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스타 어게인!-113화 (113/220)

113화

김시율은 거지같은 직장 상사 때문에 지칠 때면. 집으로 돌아와 차서준 팬미팅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들을 보면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내가 진짜 우리 차 배우 덕분에 산다, 살어.”

사진 속 팬미팅이 있었던 날. 정해진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차서준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팬들과의 헤어짐이 아쉬워 상영관을 통째로 하루 동안 대관했다는 말에 얼마나 감동했는지.

“슬슬 우리 차 배우가 차기작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가 되었는데.”

농담처럼 소처럼 일하는 배우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차서준은 데뷔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심지어 그 작품들을 모두 대박으로 만든 배우가 차서준이었다. 그렇게 김시율이 저번 차서준 팬미팅의 추억을 떠올리며 힐링하고 있을 때.

드르륵.

김시율의 핸드폰에 전화가 들어왔다. 혹시나 업무 전화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차서준 팬클럽의 네임드 팬 ‘금동이맘’이자, 그녀의 엄마에게서 온 전화였다.

- 딸. 너는 우리 금동이 팬 맞니?

“왜? 나 이제 막 퇴근해서 집에 들어왔어. 오늘 야근하느라 힘들었단 말이야.”

-그럴 줄 알았다 얘. 그래서 엄마가 우리 딸이 기뻐할 소식을 가지고 왔어.

“기쁜 소식?”

-우리 금동이 차기작 소식이 떴으니까. 우리 딸 그거 보면서 힘내.

힘들어하는 딸을 응원하는 엄마의 말이라고 보기엔 조금 이상했지만. 배우 차서준의 열렬한 팬인 모녀에게는 그 어떤 응원의 말들보다 힘이 나는 말이었다.

“진짜?”

-응. 거기에 연사모 있잖아. 거기 박우형이랑 같이 드라마에 들어간대. 얼른 확인해봐. 엄마도 지금 일이 바빠서 이만 끊을게.

마지막 말이 채 들리기도 전에 전화가 끊겨버렸다. 저 바쁘다는 말은 ‘금동이맘’으로서 댓글을 다느라 시간이 없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김시율 역시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서둘러 차서준의 팬클럽에 접속하자. 이미 소식을 접한 팬들로 인하여 난리가 난 상태였다.

[차서준-박우형의 재결합. NBC 드라마 ‘타임슬립’을 통해 다시 만난 두 배우.]

[차서준, 박우형. 두 배우들을 다시 만나게 한 ‘타임슬립’은 어떤 드라마?]

[이제는 아역 배우를 벗어나 주연으로 올라선 배우 차서준의 인터뷰]

└ 미쳤다! 드디어 떴구나!! 우리 차 배우의 차기작 소식만으로도 미쳤는데. 심지어 거기에 연사모의 박우형과 함께하는 드라마라니. 나 죽어!!!

└ 근데 작가가 정말 처음 보는 이름인데. 검색해 봐도 작품 이력도 없고요. 드라마는 작가놀음인데 괜찮을까요?

└ 걱정 ㄴㄴ ‘목소리’ 때에도 주우정 감독이 이런 말을 했었음. 차 배우를 만나기 전과 만나 이후의 시나리오가 완전히 달라졌다. 차 배우가 하는 작품들은 작품성 걱정할 필요가 없음. ㅋㅋㅋ

└ ㅇㅈ 특히 차 배우가 있는 구름엑터스의 서도현 대표가 작품 보는 눈으로 유명하잖아. 거기에 박우형까지 있으니. 내용이 별로였음 캐스팅 단계부터 거절했겠지.

└ 이거 언제 시작하나요? 이제 영화만 찍을 줄 알았는데. 드라마를 해준다니! 방송 시작하고 나면 매주가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ㅠㅠ

└ 우리 금동이를 의심하면 안 됩니다. 저번 팬미팅 때 금동이가 좋은 작품으로 찾아온다고 했으니. 다들 열심히 홍보하자구요.

“어, 엄마?”

마지막에 익숙한 닉네임을 본 김시율의 마우스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

“형님! 제가 서준이 덕분에 또 드라마가 잘 됐잖아요. 당연히 이렇게 한 상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역시 우승 아우님이야. 우리 가족이 또 대게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고선.”

CBS 드라마 ‘꿈속의 당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김우승이 선물을 가지고 우리집을 찾았다. 심지어 오늘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잔뜩 들고선.

김우승이 가져온 선물이 대게와 랍스터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하준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모닥불을 뱅글뱅글 도는 인디언처럼 양손을 번쩍 들고 김우승의 주변을 돌고 있었다.

“께! 께!”

“하준이도 잘 지냈어? 여기 하준이가 좋아하는 대게랑. 또 랍스터도 많이 가지고 왔으니까. 오늘 마음껏 많이 먹자. 알았지?”

“께! 고마습니다. 삼쫀.”

포장 용기를 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대게와 랍스터가 모습을 드러내자. 침을 꿀꺽 삼킨 하준이가 김우승에게 다가간다.

엄마와 형인 내게 배운 것이다. 누군가가 선물을 준다면 꼭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배운 대로 하준이가 감사 인사를 위해 고개를 숙이는 동안에도 시선은 대게와 랍스터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하하.”

준비해온 선물에 기쁨을 넘어 행복과 경악을 보여주는 하준이의 모습에 김우승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에게 대게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저 정도로 좋아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심지어 하준이의 붕어빵 버전인 아빠 역시도 비슷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준이의 대게 사랑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 우승 씨. 그냥 오시라니까요. 매번 선물도 그렇게 많이 보내주시면서. 뭘 또 이렇게 많이 가지고 오셨어요.”

“아닙니다. 서준이에게 들어보니까. 형님이랑 하준이가 대게를 엄청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방문한다고 했으니 선물 겸 가지고 왔습니다.”

그랬다.

한 시간 전 갑작스럽게 잠깐 들러도 되냐는 김우승의 전화에 당황했던 엄마였다.

따로 식사 대접할 재료들조차 집에 없는 상황인데. 매번 하준이, 하윤이를 위해 고가의 아기용품들을 잔뜩 보내주는 김우승이 온다고 했으니.

저녁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던 찰나. 김우승이 마침 먹을 것들을 사서 오겠다는 말에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대게와 랍스터를 한가득 사 올 줄이야.

“오늘 같은 날은 당연히 술이 있어야지. 우승 아우도 한잔 괜찮지?”

“당연합니다. 오히려 안 주면 어쩌나 섭섭하던 참이었습니다.”

아빠가 술과 잔들을 가지고 오자. 식탁 위에 세팅을 하고 있던 김우승의 표정이 확 밝아진다.

저 형 보소. 오늘 이대로 저녁만 먹고 집에 보냈다간 밤에 서운해하며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김우승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접시와 수저를 가지고 오던 엄마가 김우승이 격하게 기뻐할 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괜찮겠어요? 차 끌고 오셨으니 자고 가세요. 저번처럼 서준이 방에서 같이 자면 될 것 같은데요.”

“이거 괜히 주말에 쉬시는데 방해가 되는 게 아닐지. 그래도 괜찮다면 염치없지만 오늘만 좀 신세 지겠습니다.”

이미 앞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아빠, 엄마와 짠을 하고 있던 김우승이었다.

저 형 보소. 지금 여기서 자고 가라니까 내심 엄청 기쁜데. 애써 씰룩이려는 입가를 감추려고 재빨리 술을 마신다.

오랫동안 김우승을 옆에서 지켜봐 온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얼마나 기뻐하는지 대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얼른 저 형의 짝을 찾아줘야겠다.

“께! 마이어! 사랑해요!”

옆에선 대게 살을 쏙 빼먹고 눈이 동그래진 하준이가 또다시 고맙다면서. 이번에는 김우승을 살짝 안아주었다.

하준이의 대게 사랑과, 그걸 사 온 김우승을 향한 감사 표현에 잠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우승 씨 축하드려요. 이번 드라마에서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면서요?”

“하하. 아닙니다. 다 서준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이죠. 사실 서준이가 없었으면 그런 연기를 보여주지도 못했을 겁니다.”

김우승이 모든 공을 나에게 돌린다.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는 각종 인터뷰에서도 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기 때문.

오죽하면.

└ 서준맘의 귀환이네. 무슨 인터뷰나 TV 프로그램에 나오면 ‘서준이 덕분에’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냐. ㅋㅋㅋㅋ

잠시 잊혀졌던 ‘서준맘’이라는 별명이 다시 김우승에 붙어버렸을 정도. 정작 본인은 그 별명에 퍽 만족하는 듯싶었지만 말이다.

손사래를 치면서 말은 저렇게 했어도. 정말 김우승은 ‘꿈속의 당신’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해버렸다.

박강유라는 캐릭터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제대로 흔들어버린 셈. 그 결과 드라마 촬영이 끝났음에도 광고 촬영을 다니느라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서준이 너도 이제 곧 대본 리딩 시작하지 않나? 우형이 형도 그거 준비하느라 바쁜 것 같던데?”

“맞아요. 안 그래도 약속도 잡았어요.”

“무슨 약속? 아, 거기 가는 거 말하는 거구나.”

잠시 되묻던 김우승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박우형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 항상 들르는 계곡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

“서준이 너랑도 예전에 갔었다면서. 폭군의 세자를 하기 전에.”

“네. 그때 우형이 형이 집에도 안 보내줘서. 거기서 하룻밤 더 자고 왔었잖아요.”

생각난다. 계곡에서 한 번 보여준 이환의 연기를 그대로 따라하는 내게 경악하던 박우형의 모습이.

그 덕분에 집에도 못 가고. 근처에서 하룻밤 더 자고 계곡에 한 번 더 올랐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 박우형이 드라마의 인연을 시작으로. 어느새 연사모의 한 사람이 되어 몇 년째 친분을 이어오고. 또 이번 작품까지 같이 하게 되다니.

“다음 주에 대본 리딩이 있다고 꼭 모레 가야 된대요. 형도 같이 갈래요?”

내가 함께 가자는 말에 김우승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것도 매우 격하게.

“아냐. 나도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광고 촬영이 있거든. 하준아 랍스터 좀 더 줄까?”

“응!”

말 돌리는 거 보소. 괜히 말을 꺼냈다가 정말 잡혀갈지도 모른다 생각했는지. 김우승이 서둘러 하준이에게 랍스터를 발라준다.

딱히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 하준이, 하윤이만 보면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 김우승이었으니까.

“아우님. 한 잔 더?”

“당연한 말씀 아니겠습니까 형님!”

광고 계약을 맺을 때도 저렇게 웃진 않았을 텐데. 오랜만에 진심으로 싱글벙글 웃는 김우승을 보며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저 형의 짝을 찾아줘야겠다.

*

NBC 드라마 ‘타임슬립’의 대본 리딩이 있는 날.

연출을 맡은 김학영 PD는 이른 아침부터 임정석 국장의 호출을 받았다.

“형님. 아니, 국장님. 저 오늘이 제일 바쁜 날인데 왜 부르셨습니까.”

“너 정말 자신 있어? 무슨 캐스팅 목록을 보니까 처음 보는 얼굴들이 왜 이렇게 많아?”

정말로 단역 경험조차 없는 배우들을 뽑은 건 아니었다. 임정석 국장이 한 말의 뜻은 왜 이름조차 제대로 못 들어본 얼굴들이 많냐는 것이었다.

“국장님. 아니, 형님. 이번에 저희 드라마 주연 배우들이 누굽니까.”

“차서준하고 박우형 아니야.”

“그 친구들이 있는데 배우들의 이름값이 뭐가 중요합니까. 이번 작품의 생명은 배역에 맞는 이미지와 연기력입니다. 제가 완벽하게 준비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큰소리를 뻥뻥 치는 김학영 PD를 물끄러미 보던 임정석 국장은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믿고서 여기까지 왔는데 마저 믿어야지. 오늘 대본 리딩 끝나고 보고하는 거 잊지 마.”

“넵!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국장실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연출이 후다닥 곁으로 다가온다.

“국장님이 뭐라십니까?”

“뭐라긴. 괜히 불안하셔서 확인차 부른 거지. 그보다 준비는?”

“어젯밤부터 장소 세팅은 다 해놨습니다. 조금 있다가 배우들만 도착하면 끝입니다.”

김학영 PD의 옆에서 걷던 조연출이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배님. 이번에 캐스팅 결과로 조금 시끌시끌한 것 같습니다.”

“왜? 진짜 될 것 같던 애들은 다 떨어지고. 의외의 사람들이 다 붙어서?”

“예. 배역 이미지야 선배님이 뽑으셨으니 문제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얼굴들이 몇 있었잖습니까.”

그 질문에 잠시 걸음을 멈춘 김학영 PD가 조연출에게 되물었다.

“하나만 묻자. 국장님 말처럼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은 상황인데. 그 배우들이 이번 작품에서 어떻게 하려고 할까?”

“어. 아마 이번 기회를 통해 어떻게든 얼굴 알리려고 이 악물고 준비하지 않을까요?”

“정답. 그걸 노린 거야. 다들 지금 가진 실력 그 이상의 것들을 보여 달라고. 오늘도 그렇고. 아마 본 촬영이 시작되면 정말 이 갈고 보여줄걸?”

잠시 후.

김학영 PD의 말이 현실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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