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유명 배우 강성도.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면허 정지 수준”]
그제 밤 유명 배우 강성도 씨가 음주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경찰의 음주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정지 수치로 드러났는데, 동승자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강성도 미쳤네. 이제 주연급으로 올라서나 했더니만 여기서 대형 사고를 쳐버리네.
└ 심지어 동승자가 여자 친구라고 함. ㅋㅋㅋㅋㅋ 자기는 팬들과 연애한다고 입을 그렇게 털더니. 이번 일로 한 방에 날아갈 듯.
└ 근데 쟤 드라마 대본 리딩까지 하지 않았음? 곧 차기작에 서브 주연으로 들어간다고 소속사에서 언플 오지게 했는데?
└ ㅇㅇ 쟤 때문에 지금 CBS 드라마국 초비상 걸렸을 걸? 대본 리딩 영상까지 공개된 상황 속에서 음주운전하다가 사고 내고 연애까지 걸림. ㅋㅋㅋ
└ 배우야 다른 사람으로 급하게 구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드라마 시작도 전에 똥물 제대로 튀겼네. 작가, 감독 지금쯤 울고 있겠다.
하필이면 CCTV가 있는 장소에서 사고까지 난 터라. 사고 영상이 제대로 뉴스를 탔다.
“어머, 당신은 절대로 술 마시고 운전하면 안 돼요. 우리 서준이, 하준이, 하윤이를 생각해서라도요. 알겠죠?”
“걱정 마. 나 술 마시면 대리 부르거나, 무조건 택시 타고 집에 오잖아. 우리 서준이를 위해서도 항상 조심하고 있어.”
뉴스를 보던 엄마가 아빠를 향해 걱정스럽게 말하자. 아빠가 그런 걱정 같은 건 하지도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확실히 내가 아역 배우로 데뷔한 이후. 엄마, 아빠는 항상 조심, 또 조심했었다. 혹여나 자신들의 실수로 내게 악영향이 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 결과. 회식이나 모임이 있더라도 음주운전 같은 건 절대 하지 않는 아빠였다.
“서준아. 저렇게 되면 드라마는 어떻게 되니?”
“아마 다른 배우가 대타로 긴급 투입될 거예요.”
아마 CBS 드라마국 자체가 초상집 분위기일 터였다. 하필이면 곧 방영을 앞둔 드라마의 주연급 배우 중 하나가 9시 뉴스까지 타버렸으니.
어지간한 카드를 꺼내지 않고서는 시작부터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엉아!”
“하준이 형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응. 일로,”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하준이가 구석으로 날 불렀다. 그러더니 엄마가 듣지 못하도록 내게 속삭인다.
“엉아. 깨 머꼬 시퍼.”
이런. 보통은 하준이의 저런 말이 무슨 뜻인지 엄마에게 통역을 부탁해야 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하준이 대게가 먹고 싶어?”
“응!”
얼마 전 하윤이에게 첫 바다를 보여주러 가면서. 엄마, 아빠, 하준이를 위해 저녁에 대게집을 방문했었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대게를 입에 넣은 하준이의 눈이 충격과 환희로 휘둥그레졌었는데. 그 뒤로 ‘께! 께!’하고선 노래를 불렀었다.
평범한 집이었다면 그 부담스러운 가격에 다음에 먹자는 말을 해야겠지만. 내가 왜 열심히 작품을 찍고, 또 광고까지 했겠는가.
그것들은 모두 다 우리 하준이에게 대게를 마음껏 사주기 위함이었다. 아빠, 엄마도 배터지게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엄마. 오늘 저녁은 하준이에게 제가 맛있는 거 사주고 싶어요.”
“우리 서준이가 저녁을? 무엇으로 시키려고?”
“대게요. 저번에 바다 근처에서 먹었던 대게가 엄청 맛있었잖아요.”
하준이에게 ‘엉아 체고!’라는 말까지 들은 뒤. 내가 엄마, 아빠에게 말하자. 대게 소리를 들은 아빠 역시 군침을 꿀꺽 삼킨다.
하준이의 대게 사랑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서준아. 대게는 너무 비싸지 않니? 다음에 특별한 날에 먹어도 될 텐데.”
“아니에요! 저 이번에 영화 찍으면서 돈 진짜 엄청 많이 벌었어요. 그거 다 하준이랑 엄마, 아빠에게 대게 사주려고 한 거예요. 하윤이는 아직 못 먹으니까. 조금 더 크면 마음껏 사줄 거예요.”
엄마의 따스한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만약 아빠가 먹고 싶다고 했다면 단호하게 막았을 엄마였지만.
저쪽 구석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하준이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면 엄마가 주문할까?”
“아니에요! 저 어플도 깔아놨어요. 촬영하다가 배고프면 막 시켜 먹었거든요.”
엄마가 시키면 가격 때문에 조금만 시킬 테고. 그랬다간 하준이와 내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면서 드시지도 못할 터였다.
그건 안 되지. 주문을 받은 사장님이 함박웃음을 지을 만큼 결제한 뒤.
우리집에 대게 파티가 열리게 되었다.
“엉아 체고!”
게살을 한입 먹고. 몸을 부르르 떤 뒤. 하준이가 짧은 팔로 날 안아주면서 한 말이었다.
*
동생들에게 동동이 가자! 노래를 불러주며 놀아주고 있었는데.
- 서준아. 나 큰일 났다.
김우승에게 갑작스럽게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큰일 났다는 저 말을 듣고서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무슨 일인데요?!”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며 묻고 말았다. 덕분에 옆에서 동동이! 하고 놀던 하준이, 하윤이가 화들짝 놀라버렸다.
하지만.
- 그게··· 갑작스럽게 캐스팅이 되어버렸어.
이어지는 김우승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난 또 뭐라고. 큰일 났다기에 뉴스에 나올 만한 사고를 쳤다거나, 아니면 어디라도 크게 다친 줄 알았다.
“형. 저 진짜 놀랐잖아요. 그런 거면 본론부터 말했어야죠.”
- 미안. 그런데 이게 나한테는 정말 급박한 일이라.
김우승의 안절부절못하는 저 반응 또한 이해는 갔다. 그가 속한 모임이 어디든가. 바로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는 곳이었다.
‘연사모’
아역 배우 차서준을 중심으로 연기파 배우 박우형, 김정범과 함께 김우승이 속한 모임이었다.
그런 연사모에 속한 김우승이 갑작스럽게 캐스팅된 드라마에서 부족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건 시청자들의 폭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 아니. ㅋㅋㅋ 동생인 차 배우가 베를린 다녀올 동안 김우승은 대체 뭐 했대?
└ 친목질이나 했나 봐요. 박우형이나, 김정범 모두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데. ㅋㅋ
└ 그러면 더 이상 연사모에 김우승은 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연기도 못하는데 왜 거기에 껴.
└ 연기를 사랑하는 모임이잖아요. 사랑만 하나보지. 예전에는 그냥 차 배우빨이었는 듯. ㅉㅉ
└ 나 같음 부끄러워서라도 연사모 탈퇴하겠다. 차 배우나, 박우형, 김정범에게 무슨 민폐야.
시청자들에게서 즉각 이런 반응이 튀어나왔을 테니까. 상상만으로도 김우승의 눈앞이 캄캄해졌겠지.
그보다 김우승이 무서워하는 건. 모임으로 박우형과 김정범. 그리고 날 만났을 때의 상황이었다.
‘연기’ 하면 누구보다 눈이 희번덕거리게 돌아가는 사람이 누구던가. 바로 박우형이었다. 아마 김우승을 만나자마자 이런 말을 꺼내겠지.
“우승아. 너는 지금 더 이상 안일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잘 봐. 시청자들의 눈은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본다고. 비록 네가 노력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김우승에게 원하는 기준은 그것보다 위에 있단 말이야. 안 되겠다. 나 오늘부터 여기 지내면서 우승이 널 도와줘야겠다.”
내가 생각해도 아찔하긴 하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왜 김우승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전화를 했는지 이해가 갔다.
“형. 지금 어디예요?”
- 집인데.
“그러면 저 좀 데리러 와줄 수 있어요? 지금 수진 누나를 부르기는 좀 그래서요.”
- 당연하지! 지금 바로 갈게.
당장 데리러 오라는 말에 수화기 너머 김우승이 반색한다.
“그러면 저 나갈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출발해요.”
- 알았어.
김우승과의 전화를 끊고. 나는 올망졸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하준이, 하윤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준아, 하윤아.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거 같은데.”
“시러.”
“흐응.”
역시나 놀이 도중 나가려는 나에게 격한 반응이 돌아온다. 이대로라면 울음을 터트리는 동생들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겠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미리 방법을 찾아두었다.
“대신 나갔다 오면서 동동이 과자 사 올게.”
“증말?”
“당연하지. 하준이 거 하나. 그리고 우리 하윤이 거 하나씩.”
“조아!”
“우아!”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동동이 친구들’이 새 시즌을 시작하면서 발표된 노래 ‘동동이 가자’가 아이들에게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다.
그와 함께 출시된 ‘동동이 과자’의 인기 역시 설명하려면 입만 아플 뿐. 우는 아이도 동동이 과자 하나면 울음을 멈춘다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였다.
“다녀아!”
“아우아!”
그렇게 동생들의 배웅을 받으며 김우승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자, 이제 천천히 설명해 봐요. 형이 앞뒤 다 잘라먹고 큰일 났다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미안미안. 나도 갑작스럽게 결정이 된 거라. 너도 알다시피 난 소속사도 없이 활동하고 있잖아.”
그건 맞았다. ‘소소한 하루’를 제외하곤 딱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김우승이었다.
워낙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소소한 하루’인지라. 김우승 본인도 그 정도 인기에 만족하고 있는 모양.
사실 이 으리으리한 집만 보더라도 딱히 출연료에 욕심이 없을 만했다. 이거 말고도 건물도 몇 개 있다고 했던가.
어쨌거나.
“그러니까. 며칠 전에 뉴스까지 탔었던 사고로 하차한 ‘꿈속의 당신’의 배역을 형이 하게 되었다는 거죠?”
“그렇지. 갑작스럽게 대타를 찾던 PD가 나에게 연락한 거고.”
김우승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을 것이다. 같은 CBS 소속이다 보니 ‘소소한 하루’의 촬영에도 방해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말까지 꺼낸 걸 보니.
아니, 오히려 드라마 출연 과정에서의 모습들을 ‘소소한 하루’의 촬영에 쓰일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말도 했다고 하니. 김우승에게 있어 이득인 셈이다.
“서준이 너도 알다시피 최근 내가 고민이 좀 있었잖아.”
“소하에서 보여줄 걸 다 보여줘서요?”
“아무래도 자꾸만 같은 그림이 반복되다 보면. 처음에 좋아하던 시청자들도 물리기 마련이거든.”
“그건 맞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우승이 왜 갑작스러운 제안을 승낙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잇는다.
“슬슬 하차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이런 제안이 들어온 거야. 드라마 촬영하는 모습을 소하에서 쓸 수 있게 이야기까지 다 해놨다고.”
“그러면 형이 승낙할 만했네요.”
“대본 받아온 게 있는데. 그것부터 보여줄게.”
김우승이 후다닥 사라지더니 대본을 가지고 온다. 이미 받자마자 수없이 읽었는지 대본에 흔적이 가득하다.
“우승이 형. 우형이 형도 부를까요?”
“으, 응?”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우승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평소에는 과묵한 박우형이었지만. 연기 앞에서만은 가차 없었으니까.
“농담이에요. 형이 제게 연락한 이유가 있잖아요. 우형이 형은 슬슬 영화 개봉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우리끼리 해보다가 막히면 그때 불러 봐요.”
“그, 그럴까?”
“네.”
됐다.
이제 김우승은 박우형의 소환을 막기 위해. 내가 가르치는 대로 죽어라 하고 노력할 터였다.
말을 마친 나는 ‘꿈속의 당신’의 대본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왜 PD가 배우로서 긴 공백 기간을 가지고 있던 김우승에게 그런 제안을 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 이거 꼭 마치 형을 위한 캐릭터 같네요?”
“그치? 나도 처음에는 그냥 거절하려고 했는데. 대본을 딱 보니까 이거 나랑 완전 비슷한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랬다.
작가가 평상시의 김우승을 알고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아는 김우승과 대본 속의 ‘박강유’의 성격이 비슷했다.
“형.”
“응?”
“이거 잘하면 형 인생 캐릭터 만날지도 모르겠는데요?”
내 말에 김우승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날 신뢰하는 사람이 김우승이었으니까.
“그러면 한번 확인해 볼까요?”
“어? 지금?”
“당연하죠. 이거 진짜 긴급으로 투입된 거잖아요. 그것 때문에 형도 사색이 되어서 제게 연락한 거고요. 그렇죠?”
“그, 그렇지?”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하차한 배우가 대본 리딩까지 마친 상태로 만취 음주운전 사고라는 대형 사고를 친 상황.
이미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 퍼졌을 테니. 그걸 덮기 위해 김우승의 합류 기사를 최대한 뿌릴 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우승이다. 내 제자 1호라고 부를 수 있는 배우.
2호는 누구냐고?
김도윤이지.
어쨌거나.
“한 번 해봐요.”
김우승의 현재 상태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꿈속의 당신’의 박강유는 마음속 아픔을 간직한 재벌가 혼외자였다. 겉으로는 쾌활한 척하지만 속은 곯아 터지기 직전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남자.
잠시 후.
김우승의 연기를 확인한 내가 한숨을 쉬었다.
“형.”
“응?”
“우리 오랜만에 옛날 추억 한 번 되새겨 봐요.”
안 되겠다.
어디 가서 차서준의 연기 제자나 다름없는 김우승이 저런 부족한 연기를 펼치는 꼴 따위는. 내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초단기 스파르타 형식으로 갈 거예요.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어어. 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김우승의 얼굴이 서서히 사색이 되었다.
“자, 잠깐만. 서준아 그게 뭐야?”
“이거 효과 끝내주는 버프 아이템이요.”
김우승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내가 집에서 챙겨온 빨간 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