄 돈은 충분했다. 아니, 집이 꽉 찰 정도로 사주는 것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동생들에게 교육을 위해서 정확히 3개로 제한을 했다. 어떤 것을 선물로 받을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아서.
“어디부터 구경하러 갈까?”
“저기!”
“어엉!”
이런. 하준이와 하윤이의 선택이 갈렸다. 하준이는 레고가 있는 코너를 원했고. 하윤이는 동동이 친구들 장난감이 있는 코너를 원했다.
“그러면 하준이가 오빠니까. 하윤이가 좋아하는 동동이 장난감부터 보러 가자. 알았지?”
“응!”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생각에 신이 났는지. 하준이가 알겠다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인다.
“서준아. 정말로 동생들에게 세 개씩 사주게?”
“네! 내일이면 행복한 크리스마스잖아요. 엄마 선물도 사고 싶은데 여기선 살 게 없어요.”
예상치 못한 내 말 때문일까. 엄마의 입에서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가 웃자 하윤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꺄아! 하면서 따라 웃는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얼른 핸드폰을 들어 찰칵 사진 안에 담았다.
“이거?”
“엉!”
이런. 확실히 하윤이가 선물을 고를 줄 알았다. 아직 어려서 가격이 얼마인지, 또 어떤 게 비싼 장난감인지 몰랐지만.
일단 박스가 크고, 많이 들어 있는 세트 장난감이 좋다는 걸 알아차린 듯싶다. 하윤이가 고른 장난감들은 동동이 친구들 장난감 중에서도 가장 비싼 세트들이었으니까.
“그러면 하윤이는 이것들로 할 거야?”
“엉!”
비싼 만큼 부피도 컸기에 매장 직원을 호출할 수밖에 없었다.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싱글벙글한 하윤이와 함께.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하준이가 원하는 코너였다.
“엉아! 나 이거랑 저거!”
“하준이는 그게 좋아?”
“응!”
어느새 레고 조립에 맛을 들인 하준이었다. 아직 완벽하게 레고를 맞추기엔 어려서 형인 내가 함께해야만 했는데.
하준이는 형이랑 같이 레고 조립을 한다는 것에서 더 즐거움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쉬고 있으면 ‘엉아. 레고.’ 하면서 레고 놀이를 하자고 조르곤 했다.
그렇게 하준이와 하윤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잠시 후.
“엉아! 싸랑해!”
“꺄아!”
집으로 배송된 크리스마스 선물들을 본 순간. 하준이가 두 손을 번쩍 들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고. 이에 질세라 하윤이도 따라 한다.
그다음 행동은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한 뒤 다시 안아주는 일이었다. 그만큼 내가 사준 선물들이 정말로 기쁜 모양이었다.
“어머. 우리 서준이 행복하겠네?”
“네! 너무 행복해요.”
선물로 사준 장난감을 동생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화장실을 갈 때에도 손에 꼭 들고서 다닐 정도였다.
내가 사준 선물을 저리 좋아하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까.
“하준이, 하윤이. 점심은 뭐가 먹고 싶어?”
사실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이긴 했다.
“께!”
“에!”
대게 킬러가 되어버린 하준이, 하윤이었으니까. 그리고 머가 먹고 싶은지 물어보기 전에 이미 주문을 한 나였다.
“엄마. 오늘 점심은 하준이랑 하윤이가 좋아하는 대게 먹어요.”
“그럴까?”
“네. 배달 올 때까지 어깨 주물러드릴게요.”
내가 엄마의 어깨를 꾹꾹 주무르자. 질 수 없다는 듯이 하준이, 하윤이도 다가와 앙증맞은 손으로 열심히 따라 한다.
그 모습에 또다시 웃음이 터지는 엄마였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울려 퍼지는 행복한 웃음이었다.
하준이와 하윤이는 내가 사준 장난감 선물이 마음에 들었는지 저녁이 되어서도 놓질 않았다.
퇴근한 아빠를 반기러 갈 때에도 손에 들고 달려갔을 정도. 저 모습들을 보니 선물을 사준 내가 다 뿌듯했다.
“우리 서준이가 동생들 선물 사줬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네! 동생들이 엄청 좋아했어요.”
저녁은 점심 때 넉넉하게 시켰던 대게를 데운 것과, 동생들 선물을 사고 들렀던 마트에서 산 재료들로 요리한 음식을 먹었다.
사실 동생들을 위한 선물만 준비한 게 아니었다. 엄마, 아빠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했단 말씀.
잠시 방에 들어가 준비한 선물을 챙긴 뒤. 거실에 앉아 동동이 친구들을 틀어주고 과일을 먹고 있는 엄마, 아빠를 불렀다.
“엄마, 아빠.”
“응?”
“왜 그러니?”
내가 엄마, 아빠를 부르자. 장난감을 든 채로 동동이 삼매경에 빠진 동생들을 보던 두 분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 집에 와서 정말 많은 추억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벌써 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잖아요.”
“엄마도 그래. 우리 서준이 덕분에 이 집에 오고 나서. 하준이도 태어났고, 하윤이도 태어나고. 이렇게 행복한 우리 가족이 만들어져서 너무 행복하단다.”
사실 엄마, 아빠를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하면서 살짝 걱정이 되긴 했었다.
아빠야 출근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엄마는 동생이 태어난 이후 온종일 이 집과 함께하셨으니까.
혹시나 추억 때문에 이 집에 정이 들어 떠나지 않고 싶어 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실만 보더라도 방에 놓을 수 없어 밖으로 나온 동생들의 장난감들이 한가득이었다. 오죽하면 팬들의 선물들을 채운 방도 슬슬 비워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하준이와 하윤이가 자랄수록 좁게 느껴지는 집을 보면서 한 가지 결심을 내렸다. 올해는 정말 큰돈을 벌기도 했으니까.
“하준이랑 하윤이가 태어나니까. 넓게 느껴졌던 집이 조금 좁아진 것 같아요. 동생들 장난감도 놓을 곳이 부족해 거실에도 가득이잖아요.”
“그래도 엄마는 괜찮은데? 예전을 생각하면 이 집도 정말 궁궐같이 느껴지는걸.”
엄마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엄마의 손이 멈춘 건.
“그래서 엄마, 아빠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걸 준비했어요.”
“응? 그건···.”
내가 주머니에서 카드키를 꺼냈을 때였다. 엄마, 아빠라고 이것을 왜 모를까. 당장 우리 아파트 현관을 출입할 수 있는 카드키인데.
문제는 그 카드키와 함께 있는 것이 현관 도어락 키였다는 점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쓰는 것과 달랐으니까.
“저기 앞에 동 있잖아요. 앞에가 뻥 뚫린 곳이요.”
내가 손가락을 들어 같은 단지 내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자. 엄마, 아빠의 시선이 삐걱거리며 그곳을 향한다.
정면이 뻥 뚫린 프리미엄 뷰를 가진 앞 동은 대형 평수인 49평으로만 구성된 곳이었다.
이쯤 되었으면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모를 엄마, 아빠가 아니었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계약했어요. 내부 인테리어랑 동생들을 위한 매트 시공까지 모두 마쳤고요.”
그랬다.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더 넓은 평수 아파트로 계약을 마쳤다. 이제 정말 우리집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차피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의 명의는 우리 가족 것이 아닌 구름엑터스에서 제공한 숙소였으니까.
그리고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지낼 수 있도록 내부 인테리어까지 완료했다. 아직 깜짝 선물로 남겨두기 위해 가전, 가구까지 채웠다는 건 비밀.
“서, 서준아?”
“아, 아들?”
당황한 엄마, 아빠를 놔둔 채로 방에 쪼르르 다시 들어가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아파트는 엄마, 아빠를 위한 제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대신 명의 문제 때문에 조만간 회사에 방문하셔야 돼요. 헤헤.”
“···.”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왜 모를까. 현재 살고 있는 집이 회사에서 제공한 숙소였기에.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저축을 하고 있던 엄마, 아빠였다.
하지만.
애 셋을 키우면서 서울에 아파트를 살 돈을 모은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돈을 벌어서 가족을 위해 이런저런 것들을 쓴다 하더라도 말이다.
가끔 볼펜을 입술에 물고 ‘어디서 이렇게 많이 썼지?’ 하고 고민하는 엄마를 볼 때도 있었다.
“···서준아.”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 엄마가 다가와 나를 꼬옥 안아준다.
아들이 탑급 배우가 되어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있음에도. 내가 고생해서 번 돈이라고 절대 손을 대지 않았던 엄마다.
아빠 역시 내가 힘들게 번 돈을 나를 위해 쓰라면서. 우리 가족의 생활비는 자신이 열심히 벌겠다고 한 분이고.
그런 엄마, 아빠를 위해. 이 정도의 선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따스한 가족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신 분들이니까.
“음. 아들. 그러니까 아빠는···.”
“아빠.”
“응?”
사실 아빠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는 충분히 예상이 갔다. 허나 나는 그런 말을 엄마, 아빠가 어렵게 꺼내는 것보다.
“제가 우리 가족을 정말 사랑해요. 아시죠?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엄마도 사랑해.”
“아빠도 우리 서준이 사랑한다.”
지금처럼 그저 사랑한다는 따뜻한 한마디가 더 좋았다. 잠시 울음바다가 될 뻔했지만.
“나도! 나도!”
“흐응!”
왜 자기들은 빼놓느냐는 듯 동동이에서 시선을 떼고. 심지어 장난감조차 바닥에 내던진 채 달려온 동생들 때문에 쏙 들어가 버린 엄마, 아빠였다.
잠시 붉어진 눈가를 손으로 슥슥 닦은 뒤. 엄마, 아빠가 하준이와 하윤이를 꼬옥 안아준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까. 내일 크리스마스에 다 같이 가서 봐요. 우리가 이사할 집이잖아요.”
“그럴까?”
“네!”
그렇게 새로운 집은 크리스마스인 내일 가서 보기로 결정되었다.
동생들은 나와 함께 자기로 했다. 내가 사준 장난감이 너무나도 고맙다며 함께 자기로 결정한 것.
하루 종일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지쳤는지. 벌써 깊은 잠에 코오 빠진 하준이와 하윤이었다.
“서준이. 동생들이랑 잘 자. 메리 크리스마스.”
“네! 주무세요! 엄마도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가 굿나잇 인사를 하고. 우리들의 볼에 한 번씩 뽀뽀를 한 뒤 방을 나섰다.
“여, 여보? 씨, 씻는다니. 왜?”
닫힌 문 너머로 희미하게 아빠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괜찮다.
이제는 생산직에서 서비스직으로 변신한 아빠였으니까.
나는 장난감을 하루 종일 가지고 놀다 지쳐 잠든 하준이와 하윤이의 이마에 뽀뽀를 하며. 듣지 못하겠지만 굿나잇 인사를 해주었다.
“하준이, 하윤이. 메리 크리스마스.”
너무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였다.
*
연말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올해 NBC 연기 대상은 과연 누가 받을까에 대한 것.
“누가 될 것 같아?”
“당연히 강록을 연기한 박우형 아니야? 그냥 강록 그 자체를 보여주었잖아. 박우형 아니었음 40프로는 어림도 없었을 텐데.”
“그러면 차서준은? 차서준도 어린아이가 된 강록 그 자체였잖아. 차서준 없었어도 40프로는커녕 30프로도 장담할 수 없었을걸?”
이렇게 갑론을박이 나올 수밖에 없는 논쟁거리가 연기 대상의 주인공이었다.
그런 관심 속에서.
드디어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NBC 연기대상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