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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스타 어게인!-126화 (126/220)

126화

김학영 PD가 긴장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 날 잡아넣을 수 있다고? 내가 누군지 몰라? 아니! 우리 집안이 어떤 곳인지를 몰라서 그딴 소릴 지껄여?”

“알지. 쓰레기 같은 집구석. 자기 자식 지키겠다고 남의 자식들 다 죽이는 집안.”

“증거 있어? 어차피 들어가 봤자 내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아?”

그 모니터 화면 너머에는 스태프들조차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연기를 펼치는 두 배우가 있었다.

하나는 ‘타임슬립’의 주인공 강록. 다른 하나는 사채업을 하는 부잣집 외동아들이지만. 집안과 절연한 강록의 가장 친한 친구였었던 이주영.

그랬다.

지역 유지 자식임에도 연을 끊은 채 소탈한 모습으로 강록의 곁을 지켜주던 친구. 이주영이 사실은 연쇄 실종 사건에 얽힌 주범이었던 것.

그런 두 사람의 연기를 바라보는 김학영 PD의 입에서 작은 감탄이 터져 나온다.

“크. 눈빛 좋고. 목소리에 담긴 감정 좋고.”

그만큼 연기가 아니라 진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배우가 펼치는 연기는 보는 이의 손에 땀이 나게 만들고 있었다.

“증거? 네놈들은 철저하게 지웠다고 생각했겠지. 곧 그 표정 박살내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강록이 이주영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꽉 쥐는 그 순간.

“커엇! 정말 좋았어요! 잠깐 쉬었다가 다음 장면 갑시다.”

김학영 PD는 오케이를 외쳤다. 그와 동시에 강록이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곤 박우형으로 돌아왔다.

메소드라고 할 정도로 배역에 몰입한 두 배우를 생각해서. 나는 재빨리 들고 있던 물을 가지고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어땠어?”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최고였어요. 석현이 형도 물드세요.”

방금 전까지 몰입하던 이주영의 영향이 아직 남았는지. 멍하니 박우형을 바라보던 조석현이 그제야 날 보며 물을 받는다.

“···아. 고마워 서준아.”

‘타임슬립’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배우 조석현.

특히나 강록의 친구이자 악역이라는 반전을 가진 이주영을 연기하면서. 박우형에게 밀리지 않는 존재감은 시청자들에게 조석현이란 배우를 제대로 각인시켜버렸다.

“서준아.”

“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조석현의 입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충분히 예상이 갔다. 방금 이주영에서 쉽게 돌아오지 못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엊그제 촬영장에서 본 나처럼 몰입에서 쉽게 빠져나오는 방법이 궁금하겠지.

“내가 최근에 촬영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고민이 하나 생겼거든. 너는 어떻게 몰입을 했다가 순식간에 빠져나올 수가 있어? 마치 스위치라도 달린 것처럼.”

역시나 조석현의 입에서 나온 건 예상대로였다. 엊그제 어린아이가 된 강록의 마지막 촬영을 보면서. 감탄을 멈추질 못하던 사람이 조석현이었으니까.

방금 했던 말처럼 시청자들에게서도 조석현의 연기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물이 오른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본인이 그만큼 이주영에 몰입한 결과인 셈.

“그 부분에 대한 제 방법은요.”

마치 1등 로또 번호라도 읊어줄 사람을 보는 것처럼. 조석현이 내 입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배우 차서준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비법을 전수해 줄 거라는 기대감을 가진 얼굴로.

하지만.

“경험이요.”

“응? 경험?”

정작 내 입에서 나온 ‘경험’이라는 말이 의외였는지.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는다.

조석현의 입장에서 방금 내 대답은 마치 ‘수능 만점을 위해서 교과서만 봤어요.’ 이런 느낌이었을 테니. 그런데 정말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특히나 눈앞의 조석현처럼 몰입하여 연기하는 타입에게 있어서는 더욱더.

조석현의 입장에선 대사 몇 마디 없는 단역만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잡은 기회였다.

“저도 사실 처음 ‘너에게 다시’를 촬영할 당시에. 형처럼 엄청 어려웠어요. 감독님이 오케이를 외쳐도 제가 꼭 마치 김우주인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정말?”

거짓말이다. 과거 김도경 시절 첫 작품을 찍을 때 살짝 어려움을 겪은 적은 있었으나. 경험이 쌓이면서 금방 극복해냈었다.

다만, 많은 고민 끝에 도움을 요청한 상대에게 ‘전 그냥 되던데요?’ 이런 대답을 해선 안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조석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해줄 생각이었다. 나도 그랬었다는 동질감을 주면서.

선의의 거짓말인 셈이다.

“네. 처음 온 기회이니만큼 더 열심히 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더 집중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었는데. 정작 내가 몰입에서 쉽게 빠져나오질 못했으니까요.”

“맞아.”

어떻게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지? 하는 표정으로 조석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과 같은 이번 기회를 잡기 위해 이 악물고 노력하는 게 보였거든. 이 기회를 놓치면 떨어진다는 각오까지 느껴질 정도로.

“아마 우형이 형도 비슷할걸요. 형도 처음 데뷔했을 때 그렇지 않았어요?”

내가 박우형을 보며 묻자.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우형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 형 표정을 보아하니 말을 안 걸었으면 서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사실 메소드 연기라고도 부르는 몰입은 배우에게 있어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드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게 만들어주지만. 반대로 배우에게 있어 그만큼 몰입했다는 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거거든. 석현이가 지금 어렵다고 느껴지는 건. 그만큼 이주영에 몰입을 했다는 증거니 어찌 보면 좋은 현상이지. 서준이의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 점점 나아질 거다.”

버튼이라도 눌린 것처럼 박우형의 입이 쉴 새 없이 ‘메소드 연기’에 관해 떠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놔두었다간 10분이고, 20분이고 떠들 기세였기에 재빨리 내가 나섰다.

“맞아요. 우형이 형 말처럼 시간이 점점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정말 그럴까?”

“네!”

이번 ‘타임슬립’ 이주영 오디션을 통과하기 전까지. 조석현은 말 그대로 대사 한두 줄짜리 단역을 전전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석현은 매력적인 마스크의 소유자지만 못생긴 편이었으니까. 거기에 나이도 적지 않았다.

배우로서 따져보자면 부족한 조건에 소속사도 없는 무명을 선뜻 비중 있는 조연에 넣을 감독은 없었다. 이 바닥에 조연 한 번 하기 위해 프로필을 돌리는 배우들이 한 트럭이니.

“타임슬립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형을 제대로 알렸으니까. 이제 많은 작품들을 해가면서 점점 나아지실 거예요.”

“고마워.”

아마 조석현은 ‘타임슬립’을 통해 이제 어엿한 배우로서 자리 잡을 것이 분명했다. 오디션에서도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였으니.

저런 조석현에겐 한 가지 재밌는 점이 있었다.

“우형 선배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또 좋은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뭘. 석현이 네가 잘한 건데.”

마치 박우형 붕어빵 같은 느낌이랄까. 연기와 관련된 것에 있어서는 눈에 불이 번쩍 들어올 정도로 열성적인 배우였지만.

이렇게 평상시에는 참 과묵한 사람이었다. 듣기론 한마디도 안 하고 지낼 때도 있다고.

내 말에 해결 방법을 찾았다 생각했는지. 대본을 슬쩍 본 뒤에 조심스럽게 박우형에게 리허설을 요청한다.

“저···. 선배님. 혹시 다음 장면 미리 한 번 맞춰볼 수 있겠습니까?”

조석현의 그 말에 박우형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누구보다 연기에 진심인 박우형에게 있어 이보다 더 행복한 부탁은 없었을 테니.

“좋지. 바로 시작할까?”

분명 ‘타임슬립’에서 이주영을 통해 이름을 제대로 알린 조석현이었다. 어깨가 으쓱해질 만도 한데. 이처럼 쉬는 시간만 되면 박우형과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박우형은 그런 조석현의 자세를 정말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아마 다음 작품에서 괜찮은 캐릭터가 있다면 조석현을 추천할지도 모르겠다.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메이킹 필름 카메라가 놓치지 않고 담았다.

“차 배우.”

“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김학영 PD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근데 아까 말했던 거 진짜야? 내가 알기론 차 배우는 처음부터 잘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우리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모양인지. 김학영 PD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마 데뷔 때부터 괴물 같은 모습만 보여주었던 나에 관한 소문을 잘 알기 때문인 듯싶었다.

“내가 진짜 많은 배우들을 봤지만. 우리 차 배우만큼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배우가 정말 거의 없었거든.”

“그건 다 감독님의 디렉팅이 너무 좋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감독님 덕분인 거 같아요.”

“뭐? 하하.”

예상치 못한 내 대답에 웃음을 터트리는 김학영 PD였다.

*

하반기에 등장하여 올해 최고의 드라마라 평가받고 있는 ‘타임슬립’. 강록의 이야기가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안 돼···. 오늘이면 타임슬립이 끝난다니. 우리 차 배우 보는 낙으로 살았는데.”

김시율은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러브라인 없는 드라마가 이렇게나 재밌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

아빠도 엄마의 성화에 처음 같이 봤다가. 이제는 엄마보다 먼저 수, 목만 기다릴 정도였다.

특히나 지난주 마지막 장면에서의 차서준이 보여준 표정 연기가 어땠는가.

└ 지난주 목요일 마지막에 우리 차 배우 충격받은 표정 연기 보신 분 있나요?

└ 저요!!! 오랫동안 믿고 의지하던 친구가 사실은 증거인멸까지 지시하게 만든 원흉이라는 걸 알고 난 표정이 진짜 미쳤었죠. ㄷㄷ

└ 그거 보면서 우리 차 배우도 어디 믿었던 사람에게 크게 배신당한 적 있었나? 하고 생각했었음.

└ 박우형이 보여주는 형사 강록을 똑같이 보여준다는 것부터가 우리 차 배우의 연기력을 증명하는 거 아니겠음?

└ 맞지. 우리 차 배우가 30대를 경험해봤을 리도 없고. 또 소중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봤을 리도 없으니. 다 연기지.

지금 주르륵 달리는 사람들의 반응처럼. 오랫동안 강록의 친구였던 이주영이 사실 미제 연쇄 살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라는 게 밝혀진 뒤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시작했다.”

지난주에 이어 진실을 알고 충격 받은 어린아이가 된 강록이 등장하며 시작되었다.

-흔적 남기면 안 된다. 거기 핏자국 다 지워!

-예. 회장님. 도련님은 먼저 모셨습니다.

-이 흉기는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새끼야. 거기다가 잘 가져다 놔.

돈놀이와 사채업을 통해 지역 유지로 악행을 떨친 집안의 4대 독자인 이주영. 집안과 연을 끊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자신의 범죄 행각을 감추기 위한 거짓이었다.

또다시 술에 취해 홧김에 상대를 죽여버리자 재빨리 증거들을 지워버리는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거기라는 말은 범죄에 쓰인 흉기들을 보관한 곳이라는 뜻이다.

범죄가 발생했음을 숨기기 위해 이주영의 집안에서는 결국 증거들을 인멸하는데.

-평판을 만들기 위해. 가면을 쓴 채 나와의 거짓된 친분을 유지했다.

형사의 친구가 살인범일 거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자신의 집안을 욕하며. 없는 친구들과 친분을 유지한 이유도 그 가면을 위한 것임을 강록은 깨닫고.

그 가면이 지금 상황에 결정적인 증거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주영의 집에 드나들면서 저들 중 한 명의 얼굴을 알고 있는 강록.

저들이 증거들을 어디로 숨기는지 확인한 뒤. 조용히 증거품들을 확보하고 현실로 돌아오는데.

-증거 있어? 어차피 잡아넣어봤자 내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아?”

“당연히 없다고 확신하겠지. 철저하게 다 지웠다고 생각할 테니. 그런데 그 증거가 요기 있네?”

‘타임슬립’의 인기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김시율이었다.

분명 치밀하고 완벽하게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나쁜 놈들이. 주인공이 들이미는 예상치 못한 증거에 결국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데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그,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각오해도 좋아. 그 잘난 네놈의 집안에서도 전국적인 이슈가 되면 막아주지 못할 테니까. 증거? 여기 확실한 증거들이 있지.

연쇄살인과 증거인멸 시도. 아무리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무기징역을 피하긴 힘든 상황.

이후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 연고가 없는 노숙인들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던 이주영.

냄새를 맡고 수사하던 형사조차 죽여 버릴 정도로 집안도 함께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로써 그 악행의 끝에 처벌을 받게 되고. 또다시 과거 시간대의 어린아이로 눈을 뜨게 된 강록.

-이번에는 또 어떤 나쁜 새끼를 잡아볼까.

씨익 웃으면서 끝나는 ‘타임슬립’의 마지막.

“와. 마지막까지 시원시원하네?”

그 마지막 엔딩 OST를 들으면서. 김시율은 시원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것은 차서준의 팬클럽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아쉬운 마음에 팬들은 허전함을 감추지 못했다.

└ 이제 우리 차 배우 당분간 못 봐서 어쩌죠?

└ 다음 차기작까지 열심히 또 기다려봐야죠.

└ 차기작 이야기 나왔나요?

└ 이미 찍은 거 모름?

└ 아, 맞다! 사총사들이 단편 영화 만들었잖아요. 그거 이제 곧 하지 않아요?

“어? 그렇네. 우리 차 배우가 사총사들이랑 도전한 영화제가 언제 한다고 했지?”

차서준이 사총사들과 함께 찍은 영화. 그 사실이 떠오른 김시율은 서둘러 ‘어린이 감독 영화제’의 일정을 확인했다.

“다음 주에 있네? 일주일이니까 주말에는 사람이 미어터질 것 같으니 연차 써서 평일에 가야겠다.”

허나 김시율은 모르고 있었다. 차서준의 많은 팬들이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차 배우의 영화 제목이··· 흔들린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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