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하나 있었다.
“축하한다! 서준아.”
바로 축하한다는 말. 주우정 감독과 함께 찍은 내 단독 주연 영화 ‘목소리’가 결국 800만 관객을 넘어서고 말았다.
손익분기점 100만. 그것도 아역 배우 하나만을 주연으로 쓴 영화가 만든 결과라곤 믿을 수 없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음으로써. 작품성과 상업성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낸 셈.
그 놀라운 결과에 업계 관계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들었다.
“아무리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흥행하는 건 결국 관객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일이거든. 그런데 서준이 넌 혼자 힘으로 그걸 해냈으니.”
“다 삼촌 덕분이에요. 아마 삼촌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녀석.”
내 말에 서도현이 활짝 웃는다. 요즘 들어 서도현의 얼굴이 아주 확 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아역 배우를 넘어 배우 차서준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내가 있었고. 다음으로는 서도현의 늦둥이 외조카이자, 이제는 아역 배우가 된 김도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날이 성장해가는 회사까지. 계속 커져가는 구름엑터스의 규모는 늘어나는 직원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삼촌. 도윤이 덕분에 집에서 괜찮아졌다고 들었어요.”
“도윤이가 그러던?”
“네.”
안 그래도 구름엑터스의 대표가 된 이후에도 집안에서는 탐탁지 않은 시선만 받던 서도현이었다.
심지어 아직까지 결혼 생각이 없냐면서. 저번 명절에는 쫓겨나듯 도망쳐서 내가 집에서 음식을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다 삼촌 덕분에 저도 배우가 될 수 있었고. 도윤이도 열심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잖아요.”
“서준이 네가 도윤이의 좋은 목표이자, 친구가 되어 주어서 그렇지. 그건 도윤이의 외삼촌으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아역 배우로 데뷔한 김도윤이 일일 드라마를 통해 제법 사랑을 받으면서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서도현의 본가에서도 그 일일 드라마를 정말 재미있게 보신 것. 덕분에 김도윤을 잘 챙겨주라면서 어느새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선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사실 방금도 서도현이 ‘도윤이가 그러던?’하고 묻는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다.
“서준아. 안 그래도 어제 NBC 드라마국장과 만나고 온 참인데.”
“정말요? 어떻게 되었어요?”
영화 ‘목소리’로 S급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 차서준. 그리고 ‘폭군의 세자’로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박우형.
이 두 사람의 재결합을 거부할 수 있을 만한 방송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차서준 효과를 노리고 있는 NBC라면 더욱더.
이건 제작 준비 단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이슈였다. 그로 인해 들어올 광고는 입 아프게 말할 필요도 없었고.
“무조건 오케이지. 지금 저쪽에서 너와 박우형을 모시기 위해서 안달을 내야 하는데. 오히려 이쪽에서 역으로 하고 싶다는 의견을 먼저 보였으니.”
다른 사람도 아닌 구름엑터스의 대표 서도현이다. 말은 저렇게 했으나 NBC 측과 제법 신중한 의견 조율 시간을 가졌을 터였다.
“박우형의 영화가 곧 개봉한다고 했지?”
“네.”
“마침 저쪽에서도 후속작이 이미 편성되어 있어서. 서준이 네 드라마는 10월에 들어가는 걸로 이야기가 됐다.”
“좋네요. 준비하기 충분한 시간일 것 같아요.”
7월에 박우형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영화 홍보 활동에도 신경 써야 하는 만큼. 촉박한 일정들보다 넉넉한 일정이 좋았다.
특히나 과거 시간대 배경으로 한 장면도 많은 하는 만큼. 완벽한 세트장을 만들기 위한 시간도 필요할 테고.
“그리고 일전에 말했던 감사 팬미팅 말인데.”
“안 그래도 팬클럽에서 그것만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영화 ‘목소리’가 8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2회차, 3회차씩 관람하고. 또 열렬하게 홍보를 해준 팬들의 도움이 컸다. 그러니 보답해야지.
“일단 이번 영화에 대한 감사 인사인 만큼. 극장을 대여해서 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최대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상영관으로. 서준이 네 생각은 어때?”
“저도 좋아요. 그 안에서 미니 콘서트 식으로 노래도 부르고. 다 같이 영화도 보면 좋은 추억이 될 거 같아요.”
좋은 아이디어였다. ‘목소리’에 대한 감사 팬미팅인 만큼. 상영관 하나를 대여해서 그 안에서 각종 이벤트를 하면 될 테니까.
다만.
“대신 이번 팬미팅도 추첨식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서준이 널 보러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역대급으로 많을 것 같으니.”
그 참석 인원은 이번에도 추첨을 통해 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팬클럽에 올라오는 팬들의 기다림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일단 팬미팅 소식이 알려지면 신청하려는 사람이 미어터질 거라는 사실을.
[우리 차 배우 팬미팅 언제 있을까요? 저 이번에는 정말 꼭 가보고 싶은데. 여태까지 다 떨어졌어요. ㅠㅠ]
└ 안 그래도 저도 팬미팅만 기다리고 있어요. 이번 목소리가 800만 관객을 돌파했잖아요. 감사하다고 팬들을 찾아뵙는다고 했으니 조만간 할 것 같아요.
└ 이번에는 좀 많은 인원들이 참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번 팬미팅도 신청했다가 떨어져서 너무 슬펐음. ㅠㅠ
└ 저번 팬미팅은 금괴소동 공약으로 췄었던 딩기리딩 춤을 췄다는데. 이번에는 목소리에서 불렀던 노래들을 불러줄 것 같아서 기대 중임. ㅋㅋㅋ
└ 저번 뮤박에 나왔던 거 보니까. 이제는 미니 콘서트처럼 될지도 모르겠던데. 저도 진짜 이번에는 연차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가려고요.
└ 우리 엄마도 기다리고 있음. ㅋㅋㅋ 아마 금동이 팬 어르신들도 이번 팬미팅은 제법 많이 신청하실 듯?
└ 또 경쟁률 미어터지겠네요. 이번에 목소리 대박 나면서 팬클럽에 사람도 더 많아졌는데. 차 배우의 성공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할지 모르겠어요. ㅠㅠ
저런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생각해둔 게 있었다.
“삼촌. 이번 팬미팅 내용은 제가 한 번 구상해보고 싶어요.”
나를 좋아하고. 또 자신들의 시간까지 투자해가며 오는 팬들이었다. 그런 팬들을 위해 이번에는 직접 알찬 구성을 해보고 싶었다.
“좋은 생각이다. 서준이 네가 하는 준비 과정도 영상으로 제작해서 팬들에게 공개하면. 그것 역시 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될 테니.”
“맞아요. 이번에는 팬들에게 줄 새로운 선물이 생기기도 했으니까요.”
“그 선물이 노래일 테고. 맞지?”
역시나 서도현은 내가 한 말의 의미를 한 번에 파악했다.
“네. 목소리에서 불렀던 노래들이랑. 또 뮤직 박스에서 보여준 동생들이 좋아한 노래 메들리를 불러주고 싶어요. 그걸 원하는 팬들도 많을 것 같고요.”
“좋은 생각이다. 매번 서준이 네가 팬미팅마다 준비했던 선물도 팬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으니.”
작품이 끝날 때마다 선물하는 서준T 말고도. 팬미팅을 할 때마다 역으로 선물을 준비해갔었다.
가끔 판다고 올라올 때마다 속상할 때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주는 선물을 받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팬들의 반응을 보면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신 팬미팅은 급하게 추진하기보다 넉넉하게 기간을 잡고 준비할 예정이었다. 서도현에게 말했던 것처럼 준비하는 과정 역시 영상으로 다 담을 생각이었으니까.
“삼촌. 저 이번 주말에는 시간이 없어요.”
“왜?”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들이랑 바다 여행 다녀오기로 했거든요. 1박 2일로요.”
*
차 안에는 꺄르륵 하는 동생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하준이, 하윤이가 열렬하게 손을 흔들면서 방긋방긋 웃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의 운전이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으니까.
“함께 떠나요 동동동 세상~ 우리 함께 모두 함께 동동동~”
“동동동!”
“옹옹옹!”
내가 ‘동동이 친구들’의 노래를 불러주면. 동생들이 짧은 팔로 호응하며 따라 부른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앞에 있는 엄마, 아빠의 입에서도 연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노래가 끝나자.
“엉아!”
“엉!”
하준이와 하윤이가 재빨리 다음 곡을 불러달라며 나를 보챈다. 참고로 동생들이 요청하는 다음 곡이란 방금 불렀던 그 노래였다.
벌써 5번째 같은 곡을 불렀는데. 하준이, 하윤이는 그때마다 신이 나서 따라 불렀다.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우리 하준이, 하윤이가 서준이 노래에 신이 났네?”
조수석에 앉은 엄마가 열심히 앙코르를 외치는 동생들을 보면서 방긋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괜찮아요? 제가 노래 불러서 못 주무시는 거 아니에요?”
“그러엄. 엄마는 정말 괜찮아. 어제 우리 하준이 하윤이가 코 잘 자주어서. 엄마도 밤새 푹 잤는걸.”
“마아!”
다행히 어젯밤 하윤이가 잠투정도 없이 천사처럼 잔 덕분에 엄마의 표정이 밝았다.
사실 엄마가 푹 주무실 수 있도록. 내가 저녁에 하윤이와 함께 신나는 놀이 시간을 가진 건 비밀이었다.
그렇게 동생들의 신청곡을 불러주고. 또 엄마, 아빠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 근처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말은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
“자, 이제 곧 바다가 보이는데. 우리 하윤이 바다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빠아!”
아직 아빠가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선 아빠를 부르는 하윤이었다.
그런 하윤이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 건.
“꺄아!”
처음 보는 물결치는 파도를 보았을 때였다. 마치 ‘동동이 친구들’에 집중할 때처럼. 내가 볼을 콕 찔러도 반응조차 없이 바다만 바라본다.
조금씩 벌어지는 하윤이의 입이 말하고 싶어 하는 건. ‘우와! 바다다!’ 이런 느낌의 대사가 아닐까 싶다.
잠시 바다에 시선을 뺏겼던 하윤이의 고개가 엄마를 향한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이.
“마아!”
“우리 하윤이. 얼른 나가서 바다를 직접 보고 싶다고?”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하윤이의 외침을 한 번에 이해한 엄마가 번역을 해주었다.
“그러면 숙소에 가기 전에 바다부터 보고 갈까?”
“네!”
“응!”
아빠의 제안에 나와 하준이가 손을 번쩍 들며 대답했고. 잠시 후 씽씽이가 해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꺄하!”
태어날 때부터 유독 물고기를 좋아하던 하윤이었다. TV에서 바다가 나올 때면 옆에서 콕 찔러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
그런 하윤이가 처음 직접 마주한 바다에 멍하니 입을 벌린다.
찰칵.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에 담아두었다.
“엄마. 하윤이 너무 귀여워요.”
“엉아!”
내가 그런 하윤이의 귀여움에 어쩔 줄 모르자. 하준이가 왜 자신은 빼놓느냐는 듯 소리쳤다.
“우리 하준이도 귀엽고. 자, 하준이도 사진 찍어줄게.”
“응!”
하윤이가 모래 위를 아장아장 걸을 수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 기어다니는 터라 엄마가 품에 안을 수밖에 없었다. 하준이는 아빠가 안아주었고.
“하윤아. 좀 더 가까이 가볼까?”
그렇게 말하며 엄마가 파도로 조금 더 가까이 가자.
“꺄하!”
너무 좋다는 듯 방긋 웃음을 터트리는 하윤이었다.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데려올걸.
“하준이는 조금 걸을래?”
“응.”
이제 제법 걷기 시작한 하준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서 모래사장 위를 걸었다. 그 모습을 하윤이가 부럽다는 듯 바라본다.
아마 자기도 오빠처럼 모래사장 위를 걷고 싶은 모양.
“마아!”
“안 돼요. 하윤아 저기 파도에 들어가면 아야 해.”
물속을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들처럼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 말한 하윤이었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히잉.”
눈앞에 바다가 있는데도 들어가지 못하는 게 제법 속상한 모양.
그런 하윤이를 보던 엄마, 아빠. 그리고 나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조금 있다가 호텔 근처에 있는 워터파크에도 갈 예정인데. 거기서 신이 날 하윤이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
그러니까.
이건 내가 예상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엉아!”
“서준이다!”
“차 배우!”
“꺄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워터파크에서 이벤트로 어린이 장기자랑이 있을 줄이야.
TV에서만 보던 형을 향한 사람들의 환호성이 보고 싶었는지. 동생이 내게 요청했다.
“엉아. 저거.”
“저기 나가서 불러달라고?”
“응.”
그렇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