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윤진의 뮤직 박스’
대학 가요제를 통해 데뷔한 가수 겸 작곡가 윤진이 진행하는 토요일 밤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윤진 본인은 음악 방송이라 주장했지만. 생각보다 좋은 그의 입담 덕분에 사람들은 토크 방송이라고 놀리곤 했다.
방청객들도 노래가 아니라 윤진과 초대 가수들의 토크를 들으러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
그런 ‘윤진의 뮤직 박스’의 메인 PD 김윤철은 최근 벌어졌었던. 일명 ‘차서준 쟁탈전’에 참가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야야. 지금 차서준 모시려고 아주 난리야. 음악세상에선 눈이 벌게져서 섭외하려고 난리도 아니더라.”
“다른 방송국에선 국장급까지 움직였다는데. 확실히 화제성 하나는 지금 최고이니.”
“일단 섭외만 되면 대박이지. 소소한 하루가 차서준으로 얼마나 대박을 쳤는지 봤으면 눈 돌아가는 게 정상이지.”
이런 말들이 나올 정도로 차서준 섭외에 과열된 상황이었으니까.
토요일 밤에나 하는 ‘윤진의 뮤직 박스’에 나오기에는 매력적인 시간대 방송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랬는데.
차서준 쟁탈전의 최종 승자는 경쟁에 뛰어들지도 않았던 ‘윤진의 뮤직 박스’가 되었다.
“크으. 역시 형이라니까. 안 그래도 소소한 하루가 차서준 섭외할 수 있었던 이유가 김우승 덕분이라고 했는데. 형이 친분이 있을 줄이야.”
“예전에 음방 PD하다가 알게 된 거지. 우승이가 사람이 참 진국이야.”
마침 우연히 만난 김우승에게 농담처럼 제안을 하긴 했었다. 다른 프로보다 우리 프로가 더 괜찮지 않겠냐는 농담.
의도적으로 던진 게 아니라. 김우승이 차서준과 친하다는 소문을 들은 김윤철 PD가 툭 하고 던진 인사말이었다.
그런데.
“어? PD님 지금 뮤직 박스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도 가끔 밤마다 보고 있는데 잘 어울릴 것 같네요. 한번 서준이에게 말해보겠습니다.”
김우승이 정말 좋은 제안이라는 듯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돌아온 결과는 차서준 측의 출연하고 싶다는 답변이었다.
대체 어떻게 섭외한 거냐는 음악 방송 PD들의 물음에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형.”
“어?”
“차서준이 9살이라며. 걔 라이브 괜찮을까? 형도 알다시피 실력 엉망이면 나 표정 관리 힘든데.”
윤진의 그 말에 아차 싶은 표정을 지은 김윤철 PD가 되물었다.
“너 귀요미 버스커 영상 안 봤어?”
김윤철 PD의 물음에 윤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아, 소문은 들었는데 보진 않았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깜박했다. 최근 아역 배우 차서준의 인기가 워낙 뜨거워 윤진도 자연스럽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차서준이 최근 음악 영화 목소리로 흥행하고 있는데. 그것도 안 봤겠네?”
“형 알잖아. 나 우리 뮤직 박스 촬영에, 또 곡 작업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거.”
그랬다.
‘윤진의 뮤직 박스’가 가수 섭외에 문제가 없었던 이유. 그것은 눈앞의 윤진이 지닌 작곡 능력에 있었다.
사실 노래를 박스에서 뽑아내듯 만들어서 뮤직 박스가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로. 윤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노래들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든, 외면을 받든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물을 만들었다.
“이번에 나오는 차서준은 진짜니까. 작가들이 자료 정리해서 넘겨주면 꼭 다 챙겨봐.”
“안 그래도 요 며칠 사이에 떠들썩해서 궁금하긴 했는데. 마침 잘됐네.”
‘윤진의 뮤직 박스’에 나오는 가수들에 대해 잘 아는 건. 모두 작가들이 녹화 전 자료들을 정리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눈앞의 윤진이 프로 정신이 투철하다는 점이었다.
매번 이렇게 초대 가수들에 대한 정보들을 넘겨주면. 절대 빼먹지 않고 다 확인하곤 했다. 거기에 추가로 인터넷에 검색해서 정보들을 찾아보기까지.
“아마 차서준에 대해 좀 찾아보면 너 깜짝 놀랄 거다. 내가 봤을 땐 너가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가수 같은데.”
“그래? 근데 형도 알다시피 나 어지간한 목소리엔 인정 안 주는 거 알잖아.”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이고. 이미 다 준비해놨을 테니. 오늘 돌아가는 길에 가져가서 다 확인해. 알았지?”
“알았어.”
정확히 하루 뒤.
“형! 얘 진짜 그냥 가수가 되기 위해 태어난 애네!”
흥분한 얼굴의 윤진이 김윤철 PD에게 달려왔다.
*
처음이었다. 수많은 대기실에 있어 봤지만. 음악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 대기실에 있는 것은 말이다.
잠시 후.
“오늘 나오실 분은···. 이런, 이미 모두 알고 계시네요. 최근 영화 목소리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아역 배우··· 아니죠. 가수 차서준 군을 모시겠습니다.”
나는 방청객들의 환호 속에 무대 위에 올랐다. 사실 음악 방송은 잘 챙겨보지 않는 터라 걱정을 했었는데. 괜한 우려였다.
“이야. 역시 어린 친구지만 배우는 배우네요. 진짜 잘생겼죠?”
네! 하는 방청객들의 격렬한 호응이 들린다. 비명처럼 ‘잘생겼다 우리 차 배우!’하는 누군가의 외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팬클럽에서도 오늘 방청 신청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방금 차 배우라고 외친 사람 역시 내 찐팬일 테고.
김우승이 여길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윤진의 뮤직 박스’만큼 내가 편하게 나갈 수 있는 음악 방송이 없다고 할 정도로 진행이 부드러웠으니까.
“사실 제가 최근에 곡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PD님께 오늘 초대 가수에 대해 들었을 때. 응? 차서준은 배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저도 제가 이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저번 영화를 같이 했던 정범이 형이 공약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봤으면서. 저도 모르게 공약을 걸어버리고 말았어요.”
시무룩해진 내 말에 윤진과 방청객들이 빵 터진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로 옮겨졌다. 아직 상영관에 걸린 영화 홍보 역시 빼먹을 순 없을 테니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그리고 개봉 2주 만에 500만 관객 돌파! 이야. 이 모든 결과를 만든 영화가 차서준 군의 단독 주연으로 이루었다니. 오늘 오신 분들도 믿을 수가 없을걸요. 그렇죠?”
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500만 관객 공약을 걸어서 오늘 여기에 나왔는데. 혹시 다음 관객수 공약은 생각 없어요? 팬들은 엄청 원할 거 같은데.”
“네! 사실 오늘 여기 나오려고 엄청 많이 준비했거든요. 다음 공약은 무서워서 못 하겠어요.”
정말로. 경쟁작이던 ‘보디가드’가 알아서 무너져버린 지금. ‘목소리’는 다시 예매율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서도현이 농담처럼 ‘지금 추세라면 진짜 최종 스코어 800만까지 노려볼 수 있겠는데?’ 라고 말을 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받고 있는 상태.
여기서 더 공약을 걸었다간 김정범처럼 흑역사라도 만들어버릴지 몰랐다. 그건 조심해야지.
“그러면 차서준 군이 많이 준비했다는 첫 노래부터 듣고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요?”
“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스태프들이 스탠딩 마이크와 통기타 하나를 가져다준다.
영화 ‘목소리’ 속 주인공처럼 메인 주제곡인 ‘GOOD BYE'를 부르기 위한 준비였다.
머리 위를 비추던 밝은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이내 한 줄기 조명만이 나를 비춘다.
따로 목을 풀 필요는 없었다. 여기 무대 위에 오르기 전에 대기실에서 많이 풀었으니까.
디리링.
가볍게 줄을 튕긴 내 손이 ‘GOOD BYE'의 전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
이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수많은 가수들의 라이브를 지켜본 사람이 바로 윤진이었다.
그중에는 탑급 보컬 실력으로 인정받는 가수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고작 9살 어린 친구의 실력으론 그를 놀라게 만들 수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워하지 않아요- 비록 우리가 만날 순 없다 해도-”
차서준의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아, 이거 물건이다.’
이 생각부터 떠올랐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윤진의 고개가 차서준의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탄다.
윤진이 생각하는 진정한 가수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음색이 좋아 라이브보다는 음원이 더 좋은 가수. 현대에 들어 라이브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항상 음원 차트 상위에 줄을 세우는 것 역시 능력이었으니까.
다른 하나는 음원보다 현장에서 가슴을 더 울리는 가수였다. 흔히 말하는 콘서트를 매진시키는 가수들이 여기에 속했다.
윤진은 전자의 가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기에 인정은 하지만. 진정한 가수라면 노래로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서준이 그런 후자에 속했다. 수많은 가수들의 무대를 본 윤진마저 절로 빠져들게 만들었으니까.
당장 방청객만 보더라도 입을 멍하니 벌리고 노래를 음미하는 모습들로 알 수 있는 사실.
“GOOD BYE- GOOD BYE- 이젠 보내줄게요.”
어느새 차서준의 노래를 눈까지 감고 음미하기 시작한 윤진이었다.
‘배우라서 그런가? 노래에 실린 감정이 너무 좋은데?’
이게 고작 9살이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이라니. 순수하게 목소리에 담긴 감성만 보자면 30대 가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노래가 끝나고.
방청객들이 아직 차서준의 노래가 남긴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혹시 곡 하나 함께해볼 생각 있어요?”
자신도 모르게 덜컥 제안을 하고만 윤진이었다.
*
응?
노래가 끝나자마자 들려온 윤진의 제안에 나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나오기 전에 윤진에 대해 제법 공부를 하고 나온 터였다. 그가 가진 뛰어난 작곡 실력에 곡을 기다리고 있는 가수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첫 노래가 끝나자마자 같이 작업할 생각 없냐는 제안이 날아왔으니.
“감사합니다. 진짜 영광이에요.”
일단 카메라가 돌고 있는 무대 위에서 거절할 수는 없는 법. 일단 자연스럽게 멘트를 넘겼다. 설마 나중에 진짜로 곡을 주지는 않겠지.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냈던 것인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윤진이 물개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야! 제가 여기 위에서 수많은 분들의 노래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9살 가수의 노래에 소름이 돋은 적은 처음인 거 같네요. 여러분들도 그렇죠?”
“사실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 처음 노래를 배워봤거든요.”
“정말요? 이거 배우가 아니라 가수를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아, 죄송합니다. 방금 노래에 담긴 감성이 너무나도 좋아서. 보통 이렇게 듣는 사람의 가슴을 울릴 줄 아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는 좋은 가수가 되거든요.”
내 재능에 대한 자랑을 하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다.
“그런데 노래를 배우고 나니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정작 따로 있었어요.”
“누군가요?”
“동생들이요. 어제도 하준이, 하윤이가 요청해서 미니 콘서트를 해줬거든요.”
동생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 이제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하준이가 TV로 이걸 보면. 형이 TV 속에서 자신을 불렀다고 손뼉을 치며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윤진이 눈을 빛낸다. 마치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어? 그러면 지금 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하나 불러줄 수 있어요?”
이런.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내 손이 기타로 향하는 건. 이 노래 역시 하준이, 하윤이가 보면서 즐거워할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해야지.
*
다음 날.
대표실을 찾은 나를 서도현이 웃으며 반겼다.
“어땠니? 어제 현장 반응은 엄청 좋았다던데.”
“첫 음방에 출연에 걱정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어요. 그리고 꽤나 좋은 수확도 있었고요.”
그 수확이란 다름 아닌 윤진의 곡이었다. 동생들이 좋아하는 곡이라고 기타와 함께 부른 노래를 듣더니. 촬영이 모두 끝난 뒤에 다시 한번 제안을 꺼냈다.
일반적인 가요라면 나도 차기작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거절했겠지만. 무려 동생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들을 위해 만든 노래라고 했다.
“전에 조카를 위해 만들어둔 노래가 하나 있는데. 제 노래를 듣더니 좋은 영감이 떠올랐다면서. 곡이 완성되면 연락 주겠다고 했어요.”
“잘됐네. 애들을 위한 노래 같은 경우에는 배우 활동에 지장이 가질 않을 테니.”
그렇게 말하며 서도현이 무언가를 하나 꺼내어 내게 건넨다.
“서준아. 네가 찍은 영화가 지금 6백만을 돌파했어. 그것도 다른 주연급 배우 없이 오로지 차서준 혼자의 힘만으로.”
여기까지만 들어도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충분히 예상이 갔다.
“이제 방송가에서도 서준이 널 주연급 배우라고 생각할 거다. 그런 네게 추천해주고 싶은 드라마를 찾았다. 대본이 진짜 잘빠졌어.”
서도현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확실히 재미는 있다는 뜻.
“가져가서 한번 읽어 보고 결정하면 된다.”
나는 서도현이 건네는 대본을 받아 제목부터 확인했다.
‘타임슬립?’