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어린이 감독 영화제’에 도전하겠다는 최지환에게 선뜻 배우로 돕겠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총사의 한 명인 최지환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아직 시나리오라고 보기엔 어설픈 부분들이 많았지만. 이걸 완성하기까지 최지환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가 느껴졌다.
손때가 가득한 노트 안에 담긴 내용이 꽤나 신선하고 재밌었다. 특히나 최지환의 시선과 생각이 담겼다는 데에는 추가 점수까지 줄 만했다.
“지환아. 이거 내용이 꽤나 재밌는데? 읽는 순간 배우로서 해보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
“저, 정말?!”
내 말에 최지환의 얼굴이 활짝 핀다. 친구 차서준이 아닌 배우 차서준으로 하는 칭찬이었으니까.
다른 것보다 연기에 있어선 누구보다 엄격한 사람이란 걸 알기에 저리 기뻐하는 거겠지.
“어.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꽤나 흥미롭게 느껴졌어. 특히나 지환이 네 생각이 담겼다는 것에 더 좋았고.”
“역시 서준이구나! 나 진짜 많이 고민하고, 또 수정하면서 쓴 건데. 한 번만 읽고 알아차리다니. 정말 대단해!”
최지환이 배우와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친구들을 보면서. 그저 막연하게 미래에 감독이 되겠다고 떠든 게 아니었다.
이미 주연급 배우에 올라선 나. 그리고 아역 배우로 데뷔한 김도윤. 마지막으로 아이돌 연습생이 된 하지우까지.
앞서 나가는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이다. 내가 틈틈이 보여주던 시나리오나 대본들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서준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사총사들 사이에서 긍정에너지를 담당하고 있는 최지환이었지만. 때로는 저 멀리 앞서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시기나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다. 오히려 응원만 했을 뿐. 그러니 도와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당연히 도와줘야지. 친구니까.
“우리 친구잖아. 친구끼리는 이런 도움을 당연히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맞아. 내가 이런 도전을 하겠다고 도와달라고 했으면. 지환이 너도 무조건 열심히 도와줬을 거잖아.”
“···맞아. 친구니까.”
우리 셋의 말을 들은 최지환의 눈동자가 마구마구 흔들린다. 저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해석해보자면 오른쪽에는 감, 왼쪽에는 동이 아닐까.
“여기 시나리오를 보면 나오는 인물은 두 사람이잖아. 하나는 주인공. 다른 하나는 주인공 친구. 맞지?”
“응! 맞아!”
여기서 내가 최지환을 돕겠다고 나선 두 번째 이유. 그것은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인물이 총 2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김도윤. 우리 둘이 배역을 하나씩 나눠서 하기에 딱 좋은 구성이었다.
“도윤아. 이번에는 도윤이 네가 주인공을 하고. 내가 조연인 주인공 친구를 할 거야.”
“내, 내가 주인공을 하라고? 서준이 네가 아니라?”
“어.”
주인공을 하라는 내 말에 김도윤이 화들짝 놀란다. 당연히 주인공은 내가 하고 자신은 친구 역인 조연을 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인데.
“서준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여기 있잖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김도윤의 시선은 무시했다. 나 역시 어린 김도경 시절 연기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실패의 시간을 겪었으니.
그 수십 년의 연기 경력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배우 차서준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저 천재 중의 천재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기회잖아. 지환이도 그렇고. 도윤이 너도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소화하지 못할 것 같으면 주인공을 하라고 권하지도 않았을 거야. 배우로서 도윤이 널 믿으니까. 연기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엄격한지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렇지?”
끄덕. 조금 길어진 내 말에 김도윤이 멍하니 고개를 움직인다.
지금까지 김도윤과 몇 번의 호흡을 맞춰봤다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연습하는 과정에서 조금씩이었다.
내가 찍은 작품들에 단역으로 나와서는 대사 한두 줄 주고받는 정도가 전부였고.
허나 이번 최지환이 도전하려는 ‘어린이 영화 공모전’은 무려 20분 분량의 영상이었다. 주인공으로 나와 호흡을 맞춘다면 배우로서 좋은 경험이 되겠지.
“일단 시나리오부터 먼저 복사를 해서 나누자. 시간을 줄 테니까 도윤이 네가 혼자서 한번 분석을 해봐. 그러고 나서 우리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자.”
“···.”
“···.”
“···.”
이상하다. 분명 알겠다는 대답이 나와야 할 타이밍인데. 애들은 그저 멍한 얼굴을 한 채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 입을 본 채로.
“왜 그래?”
“으, 응? 아니야. 서준이가 우리 친구들과 연기에 관련된 일만 되면 말이 엄청 많아지는 것 같아서. 그게 엄청 신기했어!”
최지환의 신기하다는 듯이 하는 말. 그리고 방금 전 애들의 표정을 떠올리는 순간. 박우형을 보는 내 표정이 생각났다면 착각이겠지?
에이, 설마.
어쨌거나 이틀 뒤 다시 만나 대본 분석을 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 그런 우리 대화를 지켜보던 하지우가 짝 하고선 손뼉을 쳤다.
“···우와. 우리들의 첫 영화네?”
정답. 감독 최지환, 주연 김도윤, 조연 차서준. 마지막으로 응원 하지우까지.
10살을 앞두고 있는 9살 꼬맹이 사총사들의 첫 작품인 셈이다. 이보다 더 뜻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촬영 시작은 언제부터 할까?”
“대본 분석이 끝나고. 촬영은 학교 쉬는 시간마다 하자. 점심시간도 활용하고.”
최지환의 물음에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을 해주었다.
“또 내가 드라마 촬영이 없을 때에 모여서 같이 찍자. 뒷부분 장면들은 학교가 아닌 장소니까.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미리 말해줄게. 알았지?”
“응!”
“알았어.”
“···파이팅.”
그때였다. 지금까지 발 벗고 나서서 돕겠다는 친구들의 응원에 활짝 웃던 최지환의 얼굴이 어둡게 변한 것은.
“서준아. 도윤아.”
“어?”
“응?”
잠시 나와 김도윤을 번갈아 보던 최지환이 걱정스럽다는 듯 묻는다.
“너네는 소속사가 있는 배우잖아. 보통 이런 작품을 찍게 되면 출연료를 줘야 한다고 들었어. 근데 나는 그런 많은 돈이 없어.”
이런. 다른 배우도 아닌 S급 대우를 받는다고 알려진 나였다. 당장 ‘목소리’로 받은 러닝개런티를 보고선 놀란 기자들이 앞다투어 기사를 쓰기도 했었다.
이제 촬영을 언제부터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덜컥 생각이 난 모양.
“···어쩌지?”
옆에서 지켜보던 하지우 역시 걱정스럽다는 듯 나와 김도윤을 본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이미 돕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최지환이라면 출연료에 대해 꺼낼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과거 최지환이 날 따라갔었던 촬영장에서 감독이라면 제작비용에 대해 생각해야 된다고도 배웠으니까. 옆에서 열심히 메모를 하던 최지환이니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그에 대한 대답도 생각해두었으니 괜찮다.
“출연료는 촬영이 모두 끝나고 나면 정말 맛있는 돈까스 사줘. 나, 도윤이, 지우. 이렇게 네 사람이 먹으려면 지환이 너 용돈 많이 모아야 돼. 비싼 출연료지만 그 정도는 괜찮지?”
“좋아! 나 어제도 엄마한테 용돈 받은 거 있거든. 일단 음료수부터 사줄게!”
당장 ‘타임슬립’을 통해 찍은 광고들만 보더라도. 돈가스 정도는 평생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는 돈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어린 시절의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단편 영화 하나를 다 같이 찍고. 또 영상으로 남긴다는 데에 돈보다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대신 나 치즈 돈까스 먹을 거야.”
“알았어! 도윤이랑 지우도 모두 세트로 시켜줄게! 내가 용돈 많이 모아서!”
내 말에 활짝 웃는 최지환이었다.
*
시청률이 천장을 모르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정작 촬영장에 도착한 김학영 PD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다.
“감독님. 괜찮을까요?”
“괜찮아야지. 오늘 혹시나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들 긴장하라고 해. 알았지? 절대로 사고 나면 안 된다. 명심해.”
당부의 당부를 해도 걱정이 덜어지지가 않는지. 김학영 PD의 수심 가득한 눈이 합을 맞추고 있는 배우들을 향했다.
하필이면 오늘 광고 촬영 일정이 있던 차서준인지라. 촬영 시작 전에는 도착했지만 합을 맞추기에는 시간이 조금 빠듯한 상황.
며칠 전부터 연습했다지만 불안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김학영 PD를 보면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수군수군 떠들기 시작했다.
“오늘 차 배우의 첫 액션 씬이라며? 생각보다 어려운 동작이라서 빼니, 마니 하더니만. 결국 찍기로 했나 보네?”
“그래서 감독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잖아. 혹시나 우리 차 배우 다치기라도 하면 난리가 나니까.”
“난리만 나겠어? 혹여나 부상으로 촬영 못 하게 되기라도 하면 방송국에 비상 걸리겠던데.”
혹여나 그 소리가 김학영 PD 귀에 들어가기라도 할까. 대화를 나누던 조연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댄다.
“쉿. 조심해. 지금 감독님 예민한 거 안 보여? 박우형이야 전에 작품들을 하면서 액션 신을 소화한 적이 있으니 괜찮았다지만. 우리 차 배우는 데뷔 이후 처음이라잖아.”
“그러면 빼면 되잖아.”
사실 이 말이 정답이긴 했다. 혹시나 모를 부상의 위험이 있다면 그 장면을 빼버리고 가면 된다. 위기-절정의 단계에서 김빠진 사이다처럼 되어버리겠지만.
그런데.
대본을 본 배우 본인이 강력하게 원했다. 다른 배우라면 무시하고 빼버렸겠지만. 그 배우가 시청률 쌍두마차 중 하나인 차서준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솔직히 그 액션 씬이 빠지면 과거 시간대가 너무 김이 빠지잖아. 감독님도 그게 아까워서 저렇게 고민하는 거 아니겠어?”
“그렇긴 한데. 저기 무술 감독님의 표정은 밝거든? 거참 모르겠네.”
그랬다.
거무죽죽한 얼굴이 되어 합을 맞추는 차서준과 스턴트 배우를 바라보는 김학영 PD와 달리. 무술 감독은 손주의 재롱잔치라도 보는 것처럼 미소가 가득했다.
“오늘 우리 차 배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감독님 걱정 마세요. 솔직히 처음 그런 장면을 찍겠다고 했을 때 걱정했거든요?”
“걱정했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치고 들어오는 김학영 PD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무술 감독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냥 타고났더라고요.”
“누가?”
“누구겠어요. 우리 차 배우지. 솔직히 일반 아역 배우가 그런 몸놀림을 보여줬으면 당장 스턴트 배우 하자고 했을 겁니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무술 감독을 보면서. 김학영 PD는 다시 합을 맞추고 있는 차서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말을 듣고 보니. 뭔가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딱딱 합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
느껴진다. 과연 이번에도 차서준이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담긴 시선들이.
배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저런 시선을 받는 일은.
하지만.
대본 속에서 어린아이가 된 강록의 액션 신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서도현이 미소를 지었다.
“서준아. 드디어 때가 왔구나.”
“참 오래도 걸린 것 같아요. 그렇게나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어린아이가 몸을 쓸 만한 장면은 빼기 마련이니까.”
진정한 배우가 된다는 것은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줄 알아야만 했다.
그것은 김도경 시절 역시 마찬가지. 필모에 쌓은 다양한 작품 중에서는 요원 같은 첩보 액션 영화도 있었다. 거기에 사극에서 전투신은 붕어빵의 팥 같은 존재.
“삼촌. 제가 이번에 제대로 보여주고 올게요.”
그렇게 서도현의 응원과 배웅을 받으며 도착한 촬영장이었다.
오늘 촬영할 액션 신은 간단했다. 범인의 뒤를 따라 파쿠르처럼 건물 사이를 뛰어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범인을 향해 달려들어 제압하는 신.
높은 곳에서 범인을 향해 달려들어 어린아이의 몸으로 제압하는 장면이기에 어려운 촬영이라 할 수 있었다.
“차 배우 오늘 몸 상태는 좀 어때?”
“엄청 좋아요 감독님!”
“그래? 혹시나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그냥 손들고 신호 보내. 다음에 찍거나 아예 넘겨도 되니까. 알았지?”
이미 나를 위해서 별도의 미니 세트장도 만들어주었다. 건물 사이를 넘어가는 순간만 미니 세트장에서 찍고. 송출용 장면은 기존 세트장에서 찍어 합칠 예정이었다.
김학영 PD가 걱정하는 건. 공중에서 범인을 향해 달려들어 제압하는 순간에 다칠 위험성이었다.
“감독님. 걱정 마세요. 오늘 좋은 장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액션 신이 있다는 말에 월드 스튜디오 윌리엄까지 찾아와 구경하고 있는 상태.
그렇다면 보여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